
한국전쟁이 끝나고 맥아더는 떠나며 이런 말을 남긴다
‘전쟁의 폐허가 된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서기위해서는 100년이 필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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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말이 100년이지 시발
구 조선총독부 (경복궁)
안암골 (고려대)
혜화 (경성의대가 보인다.)
딱 요꼴.
서울이 저따운데 쌍도는 별수있나
오늘 도시 떡밥 뜰 때 집값 5대 광역시 씹바르던 성산구 (1969‘)
당시 창원의 제 1 번화가 도계동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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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63년, 원조가카가 제 5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당 좌파 윤보선을 15만표 차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바르고 대통령에 당선되고,
배곯는 민중들을 위해서 경제를 세울려고 하는데
씨발 뭐가 있어야지 뭘하지.
똥에서 금을 만들어 내라는데 만들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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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온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일단은 피눈물 나게 자금부터 모으자,
그리고 그 자금으로 크게 한탕하자.
그래서 시작된 것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단계 (1962~1966)
일단 쥐뿔도 없으니, 수공업-경공업(신발, 소쿠리, 가발)의 신장부터 하자.
값싸지만 양질의 인력인 광부, 간호사등도 수출하고,
월남 파병을 통한 상여금도 되는대로 다 끌어모으자.
그리고 그 돈으로 기간산업(전력, 통신, 수도)을 육성하자.
각고의 노력 끝에,
계획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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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67~1971)
이제 산업화의 동력이 만들어졌으니, 기반을 닦자.
좌빨들의 극심한 반대를 물리치고, 한일 협약으로 얻은 청구권 자금으로
당시 경제 상태로는 상상이 가지 않는 고속도로, 발전소, 산업기반시설을 확충하자.
<현장 시찰중인 원조가카>
철도, 지방도가 충분한 종단 도로보다는 횡단 도로(감자도)를 만드는게 시급하다던 세계은행과
영남 편향 반대의 과정을 이겨내고
2차 경제 개발 또한 성공적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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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를 위한 모든 인프라는 갖추어졌고,
남동 임해권을 중심으로 1973년 제 1차 국토 종합 개발 계획이 실행된다.
이 계획은 중화학 공업의 근대화, 산업화 뿌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구미의 종합 전자기지,
여수의 종합 화학기지, (후에 울산에게 뺏김)
온산(울산)의 종합 철강기지, (주도권은 포항에..)
창원의 종합 기계기지.
지금 와서 보면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기반산업들을 4대 공업으로 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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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지만 마을 6개 밖에 없던 개깡촌 창원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와 같은 상황이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는 원조가카에게 이처럼 좋은 모델은 없었다.
원조가카는 남달리 각별한 애정을 쏟아부으며
1973년, 창원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당시 세계도시 순위 중, 가장 살기 좋은 호주의 수도 시드니의 지도를 베껴 만든게 이 지도.
국내 최초의 계획도시로 개발되게 된다.
우리나라 도시의 개발 방식상, 점차 팽창 되어지는 구도인데 비해
창원은 완전한 도로 계획을 먼저 세우고 채워 나가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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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로운 시도였다.
토지 매입과 보상 후, 모든 시설을 철거 하고 부쉈다.
<중간 창원대로 준설로 나뉘는 창원의 남과 북>
그리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도시 한복판을 왕복 8차선 창원대로(연장 13.5km)를 쭉 놓고
남측은 산업단지(24,750,000㎡)
북측은 배후 도시(28,050,000㎡)로 분류,
가장 먼저 북측에 전력, 통신, 남측에 항만시설을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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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똑똑한 게이들은 눈치 채지 않았을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만들어지고,
3, 4, 5차 개발 계획을 이어나가기 위한 포석.
원조가카는 창원이라는 도시 하나로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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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계획 수립 때 첫삽을 푸고,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미안.... 국가 기록원 정보는 외부 반출이 안되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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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가 유신을 향해 총탄을 발사할때까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원조가카는 매년 창원을 시찰하게 된다.
http://www.ehistory.go.kr/page/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10046&mediadtl=20159
(동영상이 안나와서 삭제하고 링크로 대체하니까 이해해줘 ㅠㅠㅠ)
헠헠 부품을 설명 해주는 원조가카와 그걸 듣는 영애 근혜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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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가카는 하나의 완벽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모든 행정 기관이 속속 들어가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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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조가카가 이 도화지와 같은 도시를 좋아했던 또 하나의 이유.
군사, 안보적으로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
하지만 적당한 크기의 부지.
방패로 둘러 쌓여있고, 덩치가 크지 않아 방어에는 최적화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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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남침과 수도 서울의 위협,
낙동강 한계선까지 밀렸을 때 최후의 보루.
그것이 창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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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의 39사단.
해군의 진해부 사령부.
공군의 사천 사령부.
7개의 거점 국방과학연구소중 유일하게 2개소를 창원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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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70년대 이후
대통령 특별법인으로
기술자 양성의 요람 창원전문대학이 설립되고, 이어서 종합대학 창원대학이 설립된다.
또한 기계연구원 본원,
한국 전기통신연구소(현 한국전기연구원)이 이어서 설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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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것도 포석,
가카는 전시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만든 혜안이 담긴 도시였다.
창원 공업단지는 기계공업을 바탕으로
전시물자의 빠른 공급을 위한 생산 기지,
동양 최장 직선 도로이며, 왕복 8차로(확장 10차로) 창원대로는 활주로,
그리고 불모산 위를 둘러싼 국방연구소, 라디오기지, 한전연구원은 통신기지로,
그리고 70년대 만들어진 새파란 신도시에 갑자기 들어선 도청,
그리고 지하벙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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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의 벌판 창원은
원조가카의 8년동안 한 도시로서의, 아니 한 국가로서의 모든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었다.
주거, 교육, 행정, 상업, 산업, 공업,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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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도시는 3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까지 발전했어..
용량 압박(2.5mb)때문에 더이상 사진을 첨부하지 못한다는게 아쉽네...
원조가카가 김재규한테 빵야 ! 하고 총맞았을때,
그때 청와대 집무실 책상위에는 수도 이전 플랜에 대한 보고서가 올라있었다고 하지.
제 2차 국토 종합 개발계획으로 창원대를 포항공대급으로 키워서 독립된 도시로 만들어보고,
수도 이전을 위한 베타 테스트 도시로서 계속 발전 했을거라지만,
모르는 일이구 ㅋㅋㅋㅋㅋ
여튼 원조가카의 드림시티였고, 결국 그 끝을 못보고 가셨지만,
그 8년 남짓한 짧은 시간동안 뿌린 씨앗이 이렇게나 큰걸 보면 원조가카도 참 대단한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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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요약.
1. 창원은 원조 가카의 혜안으로 만들어진 작은 한국.
2. 명불허전 원조가카. SuckSex!!!
3.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는 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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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에 올렸던 글이야.
작년 8월까지 일베를 하지 않던 일베게이들 보라는 의도도 있지만,
하나의 소 국가라고 말해도 될만큼 오밀조밀하던 창원이
정치논리에 의해서 중앙정부에 의해서
하나로 합쳐지고
이젠 안에서부터 갈갈이 찢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기가 안타까워서...
특히, 이번 NC야구장 건으로 본 짤방글(http://www.ilbe.com/728042799)
을 보니 한층더 안타까워서 다시 올려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