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김대중측근 비리만 해도 어마어마하고

김대중 자체가 국민들 IMF로 힘겨워 할때 북에 다 퍼주고 뒤로 몰래 불법송금해서

자국민보다 북을 더 챙긴인간이다.

이런인간도 숭배하는데

 

전땅크가 뭔죄냐?

전땅크가 라도인들 학살한것도 아니고

정웅소장이 SOS쳐서 군대 내려간거 아녀?


5.18 당시 대통령은 최규하였고 계엄사령관은 이희성 육군참모총장,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이다.

당연히 당시 광주시민은 물론이고 서울 운동권들 조차 전두환에 대해 알지 못했고. 그리고 공수부대 투입해달라고 요청한 사람은

당시 광주 향토사단장 전라도출신 정웅 소장이다. 학살의 책임에 있어 더 중하다고 볼 수 있는 이 사람은 나중에 김대중 옆에 붙어 국회의원까지 해먹었고.

광주사태의 객관적 사실은 희생자 대부분이 시민군 총기 사고와 시민군 차량사고에 의해 다치거나 사망했다는 거다. 집단발포같은건 없었으며,

만약 있었다면 그건 시민군에 의한 집단발포였겠지. 총기사고는 실탄을 30만발이나 보유하고 하루에 만발씩 아무데나 쏴댔던 시민군이 낼 수 있었던 거지,

5월 21일 낮 12시 경에야 한동석 중위한테 겨우 실탄 200발 받은 7공수여단 병력한테 가능한 일이었을까? 20일 밤에 폭도들이 mbc방송국에 방화했을때

도청광장에 갇혀서 죽기 일보직전인 7공수여단만 남기고 헬기타고 혼자 탈출하는게 미안해서 실탄 겨우 2상자 남겨줬다. 말이 되나?

 

조선대 사기꾼들이 전두환이 광주 살육작전을 지휘했다는 유언비어 퍼뜨렸을때 전두환이 광주에 있었나?

만약에 전두환이 살육작전 명령을 내렸다면

그건 전두환이 현장 지휘하며 선봉에서 살육했다는걸 의미하는데

정웅 소장이 광주폭동 진압을 지휘하게 된 계기는 5월18일 산수동 농장 다리인근에서 경찰 45명이 팬티까지 벗겨진 채 식칼이랑 각목 들고있는

 20대 폭도들한테 인질로 잡혔고 아직 시위진압 전담 의경같은게 없었던 시기라 광주경찰서는 광주향토사단(31사단)에 순경 구조 요청을 했다.

 

정웅 사단장이 그 요청을 받고 7공수 33,35대대에 폭동 진압 명령을 내린겁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왜곡 때문에 7공수가 서울에서

투입된 병력인걸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7공수는 전북 금마에 있는 부대였고 조선대 빨갱이들이 퍼뜨린 유언비어처럼 전두환이 경상도 출신 군인들

투입시킨게 아니라 김대중 인맥인 정웅이 전북의 7공수 2개 대대를 동원한거고 7공수 병력 절반이 전라도 사람이었다

 

문제는 정웅이 지휘한 폭동진압 작전에서 시위진압 대상자가 누구냐는 거. 31사로 사람들 연행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공수부대 편에서 누구를 연행해 가야 하는질 몰랐고 광주 시민중에서 애매하게 연행되는 사람들이 있었음.

분명 그날 시위진압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부분은 인정.

하지만 정웅은 하나회 소속도 아니고 이른바 신군부도 아니고 김대중과 절친한 사이..5.18 사기꾼들은 큰 숙제를 안게 됐던거지.

그래서 전에는 전두환 대장이 공수부대 동원했다고 사기쳤다가 갑자기 지휘계통에 2원화가 있었다고 억지부리며 말을 바꾸고.

당시 광주계엄관으로서 정웅이 자기 직권으로 결정했던 7공수 2개 대대를 동원한 거랑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냥.??

 

 

또 단적인 예로 5.18폭동 발발 전에 최규하가 이미 광주에 다녀갔었다.

폭도들 앞에 두려워서 나서지는 못하고 방송으로 제발 그만하라고 사정했는데 오히려 나잘났다고 쓰레기들 속에서 뒹구니 결국엔 총탄맞고 떡갈비가 되는 것이지. 전두환은 5.18덕에 혼란수습과 민심통제의 공을 인정받아 실권자의 자리를 공고히 했고 결국 대통령까지 하게 된 거다.

 

 민주화운동은 비폭력이란 전제하에 성립되는 것이다.

그들의 행위를 보면 결코 5.18은 비폭력 민주화 운동이라고 봐줄 수가 없고.

먼저 대의명분이 부족했고 그들이 내세운건 김대중에 대한 정치 탄압과 구속을 풀어달라는 요구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