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전부 http://digitalarchive.wilsoncenter.org/
과거 기밀해제된 공식 외교문서를 영어로 번역해놓은 사이트임
문서 날짜 적어놨으니까 전문 궁금하면 찾아서 봐라
일단 산뜻하게 1959년 당시 유학파들부터 살펴볼까?
간략하게 번역하면, 유럽에서 유학생활중인 많은 남한 학생들이 여러 북한 기관과 접촉하고 있고
이들이 남한으로 돌아가기 보다 북한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내용임
서독에 거주중인 남한 유학생 105명의 월북 의사와 이들의 북한입국 절차내용을 동독에 요청함과 동시에
서독 거주 남한 유학생들의 답변과 절차에 대한 내용은 문서화하지 않도록 결정한다
(분명 이들중엔 북한 건너가서 간첩교육 받은 새끼들도 있겠지)
이건 일단 맛보기고 본격적인 1960~1961년 북한의 대남입장에 대해 살펴볼텐데
주목할 점은 북한이 통일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무엇보다도 평화통일을 굉장히 강조한다는 점임
그리고 남한 주민들에게 평화통일론을 심어주기 위해 대남선전을 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 진보세력들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 남북 평화통일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지
1. 1960년 4월 21일
4.19 혁명 이후 이승만을 이을 남한 지도자로서 누가 가능성 있고 북한에 적합한 인물인지 토의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김일성은 여러 인물들을 언급하는데 대표적으로 이기붕, 장면, 조봉암, 조병옥, 장택상임
이중에 김일성이 가장 맘에 들어한 인물이 조봉암이었고 흥미로운 점은 조봉암의 사형에 대한 언급인데
조봉암이 평화통일론을 너무 성급히 주장하는 바람에 이승만의 지시로 구속당하고 사형당했다는 내용이다
의미심장한건 "우리도 실수한 부분이 있다;조봉암은 절제될 필요가 있었다" 김일성이 이런 말을 했다는 거지
2. 1960년 6월 11일
남한에서 노동문제, 파업, 시위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고 특히, 진보성향의 단체들이 만들어졌다는 김일성의 언급이 있음
이 진보단체들의 특징은 북한에 유리한 슬로건들을 내걸고 있다는건데 이중에 반공 슬로건도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해산명령을 피하기 위한 북한의 지침이었다고 밝힌다
반공 슬로건을 지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ㅋㅋ
3. 1960년 6월 27일
점점 더 많은 남한 주민들이 남북교류를 원하고 있다는 내용임
4.19 사건 이후 더 많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대남방송을 듣고 있다고 얘기한다.
근래 만들어진 혁신당의 슬로건을 소개하는 내용도 나와있는데
이승만 일당의 처벌과 남북간의 우편 허용,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회담을 요구하는 주장도 보인다
4. 1960년 7월 25일
눈에 띄는 내용은 7월 29일 곧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 잘 하면 북한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후보 35명이 국회에 진입 할수도 있다는 발언임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사회대중당, 사회당이 북한과 연계하고 있고 일부는 조선노동당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얘기한다
(참고로 사회대중당은 1960년 7월 29일 선거에 민의원 4명 참의원 1명을 배출해냄, 그러나 5.16 군사정변을 끝으로 해산당하지)
5. 1960년 7월 26일
김일성은 남한의 민주화가 진보세력의 성장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봤고
어떤식으로든 지원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침
6. 1960년 8월 30일
북한은 사회대중당을 비롯해 상업조합, 국회의원, 서울, 부산, 마산 주재 학생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들 전부 북한으로부터 정치적, 물질적 지원을 받고 있고 북한 창립 15주기 행사때 월북해 조선노동당위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대남정책을 좀 더 효과적이고 운용적이게 하기 위해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는 대남특별기구를 설립했고.
남한과의 직접적인 관계, 대남선전선동, 일본-남한과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음
북한은 특히 남한의 노동자들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조직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하고 있다.
7. 1960년 10월 5일
남한 사회에서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슬슬 늘어나고 있고 고려대에서는 학생들이 모여 주한미군철수와 평화통일에 대해 논의했다.
흥미로운건 고려대 학생들이 중립국가 중재 가운데 통일에 대한 남북공동 투표를 실시해야 된다는 주장을 했다는거임
(북한 간부가 고려대 학생모임에서 한 발언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의문)
8. 1960년 10월 7일
남한 4.19 혁명 이후 북한에 우호적인 세력이 꾸준히 늘고 있다
동시에 반미주의와 평화통일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음
이제는 평화통일론이 일부의 주장이 아닌 계층을 넘어 사회 전반의 이슈로 번졌고
과거에는 억압 때문에 평화통일은 말도 못 꺼냈지만 이제는 대놓고 얘기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특히 김일성의 8월 16일 연설 이후 평화통일론에 더 큰 힘이 실렸다고
9. 1960년 12월 13일
과거 남한 정부는 북한의 대남접근을 적화전략으로 보고 깡그리 무시했던 반면
요즘 들어서 거의 강제적으로 북한의 제의를 공개적으로 다룰수 밖에 없게 됐다는 내용
그리고 남한의 정치인들을 강경파와 온건파 두가지 부류로 구분함
강경파는 북한의 제의를 거부하는 부류이고 온건파는 남한의 중립성과 북한과의 대화를 원하는 부류
강경파로 분류되는 정치인은 장면과 윤보선이라고 얘기함
북한의 통일방안이 전국적으로 퍼진건 아니지만 시민들을 중심으로 소식이 이미 전달 되었고
대학가에서는 반미정서가 들 끓고 있다는 말을 한다.
지금은 길거리나 카페에서나 평화통일 얘기들이 공개적으로 오고가고 있고 심지어 방송과 라디오에서 평화통일을 주제로 다루기까지 한다고 말함
지식인들과 학생들은 북한 대표단과의 접촉을 허용해달라는 요구까지 하기 시작한다
이 가운데 미국을 대표로하는 유엔사령부는 한국 정부관료들을 비롯해 북한과의 접촉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일절 불가능하다고 못 박음
10. 1961년 2월 27일
남한의 자주조국통일 운동은 심화 되었고 북한 최고인민회의의 통일 방안 발표에 따라 논란이 가속화된다
1월 15일, 남한의 다양한 정당원들로 구성된 "민족자주통일위원회" 준비위원회를 건설한데 이어 조국평화통일을 위한 사회조직, 민주화운동가들과 함께
통일원칙을 발표했고 2월 25일에는 민족자주통일위원회 결성을 선언한다.
10. 1961년 3월 31일 (이건 중국 문서임)
현재 진행 되고있는 반정부 투쟁의 정도로 봐서 장면정부의 붕괴또한 예측 가능한 범주에 속해 있고
특히 애국심과 리더십으로 뭉친 군부 또한 무시 못하는 상황임
만약 장면 내각이 대중들의 불만을 억누르고 군대까지 동원해 억압한다면 군부의 반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애국심을 가진 군부들이 반기를 주도한다면 국가전복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고 만약 국가전복이 성공적이라면 온건적인 모습을 표방하더라도
세력을 공고히 다져나가던가 아니면 미군이나 반동세력에게 진압당할 것이다.
세줄요약:
1. 과거에도 꾸준히 북한과의 내통을 통해 주한미군철수와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어 왔음
2. 1960년부터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의 시기까지 대한민국은 북한의 평화통일 전략에 완전히 휘말려 주한미군 철수와 함께 적화통일 직전까지 갔음
3. 5.16 군사정변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김정은 후빨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