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반도 다녀간 외국인들 기록 묶어
"끔찍한 자식 사랑" 따뜻한 시선도
'백인 여행자가 처음으로 한국에 체류할 경우 처음 몇 주 동안은 기분 좋은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만약 그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강력한 욕구 사이에서 씨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나는 한국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이며, 또 하나는 자살하고 싶은 욕구이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첫 번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당시의 미국과 비교하자면 형편 없는 사회인프라나 부족한 공공시설, 물자 등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가 무엇보다 견딜 수 없다고 한 것은 나약하고 게으르며 도둑질 잘하고 약자에게 강한 한국인들의 심성이었다. 자신이 무슨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자 한국인들은 불필요하게 호기심이 많다는 비난을 쏟아낸다. 한국인이 잘 하는 일이 '딱 하나' 있다며 짐 끄는 동물이라도 되는 양 묵묵히 짐 지는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일제의 동화 정책으로 빠른 속도로 말살되어가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존할 의도로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전통, 궁궐, 마을 풍경, 자연 경관 등을 기록하고 사진과 스케치 등 이미지로 남긴 독일 신부 노르베르트 베버도 그런 따뜻한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본 서양인이었다. 하지만 두 차례 한국에 왔던 그가 1911년 첫 방문을 마치고 부산항을 떠나며 쓴 글은 이렇다.
'대한 만세! 한국이여 만년 살아라!를 이별의 인사로 크게 외치고 싶지만, 정작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이 민족은 국가를 잃었다. 아마 그것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침묵으로 순정한 한국 사람들에게 손을 젓는다. 아마도 같은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자기 나라 지배자들의 통치 아래에서보다는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마치 한 민족을 무덤에 옮겨 놓는 장례식 행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런던의 러일전쟁 종군기를 소개한 조형근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은 런던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부정확한 관찰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당대에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에 속했던 그마저 '서구 중심주의'와 '사회진화론'이라는 사유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 또한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때 그들의 눈에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나라로 비쳤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잭 런던의 눈길 끄는 기록은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한울 발행)로 나와 있다. 구한말 선교사 등의 기록은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 등이 옮긴 한말외국인기록 전집(집문당 발행ㆍ전 24권)이나 지금까지 20권이 나와 있는 살림의 '그들이 본 우리' 시리즈에서 더 자세히 만나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1차 자료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잭 런던의 눈길 끄는 기록은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한울 발행)로 나와 있다. 구한말 선교사 등의 기록은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 등이 옮긴 한말외국인기록 전집(집문당 발행ㆍ전 24권)이나 지금까지 20권이 나와 있는 살림의 '그들이 본 우리' 시리즈에서 더 자세히 만나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1차 자료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