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일베간 게이다. 

아래 장문의 내용을 김제동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의견 받는다.



+

김제동 영국 ‘힐링’ 강연회 – 사람이 사람에게 - 가 실망스러웠던 이유

김제동씨가 했던 말은 굵게 파란색 볼드로 처리했습니다. 
단, 저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므로 정확한 표현은 다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제동님.
지난 영국 강연 감사했습니다. 재밌었구요. 
하지만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기에,
제 스스로 발견한 무엇도 있었기에,
간단치 않은 글을 올려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주제는 제가 정하기 보다는 여러분이 정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어떤 얘기 할까요.” 
라는 말로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제가 실망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내어 강연에 간 이상, 너그러워질 준비를 하고 참석한 것이었으니까요.

재밌는 순간이 있기도 했지만, 
총평을 하자면, 계속 너그러워져 있기는 어렵더라구요.
(제가 까탈스러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주제를 정해 달라 하시니, 
여기저기 청중분들이 여러 화두를 쏟아내 주셨죠.
손을 들고 지목을 받은 뒤 말하는 사람도, 
앉은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제동씨께서는 그것을 일일이 화이트보드에 적으셨죠. 

조국, 정치, 경쟁, 교육, 연애, 결혼, 청춘, 힐링, 등산, 영국의 느낌, 못친소, 송윤아, 박근혜, 세월호 등등.
제가 갔던 두 곳의 강연장에서 매우 비슷한 주제가 섞여 나오더군요.
물론, 김제동씨의 ‘저를 무슨 스님으로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하는 우스개 멘트도 
두 날 모두 같았구요. 

명사형이 아닌, 문장으로서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는 대학생 어린이의 질문도
‘행복하세요?’ 하는 애매하게 오지랖 넓은 듯한 남 걱정도, 
‘재밌게 얘기하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했던 남학생도,
‘설득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했던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밑에서 question으로 다룰게요)

아무튼, 명사형으로 제시된 주제를 일일이 적으실 때, 솔직히 궁금했죠.
어쩌려고 저런 화제를 다 받아 적고 계신지 말이죠.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더라구요. 
저 많은 주제를 대체 어떤 이야기로 커버하실지 궁금해지면서 말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하물며 개똥철학이 있는데, 
김제동씨라면, 
어느 정도 생각의 기반이 될 만한 학문적 바탕 같은 것을,
(꼭 학문적일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사고에 대한 고민의 흔적 정도는,
김제동씨라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저의 생각은 빗나갔습니다.
김제동씨는 청중의 대화 주제를 커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냐구요?
네, 형식적으로야 커버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질문자의 궁금한 가려움을 긁어주는 시원함도,
한 주제에 정곡을 찔러 들어가는 깊이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넓이도, 
김제동씨의 ‘강연’에는 없었습니다.

스탠딩 개그 같은 웃음은 있었습니다. 
이미 많이들 알고 있던 내용도, 
누군가 마이크 잡고 앞에 나가서 해주시니,
게다가 옆에 사람들이 같이 웃어주시니
덩달아 재밌어 지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여하튼, 
김제동씨는, 매우 아쉽게도, 
자기가 그동안 말해왔던 어떤 레퍼토리를 늘어놓고 가셨을 뿐입니다.
(레퍼토리가 있다는게 무슨 문제냐, 하실까봐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잠시 후에 적을게요)

‘사람이 사람에게’ 라는 강연 제목도 그렇죠
영국에 온다고 특별히 따 놓은 제목이 아니 라고 하셨어요. 
시간이나 장소, 청중의 수준, 최근의 이슈 등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제목이면서도 
좀 (현학이) 있어 보이는 제목이 아닌가요? 하면서 동의를 구하기도 하셨구요.

저는 그래서 강연의 제목만 그런 줄 (일반적인 줄) 알았죠.
강연의 내용이, 청중이 제시한 것과 상관없이 
일방적이고 general할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김제동씨는 제시된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이 아니고,
(레퍼토리) 이야기를 저희에게 말해 주시고 난 뒤, 
(보드에 적어 둔) 청중의 주제를 (이미 말 한 것이라고 하며) 지워 나갔죠.

네, 그러셨어요. 
남자와 여자의 차이 이야기 쭈욱 해 놓고 나서
힐링? 얘기한 거 같고......  연애? 이것도 얘기한 거 같고..
사투리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해 놓고 나서
영국의 느낌? 얘기했고...... 교육? 이것도 얘기한 것 같고..
하는 식으로 넘어가셨으니까요.

주제를 놓고,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게 아니고,
이야기를 대충 해 놓고 주제라고 적은 화이트보드를 들여다 보신 겁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말은 얼마든지 반박이 가능할 테니, 
너무 뭐라하지는 않을게요.
구체적인 얘기는 밑에 사례로 더 보도록 하죠.
벌써부터 스크롤 압박이 장난 아닐 것 같아지네요.

아.. 재치 있는 대답이 있기도 했군요.
'결혼', '송윤아', '경쟁' 이야기가 처음에 줄줄이 나오자, 
"송윤아씨(를 대상으로 한) 결혼 경쟁에서 제가 패했습니다."
라고 한마디로 끝내주셨죠. 
저도 박수를 보낸 많은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네, 저를 마냥 안티라고 보지 말아 주세요. 많은 사람에게서 박수 받으셨어요)


……


여러분이 고민이 있다, 라고 하시면, 저의 더 큰 고민을 이야기 하는 식으로 위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 마침 옆에 계시는 멋진 신사분이 ‘괜찮으냐’며 물어보면, ‘네, 괜찮아요’라고 말은 하겠지만, 실제로는 창피하고 아프고 그러겠죠. 하지만 그 때, 옆에 나보다 더 심하게 넘어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 아픔은 (상대적으로) 견디기 쉬운 것일 수도 있을테니까요.

하는 식의 말이 모두에 있었습니다.
이 말로는 아마, ‘힐링’과 ‘쓸모’를 커버하셨던 것 같아요. 
(저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인데다, 딱히 김제동씨의 말씀이 청중의 질문과 일대일 대응하던 것이 아니라서 정확한 매칭이나 표현은 솔직히 어렵네요.)

잠깐 ‘쓸모 없는 사람’을 거론한 질문으로 가 보죠.
김제동씨는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쓸모 없(어 보이)는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을 쓸모 있게 만드는 가장 큰 쓸모가 있습니다."
라고 말씀을 하셨죠.

"저 같은 (못 생긴) 사람도 사는데."
"저처럼 키작고 못난 사람도 있어줘야, 조인성이나 장동건 같은 사람이 잘생겨 보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전부 조인성이나 장동건 같다면 그 사람들이 잘생겨 보이기나 하겠냐구요. 그 사람들, 저 같은 사람한테 감사해야 해요."
라는 말씀도 하시더라구요.

자, 드러나는 거죠?

질문자의 질문은, 
쓸모 없어 보이는 자신(또는 근처의 누군가)이 힘을 얻고 싶어서 
위로를 구하듯 던졌을지 모르는 질문이었을텐데, 
김제동씨의 저 말은 그런 효과가 있었을까요?

혹시 김제동씨는, 
자신을 깎아내려 남을 웃기는, 
어떤 개그 코드를 차용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으시나요?

다시 말씀드려,
김제동씨의 그 자기 비하 개그는, 제동씨의 지겨운 레퍼토리 중 하나였을 뿐이지,
결코 질문자의 의도와는 상관관계가 없는 말 아니었냐 말입니다. 

차라리, 그 질문자에게,
'내가 쓸모 없는가? 하는 의심을 의심하십시오.'
하는 말장난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당신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실수 있으세요?'
라고 쌍방 소통하듯, 혹은 질문자가 스스로 답을 찾는 고민을 해 보게끔 하는 식으로, 
대화를 전개해 나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언뜻 김제동씨의 말은, 
'당신이 쓸모 없기에 누군가가 빛이 날테니, 너는 그대로 쓸모없이 살아라.'
라는 식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게 되면서
질문자에게 힐링은 커녕 더 큰 상처를 준 건 아닐런지요.


……


잠깐 다른 식으로 김제동씨를 공격해 보죠
(공격해서 죄송합니다만)

김제동씨는 '동부이촌동에 30평대 집과, 경기도에 70평짜리 전세가 있다' 고 하셨죠. 
그리고는 ‘지금 미혼 (여자) 분들 잘 들으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라고 친절히(!) 덧붙이기까지 하셨습니다.

근데 어쩌죠? 어느 청중들고, 김제동씨의 부동산에 대해 물어본 사람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좋아요. 넘어갈게요. 
대신, 여쭤볼게요. 

김제동님은 얼굴은 못나고 키는 작을지언정, 
남보다 우월한 생활을 하고 계시네요 
(미혼 (여성) 분들 잘 들으라, 고 하신 걸 보면 말이죠)
그렇게 쓸모있는 생활을 하시는 걸 보니,
다른 누군가의 쓸모를 희생으로 바탕을 삼으신 모양이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기서 잠깐 다른 공격을 더 할게요.

김제동씨가 왜 
(일방적이기 쉬운) ‘강연’을 주로 하시되, 
(쌍방으로 치고박고 싸우는 것이 자연스러울 일인) ‘토론’은 잘 하지 않으시는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김제동씨는, 레퍼토리에서 벗어나는 질문은 어려워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던져진 질문에 대해 대화가 한번 두번 왔다갔다 하면서 전개될 경우에는
대응이 어려운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오죽하면, 던져진 주제를 화이트 보드에 적어 놓고, 
'이거 했고, 이것도 말한 것 같고..' 하는 식으로 지워 나가고 끝일까, 싶더라구요.

주제를 받으셨다면, 그리고 그 주제를 커버하셨다고 스스로 믿는다면, 
주제를 던진 사람에게, 
'질문에 답이 되었는지', 
'김제동씨가 한 말이 답을 조금이나마 커버하였는지' 
확인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하지 않을 요량이었다면, 
왜 애당초 청중에게서 주제를 내어 보라 며, 
그 화제를 구했느냐 말입니다. 

그러니 위에 제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하는 말은
안타깝게도, 정중한 표현일지 몰라도, 
답을 기대하지 않는 가시돋힌 공격이 되어버렸네요. 


어쨌든, 동부이촌동과 경기도 어딘가에 살 곳이 두 군데나 있다 이거지요
축하합니다.  
제가 김제동씨보다 더 가난한 것 같으니, 
당신의 ‘쓸모론’을 차용해 말씀드리자면,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제가 더 크게 아파 넘어진 사람이고
제가 더 못나고 키 작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를 보고 힘을 내시길요.


......


저의 얘기가 나왔으니
제가 김제동씨께 드린 질문을 인용할게요.

'최근에 읽은 책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것이 저의 질문이었습니다.

저에게 등을 보이며 강단으로 돌아올라가셔서는 
"최근에 읽은 것은 성경과 금강경입니다" 라고 하시더라구요.

좋아요. 성경도 책이니, 넘어갈게요.
(저는 금강경을 잘 모르니, 그것도 넘어갈게요. 책인가 보죠 뭐.)
하자민, 김제동씨의 그 대답이, 
영리하다거나 적절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구요.
오히려 그 반대로,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성경 같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다니, 안쓰럽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구요.

그런데
성경과 금강경을 (최근에) 읽었다 는  분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내용을 이야기 하시더군요.

그러니까, 
최근에 읽은 성경의 어느 '구절'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고,
성경의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니,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성경만큼 general한 책이 어디 있으며,
성경 내용 중에 예수의 죽음보다 더한 사건이 어디 있습니까. 

만약 정말로 최근에 성경을 읽은 누군가가 있으시다면, 
강연이라는 구체적이고 특정적인 자리에서, 
예수의 '저들은 저희가 하는 짓을 모르고 있나이다' 라는, 
누구나 알만한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아니면, 최근에 읽었던 다른 어떤 구절을, 
(설령 내용이 정확히 나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감상이 섞인 이야기를 하게 될까요.

이쯤 되니 제가 진심으로 다시 여쭙고 싶은 것은,
과연 김제동씨 당신은 
최근에 읽은 책인 무엇인가요? 하는 
'동일한' 질문입니다. 
혹시 책을 읽지는 않은채, 
책을 읽었던 척, 하고 싶어한 것은 아니었나요.

제가 오버하는 것 같아서,
제가 한번 더 확인해 보았습니다.
(집요해서 죄송합니다)
네, 다른 날 강연에 다시 찾아 갔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질문을 한번 더 드려봤어요.

이전 것 보다 질문을 더 짧고 간결하게 했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 하나 소개시켜 주세요.' 라고요.

뭔가 데자뷰라도 느낀 듯, 눈치채기라도 하신 듯, 
김제동씨는 단박에 거절하시더군요.
"최근에 본 것이 에로 영화라서 말씀 드리기 곤란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경악하게 됩니다.
우선, 간단히 소개해 주실 만한 영화도 없을 정도로 문화적 input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며, 
어이 없게도 몇 분 뒤에, 김제동씨는 영국 오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봤다, 고 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김제동씨는 신이 나신 듯 자기 레퍼토리 영역 내에 있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네, 당신 눈이 작다는 말씀 말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영화를 보는데, 스튜어디스가 저한테 이불을 살짝 덮어주더군요 (청중 웃음). 그래서 제가 안잔다는 식으로 표시를 하려고 몸을 약간 움직였어요. 그랬더니, 스튜어디스가 사알짝 지긋이 눌러주더군요. 자는 데 뒤척이는 줄 알고. (청중 웃음). 눈 뜨고 있어요! 영화 보고 있다고!"

하는 식의 말씀이었어요. 
그걸로 모랐는지 호흡 한번 하시고 한말씀 더하셨죠.

"대한항공이었어요!!"

자, 그러면 
그 때 보시던 영화라도 소개를 해 주셨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저의 질문에 영화본 것이 없다 말하고 치워버릴 것이었다면)
애당초 청중으로부터 주제를 받아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것처럼 하지 마셨어야죠.

다시 질문 드릴게요. 
(정말 궁금해서요)
영화, 보시긴 보셨어요? (안보셨다면, 그렇게 그냥 눈 작은 걸로 사람들을 웃기고 싶으셨어요?)
보셨다면, 왜 소개 안해주셨어요...... (질문, 주제를 달라고 먼저 말씀하셨었잖아요)


......


잠깐 노파심에 다른 얘기 드릴게요.
저의 요점은 '레퍼토리'가 아닙니다.

레퍼토리는 당연히 갖고 계셔야겠죠.
하지만 청중의 질문이 레퍼토리에 들어올 것 같지 않다고 해서 질문을 내치거나,
레퍼토리를 결국 이야기 하실 것이면서 청중으로부터 자유 주제를 발의하도록 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사한) 행위는 아닐까요. 

네, 저는 김제동씨의 레퍼토리에, 웃고 박수치고 시간 보내다 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약간 허세가 들어가 있는 듯한 강연 방식에는 박수를 보내지 못하겠네요.
한두 마디만 더 주고 받다 보면 바로 김제동씨의 얕은 바닥이 드러날까봐
제가 걱정이 될 지경이었거든요.

자, 그럼,
한두 마디 더 들어갔던 질문 세 가지만 점검(?)해 볼게요.
Question A, B, C로 구분해서 아래 쓸게요.


……


Question A : 재밌게 얘기하는 법

한 남학생이 물었죠.
'(김제동씨처럼) 재밌게 얘기하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라구요.

답할 것이 참 많을 것 같은 쉬운 질문인데
김제동씨는 의외로 질문자에에 몇가지 질문을 되물으시더군요.
(차라리 저에게 ‘그럼 당신이 최근에 본 책이나 영화는 무엇인가요?’ 하고 되묻지 그러셨어요)
"질문하시는 분은 왜 재밌게 이야기 하는 법을 알고 싶어하죠?" 라구요.

네, 토론에서는 이와 같은 동어반복을 통해서 시간을 버는 방법이 통하긴 하죠.
질문이 어렵거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 말입니다.

질문자가 딱히 머라고 말할 건덕지가 없어보이면서,
'그냥 사람들이나 여자친구나 같이 있을 때,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럽니다'라는 식으로 
재차, 김제동씨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실례지만 지금 몇살이시죠?" 하고 물으셧던 것 같아요.
'스물 네살입니다.' 하는 무의미한 문맥의 대화를 잇고 난 뒤,
놀랍게도
"당신은 충분히 재밌는 얼굴이에요. (청중 웃음).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재밌을 겁니다.
라는 식으로 답을 주셨죠.

질문의 이유와, 나이 같은 걸로 시간을 벌어 놓고,
굳이 답변을 해 주신 것이 저만치 옹색하다니......
제가 어이가 없더군요. 
(물론 저도 청중들에 묻혀서 웃기는 했어요)

그런데 한편, 
차라리 이랬으면 어땠을까요.

‘당신이 보시기에, 재밌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누구던가요?’ 
‘그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길래 이야기가 재밌게 느껴지던가요?’ 
라는 질문을 되돌려 주셨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러면 질문자가 구체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더 나아가, 
(만일 김제동씨나 유재석씨 같은 사람처럼 재밌게 이야기 하고 싶다, 는 대답이 있었다면)
그 학생에게 또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되지 않았을까요?
‘(김제동이나 유재석같은) 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할 때 재밌었던가요?’ 라든지
‘그들에 비해서 당신은 어떤 점이 부족하게 느껴지던가요?’
하고 물어보는 건 어땠을까요.

이것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다른 답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게 중요한가요? 옳은 이야기를 하는게 중요한가요?’
라거나,
‘옳은 이야기를 하다보면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재밌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옳은 이야기를 한다는 보장은 없을텐데요?’
라고 말장난을 해가며 논점을 흐리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마저도 동의를 못하시겠다 하면,
‘개그콘서트를 예로 들어봅시다. 재미있다고 하지요. 근데 왜 재미있을까요?’
하고 물으면서
‘재밌는 말을 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맞는 말을 하는 것’이랍니다. 틀린 말, 공감가지 않는 말을 해서는 사람을 웃기기 어려워요. 사람을 웃기거나 재미있는 말을 하는 방법은, 알고 보면 결국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서 시작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어떨까 말입니다. 

아예 더 오버해 보자면, 
‘흡수력 있는 이야기를 하는 대화법 중에 하나는, 도치법이라 하죠?’
하면서 김제동씨께서 좋아하실 ‘레퍼토리’를 넓혀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말하자면, 
‘주저리주저리 이러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놀랐다, 하는 식의 대화 전개 보다는,
일단 먼저 ‘깜짝 놀랐어요’라고 던져서 궁금증을 일으켜 논 후, 주저리주저리 이러이러이러 한 일이 있었다, 하는 식으로 대화를 진행하는 것도, 본인의 말이 흡수력 있게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겁니다.’
하는 팁을 주셨어도 좋을 뻔 했구요.

적어도 '당신 얼굴이 재밌게 생겼으니 아무 얘기나 자신있게 해라.' 보다는 낫지 않았을까요.


……


Question B : 감상적 vs 허세적 

한 여학생은 
'감상적인 것과 허세적인 것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을 하더군요.

솔직히 웅성거리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저 질문만 가지고는 도대체 그 질문자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가 없었으니까요.
허세적인 것과 감상적인 것의 차이라니...
대체 어느 누가 이런 알쏭달쏭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히려 제가, 질문을 한 여학생에게 
‘대체 당신은 저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고 질문한 건가요?’
하고 물어보고 싶어질 지경으로
그 질문은 정말 어이가 없었지요.
(청중의 수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쨌든 김제동씨는 그 알다가도 모를 질문의 배경을 문의했고,
그 여학생은 ‘왜 제가 질문할 때만 자세한 것을 물으세요?’라는 
어이 없는 반응을 한 차례 보인 후, 
(역시, 청중의 수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자세한 배경 설명을 했지요.

듣고 보니, 
싸이월드에 장근석이 감상적인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걸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허세 쩐다, 는 식으로 반응을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가 허세고, 어디까지가 감성일지
의견을 물었던 거지요.

그제서야, 많은 청중들이 
중2병의 허세와, 어떤 감수성 사이의 간극에 대한 질문이었음을 간파하고
김제동씨의 의견을 기다렸지요. 

김제동씨의 반응은 단순하고, 가벼웠습니다. 

"일단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여기 (청중들) 장근석씨가 싸이월드에 뭐라고 썼는지, 모르겠다, 하시는 분, 혹은 관심없다 하시는 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하셨지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장근석의 싸이월드 허세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고, 알 바 없다는 식으로 손을 들었고, 
김제동씨는 의기 충천해지신 듯, 
"(그거 보세요), 남들 인생에 관심 많이 갖지 마세요. 남들도 당신의 인생에 그렇게 관심 많이 없어요."
라는 말로 답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이 답의 끝이더군요.

몇 마디 더 하실 수는 없었을까요?

허세와 감상의 기본은 같을지 모르겠으나,
그 표현이 정말 감상의 표현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는 시간을 투자해서 사고를 하고, 공부를 해서 이해하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중2병의 허세가, 감상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청춘을 낭비해선 안된다,
하는 말을 곁들이며, 
내실을 기해달라, 하는 식으로 조언해 주셨으면 어땠을까요.

감상이, 공부와 경험을 바탕으로 숙성되지 못했을 때,
그것은 허세가 될 수 있다.
그러니, 허세가 감상이 되도록 스스로 내실을 기하고,
생각하고, 읽고, 공부하고, 다니고, 보고, 배우고, 사랑하고, 나눠라, 하는 말을 하셨으면 어땠을까요.

깊이 파기 위해서는 넖게 파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
종소리를 더욱 멀리 보내기 위해서 종은 더 아파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
그런 레퍼토리'성' 이야기들을 여기에 접목시켜서 
공부하고 내실을 기하라는 말씀을 해주셨다면 어땠을까 말입니다. 


……


Question C : 설득을 잘 하는 방법

불쑥 어느 여학생 하나가 ‘설득을 잘하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뜬금없이 김제동씨께서는
"설득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 누구일까요" 라는 말을 
청중에게 (질문자에게 되묻는게 아닌!!!) 던지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엄마, 친구, 교수님 등등 이야기를 하며 웅성웅성 할 때, 
김제동씨의 답은
"세상에서 가장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은 (0세에서 3세 사이의) 아기입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공감이 한 절반쯤 가다 돌아오지요?
네. 어이 없지 않나요 ?

질문자가 설득잘하는 방법을 물었는데,
그렇다면 답은? 아이처럼 생떼를 쓰기라도 하라는 건가요?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어이가 털리더군요.

한편 들었던 생각은
‘저 얘기도 또한 그의 레퍼토리겠구나’ 하는 거였어요. 

부디, 청컨대, 
레퍼토리 말씀하시는 거, 좋아요.
레퍼토리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웃기면, 웃어 드릴게요. 
다만, 청중들로 하여금 발의하는 시간을 허용하지 마세요.
이러나 저러나, 당신은 당신 이야기를 하실 것 아닙니까.
그냥, 서서 웃겨 주세요. 
왜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만드시는 것이며,
왜 그 기대가 충족이 안되어 당신에게 실망하고, 
이렇게 제가 제 자신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어가면서 김제동씨에게 글을 쓰게 하시는 겁니까.

여튼, 
설득 잘하는 방법을 묻는 여학생에게 다시 질문을 주셨죠.
(이 점은 감사합니다.)

듣고 보니,
여학생은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은데,
부모님과 의견이 달라서, 
부모님을 잘 설득하고 싶은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하는 고민이 있더라구요. 

김제동씨는 "학비와 생활비를 어디에서 벌어서 충당하는지" 를 묻고 난 뒤,
거의 대부분을 혼자 벌어 생활하지만,
부모님께서도 일부 도와주신 다는 것을 들으시고는 
"부모님을 스폰서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논리로 말씀하시더군요.
"박지성이 자기 마음대로 포지션을 정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스폰서인 구단에서 정해 주는 대로 가서 플레이 하는 것이 아니냐. 따라서 부모님을 스폰서로 생각해 본다면, 부모님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라는 식이었습니다. 

맞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맞는 듯한 이야기인가요?
네 ‘맞는 듯한’ 이야기 입니다.

세상에, 부모가 스폰서라니오... 
돈을 누가 대 주는가가, 그리 중요한 것이었나요, 가정에서? 
부모가 돈 주며 의대에 가라하면,
피를 보기만 해도 심장이 떨리고, 남의 얼굴도 잘 못 바라볼 어느 누군가는, 
부모라는, 자기가 선택하지도 않은, 스폰서의 말을 들으며
고통 가운데 의사로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 그렇다면, 부모는, 자녀를 '고용'이라도 한다는 건가요?

설득을 잘 하는 방법을 물은 사람에게
돈을 주는 그 사람 말을 들어라, 
즉, 돈에 설득을 당해라, 하는 식의 답변을 주실 요량이었다면, 
대체 어디 힐링이 있고, 
대체 어디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입발림이란 말입니까.

미술사를 전공하고 싶다는 그 학생의 말에
'미술'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마치 자신의 레퍼토리에 뭐 하나 들어온 것이 반가웠기 때문인지,
자신의 영역에 떨어진 먹잇감을 뜯어 먹기라도 할 하이에나 처럼,
정말 뜬금없이, 
문득, 
'모나리자'의 그림 해석을 곁들이며 
'허세'를 작렬시키는 당신의 그 모습은
"(제가) 참 교묘하게 아는 척을 한다, 그쵸?" 라며 
겸손을 가장해서 얼렁뚱땅 넘기려 했음에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긴, 제가 용서하고 말고 할 것도 없겠지만요)


……


다른 이야기 해 볼게요.

청중 분 중에 결혼 왜 안하시는지 물으셨죠.
좀 따뜻하고 다정한 톤이셨어요. 
김제동씨는 일부 동의하시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한다.” 라고 하셨어요.

좋은 말이네.. 마음 속으로 동의하려 할 즈음, 
김제동씨의 특유의 깐죽대는 
(죄송합니다만, 이런 표현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목소리와 말투로 그러셨지요.

솔로라서 불행한 것이 아니고, 커플이라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제가 다,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누가 누구 걱정을 하는 거죠? 지금?

청중 분들이, 
김제동씨 당신에게, 
결혼 하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라는 애정어린 톤으로 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을 
"솔로라서 불행한 것이 아니고, 커플이라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라는,
되도 않는 말을 
마치 무슨 maxim 이라도 되는 양, 
(무슨 댓구만 맞추면 maxim이 되는 걸로 믿으시는 건 아니시겠죠?) 
마치 자판기에서 캔 커피 나오듯 읊어대는 당신의 모습에서는
커피 한잔 만큼의 따뜻함도, 공감도, 없어 보였습니다.

김제동씨 당신 말마따나,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잖아요. 

사람의 따뜻한 질문에, 
기계적인 답변을 주시는 같아서, 
정이 없이 들렸습니다,
라는 말씀을 드릴게요.


……


너무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 경악했던 이야기 한 말씀만 더 올리고 마칠게요.

남여 차이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가장 재밌었고, 우스웠고, 공감했고, 박수를 보냈던 부분입니다.
아주 훌륭한 스탠딩 개그였죠. 

하지만, 그 남녀탐구생활 같은 ‘레퍼토리’의 마지막 문단은 오버를 훨씬 넘어
복원력을 잃은 세월호 같았습니다.
너무나 안타깝더군요.  

여자가 남자보다 이성적이다, 라는 말
좋아요. 
그를 뒷받침하는 여러 사례들,
좋아요. 재밌었어요. 진심으로요. 


"하나님이 맨 처음에 아담(남자)을 만들었다가, 오죽하면 저거 하나로 안되겠다, 해서 이브(여자)를 만드셨겠어요."
하실 때도 나쁘지 않았어요. 
문맥상, 필요한 이야기라고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경악했던 것은
"저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이브가 아니라 아담이라고 믿어요." 라고 하셨을 때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돌출 행동을 하게 마련인 남자였던)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아담이 하나님한테 크게 혼이 날 것을 두려워한 이브가 조금이나마 무마하기 위해 ‘자기가 따먹었다’고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라고 확인 사살을 하시더군요.

저는 이때, 정말로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당신의 저 말이, literally 정확하진 않지만, 최소한 서술어는 정확합니다.
‘생각한다’ 또는 ‘그럴지도 모른다’와 같은 말이 아니라
"믿는다" 라는 매우 단정적인 말을 서술어로 사용했습니다.
두 번이나요.
(녹화를 해 두시는 것 같던데, 의심 나면 돌려 보세요)

어떻게, 
스스로 "성공회대를 나왔(기에 기독교 쪽이)다",  라고 말하신 분이, 
그래서 "부처님 보다는 예수님(에 마음이 간다)" 라고 말하신 분이
성경의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인, 
창세기에 나온 내용을, 
선악과를 먹은 사람을 "반대로 믿고" 있는 건가요.

그렇게 해서라도 여자들의 웃음을 사고 싶었던 건가요?

하지만 어쩌나요.
제법 많은 수의 여자분들은 당신의 그 말에
웃음을 더 이상 적선해 드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단어 수가 3천 개를 넘어가네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지만,
그건 자제할게요. 
김제동 님도 "잊지 말라"는 말 말고는 자제하셨으니 말이지요.


필요하실지 모르겠지만 (오해를 줄이기 위해) 결론을 지을게요.

1) 레퍼토리, 재밌는 것도 많았어요. 하지만 대부분, 얕고 가벼운 것이었어요. 강연이라 하기에는요. 제법 괜찮은 스탠딩 개그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 굳이 청중들에게 화두를 던지라고 안하셔도 좋아요. 어차피 김제동씨는 준비된 이야기 외에는 안하실 거잖아요.

3) 그래도, 화두를 던져보라, 자신있게 말씀하실 의향이시면,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넢게 파려는 사람처럼,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4) 감사합니다. 편협히 적었을지도 모를, 긴 글, 읽어주셔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