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을 모시고 한국을 위기에서 구한 5.16 군사혁명을 기획하고 주도했으며 한국 근대화를 위한 정치 국방 안보 치안 등 모든 국가 시스템을 국가 창업 수준으로 혁신하며 근대화를 주도한 김종필 총리 . 5.16 혁명의 시작은 그로 부터 나온 것이다. 청념하고 바르고 의리있는 군인 박정희장군의 조카 사위였던 당시 육사 8기였던 김종필총리는 4.19 전에 뿌리까지 썩은 자유당 정권을 무너트려고 군사혁명을 시도 했으나 4.19 학생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무너지자 포기하고 새로운 장면정부에 썩은 군부의 정군을 요청하다 군에서 쫒겨나 민간인 신분으로 군사혁명을 주도했다.
육사 8기들이 주도한 5.16혁명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아무런 정치적 군사적 기반이 없었다. 믿는 것은 조카사위 김종필 뿐이였다.당시 실권자는 김종필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김종필은 박정희대통령을 앞세워 자기가 꿈꾸던 한국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인물이였다. 타고난 2인자의 속성 일수도 있다. 군부의 힘과 박정희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으로 그는 한국을 새로히 창조하는 플랜을 밀어 부쳤다. 중앙정보부창설, 공화당창당. 국가통치기구의 전면적인 개편 사회기강확립등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모든 뼈대가 그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 자연히 주변에는 그의 실세를 시기 모함하며 박정희대통령과의 사이를 갈라 놓는 작전이 전개되어 한 때 팽당하여 외유를 하면서도 불만의 소리 한번 안했던 의리의 사나이이다.
세계의 군사혁명사를 보면 실세의 제2인자가 적당한 시기에 앞에 내세웠던 1인자를 제거하고 자신이 전면에 나오는 것이 통상적인 군사혁명의 표본이였다. 김종필은 이승만 3선 집권이 부른 비극을 잘아는 박정희대통령이 한번만 하면 자신에게 물려 주리라고 믿고 2인자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했으나 정치는 움직이는 물이라서 국내와 정치 안보 환경이 박정희대통령을 장기집권으로 이끌었다. 그의 뛰어난 정치감각과 추진력 을 잘아는 박정희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은 그를 끊임 없이 경계하여 그의 말대로 7번 이상 정보당국의 수색을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박정희대통령의 서거로 그의 정치적 운명에 파란이 일어난다
전두환 군부에 구속당하여 재산을 몰수 당하고 정치활동 금지법에 묶였고 그후 김대중 김영삼과 함께 야당의 길을 걸으며 대통령의 꿈을 키웠으니 실패를 했다. 대통령책임제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평생 내각책임제의 개헌을 꿈꾸면 3당합당을 통해 김영삼과 손을 잡고 내각책임제를 꿈꾼다. 내각책임제 하겠다고 각서까지 쓴 김영삼이 배신하여 팽을 당한다. 김대중과도 그가 연합한 이유는 김대중 집권동안 내각책임제를 하겠다는 각서까지 쓴 김대중의 약속 때문이였으나 이희창의 반대가있자 김대중은 슬그머니 없던 일로 약속을 깨자 김대중과 결별하며 또 팽 당한다.
의리와 약속 신의를 중시했던 그였고 자신에게 불리해도 나라에 혼란이 오면 안된다는 그 나름대로의 굳은 신념을 가진 애국자였다 . 김종필을 만나지 못했다면 박정희라는 큰 인물은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신의와 애국심으로 뭉쳐진 두사람의 인연이 한국을 근대화하여 오늘날 세계속의 한국을 만드는 믿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큰 도둑으로 유명한 조세형이 말했다 자기가 턴 고관대작들 집에 다 들어가 털었지만 아무것도 가져 갈 것이 없던 집이 알고 보니 김종필총리 집이였다는것을 !!! 자신을 내세우기를 꺼리는 충청도 특유의 기질과 박정희대통령의 그늘에 가려 그의 빛나는 업적은 가려졌지만 박정희이라는 탁월한 스트라이커가 골을 잘 넣을 수있었던 것은 천제적으로 골을 잘 넘겨주고 공격 방향을 잘 설정해 주었던 김종필이라는 플레이메이카가 있었기에 박정희대통령이 기반을 잡을 수있었다.
골을 넣은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 근대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박정희라는 큰 인물과 호흡을 맟추며 한국근대화의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낸 혁명가이며 큰 정치인이였던 김종필 그를 잊어서는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