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일제시대와 친일청산 등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게이인데, 급 이승만 초대대통령님 떡밥이 터져서 적어본다.
일게이들 중에는 설마 북한의 친일청산은 깔끔하게 다 죽였으니 과거사가 완벽하게 정리가 된 것이고! 남한은 반민특위까지 만들었지만 중간에 이승만 해체되서 친일파가 세운 정통성없는 나라라는 그릇된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이 없을거라고 믿는다.
어느정도 확실하게 정리해줄테니까 좀 읽어봐라
귀찮으면 굵은 글씨만 읽어라
2012년 6월 15일에 이훈성씨가 한국일보에서 언급했던 '최진이'씨의 책에 나온 증언 내용을 먼저보자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해방이후 전 국민의 숙원인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 내는가 하는 문제는 정치가로서의 승패가 달린 관건적 안건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떠오르던 많은 정치인사들 중 누구보다 정치 감각이 탁월했던 김일성은 이를 자기 권력기반 형성에 완벽하게 이용하였다. 그 대표적 방법이 인구 70 %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사회에서 일제시기 땅마지기나 가지고 있던 자들을 우선 처벌하는 일이었다. 3천 평 이상 소유한 자는 지주, 천오백 평부터는 부농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땅을 무상 몰수하는 것과 동시에 본인들은 전부 타고장으로 이주시켰다. 이들의 개인적 사정을 알 바 없는 낯선 고장 사람들은 국가가 ‘친일주구’‘역적’이란 딱지를 붙여놓은 추방자들을 심판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중략) 심판대에 오른 사람들은 피비린내를 맡기 전에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군중 히스테리의 제물로 고스란히 바쳐졌다. 군중의 열기가 고조되면 될수록 김일성의 정치적 카리스마는 급상승하였다. 김일성은 북한인들을 ‘적대계급’ 증오사상으로 자극시킬 때 그것이 가져올 반사작용의 효과를 알았다. 농민들에게 땅을 무상으로 분배해 준 자신에 대한 숭배열이었다. 김일성이 무상 분배한 땅은 ‘국가’의 이름하에 곧 압수될 정치 미끼일 뿐이었다. 농민들은 얼마안가 나라에 땅을 몰수당하고 ‘사회주의’의 미명하에 지주의 머슴에서 수령의 노예로 신분이동을 하였다.”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 최진이>中
저 말을 좀 쉽게 풀이하자면, 일제시대에서 땅 가지고 있던 사람은 땅을 무조건적으로 몰수하여 국유화시키고 그 사람들을 친일파의 이미지를 덧씌워 전부 다른 고장으로 강제로 보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땅을가진사람(=자본가) = 친일파 로 매도하여 친일파에 대한 분노를 자연스럽게 계급간의 투쟁으로 이끌어 냈다고 할 수있다.
항상 보면 북한은 친일파를 전부 죽였기때문에 과거사 청산은 잘 끝났어 라고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실질적으로 어떤 친일파 누가 죽었는지는 남한의 그 어떤 지식인도 대답하지 못한다. 왜? 자료가 없으니까!
북한에서 집필 된 역사서인 조선통사(1958), 조선전사(1981), 현대조선역사(1983)(이 세개가 가장 큰 역사서다) 그 어디에서도 친일파의 구체적인 실명과 그의 친일 행위를 지적하며 어떤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해방 이후에 평양으로 김일성이 돌아와서는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처벌하자고 외치면서도 뒤로는 민족진영과의 단합을 역설하는 병신같은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당시의 소련정권과 북한의 좌익진영이 좌우합작을 더 중요시 했기때문에 친일파나 민족반역자에 대한 숙청 문제를 격화시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김국후 (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님께서 말씀하시더라.
-<스탈린, '초기에 민족주의자 내세워라' 지령 "평양의 소련군정> 中
그리고 당시 소련이 북한에서 수풍발전소의 발전설비를 포함 해서 1946년 5월 1일까지 반출해간 목록을 보면 1500kg의 금과 5t의 은이 함유된 4261t의 구리와 납 광석, 78t의 페로텅스텐, 1550t의 형석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석탄생산을 중단한 석탄공업 기업소를 폐쇄하고 모든 국가 장비를 소련으로 반출해 갔거든.
(<격동의 해방 3년> 최영희 中)
이에 북한 주민들이 굉장히 크게 반발해 그래서 일어난 시위가 1945년 11월 신의주 학생의거나 1946년 3월 함흥 흥남의 대규모 시위지.
그래서 이때 북한 정권이 반소, 반공 정서를 무마하려고 한 말이 이런거지.
"일본인의 개인 혹은 법인의 소유나 조선인민의 반역자 소유로 되어있는 각종 재산 등을 무상으로 몰수해서 국유화 한 것이다!"
그러고나서 씨발ㅋ 저항세력은 전부다 반동, 친일, 민족반역자로 몰아서 숙청해버림
김일성새끼 대가리 ㅍㅌㅊ?
<해방직후 북한의 토지개혁 ,'대구사학' 69호> 2002, 전현수에 적힌 북한의 토지몰수 현황을 보면
| 면적(정보) | (%) | 호수 | (%) |
일본인 및 일본국가 토지 | 112,623 | (11.3) | 12,919 | (3.1) |
민족반역자 및 도주자 토지 | 13,272 | (1.3) | 1,366 | (0.3) |
5정보 이상 소유한 지주 토지 | 237,746 | (23.8) | 29,683 | (7.0) |
전부 소작 주는 자의 토지 | 263,436 | (26.3) | 145,688 | (34.5) |
계속적으로 소작 주는 자의 토지 | 358,053 | (35.8) | 228,866 | (54.2) |
성당 승원 종교단체의 토지 | 15,195 | (1.5) | 4,124 | (1.0) |
합계 | 1,000,325 | (100.0) | 422,646 | (100.0) |
ㅇㅇ 보면 알겠지만 막상 일본인과 민족반역자의 토지 몰수는 비율이 그렇게 크지않지?
<북한 정치사연구 1> 김광운 ,2003에 적힌 내용을 또 찾아보면 북한 개새끼들은 아예 친일파나 일본인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지
“각 방면에서 정치기구 확대는 간부충원을 필수적으로 동반하였고, 이 과정에서 전문직과 기술직의 경우 개인의 능력을 고려하여 구체제 인물의 잔류를 허용하였다. 몇 번의 당원 검열을 통한 출당조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47년 7월 현재 황해도내 당 간부의 70%가 일제의 기관이나 기업소에 복무한 경력자였다. 당 조직이 이러했다면 기타 정치기구에서는 그들의 비율이 훨씬 높았을 것이다. 이들을 간부로 충원하지 않고서는 광범한 대중의 정치활동을 보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임시인위는 정치선전과 관계없이 전문성을 갖춘 ‘친일파․민족반역자’에 대해서 관대한 규정을 내렸고, 그들을 계속 간부로 충원하였다.”
출처 ㅅㅌㅊ노?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