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영역은, 그것이 미술이건 음악이건 글이건, 결국 맥과 궤를 함께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는 바.
이에 관해
필립 퍼키스라는 사진작가의 대학강의를 정리한 이 책 중 챕터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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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예술]

처음 발명되었을 때부터 사진은 예술계에서 낙인이 찍히지 않은 송아지 같은 존재였다. 수많은 위대한 작품들은 예술가가 아니라 신문사와 잡지사가 의뢰한 작업을 수행하던 직업 사진가들에게서 나왔다. 물론 의뢰인들이 처음부터 그런 예술 작품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티모시 오설리반, 도로시어 랭, 워커 에반스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들 외에 좀 더 폭을 늘려 보면 찰스 쉴러를 들 수 있다. 그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소장품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하면서 찍은 몇몇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감정이 마음바닥에서 올라온다. 사진가가 열린 마음과 지성으로 사물을 충분히 관찰한 다음 그 주제를 온전한 매체로 기록할 때,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무언가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그의 사진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조르지오 모란디나 윌리엄 베일리의 작품에서 보듯이 회화나 조각은 물리적인 존재감(표면, 질감, 붓자국이나 손자국, 크기 등등)을 뚜렷이 보여준다. 반면 그런 특성이 없는 사진 속에서 사진가의 시각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진은 시각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논의가 딱 적용되지도 않고 정의를 내리거나 예측하기도 힘들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경이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 자체는 사진 속의 내용과 그 사진을 바라보는 구경꾼 사이에 걸쳐있는 다리일 뿐인다. 구경꾼은 그 사진을 직접 찍은 사진가일 수도 있고 그저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다. 사진가가 어떻게 그런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는 도저히 설명할 길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러므로 작품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유추하는 일이 전부인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멍하니 눈앞에 있는 사진을 바라보기만 한다.

나는 어떤 장소에 서 있다. -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 내 앞에 놓인 무언가를 바라본다. - 그것에서 어떤 주제가 튀어나올지 알 이유도, 알 방법도 없다. - 나와 그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빛. 그 빛을 기록하는 작은 카메라를 집어든다. 결과는 내 한계를 초월하는 세계를 보일 수도, 고양된 내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앞으로도 절대 알지 못하기를 희망한다.

전통예술에 위배되는 사진 매체의 속성 때문에, 헨리 피치 로빈슨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우스꽝스럽고 뜬구름 같은 상상력의 소산물들이 사진 예술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른 매체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치부되는 것들이 유독 사진세계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전시장에 걸리거나 학자들이 쓰는 논문의 대상이 되는 사진도 대개 이런 부류다. 회화나 조각처럼 전통이 유구한 매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속이 적었던 사진이 아카데미 안에서 누려 온 자유의 대가를 이런 식으로나마 치르는 것이다.
1970년대에 이르자 사진은 상품 가치를 띠게 되었다. 이전에는 사진가들이 관찰한 세계와 그들의 사고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가치가 있었지 사진 자체가 회화처럼 소장품이 되거나 돈으로 팔고 사는 거래의 대상이 되는 일은 드물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진도 돈벌이로 부상했다. 사진가가 죽거나, 대형 사진이거나, 비평가들에게 쓸거리가 풍부한 내용일 때 값은 더욱 올라갔다. 사진이 '예술'로서 가능한지를 주제로 한 논물들도 등장했다. 티격태격 편을 갈라 싸우기도 예사였다. 지금도 그들의 장단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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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양반이 사진작가에 그것을 가르치는 교수이다보니
그 외적인 존재들이 사진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에 좀 더 우위에서 사안을 바라볼 수 있는 듯한... 것이 좀 밥맛이긴 함
마치 신선인양 구는게 참;;;

그래도 현업 종사자로서 쓴 이 글은
우리가 사진 외의 창작물, 영게는 영화에 관해서겠지? 하여튼 그런 것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한번씩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서
글쌈

시발 영양가 진짜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