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은 무척이나 거창하지만.. 사실 철학 전공자가 아닌지라 뭔놈의 주의니 저놈의 주의니 하는 것에 깊은 이해도가 없다.
다만 그런 사조의 특징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을 뿐-_-. 그 어렴풋한 느낌을 더듬어 영화를 보는 데 조금 더 풍부한 밑거름으로 활용을 하고 있다고 착하고 있을 뿐이다. 근데 이게 다 말장난 투성이니 원.
철학이라는 사유 끝판왕의 세계에서 언어란 참 골치아픈 존재다. 일단 언어라는 건 그 규칙 아래에서만 사람들이 사고할 수 있게끔하는 분명한 한계지점이자, 아무런 규칙이 없던 사람들에게 사고의 틀을 제공하는 해방의 창구인 모순 그 자체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다면 너는 가족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언어를 배움으로써 넌 언어체계를 넘어서는 사고를 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뭐 그런건데
이렇게 뚜렷한 언어의 한계성 때문에 철학이라는 영역은 무수한 말장난의 복마전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실존주의라는 것도... 시발 제대로 알려면 비슷한 책들을 여러 권 읽어 말과 말 사이로 새어나간 사유의 간극을 스스로 메워야 한다.
하지만 영화보는 나같은 새끼가 그런 진지하고도 숭고한 작업을 할리는 없다.
언어의 바다에서 표표히 떠다니는 나는 망연자실 물풀 찌꺼기일 뿐. 그러니 이 글에선 실존주의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없다. 걍 키워드로 밀고감 ㅇㅇ
해서 단순히 실존주의! 하면 뒤따라 나오는 [부조리]라는 키워드로만 코엔 형제를 봐왔음을 시인해본다.
부조리. 이 부조리란 실존주의 철학의 전매특허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불편/부당함으로서의 부조리와는 조금 개념이 다르다.
머리와 꼬리를 잘라내고 곧장 몸통을 설명하자면
우리가 어떤 현상을 인지하려 할 때. 그것이 인과적 맥락 위에서 설명되지 않는 우연성에 기인하여 그 순간이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불안을 가져다 줄 때. 실존주의는 이것을 부조리하다라고 말한다. 코엔의 영화를 통해 그 부조리에 대한 감을 설명하자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우리는 카우보이 '모스'의 등에 업혀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그가 안톤 시거와 숨막히는 추격전을 벌이며 막바지로 접어들 즘. 그는 어이없게도 도피처 근처 갱들에게 총을 맞고 죽는다. 영화가 그간 쌓아온 나름의 질서에서 튕겨져나가는 순간이다. 이 융기점은 정말이지 기습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몇은 모스가 안톤 시거에게 죽음을 당했다고까지 착각한다. 왜냐면 그게 영화가 쌓아온 나름의 인과적 맥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엔은 그런거 없이 도망치는 사내와 불안한 총성과 알모를 눈빛과 이미 죽어버린 모스를 보여주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해 버린다. 이게 뭐야? 싶은 그 시점.
다른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스포일러가 있어 자세히 적지 않겠음)
[시리어스 맨]은 부조리 자체가 영화를 이끄는 동력이다. 대학 교수인 주인공의 지극히 당영한 망설임이 호수 가운데 퍼져나가는 파문이 되어 주변을 점점 혼란으로 빠트린다. 주인공의 의지는 영화 속 세계와는 무관하여 끊임없이 주인공과 반대로 작동한다. 이는 어떻게든 안정된 인과의 맥락으로 도피(혹은 수정)하려는 주인공에게 좌절만을 안겨주고, 영화 엔딩에 가서는 '허리케인'으로 대표되는 혼란 그 자체를 맞이하며 끝을 맺는다. 이는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그럼에도 영화와 무관하다 할 수 있는) 어느 나라의 민담이 주는 부조리한 감흥과 닮아있다.
그 외에도 [바톤 핑크], [위대한 레보스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등 많은 영화에서 코엔 형제는 실존주의의 특징인 부조리를 전면에 내세워 나선형으로 끊임없이 확장되는 대책없는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이 부조리가 침범하는 영역에서 우리는 무척 무기력해짐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코엔 형제의 영화를 힘들어하는 부분이 여기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가 시작부터 차분히 쌓아가던 인과적 맥락을 부지불식간에 생략/비약하여 이야기의 속력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이 생략/비약은 하나같이 인과의 영역 밖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또는 하고자 하는 방향과는 전혀 반대되는, 또는 아주 당연한 것이 좌절되는 방식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관객은 이런 기습공격에서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된다. 마치 처음 가본 장터에서 의도치 않게 엄마 손을 놓쳐버린 망연자실감 같은 거 말이지.
뭐. 사실 이런 부조리함이 도대체 어쨌다는 거냐라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다고는 자신할 수 있다.
우리는 어렸을 적 부터 납득과 이해와 인과의 세계관 안에서 자라난다. 이건 하나의 규칙으로 시작과 끝이 확연히 인지되어야만 안심이 되는 어떤 강박과도 같다. 왜 강박이라고까지 할 수 있냐면, 정말이지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불행을 당했을 때 조차도 '천벌'이니 '신의 계시'니 하며 맥락을 형성하려 드는 게 우리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부조리는 이런 감각 전반을 전복시킨다.
이는 어찌보면 우리가 편하게 발딛고 사는 삶 전반을 다시금 생경히 일깨워주는 각성의 창구같은 거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생경한 삶의 각성이 실존으로 나아가고자 부조리함에도 영화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드러내고 있지 않나 추측해본다는 거지.
코엔 형제는 그간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필름 느와르, 블랙 코미디, 스릴러, 하다 못 해 서부극까지. 하지만 이 모두에 빠지지 않고 '부조리'에 대한 감각이 조용히 장전되어 우리를 겨냥하고 있다. 이는 코엔이 앞으로 만들어낼 영화에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근데 시발 이번에 코엔 신작 나왔다면서. 거 뭐 아카데민지 칸인지에서 나왔다던데 영게이들 자세한 정보 모르노? 나는 이런 정보 어디서 찾아야 할 지 감이 안 온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