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www.ilbe.com/9240388479

2편: http://www.ilbe.com/9240771377

 

 

 

2편까지 썼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노ㅠㅠㅠ

미리 말하지만,

지금 쓰는 건 [수기]기 아니라, 그냥 실패한 이야기다

공부법 훈장질 하려는 것도 없고, 그냥 편하게 읽어 주었으면 해

성적표 인증은 다음편에서 할게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바로 수능을 보았다. 대게에도 인증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성적이

 

국 수 영 화1 2

3   2   1    7      9

 

당시 과탐은 그냥 신청했었고, 나머지 국,,수는 순수 실력빨로 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 개같은 입시판으로. 이번에는 N수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서.

 

나는 다시 재수때 다녔던 재종에 등록을 했다. 성적 가지고 상담을 했던 아재가 재수할 때와 똑같은 새끼여서 기분이 좀 묘했다.

 

이번에는 별말을 안했다. ‘열심히 하면 충분히 의대 갈수 있어요.’라는 말을 남겼고,

 

나는 다시 1년을 풀로 공부하며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다행히 같은 반에 나와 같은 예비역 형, 친구들이 4~5명 있었고, 그들을 보면서 나도 아직 안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기의식이 없었다. 확실히 내 인생은 앰창인생()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나는 아직 망하지 않았다.

 

꿈 많은 20대 청년이라며 생각하며 살았었다. 불과 1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국어는 기출문제가 중요하다고 해서 마닳이 유행했다.

 

최신 트렌드에 걸맞게 나는 아침에 등원하면 마닳을 한 회차씩 풀었다.

 

이 습관은 수능 전까지도 갔는데, 국어공부는 이것 말고는 한 것이 별로 없었다.

 

보통 학원에 6시 조금 넘어서 등원했는데 내가 거의 반에 불을 처음 키는 놈이었다.

 

아무튼 아침에 처음 오면 그 날 하루 공부할 것을 머리에 짜놓고 마닳을 폈다. 거의 1년 내내 그런 생활을 했었다.

 

수학은 마플을 사서 풀기 시작했다. 책이 두꺼워서 불편했지만 그래도 성실히 하루에 50문제정도는 풀었다.

 

수학 인강은 여전히 듣지 않았다. 영어는 처음으로 인강을 듣기로 했다. 이명학 센세의 신택스와 리로직 두 개를 신청해서 신택스부터 듣기 시작했다.

 

과탐은 이투스에서 인강을 신청해서 개념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과탐은 4월 즈음에서야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국영수에 치중해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2년간의 공백기 동안 감이 많이 떨어진 것도 있었고,

 

아무래도 과탐은 조금 나중에 해도 문제 없다는 정신 나간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어쨌든 그 생각은 6평이후 변하게 되지만.

 

학원에 있을 때는 수업을 골라서 들었다. 사실 강남대성급은 아니라서 잘 못 가르치시는 분들도 더러 있었기에 그 분들 수업은 걸렀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일 수도 있지만, 정말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는 때가 많아서였다.

 

대략 하루에 자습시간은 6시간 정도가 나왔는데, 그 절반은 수학에 투자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껴졌던 것은 예전보다 수학은 조금이나마 실력에 진전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면, ‘계산실수’, 웬만한 킬러문제도 풀어낼 수 있는 실력이었고(고난도 30은 장담을 못 했지만),

 

또 점수도 나쁘지 않았지만, 자잘한 계산 실수나, 문제를 잘 못 읽었다든가 하는 문제들 때문에 3점을 많이 틀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책은 세우지 않은 채, 수능 볼 때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문제를 풀어댔다.

 

 

 

 

 

 

 

슬슬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태양이 점점 고도를 높여갔고, 에어컨이 슬슬 틀어지고 있었다.

 

재수 때에도 느꼈지만, 4월 쯤 되니까 친목이 올라오

 

기 시작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나 역시 마냥 입 다물고 앉아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적당 적당히 주변 애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같은 반 예비역 형들

 

과도 같이 밥 먹으면서,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친목질을 이어갔다. 이건 지금 생각해 보아도 잘한 편인 것 같다.

 

그러는 사이에 다시금 6평이 소리도 없이 눈앞에

 

서 달력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6평은 만족할 만한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특히 과탐의 문제가 심각했는데, 소홀히 하다 보니 둘 다 사이좋게 4등급이 나와 버린 것이다.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4페이지는 거의 손을 못댔다. 개념만 막 익힌 상태라서, 응용문제가 나와 버리니 제대로 풀 수 있는 게 없었다.

 

수학도 2등급을 맞았는데, 사실 여기에서 아직까

 

지도 고질적인 문제가 들어났는데, 실수로 2문제를 틀려 버렸던 것이다. 당시, 2930은 맞추었는데, 27번과 16, 20번을 틀렸던 것 같다.

 

그 때 당시에는 별 위기의식이 없었다. 실수로 틀렸기는 했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애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으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계산문제는 완전히 못 고쳤다.

 

당시 성적은

 

국 수 영 화1 2

1   2   2   4     4

 

국어, 수학, 영어가 전반적으로 쉬운 시험이라 한 문제의 영향이 매우 컸었다. 아무튼 나는 그냥 묵묵히 공부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점수가 개같이 나왔다고

 

한탄하지도 않았고, 그냥 평소대로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탐을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현역 때와 완전히 달라진 교

 

육과정으로 4월 쯤 개념을 시작했고, 6평이 다가올 무렵에야 겨우 한 번 개념을 돌렸는데, 문제 자체가 현역 때와 다르게 확 어려워진 것이 느껴졌다.

 

과탐도 더 이상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6평 이후로 수학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고 과탐에 자습시간 절반을 쏟아 부었다.

 

개념을 여러 번 돌리기 시작했, 자이스토리를 각각 3권 정도 사서 기출도 여러 번 돌렸다.

 

8월 즈음에 학원에서도 방학을 했는데, 이 때는 공부를 안 하고 그냥 쉬었다. 6평이 끝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9평이 다가왔다.

 

수능 시계라는 것이 항상 그런 거 같다. 6평을 보고 나면, 9, 수능은 금방이다. 9평은 6평보다 더 쉽게 나왔다.

 

학원에서도 국영수 만점이 넘쳐났는데, 만족할 만한 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6평보다 성적이 올라서 다행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당시 내 성적은

 

국 수 영 화1 2

 2    2  1   2     4

 

 

 

 

 

 

 

국어, 수학은 각각 한 개씩 틀렸고, 영어는 만점.

 

과탐도 원점수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문제는 생2였는데, 39점을 맞고도 4등급이 떠서 적잖이 당황했다.

 

문제는 지금 생2에 비하면, 쉬운 수준이지만 1년 전만 해도 꽤 어려웠다. 특히 마지막 20DNA문제는 기억에 남았는데,

 

아이큐 테스트 같아서 풀면서도 이건 시발 뭐지?’했다. 확실히 애새끼들 수준도 올랐다. 9평 이후로 생2에 쏟는 시간을 공부시간의 40%정도로 늘렸다.

 

그렇다고 지방에 있는 내가 딱히 할 컨텐츠는 없었다. 시대인재같은 것도 몰랐고,

 

그저 생2하는 친구들이 푸는 사설 모의고사를 복사하거나 기출문제를 계속 돌렸다. 수능 때까지 기출은 10번 정도 본 것 같다.

 

슬슬 파이널이 다가왔고, 주변을 보니 애들이 수학 모고를 존나 푸는 게 보였다. 그거 좀 같이 복사해서 풀었다.

 

좋아 보이는 건 직접 사서 풀었다. 그 때까지 국어는 마닳을 계속 보았고, 영어는 이비에스를 봤다.

 

6평 전후로 리로직까지 다 들었던 터라 영어는 그 이후로 이비에스만 봤던 거 같다.

 

과학은 개념, 기출을 미친 듯이 반복했다. 10월 말이 되니 슬슬 학원을 나가는 얘들도 보였는데,

 

재수 때 생각이 나서 올해만큼은 종강 때까지 있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매스컴에서는 올 수능이 쉬울 거라고 떠들고 있었고, 그에 덩달아 올 수능은 그래도 잘 볼 자신이 있다는(근거 없는)생각에 더욱 더 공부를 열심히 했다.

 

단순히 열심히 했으니 잘 볼 거라는...

 

사실 정말 열심히 했다. 거의 매일 아침 6시에 등원해서 밥먹는 시간 외에는 잘 떠들지도 않았고, 친목질도 하루에 10분을 넘기지 않았으니까.

 

그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라는 게 정직할 거라고 생각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생각이 바뀌었지만.

 

그 해 몇 번인지 모르는 수능을 보고서 깨달은 것이다. 순히 열심히 한다고 그에 걸맞는 보답은 없다는 것을.

 

반드시라는 것도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수능도 그렇고 다른 뭐든 그렇고, 승리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히 무형적인 열심히’, 혹은 노력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력능력이다.

 

국 수 영 화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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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어려웠던 생2에서 2등급을 맞은 것. 2개를 틀렸다.

 

하지만 과탐에 시간을 너무 쏟아서 그런지 국영수는 등급이 다 1등급씩 떨어졌다.

 

점수를 보면 알겠지만, 저 점수로는 의대는 좆도, 갈 데가 없다. 집에 와서 채점할 때에는 , 이제는 진짜 좆됐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배신감과 허탈감, 무력감에 가득찬 밤이었다.

 

그 날은 소주를 한 3병정도 혼자서 깠다. 어찌됐든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이 성적으로 대학을 갈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할 것인가?

 

내 마음속에서는 의대를 향한 열망이 불타오른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나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품고, 수능 열차에 다시 올랐다.

 

별도 뜨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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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을 끝으로 이야기를 끝내려고 해

막상 썼는데 관심이 없구나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