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www.ilbe.com/9240388479
재수를 결심하고 나서 ‘아, 남들보다 1년이나 뒤처지는 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존나 귀여운 소리였지만,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2월이 돼서 나는 지방의 한 재종에 등록을 했다.
당시 등록 상담을 해주던 새끼가 존나 띠꺼운 표정으로 “학생 성적이 그닥 좋은 편은 아니네요.”했었는데,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좆같았다.
수능을 잘 보았더라면 이런 새끼의 좆같은 소리를 안 들어도 됐었는데 하는 생각도 있었고,
앞으로 1년간 고3처럼 보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서 밥도 안 넘어갔고, 잠도 안 왔던 것 같다.
첫 날은 오리엔테이션을 했는데, 사야하는 책이라든가, 규칙이라든가 여러 가지를 알려 주었다.
거의 오리엔테이션을 흘려들으면서 ‘지금쯤 다른 새끼들은 대학에 가서 오리엔테이션을 받겠지’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마음속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3월 초, 내가 보는 세상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성공한 놈과 실패한 놈.
성공한 놈은 대학에서 멋진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고, 실패한 놈은 패배자의 기분으로 좆만한 교실에 틀어 박혀, 공부를 해야 한다.
사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처분이었다. 수능이라는 것이 그렇다.
모의고사나 내신 시험처럼, ‘이번에 못 보면, 다음에 잘 보면 되지’라는 것이 통하지 않으니까.
단 한번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냉정한 시험이니까.
3월 처음으로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보았다. 사설 모의고사를 보았는데, 그 당시 점수가 꽤 잘나왔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대략 학원 이과 전체에서 15등 정도로 기억한다.
강남대성도 아니고 뭐 그 정도로 지랄하느냐 할 수 있는데, 적어도 내 수준에서는 잘 본 것이었다.
그 당시도 공부한 것은 고3과 별 차이가 없었다.
자습시간에는 학원에서의 수업 복습을 했고, 수학은 여전히 정석을 풀어댔고, 과탐은 별로 하지 않았다.
인강 역시 듣지 않았다. 인강을 들을 만한 PMP나 패드도 없었고, 그냥, 학원에서 주는 문제집, 기출문제, 자이스토리만이 내 책상을 채울 뿐이었다.
아, 또 하나 정석.
4월쯤 되자, 슬슬 연탄연기처럼 좆목질이 반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좆목질이라는 것은 참 치명적이다. 일산화탄소처럼, 맡는 당사자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치사량의 연기를 흡입 했을 때는 이미 늦는다. 나는 좆목질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공부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슬슬 떠드는 새끼들이 생겨도, 나는 혼자서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 따개비마냥 붙어 있었다.
혼자 외로이 공부하면서 ‘좆목질하는 새끼들 다 좆되고, 나는 성공한다.’라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
6월 평가원이 목전에 와도 내 공부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국어는 XX의 기술을 보는 걸로 때웠고, 영어는 학원 수업만 복습했다.
여전히 수학은 정석과 기출, 과탐도 기출. 나는 ‘수능은 기출만 공부해도 된다.’라는 생각을 고수했다.
사실 그렇게 수능을 말아먹었으면, 적어도 공부법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의 나는 우직하게(개병신같이) 밀고 나아갔다.
그렇게 6월이 왔다.
6월은 정말 잘 보았다. 수학 하나가 2등급이고 나머지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는데(수학도 최상위 2등급), ‘공부한 보람이 있구나.’ 라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으면 성적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학원을 그만 두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나를 만난다면, 빠따로 조져서라도 말리고 싶다.
학원을 그만 두는 게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에게 ‘독학으로 공부하면 더 잘 할 수 있어요’라고 설득을 했고, 6월 말 학원을 나왔다.
그 뒤의 이야기는 정말 뻔하다.
나는 수능 날까지 공부다운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처음 1주일간은 도서관에 다니면서, 성실하게 했다.
근처 도서관이 8시에 문을 열 때, 열자마자 자리에 앉아서 문을 닫는 10시까지 거의 풀로 자습을 했으니까.
당시 핸드폰도 없어서 할 게 공부밖에 없었기도 했다. 그러나 슬슬 더위도 오고 처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공부를 하다가 피시방에 가게 되었다.
모든 것이 처음에만 어렵다. 한 번이 어려운데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이미 좆되고 난 후다.
한두 번쯤 공부하다가 도중에 밖에 나가서 놀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아예 도서관에는 가지 않고 바로 피시방으로 출근해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
때로는 게임이 지겨워질 때면 조조 영화를 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수능 전까지 살았다.
무슨 공부를 했는지 여기서 쓰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놀았다고 보면 된다.
11월이 되니까 공부감각은 없다시피 했다.
지금 회고하건데 영어랑 국어 지문은 6월 이후 수능이 처음 보는 상황이었고, 수학과 과학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수학하나가 유독 기억이 남는데, 통계에서 변수X를 표준화하는 공식도 잊어버려서 헤맸었다.
과탐도 결과는 비슷했다. 개념을 6개월간 보지 않았으니 첫 장부터 쉽게 답을 쓸 수 없었다.
결과는 뻔하다. 현역보다 씹망한 성적표. 이번에도 나는 갈 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갈 데가 한군데 있기는 했다. 군머였다.
나는 그렇게 군대로 도피하듯 도망을 갔다.
다음 편에 계속 쓸게
1편 쓰는데 아무도 관심 안 가져주노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