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에는 몰랐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어렸을 때에는 그저 친구들과 게임이나 하거나, 놀러 다니면서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했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흘렀다. 더 이상 나는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아니고 어른이 되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별로 어른이 되었다라는 느낌은 안 든다. 아직도 나는 19살의 고등학생인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수능이 전부인 아직 어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린 아이도 아닌, 그런 애매한 위치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채 말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수능이 끝난 어느 날, TV에서 본 세상은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아직도 그런 흐름에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나인 것 같다. 빵에 갔다 나온 죄수마냥.

 

주류의 세상의 흐름에서 한참을 벗어나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아마 회고록이라고 보면 적당할 거 같다. 그냥 한심한 새끼의 푸념일수도, 한탄일수도, 반성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중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아마 내 인생의 리즈시절이 아닌가 싶다.

 

아니 확실히 앞으로 몇 년을 살지는 모르지만, 그 때만큼 행복해질 거라는 자신은 없다.

 

그 정도로 내 인생에 있어서 중학교 시절은 행복 그 자체였다. 친구들도 많이 있었고, 특히 친했던 친구 4명과 함께하는 학교생활은 정말 즐거웠다.

 

산해진미를 처음 처먹는 노예가 맛있다라는 표현밖에 할 수 없는 것처럼

 

중학교 시절 이후로 앰창의 길을 걸어왔던 나에게는 그저 그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라고 진부한 표현밖에는 할 수 없다.

 

별로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시험기간에만 잠깐 공부했고, 성적도 그에 걸맞게 정직하게 나와 주었다.

 

내 관심사는 오직 친구들과 게임 뭐 그 정도였고, 학교가 끝나면 피시방에 가거나 노래방에 가거나 했다.

 

학원도 다녔지만 복습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업은 받았지만.

 

3 무렵에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 고딩 누나랑 썸까지 타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그 무렵이 지금 생각해 보아도 즐거웠다.

 

그렇게 나는 별일 없이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주변 어른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성적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라는 말들을 하곤 했었는데

 

당시 나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반배치 고사랑 중학교 성적을 합산해서 등수를 매겨 심화반이라는 것을 뽑았는데,

 

따로 수학이나 영어를 더 가르치고, 자습도 따로 시켰었다. 당시의 나는 형편없는 중학교 성적과 배치 고사 성적으로 심화반에는 들지 못했다.

 

입학하고 10일쯤 후에 첫 모의고사라는 것을 보았다. 중학교의 시험형식과는 완전 다른 모의고사라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는데,

 

당시 나는 반에서 1등을 했다. 심화반에 들지 못하고 관심 밖에 있던 녀석이 모의고사를 갑자기 잘 보니

 

그제서야 선생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도 내 성적이 괜찮게 나오자 심화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로 성적이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대략 반에서는 1~3등정도를 유지했고,

 

그렇게 3학년까지 이어졌다. 우리 학교가 지방의 사립고여서 꽤나 공부를 빡세게 시켰는데,

 

사실 고등학교에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나는 대게에서 처음 알았다. 동아리는 없었고, 오직 수업, 보충, 자습뿐인 생활이었다.

 

특히나 심화반은 12시 가까이 자습을 했는데 정말 좆같았다. 그렇게나 공부를 시키니 애새끼들 성적이 안 괜찮게 나올 리가 없었다.

 

변명이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내신 따기도 좀 힘들었다. 우리 동기 중에서는 1.0이 없었으니까.

 

자습시간에는 주로 영어와 수학을 했다. 그 날 배운 것 복습 하고 나서, 거의 수학 공부를 했는데 정석을 풀었다.

 

사실 고등학교 3년 내내 걱정이 되는 과목이 있었다면 수학인데,

 

그렇게 정석을 풀고 쎈을 풀고 했어도, 수학 성적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개망은 아니고 모의고사에서 2등급이상 받기가 힘들었다. 1등급은 거의 없고 주로 2~3등급이었다.

 

당시 공책에 수학을 잘하고 싶다라고 스스로 깜지를 쓰면서 자습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고3이 되어도 수학 실력은 그대로였다.

 

3이 되어도 자습시간의 거의 대부분은 수학을 했다.

 

다른 과목도 모의고사는 잘 나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수학이 제일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뭐 인강을 듣거나 한건 아니었다. 3이 되도 정석을 풀고 있었고,

 

자이스토리 기출문제를 하나 사서 풀기 시작한 정도 였다. 영어도 공부는 거의 안 했다.

 

과탐 역시 6월 모평 전까지는 내신 공부에 맞춰서 공부한 정도였고, 따로 시간을 내서 한 적은 없다.

 

아무튼 그렇게 처음으로 평가원에서 주관하는 6월 모평을 보았다.

 

당시 쉬운 수능이다, 만점자 1%다 뭐네 해서 평가원도 꽤 쉽게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의 나도 나름 점수를 잘 받았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점수였다.

 

7월 교육청 모의고사가 끝나고,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다. 방학을 했었는데 시발 딱 하루 쉬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래 고3들도 일주일가량 방학을 줬다던데, 그런 거 없고 풀로 학교에 갔었다.

 

그 때 담임이 우리들한테 고생한 만큼 대학 잘 갈거라고 한 말이 생각나는데 결과적으로 고생만 한 거 같다.

 

좆도 형식적인 방학이 끝나고 9평을 보았는데 6평보다 성적이 잘 안 나왔다.

 

수학과 영어가 조금 어려웠는데, 수학이 3등급이 나왔다.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과탐이었다.

 

6,9평 둘 다 과탐이 점수가 좋지 못해서 그 때부터 과학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과탐이 지금처럼 씹헬은 아니어서 적당히 기출문제 사서 풀고 학교에서 수업하는 교재 개념부분을 읽었다.

 

그 당시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1등급이 가능했다.

 

 

 

 

 

 

 

9평이 끝나고 수시철이 왔는데, 당시 반 분위기가 개판이었다.

 

아마 전국에 있는 모든 고3 교실들이 그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그 지역에서는 꽤 괜찮은 사립고였는데도 자습시간에 떠드는 얘들이 있었으니까. 어수선한 9월이 지나가고 10월이 됐을 때,

 

수능까지는 4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당시 고3시절에는 파이널이라는 개념을 잘 몰랐다. 인강도 안 듣고,

 

수학은 여전히 기출문제를 붙잡고 있는 실정이었고,

 

국어는 ‘xx의 기술이라는 책을 보고 있었고, 영어는 안했으며, 과탐도 계속해서 기출만 돌렸다.

 

실모를 푼다는 것도 없었는데,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야 실모라는 것도 있구나하고 알게 되었다.

 

아무튼 의미없는 파이널이 지나가고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타게 되는 수능 열차에 처음 타보게 된다.

 

수능 시험은 나에게는 꽤나 어려웠다. 어렴풋이 나는 기억이지만, 국어는 헷갈리는 문제 투성이였고,

 

기출문제만 풀었던 나에게 수학시간은 그냥 시발소리만 나왔다. 영어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풀었던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과탐이었는데, 사실 그 당시는 과탐이 쉬웠던 탓에 과탐만큼은 잘 나왔다.

 

수능 점수가 나오고 보니, 중앙대 수준이었다. 모의고사에 비해서 점수가 떨어진 편이었는데,

 

나는 이딴 점수로 갈 데가 없다며, 성적표를 찢어서 버린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재수를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에서 생각하는 건데, 그 때 그냥 대학을 갔었어야 했다.

 

그 때는 몰랐었다.

 

N수라는 것은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