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www.ilbe.com/1758838894 - 촛불폭동과 비교해본 광주사태가 폭동인 이유


2편 http://www.ilbe.com/1800701777 -  광주사태가 폭동인 이유 -법률편





선3줄요약 :

1.도청앞 집단발포가 일어난 이후 무기고를 털었다는 말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2.이미 08:00부터 무기고를 털기위해 사전계획되어 있었다


3.집단발포로 인해 급조되어 뭉쳤다고는 도저희 볼수 없는 체계적이고 화려한 군사작전을 생각나게 하는 작전이다 광주는 폭동이다



안녕게이들아 오늘은 광주사태가 폭동인 이유 3편 거짓말 편을 써보려고 한다


좌좀들이 존나 발목잡고 물어 뜯고 있는 영화 - 화려한 휴가 처럼 5월 21일 도청앞 집단발포를 했기 때문에

지들이 전라도 38개 무기고를 터는게 정당했다는 논리를 논파 하려고 한다 3편도 잘읽어 주길 바란다


우선 영화화려한 휴가 처럼 공수부대가 람보처럼 갈긴 사건이 절때 아니다 우리는 수사기록

그리고 5.18단체가 자랑하는 유네스코 기록물로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21일 계엄군이 발포를 했던 이유는 바로 버스와 장갑차를 이용한 돌진공격 때문이다

광주사태 1.png

(돌진공격)


이미 20일 저런 행위 때문에 경찰4명이 사망하고 이미 이러한 행위가 20일 부터 시작되어

21일 1시전 까지 2~3차례 일어 났다 


21일 도청앞 상황 출처 : 검찰보고서


광주사태1.png 광주사태2.png



자 1시 30분에 첫발포가 일어났다 그것도 광주시위대의 수차례 돌진공격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장갑차에다가 발포 한거다


자 그런데 무기 탈취는 언제부터 시작 되었다??


광주사태3.png 


1시부터 털기 시작해서 1시 35분에는 총기460정 실탄 1만발을 이미 확보한상태이다

자 이로서 공수부대가 집단발포를 했고 그에 맞서기 위해 전라도 38개 무기고를 털었다는건

말이 안되는 소리다 더 확실한 근거와 증거는 수사기록을 통해 명확히 들어난다


이들은 21일랄 공수부대 발포때문에 턴게 아니라 계획적으로 털었다

여기 일게이들은 무기를 털려면 뭐가 있어야 하나?? 그렇다 바로 차량이다 


차량으로 기동력을 확보하고 적재를 할수 있는 차량일 필요하지 않는가??

그리고 저위에 수사기록에

장갑차가 무기고도 안털었는데 벌써 등장하는게 이상하지?? 바로 이사건 때문이다


도시게릴라에 영웅인 체게바라도 울고갈 엄청난 전과를 올린 전투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21일 08:00에 막강한 전투사단 20사단이 수백명에 시위대에게 괴멸당하는 사건이다


수사기록1.png


1번째 이 시위대는 어찌 20사단이 광주공단 입구를 통과할줄 알고 기다렸다가 

진로를 차단 했을까가 첫번째 의문이지만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겟다


2번째 : 전투사단 군인 보다 민간인이 상식적으로 강할수는 없다 이건 경상도 사람이건 전라도 사람이건

           서울 사람이건 마찬가지다 평범한 시민이 전투부대 인솔대를 괴멸시킬수 있다는 말인가


자 이건 다음편에서 설명하기로 하고 결국 20사단 인솔대를 괴멸시키고 사단장용 짚차 포함 짚차 14대를

타고 다음 행동을 개시 한다


수사기록2.png


20사단 지휘차량을 탈취한걸 타고 곧바로 09:00에 고속버스 5대를 타고온 300명과 합세하여

아세아 자동차를 털어버린다 여기서 장갑차 4대와 차량 56대를 타고 진출한다

자 어떤가 엄청나게 계획적이지 않노??


이는 북한도서 광주의 분노에도 명확히 나와 있다

광주의분노_600명.png


물론 북한 도서가 더 빠르다 검찰수사기록은 90년대 기록이지만 북한은 10년이나 빠른 1985년도에

이를 세세하게 기록한다


자 이차들을 이용해서 무기고를 털었는지 안털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노?? 이차량들의 행방을

광주단체가 자랑하는 역사기록물에서 보도록 하자 지들이 씨부린 말이니 부정할수 없다


강주원의 증언 :

내가 탄 차는 그렇게 1시간 정도를 돌다가 서방시장 쪽으로 갔는데, 사람들과 차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고속버스가 7, 8대, 시민군 차가 3, 4대 정차해 있었다. 
담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간다고 했다. 몇몇이 고속버스에 타는 걸 보고 나도 그 쪽 차로 옮겨탔다. 사람들이 대충 정리를 해서 승차하자 출발했다. 

(강주원, 1988) http://altair.chonnam.ac.kr/~cnu518/zb41pl7/bbs/view.php?id=ja_03&page=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name&desc=desc&no=443


고등학생 시민군 이지형의 증언


 2, 3대 가량의 차량이 있었는데 어찌나 빨리 달렸던지 총 몇 대 정도였는지는 알 수가 없고 약 100-200미터의 간격을 두고 군용차량이 쏜살같이 달렸고 광주고속은 속도를 느리게 해서 사람을 많이 태웠다. (이지형 1988)


시민군 강성남의 증언


남면지서 무기고는 이미 열려 있었으며, 사람들이 1백여정의 총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도 한 자루씩 총(예비군이 사용하는 총)을 들고 무기를 보급하기 위해 광주로 갔다. 광주 지원동 버스종점에서 무기를 든 사람은 내리고, 그 차는 다시 화순으로 갔다. 나는 군용지프차에 옮겨타고 도청으로 갔다 (1989강성남)

링크 : http://altair.chonnam.ac.kr/~cnu518/zb41pl7/bbs/view.php?id=ja_03&page=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39


이거말고도 존나게 많은데 우선 08:00 20사단을 궤멸시켜 지프차 14를 확보하고 이어서 곧바로 09:00시에

아세아자동차를 습격해서 수많은 차량을 탈취하고 전라도 38개 무기고로 일제히 달려나간다


무기고.png 


과연 이 넓은 지역의 무기고를 터는데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일어났다고 한들 08:00시부터 사전준비(차량준비 등등)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넓은 반경의

무기고를 4시간 안에 턴다는게 가능한가?? 물론 이중에 다음날 털린것도 몇개 있다 그런데 대부분 다털렸다

광주시민들은 위급한 상황이 되면 우리지역도 아닌

전라도 지역의 무기고,경찰서,예비군무기고 등등 위치가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단 말인가??


자 이로서 영화 화려한휴가 처럼 계엄군이 집단발포를 함으로서 이에 항쟁하기 위해 무기고를

털로 갔다는 논리는 완벽히 깨진다


이미 무기고를 털려고 08:00시부터 20사단 지휘부를 습격해 짚차로 기동성확부후

곧바로 아세아자동차 습격 이후 일부는 무기고를 털로 일부는 시민들을 태우로 갔을뿐이다


그리고 좌좀들 논리 대로 급조로 뭉친 광주시위대가 무기고를 털어 1시부터 털기 시작해 4시에 마무리

그리고 불과 2시간만에 대한민국 최정예부대 공수특전단을 화력으로 밀어버리는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이로서 우리는 이 600명에 대해 연구를 해봐야 한다


다음편에서는 600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겟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