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게이들아 ㅠ 같은글 또써서 미안한데, 이유가 있다.
전에 올린 일베갔던 글들 몇개 사진이 꼬여서 모링한테 수정좀 부탁했더니 전부다 삭제해버렸다 ㅡ ㅡ...
건의함에 올렸더니 복구는 못해준다고 죄송하다 하더라..
정보글 써본게이들은 알겠지만 ,
글쓴거 많은애들이 읽어줘서일베 간것들이 작성글보기에 차곡차곡 쌓일때 그 뿌듯함이 뭔지 알거다.
근데 글하나당 적어도 3~5 시간을 투자한 글들을 삭제해 버리면.. 글쓸 의욕이 나겠니들
내가 일베 레벨먹자고 이짓하는것도 아니고..
올린글 또올리는건 저런상황때문이니 양해좀 바란다.
날라간 글들 전부 재업하고 내용보충해서 일베 보낸뒤에 다음편(묘청편) 쓸 생각이다.
쩝 도와들줘라
내용보강해서 다시 올린다, 읽었던 사람도 다시한번봐바 ~ 더다듬었고 내용도 추가되었으니.
좀길어도 꼼꼼히 읽어봐들 아리송 했던것들이 많이 풀릴거야 .
[역사정보글]
1.황제국 고려에 대한이해
-http://www.ilbe.com/1308166143
2.조공,책봉 관계에 대한고찰
-http://www.ilbe.com/1090250150
헬로
교과서에서 배우긴했지만 뭔가허전한, 우리 한국사의 중세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고려에 대한이해가 부족한 게이들위해 역사글들썼던 일게이다
오늘은 천자국의 축제 팔관회에 대해 알아보자
팔관회: 우리 민족의 고유 민속신앙과 불교의 팔관재계(八關齋戒)가 습합된 신라와 고려시대의 국가적 행사
(개경에서 11월 15일, 그리고 서경에서 10월15일에 베풀어졌다)
라고는 나와있지만 사실 고려시대의 팔관회와 신라의 팔관회는 그성격이 많이 달랐어
어떻게 달랐는지 한번볼까?
<삼국사기> 에 의하면 팔관회는 신라 진흥왕 시절에 처음으로 열렸고 태봉의 궁예가 열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라때 행해진 팔관회는 호국적인 성격이 짙었어.
고대(삼국시대이전) 에는 무속신앙으로 통치자들이나 기득권의 권위를 유지하고 나라질서를 잡았다면
한반도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무속형태의 불교적 변용이 이러한 역할을 했고 그결과 호국불교라는 의식으로 까지 확산된것으로 볼수있음.
+궁예 역시 승려 출신으로 지도자가 되었으니 불교로 정치력을 단결한 대표적인 예라고 볼수있어.
후에가서는 미륵을 참칭하며 절대신권을 휘두를 정도니.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고 , 천년역사 신라에서 일어난 나라이니 이런영향이 자연스레 이어졌는데
이런 이유로 고려의 불교역시 호국불교적인 성격을 띄고있었다.
(이후 유교가 들어와 발전하지만 백성을 하나로 묶는 종교의 중심으로 불교의 힘이 여전히 막강했지)
이는 거란전쟁당시에 현종이 전시 상황에서도 팔관회를 열었엇고 몽골 침략당시에 부처의 힘으로
이겨내기위해 대장경을 만든것을 보면 알수있음
이러한호국불교적 성격이 짙었던 팔관회가
고려시대에 오면서는 이른바 천자국의 축제. 고려최고의 국가행사로 그성격이 확장되는데
고려시대 팔관회의 의미는 "고려가 천하의 중심이 되는 국제질서" 라는 것이야
◎ 먼저 [정치적 목적]에서 고려 천자를 중심으로한 행정질서의 확립과
◎ 만국 사신들과 상인들의 조하를 받고 고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위엄을 선포했음
물론 고려황제에게 조하하는 모든 사신이나 상인들이 고려에 복속된것은 아니었지만
고려가 중심이 되는 천하를 이해하고 그 일원으로 고려의 덕을 받는 조공국의 사자로 예우 되었지.
풍입송에 보면 고려주변 지역들을 '외국'과 '만적' 으로 지칭하며 구분하는데
만적은 고려에 토산물을 진헌하는 하위 집단이고 외국은 만적보다 높은격으로 대우되는 집단이야
- 또한 팔관회에는 고려의 직,간접적 지배에 있던 여러 지역의 부족국가들의 사신들을 참석시켰는데
이는 고려가 이들에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확인시켜주는 목적도있었다.
- 현종 때의 대외무역(조공) 기록중 일부만 발췌한것-
기유일. 여진말갈(女眞靺鞨)의 목사(木史)가 부락민들을 데리고 와 입조하므로, 작위와 의복과 기물을 내려주었다.
신축일. 송나라 천주(泉州) 사람 임인복(林仁福) 등 40명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계묘일. 송나라 강남(江南 : 지금의 중국 푸젠성 일대) 사람 왕숙자(王肅子) 등 24명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병신일. 송나라의 천주(泉州) 사람 이전(李
) 등 30여 명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을묘일. 동여진 추장 아로대(阿盧大)와 서여진 추장 아개(阿盖) 등이 와서 입조했다
무진일. 철리국(鐵利國) 임금 나사(那沙)의 사신인 아로태(阿盧太)가 와서 토종말을 바쳤다.
경인일. 동흑수국(東黑水國) 추장 구돌라(仇突羅)가 와서 토종말과 병장기를 바쳤다
병자일. 탐라(耽羅)에서 특산물을 바쳤다
갑인일. 대식국(大食國) 의 열라자(悅羅慈) 등 백 명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이슬람제국)
신사일. 대식국(大食國)의 만하(蠻夏)·선나자(詵羅慈) 등 백 명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계축일. 탐라의 세자(世子) 고오노(孤烏弩)가 입조해 왔으므로, 그에게 유격 장군(游擊將軍) 벼슬을 주고 예복 한 벌을 내려주었다.
이렇듯 고려천하의 위엄을 세우기 위한 팔관회는 현종때에 거란이 흥화진에 진을쳤던
전시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개최되었을 정도이니
그의미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가盧?
당시 궁에서 나와 군사들과 전의를 다지던 고려황제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자
고려는 중화(中華)와는 달리 동방에 고려가 중심이되는 또하나의 천하를 구축했고
그것을 팔관회를 통해서 대외적으로 활발하게 운영해 나간것이다
<팔관회 행사도>
->황제에게 조하를 올리기위해 태자 이하 공후백 황싱종실들 , 재추들이 대형형태로 서서대기한다
재추: 중서문하성과 추밀원의 대신들을 가르키는말
공후백: 고려는 황실종친, 거대호족들을 하나의 제후왕 으로 봉하고
식읍과 작위를 내리렸다 (일베간 링크글 참조)
cf). 왕기:개성국공(開城國公) -> 정간왕
이자겸: 조선국공(朝鮮國公)
김준:해양후(海陽候)
[경제/무역적] 성격 에서보면
-벽란도에서의 활발한 교역
-송상인,여진,탐라,왜인 등은 고려황제에게 조하를 올리고 조공무역을했는데
저들 각자 황제에게 진귀한 물품을 헌상했고 고려의 토산품등을 하사받은것이지
또이런 조공무역외에 서로에게는 외국물품을 구입할수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했는데
고려는 여기서 송상과 여진, 거란상인을 이어주며 간접무역 형태로 이익을 남기기도 했어
또한 송상인은 일종의 경제사절단 같은 성격으로 방문했으면서
또한편으론 거란-고려 사이의 정황을 살피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있었지
-고려 최고의 축제 팔관회

이런 정치적, 경제적 목적이 있었던 팔관회는 고려를 [문화적으로 통일]하는 중요한 역할도 했는데
국내외 상인및 사신들의 조하가 끝나면 연회가 열렸고
그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했다고한다.
비단장막이 설치되고 꽃으로 장식된 그릇에 술과 귤, 유밀 ,유자 등이 나오고
만세 소리와 춤, 백희가 팔관회 행사장인 의봉루를 장식했지. 적국 각지의 해외 광대들과
놀이패들을 동원해 새벽1시가 되도록 장내에서 노래부르고 춤추는 동안 백성들은 신분의 구분없이 행사를 즐겼지
또 팔관회가 개최되는 나흘동안 전국이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항상 시행하던 야간통행 금지도 해제되어
고려백성들은 맘껏 축제를 즐겼을정도이니 그 열기가 대단했겠지?
이렇게 각국의 사람들과 물품들, 화려한 의식과 음식, 행사들로 "국제 무역박람회" 팔관회가 열렸던거지
[팔관회 행사 일정] <출처 - 네이버 >
행사위치 : 개경, 만월대, 의봉루 앞마당에서 행해짐
행사시기 : 11월 보름날을 전후로 하여 사흘간 개최
행사진행순서
13일 준비일 14일 소회일 15일 대회일
13일 준비일
13일 준비일: 팔관회 행사 시설 설치
[13일 준비일] - 팔관회 행사를 위한 참가자들의 예행 연습을 실행하였고 팔관회 행사 시설들을 준비설치 하였다
3층 부계(浮階) 설치 : 의봉문루(儀鳳門樓) 동편 전각인 동전(東殿) 계단 밑에 설치
의봉루에 전상 준비 : 간이 천막인 악(幄), 전상 설치, 왕좌(王座) 설치,
왕 전용 간이화장실 겸 휴게소인 편차(便次) 설치, 왕태자(太子) 자리 배치,
동물 모양의 화로인 수로(獸爐)는 왕좌 앞 양편 기둥들 밖에 설치 부계 자리 배치 준비 : 부계의 자리를 계급에 따라 배치
화안 설치 : 꽃꽂이가 설치된 화안(花顔)을 왕좌 앞 양편 기둥 사이 좌우에 설치
과실상이 차려진 과안(果案)은 왕좌 앞에, 왕에게 올릴 술잔이 놓인 수준안(壽尊案) 은 좌우 화안 남쪽에 설치
거대한 의례용 술잔인 대준뢰(大遵?)를 사지(沙?)의 동서 양쪽으로 진열. (사지는 의봉문루 바로 앞에 마련된 행사의 중심 구역)
황룡대기(黃龍大旗) 설치 : 황룡대기를 사지 동서편 계단에 가깝게 진열
문사욕위(聞辭褥位) 설치 : 태자/ 공후백/ 宰臣(재신)/ 문관 3품/ 문관 4품 이하/ 무관 3품/ 무관 4품 이하로 분류하여 설치
배위(拜位) 설치 : 태자/ 공후백 /재신/ 좌추밀 / 좌시신(左侍臣) / 좌봉례찬자(左奉禮贊者)/ 우추밀 / 우시신(右侍臣)/ 우봉례찬자(右奉禮贊者) /문관3품/ 문관4품 이하 / 무관3품/ 무관4품 이하/ 합문부사(閤門副使) 이상/ 통사사인(通事舍人) 이하로 분류하여 설치
팔관회 행사 진행 연습 - 재상, 문무백관, 악공, 집사관 의봉루 앞마당 집합하여 전체 행사 예행 연습 진행
14일 소회일
14일 소회일(시설설치)
팔관회 행사 시설 설치
[14일 소회일] - 소회일 행사는 공식적인 국가의례의 성격을 강하게 지녀 전반적으로 매우 엄숙한 분위기에서 행해졌다.
대관전과 의봉루 사이에 3천여명의 화려한 복장의 호위군사를 진열하고 태조영정에 술을 올리며 연희와 조하 의식을 행하였다.
황제의 표시인 황룡기를 설치하고 만세를 외침으로서 황제 국가로서의 위계 질서를 정립하는 의식을 행하였다.
특히 각 지방에서 올라온 지표관들이 황제를 칭송하는 표문(왕을 칭송하는 글)을 올렸는데
이러한 의식의 반복을 통하여 고려 황실의 위상을 전국에 알리고 정치적인 융합을 도모하였다.
終會(종회)
팔관회 행사 진행
[15일 대회일] - 대회일 역시 소회일과 마찬가지로 의봉루로 행차하여 문무백관들과 봉표원들로부터 축하 표문과 축하주를 헌수 받는 형식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외국 사신들의 조하 의식이 행사 순서에 포함되고 있는 것이 소회일과 다른 점이었다.
이 때 송나라 상인과 여진, 탐라, 왜에서 파견된 사신들이 축하 표문과 특산물들을 바쳤는데,
황제는 이에 대한 답례로 음악공연과 가무백회를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을 배정하고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때 각국 상인들도 몰려 들어 국가 간의 무역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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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무역을 활성화 시킨 팔관회는
불교행사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고 사치가 심하다는 최승로의 건의로 잠깐 폐지 되었다가
1010년에 부활되고 이후 고려 전시기 동안 거의 매년동안 개최된다.
요약:
고려의 팔관회는
천자국의 위엄을 세워 정치적인 영향력을 강화했으며
문화적통일, 경제적 교류를 도모한 국가최고행사이자 국제무역 박람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