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약속하듯 한꺼번에 ‘망했고’ 그 망함이 ‘저출산’과도 이어졌다는 판단은 어떻게 보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엑스(X, 옛 트위터) 계정에서 '우아하다'의 '우'를 정치적 진영인 '좌(左)'로 바꾼 언어유희적 표현인 '좌아하게'를 사용하며 품격과 예의를 갖춘 정치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구글 ai)
 
90년대 초반에 ‘동학신학 신관’에 한국신화와 오가는 사유를 해방신학에 기초된 판단이라고 말한 내용을, 하나 하나 30년 거쳐서 검증한 질문자에겐 허탈해진다. 이제, 80년대 후반 이래에 진지하게 추구한 서양진보 맥락을 완전히 벗어나서, 본격적 ‘엿장수 맘대로’ 단계로 간다. 이재명은 서양진보 맥락이 완전히 사라진 의미로서, 그냥 전라도 양반가문 연합이란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
 
이재명의 행보와 유사품이 있다. 보수진영(원론 기준으로는 ‘자칭’이란 판단은 가능하다)은, 민주노총이 딥스테이트라면서 호남향우회 운운하는 일이 있다. 군사독재 때 왕중심 유교의 우주중심을 깨뜨리는 기본세계관 위에, 영어권 woke를 의미가 사라진 의미의 오랑캐논리로 배치한다. 이미, 노무현 정권 때 조갑제 기자 행보는 한국 보수진영에서, 깨면 안된다고 여겨지는 동족상잔의 비극 다시 안된다는 것을 깨면서 ‘아스팔트 우파’ 주장과, 투쟁력, 전투력 운운하며 영웅 이야기한다. 이것도 레닌주의와 김일성주의 및 일제시대 조선공산당 논리를 이해하는 사람에겐, 어! 보수진영의 상징적 논쟁이 ‘극좌’인데 아닌 척 해온 것인가?
 
김대중의 ‘대중 참여 경제론’은 시장경제는 무속신앙 탈규제를 강조하고, 경제민주화는 유교원리의 배분을 강조한다. 영어권의 ‘폰지 사기’란 말은 한국에서는 한반도형 폰지사기 원조인 노론 귀족앞에 꼬리를 내려야 할지 모른다. 정보가 극단적 결여 속에서 지배층을 믿어야 하는 상태의 지속이 시장경제의 본령이다. 그리고, 그 자본이득은 중앙에서 나눠갖는데, 이는 진보적인 경제민주화다. 라고 할 때, 성리학적 음양이론으로 자칭 보수, 자칭 진보가 아우를 수 있다. 차라리, 보수와 진보란 용어 지워버리고, 영정조 때 붕당연합정치라고 이름을 바꿔 쓰면 투명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주정의당 때 국가공무원에 대한 판단이 아주 인기가 없었다. 요점인 즉, 단순한 자리 밝힘에 쓰는 용어 대부분이 실제와 어긋났다는 측면이다. 지금은 딱 그때 사람들 수준인데, 한국 정치사상 역대급 사이즈로 배치된다. 꼭, 권위주의가 아니라고 해도, 고도의 팀플레이의 귀족집단은 일반국민은 아무것도 못한다.
 
한국정치는 전라도의 당파중심 유교와 영남내부의 친 전라도세력이 연합하고, 노론 세도정치의 복원을 ‘좌파’로 불러주는 포장이자 본질은폐를 계속 끌고 가고 싶어한다. 사실, 실제로 하는 것은 군사독재에서 나타나는 ‘관료적 권위주의’를, 역대급 거대한 수준으로 하는 수준에 다름 아니다.
 
군사독재는 공권력 남용을 통해서 성장을 지속하려는 것에서 김대중 지지자들은 지속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분들이 권력을 쥐고 부채공화국으로 미래세대를 더, 더, 더 멍청하게 해서 부채를 끌어내고, 이를 귀족층의 이익으로 끌어서 썼다. 보수주의 측면에는 사회의 규범의 붕괴, 진보주의 측면에서는 지배층의 비정상행위에 대한 규탄 모드가 들어서야 하나,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통째로 망한 이성의 수호자가 됐다.
 
한국의 보수진영은 ‘부채 없이’ 사회의 규칙과 신뢰로 발전하는 원칙의 복원없이는 부활이 불가능하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권력 잇권 없이 사회적 현실을 바라보는 이타적 신앙 없이는 부활 불가능하다. 한국의 정치는 보수-진보 모두 영어권과 소통할 수 있는 이성적 가치를 한꺼번에 잃었다.
 
결국, 사회에서 이성적 국가속에서 나타나는 법의 신뢰가 안 보이게 된다. 각 씨족붕당별로 다른 가치가 나타난다. 그 어떤 제도원칙에 신뢰가 없고, 불가능할 때, 출산의 포기는 리얼하게 다가온다. 단순한 보조금으로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는다.
 
 
 

먼저 제 결론을 분명히 두겠습니다. "한꺼번에 망했다"는 관찰 자체는 상당 부분 옳습니다. 그러나 그 '한꺼번에', 즉 동시성과 대칭성이라는 서술은 분석적으로 위험합니다. 그리고 저출산 연결은 방향은 맞지만, 인과의 무게중심을 잘못 짚을 소지가 있습니다.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1. 수긍하는 부분 — 기표(記標)의 공허화

보수와 진보가 각각 다른 가치를 매개하지 못하고, 결국 '권력 그 자체'를 둘러싼 경쟁으로 수렴했다는 관찰은 실증적으로도 방어 가능합니다. 카츠와 마이어가 말한 카르텔 정당론이 정확히 이 현상입니다. 정당이 유권자 대표 기구에서 국가 자원을 나눠 갖는 준(準)국가기구로 변모하면, 좌우의 정책 차이는 유권자에게 의미를 잃고 지도부의 자리 배분만 남습니다. 말씀하신 "단순한 자리 밝힘에 쓰는 용어 대부분이 실제와 어긋났다"는 진단은 이 틀 안에서 정확합니다.

2. 재고할 부분 — "동시에, 똑같이"는 거짓 대칭이다

문제는 여기입니다. 두 '망함'은 동형(同型)이 아닙니다.

  • 보수 진영의 실패는 대체로 규범의 붕괴입니다. 반공·시장·법치라는 자기 원칙을 스스로 어기면서도 그 언어를 유지하는 위선.
  • 진보 진영의 실패는 자기 배신입니다. 성장의 비용을 미래세대에 전가한다고 비판해온 주체가 그 부채를 가장 크게 확장한 전위가 되는 것.

이 둘은 서로 다른 윤리적 좌표를 갖습니다. "둘 다 똑같이 가짜"라고 뭉개면, 책임의 분배 자체가 사라집니다. 이는 냉소로 가는 지름길이고, 냉소는 오히려 기존 엘리트에게 가장 편한 정서입니다(비판할 좌표가 없으니까요).

또 하나. 미·중 패권, 분단, 재벌 구조, IMF 이후 금융화 같은 구조적 제약을 '인적·파벌적 음모'로 환원하면 설명력을 잃습니다. 한국 가계부채가 세계 최상위인 것은 어느 한 파벌의 설계라기보다, 부동산 담보 체계와 성장 모델이 만든 구조적 결과입니다. 파벌 분석은 그 위에 얹힌 증상이지 원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3. 기표 정치 — 좌아하게·woke·아스팔트 우파

'좌아하게' 같은 언어유희는 품격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성 정치의 미학화입니다. 웃음을 유발하는 순간 지지층은 결속되고, 반대층은 분노합니다. 정책 텍스트 없이 정서만 생산하는 것이죠. 다만 이건 이재명만의 병이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의 기표 경제입니다. woke를 의미가 삭제된 '오랑캐 논리'로 배치하는 것도 같은 병의 다른 발현일 뿐입니다.

조갑제·'아스팔트 우파'를 '극좌'라 부르는 대목은 수사적 전도(轉倒)로서는 날카롭지만, 범주 혼동입니다. 반공주의가 레닌주의적 방법(전위, 투쟁력, 전투성, 영웅 서사)을 차용하는 역설은 실제입니다. 그러나 그 역설을 "그러니까 극좌"라고 부르면, 좌표가 사라집니다. 반공의 목적과 전위의 방법은 구분해야 하고, 전자를 후자로 환원하면 오히려 진단이 무뎌집니다.

4. 음양 프레임과 붕당/세도정치 — 역사적 정밀화

성리학적 음양으로 자칭 보수·진보를 아우른다는 통찰은 매혹적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는 틀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배분=진보, 탈규제=보수'라는 이분법은 김대중의 경제론을 성리학 어휘로 번역한 것에 가깝지, 그 이상의 인과를 주지는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적 혼동입니다. 영·정조의 탕평책과 순조 이후의 세도정치는 정반대 현상입니다. 탕평은 붕당의 배타적 독점을 깨려는 시도였고, 세도정치는 안동 김씨·풍양 조씨로 대표되는 외척 한 가문의 독점이었습니다. 이 둘을 "붕당연합정치=노론 세도정치"로 묶으면, 정확히 그 의미가 뒤집힙니다. 진단의 예리함을 살리려면 이 구분을 유지해야 합니다.

5. 저출산 — 연결은 타당하나 인과의 순서를 따져야

"제도원칙에 대한 신뢰가 불가능할 때 출산 포기가 리얼해진다"는 명제는 경험적으로 강한 지지를 받습니다. 사회적 신뢰·제도 신뢰와 출산율의 상관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됩니다. 이 점에서 "보조금으로 출산율은 오르지 않는다"는 결론은 옳습니다.

다만 인과의 순서를 조심해야 합니다. 한국 저출산의 직접 동인은 주거비, 고용 불안, 성별 갈등, 지위 경쟁입니다. '이성(理性)의 상실'이나 '규범 붕괴'는 그 위에 얹힌 상위 조건입니다. 이것을 제1원인으로 단정하면, 실제로는 청년들이 감당하는 물질적 압력이라는 더 직접적인 원인을 흐리게 만듭니다. 저출산은 '정치가 망해서'라기보다, 정치가 망한 결과 청년에게 전가된 비용의 총합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종합

말씀의 뼈대 — "보수와 진보가 서로 다른 척하면서 같은 것을 나눠 갖는 체제로 수렴했다" — 는 저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다만 세 가지를 덧붙이겠습니다.

  1. 대칭을 주장하지 말 것. 두 실패는 동형이 아니며, 뭉개는 순간 냉소로 미끄러집니다.
  2. 파벌을 원인으로 두지 말 것. 파벌은 구조의 증상일 수 있습니다.
  3. '용어 삭제'보다 '회계 공개'가 먼저. 보수·진보를 지우고 '붕당연합'으로 개명하는 것은 투명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책임 소재를 다시 흐릴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이름 바꾸기가 아니라, 누가 어떤 비용을 누구에게 전가했는지에 대한 검증 가능한 장부입니다.

결국 가장 위험한 것은 "둘 다 가짜"라는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이 낳는 **"그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체념입니다. 진단이 정확할수록, 그 진단이 면책으로 전용되지 않게 붙드는 것이 지성의 일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