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보수유권자의 상식인 형법개정안에 있어서 거부권 행사를 포기했습니다. 이는 부정선거에 대한 깨끗한 인정과 겹칩니다. 어떻게 할껀데? 할테면 해봐. 행간의 메시지는 이것이죠. 전두환 노태우 시대의 민정당 때, 김대중 민주당 지지자들에 보였던 자세. 1인권력에 권력집중하고 할 테면 해보라는 자세에서, 이제 당파권력집중하고 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바꿉니다. 상부구조 문화영역은 조갑제 박정희 책장사 빼고는 뿌리가 뽑혔습니다. 현재의 ‘1초의 정치유튜브’ 보기가 시간낭비 같아 보이는 이들에 대하여, 지금 지배층은 자신감이 붙은 겁니다. 물론, 언론은 ‘입틀막’이라고 붙인(사실 현상을 표현이 생각하게 해야 하는데, 이름을 붙인 자의 대중이 우매하다고 전제하는 언론인의 이름달기만) 내용없는 현재의 유튜버들에 대한 규제는, 그들이 걱정한다고 보는 해석도 가능하기는 할 겁니다. 어쨌든, 서양정치학 공식으로 진지하게 성찰된 몇 인 이상의 교차검증을 통한 도식을 통하여, 진지한 현재의 권력의 무너짐의 상상이 아닌 한, 조선시대에서 민심이 들끓습니다. 인정을 베푸소서. 따위는 눈하나 깜짝 안할 가능성이 99%라 봅니다.
자유진영은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에 배팅했습니다. 과거 제3세계 진영은 위안화에 배팅합니다. 한국은 미국에 배팅하는 듯 하면서(대외적으로는 그렇게 하며), 모든 법질서에서는 제3세계의 스타일 및 일제시대 소련마을 잇권 지대로 갑니다. 여기서, 이승만, 박정희를 자유당 때 및 군사독재 기득권자를 위한 잇권으로 던져주고, 거기에 정신팔린 영남의 기득권 귀족은, 보수유권자가 처절한 자의적 차별을 당하는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기득권층은 영정조 탕평 대동 신화를 이야기하며 전라도는 이게 정상이라고 할 겁니다. 그러나, 상간녀와 법적 부인의 탕평책은 법적 부인 눈에는 공감갈 수 없습니다. 또, 전라도의 상식을 논하면, 대구경북의 아시아적 상식의 난도질에서 형평성 문제가 나타납니다. 물론, 서양법으로는 대구경북의 왕권제유교 아닙니다. 양비론이 맞습니다. 민주당이 대구경북 왕권제유교를 비판한 잣대, 그대로 비판받아야 합니다.
조선일보와 조갑제기자는 일부 영남 보수를 현혹할만한 단어를 던져줍니다. 지역주택조합에서 ‘평당 1900만원’ ‘동호수 지정’등 던져주되, 그 중심 내러티브는 사기횡령배임으로 서민의 돈을 자기돈으로 생각하는 전제에 깔리듯, 모든 것을 호남중심 호남이기주의로 영남 및 비호남의 자의적 차별로 깔아주고, 일부 과거 영남기득권자에 현혹될 표현을 던져주고, 자기들은 균형이라는 차원입니다.
군사정권 30년은 빚이 금기였던 시대였습니다. 지난 30년은 빚 안지는 사람이 이상한 사회입니다. 다시 앞으로 30년은 빚이 금기인 시대로 갈 것입니다.
군사정권 내내 ‘대한민국을 국민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1인 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1987년 6월 이후는 계약국가로 바뀌었습니다. 조선일보와 조갑제기자는 메인 당파를 지키는 것이 국가라는 지적입니다. 이런 측면의 불신은 한국ai 불신론으로 갑니다. 빚이 금기인 시대는 관세가 붙습니다. 그 시절에 자국산 옹호심리로 플랫폼 자국산? 이란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보수진영은 어설픈 거리의 아스팔트 데모 깨끗이 집어치우고, 양자택일의 선택지. 자유진영 안에서 지난 30년 빚을 많이 진 댓가를 치루거나, 중국 위안화 패권에 줄 서면서 아무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늘 감시받고 사는 선택지겠죠. 전두환 민정당을 후원했던 조선일보 마인드를 생각하면, 이분들은 지성언어로 정말로 힘이 있는 목소리는 강하게 규제할 겁니다.
조선일보의 ai관점은 중국의 ai를 군사독재식 과학관점(너무 낡아서 오늘에는 한숨나는 기술도구주의)으로 봅니다. 사실은 통화패권전쟁이자, 자유민주 수호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조선일보 기사는 믿을 수가 없는 불륜남성 스탠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