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편 드는 영어권 가톨릭은 가능하지만, 그 논리가 영어권 가톨릭에 복종해야 한다는 가톨릭내부의 사정만 떠나서는, 이란편을 드는 이유가 없다고 본다. 로마법주의와 유대교논리의 결합으로, 기독교 밖의 이란에도 그렇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그런 ‘희망’적 가치가 없는 현실이 있다는 원리로 가게 된다. 이와 비슷한 논리로, 중국의 1당독재 공산주의적 실제를 무시하고 바라보는 영어권 친중파 심리다.
대충, 대충 .... 진리를 타협하는 심리 다 알면서. 일일히 이런 일탈자들에 지적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진실을 지키는 자가 너무 소수가 된 만큼, 한국사회의 문화는 망했다.
망한 신앙의 목회세력이 기른 신학석박사가 본인보다 월등히 우월한데, 일탈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렇다고, 그 신앙적 타협이 문제다.
마치, 불교신자에게 삼위일체 따지는 식, 혹은 기독교신자에 해탈을 논하는 식. 한국 맥락에서 개신교는 이란을 편드는게 불가능하다. 불가능한데도 가능한 목회 권력은, 유신체제에서 권력딸랑이 심리 연장이다.
멀리는 신사참배 문화 연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