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정치제도가 경제에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성법적인 법치제도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쿠팡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진보성향 군소정당 플랭카드만 봐도알듯이, 한국에는 ‘법치’ 아니라 1인 추종자와 연결된 기득권집단이 지배한 유신체제와 다른 의미의 조선시대(다르게 관과 연결된 기득권집단)로서 官을 진보진영 이익(친중)을 위하는 씨족종교 세계관이 있다. 미국도 동의 안했듯이, 한국 국민의 절반가까이도 동의안한다. 이러한 법치 훼손의 파악은 오랜 시간이 안 걸릴 것이다. 정치뉴스 신문기사를 스크랩하여 한국의 유교사상의 한글번역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이들에 분석하면 같은 결론이 나타날 것이다.
 
한국에서 포용적 정치제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사전에 필요해야 됐다. 그게 무엇일까?
 
 
 
“다원주의와 포용적 경제제도 간에는 당연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이 포용적 경제제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원적 정치제도뿐 아니라 중앙집권체제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소말리아의 제도는 대단히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어 실제로 누군가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실질적 당국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전체가 반목이 심한 부족으로 분열되어 있지만, 어느 누구도 절대 우위를 지니지 못한다.(중략) 우리는 충분히 중앙집권화되고 다원적인 정치제도를 포용적 정치제도라고 부를 것이다. 두 조건 중에서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착취적 정치제도라 할만하다. (126-127쪽, 대런 애쓰모글루 외, [국가는 어째서 실패하는가], 시공사, 2012 126-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