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기독교 어떤 층을 부정평가할 수 없고 어떤 층을 띄울 수도 없다. 필자는 어떤 라인을 업고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나 생각이 없다. 어차피, 기독교인의 희망은 예수님 통한 하나님 나라 구현이다. 군사정권 때에 한국교회 지식인의 설명이 잘못됐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게 기독교문명에서는 그분들에 잘못이 아니다. 그분들이 무슨 신이 아니니까.
필자는 그래도 군사정권 기독교는 수많은 한계에 잡혔어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신앙이라고 믿는다. 그때는 히틀러 시대의 신앙의 붕괴를 이해했다.
지금 교회 노인들이 의도적으로 빼는 주제가 있다. ‘십자가 신앙’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따른다는 공공을 위한 헌신의 주제는 다 뺀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더하는 주제가 있다. 진보기독교 자유주의(철학적)신학에서의 감정의 문제다.
한 기독교언론이 중국의 기독교 탄압을 이야기하면서, 종국적 부흥을 이야기한다. 그 언론은 과연 기독교세계관을 구현했을까? 교회 주류인사 연합을 확보한 교회내부 이야기일 뿐일까?
성경공부를 제대로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하지만, 기독교세계관이 제대로 구현된 사회에서는 1인독재이든, 1당독재이든 나올 수가 없다.
안정과 안보를 위한 타협—군사정권
판을 키우기 위한 타협---김대중체제 지난 30년
여기서, 독재로 가는 길이 나온다.
필자는 큰 충격 받은 날이 있었다.
민중신학의 NCCK와,
조갑제닷컴 조갑제기자와
보수교회로 과거 민족복음화운동 노선이었던 이들이, 한 패러다임(권력확장 대본 같은 룰)인 것을 본다.
아마도, 이는 원불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의 1당으로 민족공산당 건립이란 한국교회 대 박해의 날을 유도하면서, 동학에 연결된 귀족만 이익보고 나머지는 고통 받아도 돼(필자는 1987년 5월에 민주당 통일정강 논쟁이 이런 의미라고 본다. 공산화를 포함한 모든 통일은 선이란 말은, 공산마을 아닌 이들은 다 망해도 된다는 가치관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
문제는 이런 일당독재 로드맵에서 합의와 달리 대구경북에 박살 남 로드맵인 것이다. 군사정권 반공교육에서 통일전선 전술이 호구로 누군가를 이용하고 쳐바른다는 내용을 기억하는 쪽은 이런 실수를 안한다.
유신시대는 국정교육으로 안보를 위해서 1인 지도자 바라보는 것은, 김대중체제는 다양한 ‘당골무당’ 고르기로 하며, 그 당골무당은 일당체제에 연결된 이면의 룰이 있다.
군사정권은 북한 김일성이 남침할 꺼 같아요, 아아 전쟁 또 싫어!
김대중체제는 군사정권 숨막혔단 말이야. 또 그렇게 싫어!
감정의 정치는 전쟁 재발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독재를 숨기고, 현재는 감정의 정치로 나라가 팔리든 시스템이 망하든 다 망하든 무관심한 무질서 상태로서 일당독재만 폭주하는 상황을 숨긴다.
필자는 차별금지법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한다고 본다.
한국 국민에 차별주체는 백인기독교가 아니라, 원불교(사탄교)라고 국제사회에 주장하며, 생뚱맞은 입법이라고 전하면 된다고 본다. 그런데, 진보기독교인에게 당신들이 아시아도 로마 일부라고 보는 엽기적 가치관(중국인의 로마문명에도 중화세계가 퍼진다는 것의 서구버전)이 문제라고 조목조목 설명하면 쉽게 해결된다.
진보기독교 해외세력에 한국의 실상을 납득시키면 다 바뀐다.
확실히 느끼지만, 군사정권은 기독교가 국민을 연합하는 종교적인것이길 원했고, 지난 30년은 원불교(사탄교)가 통일담론으로 자리하는데, 가톨릭과 개신교가 소모품으로 되는 불법행위 의문을 갖는다.
젊은층은 이성어법으로 알아듣게 말해서 나오는 것을 선호한다.
노인층은 무조건 감정이다.
노인층 달래려고, 감정으로 가니 젊은층에 독재사회가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