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김무성씨는 ‘권력분산’을 이해한 적이 없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한 가지다.
1980년 시간대는 70년생에게도 어린시절에 분명한 기억이 있던 때다.
필자는 광주민중항쟁을 긍정하는 한에서, 그 시대의 모든 주체를 가치중립적으로 놓고, 이 시점에서 이쪽을 보면 이렇게 보이고, 저 시점에서 이쪽을 보면 이렇게 보인다고 바라본다.
필자의 세계관과 달리 제도권에서 호평 받는 것은 씨족제사장의 제사권 독점자로서 독점적 서술이다.
꼭, 따지면 ‘정사’라는 것을 따진다. 꼭 해석은 독점이다.
그러나, 프랑스혁명만 해도 쭉 해석사가 이어진다. 이런 것이 이해가 안되는 사람은 유튜브에서 미국경제 영국경제 유튜브 찾아보면 당장 이해가 간다. 필자는 서울 광진구에서 바라본 80년 5월. 물론 그때 부산경남 지역의 민심도 안다. 그때, 버스 운전사가 광주로 내려가서 어쩌고 저쩌고. .... 분명히 체험영역이나, 외곽의 영역이다. 그 시절을 기성세대로 겪은 이런 부류, 저런 부류, 다 겪어보니까. 다 진실하고 옳게 보인다.
모든 국민은 광주시민이어야 한다.
모든 국민은 광주 중화사상을 인정해야 한다.
광주민중항쟁을 긍정하는 사람에게도 숨막히는게 이것이다.
이와 비슷한 유형이 월간조선 사쿠라 조갑제씨가 창작한 우주관이다.
이승만 박정희를 영웅으로 그리는 동시에, 자동으로 성립이 되는 것은 그 당시에 김대중지지자들이 비하된다는 것이다.
김문수씨는 이런 거 생각 못하나?
월간조선 사쿠라 조갑제의 진심은, 민주당에 있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결집하는 데 최대치 결집이 되도록하는 <염장지르기 역사관>이다.
필자는 보는 사람은 알지만, 이승만과 그의 시대. 이승만을 겪은 체험주체들 부류들 다 정리하고, 그들에게 나타난 의미등 서양사학의 원론으로 본다. 박정희도 마찬가지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남긴 저술의 의미는 이쪽과 저쪽의 의미에서 논쟁적으로 열려 있다.
김무성씨는 의회독재가 권력분산이 안되는 이유가, 의회의 호남종족주의와 얽혀진 민주화신화 문제임을 모른다.
원불교(사탄교) 일원상진리 안에 타자성이 아예 없다.
또, 샤머니즘 1인 제사장에서 겸손? 이런게 어딨나? 까!!!불 고 있어. 이런 세계관이다.
일베노인의 세계관은 영남과 호남이 각각 조선왕조 붕당으로 도통되는 임금을 빠는 세상을 생각한다.
일반국민은 조선조 빠꾸? 미치광이네! 미치광이! 음메 답답해!
호남 귀족층 의회는 윤석열 정부내내, 자신들의 광주신성화로 국민 염장지른 것은 예외로 하고, 이승만 박정희를 둘러싼 서술은 꾸준히 민주당 특유의 선민주의적 결속을 부른다.
문제는 씨족주의 서술은 귀족감투 권력을 지향하고 국민 괴롭게 하는 서술인데도, 서원 족보학처럼 관의 지원을 받는 점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에 필요한 역사관은
땡땡 기념사업회가 아니라
망각 사업회가 아닐까?
일년 365일 빼곡이 농촌 사회처럼, 기념을 강요당하는 챙겨야할 남의 신성한 이야기들이 많다.
씨족화된 역사서술에서 지적 오만은 당연히 끌고 간다. 씨족주의에서 제사장은 원래 한국은 1인 제사장이다. 그에 기반한 지적 오류? 그 1인 빼면 나머지는 그 1인의 노비들이다.
전라도 사람들의 중국경전 이해로서 중용으로 자기 자의적으로 본게 우주적 중립이라고 논할 의사는 없다.
민주화신화에서도 과거부터 사실은 권력분립을 이해한 게 아니라, 전라도 종족주의로 경상도 왕권제 유교 두들겨 까기의 목적으로 어설피 설명한 것이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6.3항쟁을 서울대에서 김지하 시인과 더불어 이끌었다는 조동일 교수 논문집을 다시 살펴보면서, 아아 그냥 전라도 유교 인지 체계가 이거구나! 영남유교가 권력분산을 모른다는데, 호남유교는 그러면 아는가? 권력분산 자체가 기독교문명의 산물이다.
원인행위가 없는 거품같은 신화는, 부동산 버블 비슷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