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단: 지혜가 큰 사람은 멍청하게 보인다

카이엔 아오야마: 재능이 있는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

노무라 카츠야: 유연한 용인술

후루타 아츠야: 철저한 자기관리
http://www.ilbe.com/6587603188



오늘 누구에 대해 쓸까 고민하다가 기왕 일본야구에 대해 쓴 거 좀더 일본선수에 대해 쓰기로 했다. 그리고 특별히 개인적으로 그 인생을 사는 모습이 노무노무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소개해올리겠다. 바로 일본야구 사상 최고의 타격 기술을 자랑하는 타격의 달인 오치아이 히로미츠이다.

8852628.jpg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 치고 오치아이 히로미츠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치아이가 ㅎㄷㄷ한 것은 단지 선수로서 뛰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치아이는 별다른 코치 연수 경험도 없이 주니치 드래곤즈의 감독을 맡아 리그 우승 4회, 일본시리즈 제패 1번을 달성한 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무수한 영광의 기록들보다 더 대단한 점은, 그리고 우리 일게이들이 배워야 할 점은 오치아이의 강렬한 자신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다. 영어로 Confidence!

오치아이는 1953년생이다. 1998년까지 현역 선수로 활약했으니 천재일뿐만 아니라 노익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충격적이게도 학창시절에는 야구와 거리가 멀었고 10대 시절에는 영화광으로 영화에 빠져 살았다. 야구는 물론 좋아했지만 학창시절에 오치아이가 야구부 대신 영화부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야구부의 뿌리깊은 선후배 수직관계라든가 체벌 등이 아주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좃같은 꼴을 당하면서 야구 하느니 차라리 혼자 영화 보는 게 더 낫다는 것이 오치아이의 태도였다. 그래서 고교시절에는 야구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4866cb0b935fb336a5150681374ce970.jpg
실제 일본에서의 체벌. 운동부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자 오치아이도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 야구부에 가입했다. 그런데 강압적인 수직관계는 대학에서도 건재한 것이 아닌가. 선배의 말에는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분위기에 짜증이 난 오치아이는 반년도 못되어 대학 야구부도 때려치웠다. 그리고 이 시절에는 야구 대신 볼링에 더 열중했다. 오치아이는 사교성 혹은 '사회적 지능'이 낮은 타입이었던 것이다. 일게이들 같노...

그런 오치아이를 아깝게 여긴 사람이 있었다. 바로 고교 시절의 야구부 코치였다. 그는 오치아이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데 오치아이가 대학에서도 또 야구부를 때려치웠다는 말을 듣자 이대로 그 재능을 씩힐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치아이를 찾아가 사회인야구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오치아이 성격에 맞는 자율적인 팀문화를 가진 팀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마음이 크게 움직인 오치아이는 사회인야구를 지향하게 되었고 그 팀의 모(母)회사에 입사했다. 그리하여 낮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조립하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야구를 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육체적으로 부담이 큰 생활이었지만 마음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오치아이는 야구에 빠져들었다. 높은 집중력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인간의 가능성이란 무한대. 오치아이의 타격실력은 이때부터 그저 '재능이 있다' 수준에서 '우왕 시발' 레벨로 개화하였다. 그리고 1978년 프로야구 구단 치바 롯데의 스카우터는 사회인야구계 최고의 월척 오치아이를 낚는데 성공하였다. 25세의 프로 데뷔는 정말 이례적으로 늦은 나이의 데뷔였다.


1434465bd70c1cf68fab055dedce1206.jpg
롯데 시절의 오치아이


한편 프로선수가 되었지만 오차아이의 수난은 멈추지 않았다. 치바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전임 감독 출신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카네다 마사이치(김경홍)는 오치아이의 타격폼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타격폼 수정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오치아이는 처음에는 타격폼을 고쳐보려고 했다. 그러나 수정한 폼으로는 제대로 공을 맞추지 못했다. 결국 오치아이는 치바롯데의 절대적 존재 카네다에게 항명하기로 결심했다. '내 야구인생 좆된다고 니가 책임질 거 아니잖아?'라는 멘탈리티로 오치아이는 타격폼 수정을 거부하고 자신의 폼을 고수하였다. 


swa14121905050001-p1.jpg
재일교포 출신의 무쇠팔 카네다 마사이치(김경홍). 카네다 또한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 인물로 오치아이와 정면충돌했다.


오치아이의 타격폼은 대체 무엇이 이상했던 것일까? 오치아이는 우두커니 서서 투수의 공을 끝까지 보고 친다. 이때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체중이동을 한다. 이것은 몸쪽 공에 약하다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오치아이가 고안해낸 독자적인 타법이다. 오치아이는 하체와 손목이 유난히 유연하고 선구안이 좋기 때문에 하체를 낮추지 않고도 장타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치아이는 '그냥 니가 보기에 생소하니까 타격폼 고치라는 거 아냐. 그런데 니가 나를 알어?' 이런 마인드로 카네다의 말을 씹었다. 이 일을 계기로 카네다와 오치아이 사이에는 지금까지도 냉전이 계속되고 있다.


511.jpg
ec98a4ecb998ec9584ec9db4ed9e88eba19cebafb8ecb8a0ecb9b8eb8884ec8b9ced8380ebb2955b35d.jpg

남에게 아무 근거도 없이 무언가를 강요받는 일을 일게이들이 신은미 싫어하는 거 만큼이나 싫어하는 오치아이의 성품은 이때부터 확실히 굳어진 것이다. 그로부터 오치아이의 야구인생은 오로지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식, 통념이라는 것을 싫어했다. 근거가 없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유행이라면 똥도 먹는 일본인들과 전혀 다른, 탈일본 멘탈리티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오치아이는 어떻게 그렇게 스스로의 방식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오로지 연습을 통해 얻은 실제 감만을 믿는 현장제일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는 흑묘백묘론과 같은 사상을 갖고 있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한번 그 방법을 찾으면 설령 그것이 교과서와 다르다 해도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오치아이의 자세. 그는 이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하여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 시절에는 '엄격한 자율'로 통하는 무한경쟁주의를 도입하였다. 

오치아이가 연습장과 시합에서 자신의 고유한 타격폼으로 실적을 내자 카네다의 눈치를 보던 롯데의 코치들도 오치아이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일은 당시 일본의 야구평론가들은 오치아이를 비판하였던 반면, 선수로 활약하던 하리모토 이사오(장훈), 오 사다하루(왕정치) 같은 인물들은 오치아이의 독특한 타법을 칭찬하였다는 점. 오치아이의 지독한 평론가불신과 언론불신은 이때부터 생겨났다. 기레기 싫어하는 건 일게이들과 똑같노!

oimage.jpg 

그 후로 오치아이는 주니치, 요미우리, 니혼햄 등에서 역시나 ㅆㅅㅌㅊ 활약을 펼쳤다. 오치아이는 공식 키 178cm정도로 강타자라기에는 체격이 왜소한 편이었고 미국에서도 일본 최고의 타자의 덩치가 너무 작아서 놀랐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치아이는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다도 자신에게 가장 맞는 방법을 찾는 것에는 열중하였다. 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오치아이는 커리어 말기에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하체를 단련하는 것이 타격에 도움이 된다는 최신 정보를 접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도입하여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계속 맹활약할 수 있었다. 최신 정보나 유행을 완전히 거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시험해보고 그 효과를 확인한 다음에 도입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에 끝없이 열정적이었다. 오나홀을 사면 반드시 시험해보고 싶은 일게이들 같노!

img_1c8154c12e4a9cad6ba65d123038fe3926661.jpg

타자로서 오치아이의 장점은 어느 코스의 공이라 해도 칠 수 있는 뛰어난 선구안과 대응력, 그리고 꾸준히 단련해온 하체가 이끌어내는 순간적인 체중이동, 그리고 유연하고 강한 손목을 살린 방망이 컨트롤이다. 오차아이는 자기가 보내고 싶은 방향으로 타구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 무서운 오치아이의 장점은 그의 끝없는 탐구심이었다. 오치아이는 장타 훈련 뿐만 아니라 내야 안타, 희생플라이 훈련까지 했다. 타격에 대한 기술 중에서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안된다는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MC무현의 음원들 중에서 모르는 게 있으면 안된다는 일게이들 같노!

그는 긴 커리어 속에서 무수한 명투수들을 만났다. 뛰어난 투수에게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그는 그 투수를 피하는 게 아니라 그 투수를 연구하며 연습해왔다. 늦깎이라서 더더욱 연습에 매달렸다. 사실 오치아이처럼 지속적으로 ㅆㅅㅌㅊ급 활약을 꾸준히 보여준 선수도 많지 않은데(20년 커리어의 평균 타율이 3할1푼1리 ㄷㄷㄷ) 그것은 그가 끊임없는 노력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습제일주의는 훗날 주니치 감독이었을 때에 그대로 드러난다. 

오치아이는 1991년 후루타에게 타율 경쟁에서 진 적이 있었다. 후루타가 0.3398이었고 오치아이가 0.3395였으니 정말 접전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약간의 내막이 있었다. 후루타에게 타율왕 타이틀을 주고 싶었던 야쿠르트에서 오치아이에게 무조건 볼넷만 던지게 했기 때문이다(오치아이는 이 시합에서 볼넷 6개를 얻었다). 오치아이 팬들은 야쿠르트가 비겁하다고 빼애애액 ㅂㄷㅂㄷ했지만 정작 당사자 오치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 정도 레벨에서 머무른 나의 잘못이다. 미리 진작에 압도적인 기록을 남겼더라면 되었을 일인데."
...오치아이는 발전할 생각 밖에 하지 않노!

461.jpg


오치아이의 단점은 역시 느린 발과 그렇게 뛰어날 게 없는 수비력 정도이다. 오치아이의 현역때 체격은 178cm/80kg로 요즘 야구 기준으로 보면 교타자에 가까운 체격인데 발이 매우 느렸다. 도루는 그의 관심 밖이었고 수비도 아주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주로 1루수를 맡았다. 하지만 4번타자가 도루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흠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치아이가 실책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저 타격에 대한 열정이 너무 뜨거웠던 것뿐이다.


134996284898513206081.jpg


1998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오치아이는 주로 해설자와 야구평론가로 활동하였다. 평론가 때에도 대중에 영합하지 않는 그의 꼬장꼬장함은 건재하여 그는 큰 인기를 모았다. 늘 오치아이를 비판하던 시대가 이제 오치아이를 따라오기 시작한 것인가? 그리고 2003년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팀 재건을 위해 오치아이를 감독으로 초빙하면서 외로운 풍운아는 야구계에 다시 돌아왔다. 이때 오치아이가 주니치에 내건 조건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최소 3년 이상의 임기 보장(팀 리빌딩에 최소 3년은 걸린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누구의 간섭도 없는 감독의 절대적인 권한 보장(히딩크가 축협에 요구한 것과 같은 것) 두가지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주니치는 이 도전적인 요구를 둘다 받아들였다. 이건 정말 놀라운 도박이었던 것이, 당시 오치아이는 임시 타격코치를 한번 경험한 것 이외에는 지도자 연수를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치아이가 좆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곧 드러나게 되는데...


imh.jpg
감독 시절의 오치아이. 머리가 벗겨졌다.


오치아이는 히딩크처럼 팀에 무한경쟁방식을 도입했다. 무한경쟁은 곧 무한자율이다. 오치아이는 선수들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했다. 만일 어떤 선수가 부상을 당했다고 했을 때, 플레이 할 수 없다고 판단하든, 그걸 참고 플레이하든 모든 것은 각자 알아서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는 자기 책임이다. 플레이하지 않는 선수는 휴식을 얻고 출전기회를 빼앗긴다. 설령 부상을 참고 출전했다가 부상이 덧나도 그것은 감독의 책임이 아니라 출전을 요구한 선수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프로니까." 그것이 궁극의 개인주의자 오치아이의 철학이었다. 감독 시절의 오치아이가 자주 하던 말은 "널 대신할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어."

"선수의 야구 커리어는 인생에 한번뿐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각 선수들이 후회없는 커리어를 보낼 수 있도록 돌봐줄 책임이 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힘껏 플레이하는 것이 가장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감독은 선수의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러한 철학에 따라 오치아이는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주니치 선수들을 한명도 차출하지 않았다. 이유는 "선수들이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데 어떻게 억지로 보낼 수 있는가?" 실제로 주니치 선수들은 WBC에 출전했다가 팀내 경쟁에 밀려 다음 시즌에서 주전 자리를 빼앗길까봐 아무도 WBC에 나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오치아이 본인도 WBC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오치아이는 차갑게 대꾸했다. "프로야구 선수란 페넌트레이스에서 잘 뛰는 게 직업이다."


111013_171231.jpg
이 날카로운 안광을 보라


언론이나 평론가들의 간섭은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언론과의 인터뷰는 전혀 하지 않았다. 팬서비스가 부족하다는 비판에는 "프로선수는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팬서비스"라는 명언을 남겼고 평론가들은 주니치라는 팀에 대해 모른다고 일축했다. 오치아이의 '모르면 아닥'은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법칙이었다. 오치아이는 투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이유로 자신이 주니치 구단에게 받은 것과 같은 절대적인 재량권을 투수코치들에게 주었다. 물론 그것은 그냥 손을 놓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디테일을 코치들에게 맡긴다는 의미이다. 오치아이 감독은 투수들의 전체적인 컨디션이나 로테이션 같은 큰그림은 자신이 관여했지만 투수 교체에 대해서는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8년동안 내내. 물론 투수코치들 사이에서도 늘 경쟁을 시켰다.

주니치 내부의 치열한 경쟁에 대해 오치아이는 이런 말을 했다.
"선수에게 '더 잘할 수 없냐'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주전이 된 선수들이 평소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기 때문에 다른사람이면 몰라도 감독은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오치아이의 용병술은 연습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 바탕하고 있다. "연습을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를 기용하지 않는데 선수들이 납득하겠는가? 감독은 선수들의 연습을 끊임없이 확인할 의무가 있다."
연습의 방향성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모를까, 반드시 필요한 연습이라면 오치아이의 연습에 대한 신뢰는 신앙에 가까웠다. 무식한 연습량이 야구를 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비판에 직면하면 오치아이는 특유의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려거든 (현역 시절의) 나 이상의 기록을 내고서 말해"하고 조롱에 가까운 대답을 했다. KIA~ 오치아이 일베 하노?

그토록 차가워보이는 개인주의자이지만 주니치 내부에서 오치아이에 대해서는 다들 "친철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오치아이는 자신의 조언을 구하는 선수에게 한번도 냉담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고 때에 따라서는 가혹한 질타도 했다. 워낙 엄격하게 지도하다 보니 일부는 "제가 어린애입니까?"하고 반발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오치아이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럼 갑자원(코시엔)으로 돌아가든가"하고 대꾸할뿐이었다. 자기가 가진 야구에의 열정과 맞먹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면 그만이라는 태도였다. 불은 가장 잘 타오를 때 푸른색이라 했던가. 그 끝없는 열정은 차갑게 보이지만 야구선수로 자신의 인생을 의미있게 만들고 싶은 선수들에게는 친절함이었다. 코치들에게도 오치아이는 자기를 신뢰해주는 좋은 상사였다. 


ochi.png


오치아이는 2011년 감독직을 그만두고 주니치 드래곤즈의 제너럴 매니저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주니치는 오치아이 시대의 영광이 무색하게 현재 최약체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오치아이 컬러를 탈피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것일까? 역시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스템을 실제로 쓰는 사람의 문제일 것이다. 평생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싸워온 오치아이가 이대로 물러날 것인가? 어차피 주니치는 금년 시즌은 버리고 팀 리빌딩을 다시 하겠다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봐야 알 것이다.

일본넘들이 전통적으로 감성팔이에는 아주 약한데 오치아이는 감성팔이를 유난히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에도 "야구는 직업이고 좋아하지는 않는다", "프로는 결국 돈이다", "성적을 내지 못하는 선수에게 왜 기회를 주는가?" 같은 좌파들 입장에서 보면 사람냄새 나지 않는 소리를 골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치아이의 프로페셔널리즘이자 열린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차별없이 공정하게 처신하겠다, 그리고 프로다운 사람을 선호한다는 태도 아닌가. 사실 인간다운 모습 어쩌고 하는 새키들이 알고보면 제일 비인간적인 놈들이다. 일견 차가워보이는 오치아이가 큰 인망을 얻는 것은 감성팔이가 범람하는 한국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치아이식 리더쉽은 (한국에서 히딩크 리더쉽이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오치아이식 리더십이라는 게 그렇게 신기한 것인가? 무한자율, 자율에 따른 책임, 그리고 실력제일주의. 옛날부터 그 효과가 입증되어 온 이 방식의 어디가 그렇게 새로운 것일까? 그것은 경쟁을 죄악시하는 좌파형 인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일게이들아, 너희들은 그런 좌파형 인간들의 어줍잖은 감성팔이가 역겨워서 일베에 온 것이 아니냐. 너희들 모두 오치아이처럼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img_2ee9735c008dbbec17551d38cda89f35231918.jpg


오치아이의 별명은 "자기류(オレ流)"이다. 일게이들아 너희들이 무엇을 하든 하여간 한번 열심히 해봐라. 출근충이든 급식충이든 뭐든 좋다. 너무 짜증나고 괴로운 일까지 열심히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걸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싶을 때에는 그냥 파고들어라. 상사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떠냐 관련 업무에 대한 지식을 쌓는 방법을 찾아봐라. 혹은 좌파놈들이 표절이나 하고 있을 때 너희들은 원서에 도전해봐라. 그렇게 해서 찾은 답이 곧 정답이다. 어줍잖게 아는척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나 정도로 열심히 한 다음에 떠들어"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매달려보자. 오치아이가 사회인야구에서 시작했는데도 전설의 타격왕이 된 것은 열정, 노력,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 덕분이었다. 오치아이도 사람인데 어찌 불안함이 없었겠냐. 불안할 때마다 연습해서 스스로를 안심시킨 것이다.  

또한 후회없는 삶을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제일 중요할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치아이의 철학은 간단히 말하면 이런저런 계산 같은 거 다 필요없고 그저 "후회없는 인생"이었다. 현재 투수와 타자 양쪽 모두에서 활약하는 오오타니 쇼헤이에 대해 다들(다르빗슈도 포함해서) 투수 하나에 전념하는 게 낫다고 했지만 오치아이만큼은 양쪽 다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이유는 "본인이 타자와 투수 모두 하고 싶다 그러는데 할 수 있도록 해줘야 본인이 후회없는 야구인생을 보낼 것이 아니냐."  한국처럼 팔랑귀 호구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자신의 줏대가 확실한 것만 해도 엄청난 플러스가 된다.


오치아이로부터 배우는 인생의 교훈
1. 재능으로 커버되는 것은 얼마 안된다. 오로지 노오오오력이 확고한 자기확신을 가져온다. 마츠이 히데키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 곧 재능이다."
2. 경쟁의 묘미란 수없이 실패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자기의 단점을 고치는 것. 망하는 사람들이란 경쟁에 떨어져서 망한 게 아니라 경쟁을 피해서 망한 사람들이다.
3. 결정적 순간의 판단 기준은 "후회없는 인생"


fc2_2013-10-31_17-15-31-732.jpg
마츠이 히데키가 어릴 때 자기 방에 걸어놓은 그의 좌우명: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 곧 재능이다



마지막으로 오치아이의 일침을 하나 소개하고 글을 맺겠다. 그 일침은 너무 정확해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오치아이가 주니치 감독을 8년간 경험하면서 선수들을 관찰한 바에 의하면, 무한경쟁을 붙여놓았더니 실력이 우수한 주전들이 더 열심히 연습하더라는 것이다. 반면 후보 선수들은 오히려 연습을 더 하지 않았다고. 오치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후보가 주전을 제치려면 최소한 주전이 하는 연습의 1.5배는 해야 하는데 그래가지고서 어떻게 주전이 되겠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음에는 '나가시마 시게오: 어느 시대에서도 성공할 사람'이라는 주제로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