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게이들아. 예전에 내가 쓴 자기계발 링크들이다 참조해주기 바란다.

여단: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지혜가 큰 사람은 멍청하게 보인다

카이엔 아오야마: 재능이 있는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

노무라 카츠야: 유연한 용인술

그리고 오늘은 약속대로 일본야구 사상 최고의 포수인 후루타 아츠야에 대해 쓰겠다. 난독게이들을 위해 짧게 쓰려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어지고 말았다...

1965년 태어난 이 사람, 어렸을 때에는 별명이 노비타(도라에몬의 주인공. 한국판에서의 이름은 찡구)였다. 체형이나 인상, 어린 나이에 두꺼운 안경을 낀 점 등이 찡구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소년은 오리지널 찡구와 달리 운동을 매우 좋아했다. 특히 야구를 좋아하여 리틀리그에서부터 활동하였다. 그에게 주어진 포지션은 포수. 이유는 다른 야구부 애들에 비해 뚱뚱한 체형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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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구 소년은 중학생 때에도 야구부에서 활동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야구부 명문 사립고에서 찡구 소년에게 손짓을 해왔다. 그러나 아직 야구를 좋아하는 정도였고 야구에 인생을 바칠 각오까지는 없었던 찡구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 다니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 마치 능남고의 오퍼를 거절하고 집에서 가까운 북산고를 선택한 서태웅처럼 - 사립고의 오퍼를 거절하고 그냥 집에서 가까운 공립고를 다녔다. 그 학교에는 야구부가 있었긴 했지만 워낙 약체였기 때문에 찡구는 고교 3년간 전국대회에 나갈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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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구 닮기는 정말 닮았노 ㅋㅋ


찡구는 야구 특기생이나 단원러 같은 시체팔이 특기생이 아닌 다른 일반 급식충들처럼 대입 시험을 쳐서 대학교에 원서를 냈다. 마침 교토대학과 리츠메이칸 대학 두군데에서 합격 통지가 왔다. 둘다 일본 칸사이 쪽에서는 알아주는 명문 사립대이다... 이 찡구는 오리지널 찡구와 달리 공부도 잘하노! 한편 찡구에게 더 관심을 보였던 쪽은 리츠메이칸이었다. 리츠메이칸 야구부 감독이 지역예선에서 약팀에서도 활약했던 찡구의 야구 실력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찡구에게 적극적으로 입학을 권했다. 다만 당시에는 교토대 야구부가 리츠메이칸 야구부보다 강호였다. 약체 팀에서 승리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던 찡구는 기왕이면 강팀을 보유한 교토대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찡구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준 리츠메이칸 야구부의 감독에게 사죄의 뜻과 거절의 뜻을 전하기 위해 직접 리츠메이칸 대학교를 방문했다. 이 찡구는 오리지널 찡구와 달리 예의도 바르노!
 
그런데 찡구가 찾아왔다는 말을 전해들은 감독님은 찡구가 리츠메이칸에 입학할 뜻을 굳혔기 때문에 찾아온 줄로 알고 체면 불구하고 찡구가 보는 앞에서 뛸듯이 기뻐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찡구에게 비싼 저녁식사까지 대접하면서 찡구가 민망할 정도로 기뻐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찡구는 도저히 거절의 뜻을 전할 수 없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모든 사나이들의 룰에 따라 찡구는 교토대를 포기하고 리츠메이칸 입학을 결정했다.
 
대학 시절 찡구는 은사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고교야구의 무명 선수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맹활약을 펼쳤다. 오리지널 찡구와 달리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이 찡구는 경제학을 전공하였는데 성적이 ㅅㅌㅊ. 그런데 하나만 오지게 잘하는 사람보다 이것저것 두루 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고민이 더 많은 법이다. 찡구는 졸업이 가까워오자 야구선수가 될지 아니면 전공을 살려 취직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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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야구계 굴지의 선수로 활약하던 찡구를 주목한 여러 구단들 중에서 니혼햄 파이터즈가 행동에 나섰다. 그래서 계약 성사까지 거의 갔는데 갑자기 니혼햄에서는 찡구와의 계약을 백지화했다. 찡구가 안경을 쓰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찡구의 포지션은 리틀리그 이래 지금까지 쭉 포수였데 당시 일본에서는 안경을 쓰는(시력이 안 좋은) 포수는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 속설 때문에 니혼햄에서는 찡구의 시력에 의문을 표했고 결국 찡구와의 계약을 거절한 것이다. 더 좆같은 일은 니혼햄이 갑자기 영입을 포기할 정도면 뭔가가 있는 모양이라고 다들 생각했는지 찡구는 결국 어느 구단과도 계약을 맺지 못했다는 점. 결국 찡구의 야구 선수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니혼햄은 나중에 카이엔 아오야마를 영입한다. 인재를 보는 눈이 한번 삐꾸나면 계속 삐꾸나는 모양이다)
 
찡구는 1988년 대학 졸업 후, 토요타에 입사하였다. 토요타에서 딜러가 되기 위한 연수를 받는 한편 토요타의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였다. 안경을 쓰든 말든 그 클래스가 어디 가랴. 사회인야구계에서 맹활약하던 찡구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것이다. 야구가 정식으로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92년부터의 일이었고 88년에는 시범경기로만 열렸다. 시범경기이다 보니 일류 프로선수들은 참가하지 않고 사회인 야구의 뛰어난 선수들을 발탁하다보니 찡구도 주전 포수로서 발탁되었다. 서울올림픽에서 찡구는 무한한 가능성을 선보였고 일본팀을 은메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 당시 그와 콤비를 이룬 투수가 바로 훗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게 되는 노모 히데오였다. 노모도 이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제철소에 입사하여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일본야구 좋아하는 게이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후루타는 첫 직장 토요타에서 일한 경험 때문에 지금까지 쭉 토요타-렉서스만 몬다. 첫 직장에서 지옥을 보는 일게이들과는 다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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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견 포수의 매력: 앉아쏴!


이때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스카우터가 서울올림픽에서의 찡구의 활약을 보고 반해버렸다. 아니 저런 선수가 묻혀있었다닛!? 그는 만사 제쳐놓고 찡구의 영입에 힘을 기울였다. 프로구단의 지명도 못 받은 사회인 야구의 선수를 프로구단에서 다시 스카웃하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찡구 본인이 그 제안을 조선족 보이스피싱을 대하는 일게이들처럼 도무지 믿지 못했다. 그래서 야쿠르트 관계자가 찡구가 근무하는 토요타 사무실을 몇번이고 방문하면서 찡구를 설득했다.
 
한편 이번에도 일은 그렇게 수월하게 풀리지 않았다. 당시 야쿠르트의 감독 노무상(노무라 가츠야)은 찡구를 테스트해 보고 "어깨는 일류. 타격은 이류. 투수 리드는 삼류"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노무상은 그냥 프로선수들 중에서 포수를 육성하는 게 낫지 굳이 사회인야구에서까지 새 포수를 데려올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찡구에게 반할 대로 반한 스카우트팀의 부장은 노무상을 설득시켜 기어코 찡구를 영입했다. 신의 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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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찡구 닮았다...


사실 찡구의 야쿠르트 입단에는 약간의 행운도 있었다. 당시 야쿠르트의 주전 포수였던 하타 신지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대의 버릇이나 패턴을 간파하는 노무상의 ID야구 이론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고 자신의 육감으로 투수 리드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점에 큰 불만을 가진 노무상은 자신의 야구 이론을 계승할 새로운 포수를 육성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게다가 하타 신지는 어깨가 약했다. 노무상에게는 하타 신지의 도루 저지율이 낮다는 점도 불만이었는데 그러던 차에 ㅆㅅㅌㅊ 어깨를 가진 찡구를 보고 당초의 생각을 바꾸어 찡구를 받아들였다. 찡구가 고학력자 출신이라는 점도 노무상의 마음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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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 저지 능력이 딸리는 하타 신지에 비해 찡구는 1990년대의 가장 대표적인 '앉아쏴' 포수. 노무상은 하타 신지의 약한 어깨를 이유로 주전 자리를 찡구에게 넘겼다. 사회인야구 출신의 신인에게 쫓겨난 하타 신지는 노무상의 배려로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나름대로 ㅅㅌㅊ 커리어를 구가했다. 노무상의 유연한 용병술이 빛나는 순간이다. 노무상은 하타 신지가 어깨는 약하지만 발이 빠르다는 점에 착안하여 외야수를 권한 것이다. 하타 신지가 포수를 맡은 이유는 그냥 학창시절부터 포수였기 때문이다. 노무라라는 명장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후루타라는 ㅆㅆㅅㅌㅊ 인재가 없었더라면 하타 신지의 야구인생은 3류 포수로서 막을 내렸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찡구는 이런저런 굴곡 많은 여정을 거친 끝에 1989년 비로소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다. 시합 중에도 안경을 끼는 모습 때문에 프로 시절에서도 별명은 '노비타'였다. 매우 늦은 나이의 데뷔였지만 이 찡구야말로 일본야구 역사상 최고의 포수를 꼽을 때 다섯손가락도 아닌 세손가락 안에 드는 '완전무결한 포수' ID야구의 완성형 후루타 아츠야이다.


신인을 주전 포수에 기용하는 대담한 인사를 단행한 노무상은 후루타를 맨투맨으로 훈련시키며 정성을 쏟았다. 노무상은 찡구를 데리고 다니며 상대의 버릇을 간파하는 법을 (끝없는 잔소리로)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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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상은 야쿠르트 시절을 회고하면서 후루타에게 상대선수의 버릇을 읽는 방법에 대해 하루종일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는데 끝까지 자기 곁에서 그걸 듣고 있었고 또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성공을 위한 집념이 대단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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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타는 야쿠르트의 프렌차이즈 스타로서 단 한번도 팀을 옮긴 적이 없었다. 후루타는 요미우리나 한신에 가면 돈은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겠지만 야쿠르트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일게이들처럼 의리가 있노! 그런데 워낙 잘하니까 야쿠르트에서도 억대연봉을 주더라.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후루타는 그토록 대단한 선수인가?
 
우선 데뷔 때부터 주목받은 강한 어깨. 후루타는 강견 포수로 도루 저지에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도루 저지율 일본역대 최강이 증명한다. 그 어깨로 선배들을 밀어내어 주전이 되었을 정도이니 강견이야말로 후루타의 가장 강력한 장사밑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유난히 실책이 적은 포수로도 알려져 있으며 1989년에서 2007년까지 18년의 커리어 동안 실책은 통산 49개에 지나지 않았다.

단순히 어깨만 강하다고 도루 저지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크보의 강견포수들이 나이가 들면서 (어깨가 약해지면서) 도루 저지가 낮아지는 것은 어깨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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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타는 완전히 쭈그리는 대신 한쪽 무릎을 지면에 댄 포즈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저 자세에서는 몸을 일으키기 편하고 그만큼 2루에의 송구가 근소하게 빨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는 엄청나다.

포수로서도 후루타에게는 경이로운 능력이 있다. 이건 일본의 다른 포수들도 다 입을 모아 인정하는 것인데 후루타는 미트 다루는 기술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볼이 될 공을 잡아서 심판에게 스트라이트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술은 후루타만의 전매특허. ID야구의 달인은 타자의 심리는 물론이고 심판의 심리마저도 쑤신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면서 타격도 일취월장하여 야쿠르트의 중심타자로 활동했다. 180cm/80kg로 거구의 슬러거는 아니었지만 8년 연속 3할 타율, 통산 2000안타를 기록했을 정도로 타격이 뛰어났다. 또한 선구안이 좋아서 포볼을 뽑아내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후루타하면 찬스에 유난히 강한 클러치 히터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커리어를 통해 통산 217홈런, 1008타점, 평균 타율 2할9푼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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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컨택 능력을 갖춘 후루타는 자기가 가장 영향을 받은 타자로 일본야구의 전설적인 타격왕 오치아이 히로미츠를 꼽는다. 오치아이 흉내를 내다보니 3할을 치게 되었더라고 할 정도로 오치아이에 대한 존경을 감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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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 내가 아직도 찡구로 보이니?
 


그러나 후루타를 괴물포수로 만든 비결은 바로 투수 리드 능력이다. 후루타는 당초 삼류로 평가받은 투수 리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무라 가츠야가 도입한 ID야구를 철저하게 습득하였다. 노무상만큼이나 후루타도 상대 타자의 데이터를 달달 꿰고 있었다. 노무상-후루타로 대표되는 ID야구란 곧 포수가 중심이 되는 야구이다. 포수가 농구의 포인트가드 같은 역할을 맡는 ID야구는 일본 이외의 나라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전략이다. 일각에서는 포수의 투수 리드는 헛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후루타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안되지. 우수한 포수를 키워내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고 ㅅㅌㅊ 포수가 있으면 투수들은 보다 편하게 공을 던질 수 있다. 포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투수들도 부담을 덜며 또한 혹사를 하지 않는다. 포수는 다른 포지션보다도 신뢰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포수 용병을 수입하는 구단은 아직까지 없다. 그런 점에서 포수 중심의 야구는 (어디까지나 포수가 우수할 때뿐이지만)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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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순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후루타는 근성넘치는 플레이를 한다.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빈볼을 많이 유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왠만한 부상은 참고 시합에 출전하는 등, 팀의 중심선수라는 자부심이 남달랐다. 손가락이 탈구되는 부상을 입었는데도 시합에 강행 출전한 결과, 지금 후루타의 왼손 검지와 중지는 끝까지 구부러지지 않는다. 그 정도로 근성이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후루타가 이름을 알린 것은 1991년 한일슈퍼게임이었다. 한국 최고의 승부사로 알려진 김응룡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은 일본팀에게 4승2패로 패배했다. 정말 쇼크였다... 그런데 후루룩인지 뭔지 하는 쪽바리가 존나게 잘한다는 것이다. 보니까 진짜 평범하게 생긴 놈으로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도 않던데... 뒤늦게야 그 괴물이 후루타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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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견 발사!


노무상이 야쿠르트 감독을 그만두면서 후임 감독으로 팀의 주장이자 중심타자이자 수비의 사령탑인 후루타를 감독으로 앉히기로 했다. 노무상도 난카이에서 감독 겸 선수를 맡은 적이 있으니 노무상의 후계자 후루타가 감독을 맡는 것은 스승을 따라한다는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감독으로서 후루타는 큰 재능을 드러내지 못했다. 노무상에 의하면 선수들과 후루타 사이에 벽이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후루타는 개인 플레이어로서는 초일류이지만 사람을 끌어모으는 리더쉽은 없는 것 같다.

현재 후루타는 방송인과 야구 해설자로 활발한 황동을 하고 있다. 후루타의 해설을 들어보면 정말 두뇌가 명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명도 정확하게 하고 말도 잘한다. 후루타는 아직 야구감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하지만 지도자 수업보다 방송인으로 더 활동하기 때문에 감독이 된 후루타를 볼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후루타는 현재 50세인데 아직도 애가 없다. 그는 아나운서 출신의 나카이 미호와 결혼하였는데 나카이 미호가 자궁근종 진단을 받는 바람에 결국 자궁을 들어냈기 때문이다. 후루타는 선수 시절부터 어린이들과 노는 일을 좋아하여 결혼하면 제일 먼저 자식부터 보고 싶다고 말하던 인물이었던 만큼 나카이는 임신을 할 수 없게 되자 후루타의 새 삶을 위해 이혼하자고 먼저 말을 꺼냈다. 김치년들과 달리 양심이 있노! 그러나 후루타는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이혼은 할 수 없다고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 후루타 불쌍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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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지매가 나카이 미호. 전형적인 일본여자 와꾸.


후루타가 자식를 보지 못한 울분을 어디에 풀었는가 하면 야구보다 더 빡센 운동에 풀었다. 바로 마라톤과 철인삼종경기이다. 후루타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철인삼종에서도 특히 빡세다는 아이언맨 트라이아슬론(4km의 수영, 180km의 자전거, 그리고 42km의 마라톤)까지 완주하였다. 괴물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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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철저한 자기관리는 후루타의 놀라운 젊음유지의 비결이다. 동안이라 하여 얼굴만 보지 말고 체형도 비교해보라. 정말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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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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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재 65년생이다...
어릴 때 뚱뚱해서 포수를 맡게 된 사람이 지금은 나이를 거꾸로 먹노!?




후루타로부터 배우는 자기관리의 중요성
1.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남들보다 뒤쳐졌다고 지레 생각하지 말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라. 일본야구 사상 최고의 포수들인 노무상과 후루타는 언제 퇴출당해도 신기하지 않을 정도로 데뷔하는 과정이 평탄치 못했다.

2. 자신의 단점을 고치는 일에 주력하라. 후루타가 강견 하나만 믿었더라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신이 준 재능은 그냥 어깨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후루타가 끊임없이 연구해가며 완성한 것이다. 심지어 2루에 공을 던지는 기술도 후루타가 연구한 것이다. 야구도 그렇고 인생이란 결국 자기가 잘하는 거 하나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자기가 못하는 걸 고쳐나가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3. 모든 일게이들이 마라톤을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자기관리는 중요하다. 후루타를 봐라. 나이 먹어서 누구나 다 늙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젊음을 관리해나가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치킨 먹던 게이도 마음을 다잡아 체지방을 낮추기 바란다.


그렇지만... 만일 마누라가 아기 못낳으면 역시 그냥 이혼하고 새 여자를 만나 2세를 낳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