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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요약
햇볕정잭으로 김대중만 까는데 사실 임동원이 본인스스로 그 정잭은 자기가 제안했고 강력히 추진한거라고 밝힘(그래도 당연히 대중이는 부관참시 해야함)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리를 희안하게 왜곡 접목시켜 북한에 무조건 퍼주고,원하는건 뭐든지 다 들어주자 강연하고 다니는 중임
(교리적으로 임동원이 착각 내지는 선동하고 있다는걸 충분히 반박할수 있지만 여기선 생략하려한다)
김대중의 실세중 실세였던 전 국정원장 임동원
출생은 1934년 평안도.
특이한것은 그의 6.25때의 흔적을 찾을수 없다는것.(먹고살기위해 국민방위군에 있었다는데 확인할수 없음)
또한 당시는 육사 입학하려면 신원보증서가 입학에 큰 힘을 발휘할때임
많은 설들중에 거물 간첩"최덕신"의 신원보증으로 육사입학 했다는 내용도 있음
잠깐 최덕신에 대해 알아보면
김일성 스승중 하나인 최동오의 아들이며, 육사 특별기반 3기출신인데 (이북출신인 그가 육사 특별기반에 입학?? 교장까지 지냄)
외무부 장관=>서독 대사+>베트남 공사=>한중일보 사장등을 하다가 과거 행적들이 문제가되자 1973년 미국으로 도피 그후 1986년 부인과 자진 월북함.
북한의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 중 첫 부분인 1부부터 3부까지가 최덕신의 이야기를 다룬것.
그외 북한을 위해 많을일을 하던 그는 3년뒤 죽지만 북한 최고 영웅들만 안치되는 "애국 열사릉"에 묻힘.

월북한 최덕신 부인 류미영은 김대중 정부당시 남북이산가족 북측단장으로 한국을 다시 방문했고
지금도 북한 최고위직에 있음.(이희호랑 닮은듯)
다시 임동원으로 볼아와
욱사 재학당시 5.16 일어났을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끄는 5.16 혁명 지지에 동참하지않고 반발 하였고
군인 사조직중 "하나회"에 대항해 세운 "청죽회" 회원이었음.
청죽회 출신은 임동원,이종찬(전 안기부장)등이 있음.
여튼 육사졸업후 육군 소장으로 예편, (전두환이 진급에 불이익 행사했다고 지랄하며 군복벗음)
외교안보연구원 원장을 맡았고, 1990년 군비통제기획단 단장,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통일부 차관하다 "이동복 대통령 훈령 조작사건"연관으로 경질됨
김대중과의 만남.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 1993년 통일정책평가위원, 1994년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을 맡다가,
김대중에 발탁 1995년 1월에 아태평화재단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어 김대중의 통일정책인 《햇볕정책을 전담함.
대중이가 대통령되자 외교안보수석, 통일부장관, 국정원장, 외교안보통일 특보등 "안보"분야 주요요직을 전부 거침.
98.2.25-99.5.23 외교안보수석
99.5.24 - 99.12.23 제1차 통일원 장관
99.12.24 - 2001.3 국정원장
2001.3.30 - 2001.9.3 제2차 통일원 장관
2001. 9.11-외교안보통일특보
국정원장 당시
안보분야 수장역할을 했던 당시 상황들에 대해 알아보자.

1994.12.24~2001 3.25 약 1년3개월 동안 24대 국정원장 역임.
임동원과 황장엽
2000. 11.16일, 황장엽과 김덕홍은 임동원 국정원장이 부당하게 자신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다고 폭로하는 문서를 언론에 알림
=> 발끈한 임동원이 황장엽, 김덕홍씨를 연금상태로 가둠,모든 언론의 자유를 구속함
2001.7월, 방미 초청장을 가지고 척 다운스가 황장엽 방문하려하자 임동원이 불허함.
다운스가 그냥 돌아가면서 "우방인 한국 정부가 황씨 면담조차 허용하지 않은 것은 현 정부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것"이라 발언함.
특히 임동원은 황장엽을 24시간 감옥없는 창살에 가두고 밀착 감시에 주력함.
황장엽이 "미국 방문"을 요청하자 "그럴거면 안기부에서 나가라" 라며 협박한 사례는 유명함.
김대중정부때부터 요청했던 미국방문은 결국 미국의 압력에 못이긴 노무현 정부때 방문하게됨.
관련자료 http://www.ilbe.com/5866021422
임동원의 황장엽 도청사실 확인(후일 이것으로 인해 유죄판결 받지만 노무현이 풀어줌)
"2001년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 관련 내용, 같은해 임동원 통일원 장관 해임안과 관련한
자민련 이 모 의원의 통화 내용도 도청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런 통화 내용은 매일 A4용지 반쪽 크기의 보고서에 대화체 형식으로 정리돼 김은성 차장 등에게 보고됐다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결국 이번 수사로 국민의 정부 시절 무차별 도청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보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2&aid=0000096672
여기서 잠시만....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가 황장엽을 죽을때까지 철저히 감시한 이유를 생각해봐라.
당시 황장엽의 발언들(5만 간첩설,김정일 직접 지령받는 한국내 최 고위인사 1,000여명 등)에대해
김대중과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의 해명을 믿는다는 게이들은 다시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지만원의 "광수"주장은 내 소견에도 억측이 있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래짤의 황장엽 발언은 신뢰할수있지 않은가?
김대중이
대북 전담부서 전체를 황폐화 시켜놓은 뒤 임동원이 국정원장으로 취임해 한일은
김대중 노벨상 수상자 만들기와 민간인 사찰이 주를 이룬다.
김대중 국정원이 노벨상 과 민단인 사찰, 대북 퍼주기의 전부 였다는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의 증언
임동원이 안보분야 공직에 재직당시 주요 발언과 행적들
1.1998. 7.12일 북괴 잠수정이 속초 앞 바다 꽁치망에 걸림,그 안에서 페크병 발견된걸 임동원은 연변등지에서 구한것일것 이라함(대다수 국내서 간첩활동후 소지하게 된것이다 라고 말했음). 명령받은 해군은 잠수정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고 충분히 생포할수 있었던 간첩들 전부 수장 시킴,
2.1999. 3. 11일 (민화협 초청 강연 발언)
"미국은 먼저 경제지원, 관계개선, 북한의 안전보장 등으로 대국의 아량을 보여라.북한이 먼저 해주기를 요구하면 해결이 어렵다 "(1999.3.12 한겨레)
3.1999.6.8-6.15 서해해전 당시, "잘사는 형님이 가난한 북한 봐주자"는 요지로 여론을 유도, 또 '영해 침범' 대신 '월선'이라는 용어 사용
4.1999. 1.4일, 금강산 관광객 한모(38·여)씨가 관광 도중 김정일 체제에 자극적인 발언을 했다며 장전항 북측 사무소에 10일간 억류(1999.1.6 조선일보).
1999. 6.20-6.28일간,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를 억류
이때 임동원 발언 "북한이 싫어하는 짓거리들"을 했다며 자국 국민을 질책함
5.2000년11월 "북한이 110만 대군을 가진 것은 남침용이 아니다.
내보내려 해도 나가면 일자리가 없어 불한당이 된다. 이는 체제유지에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110만을 묶어두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 지뢰와 방벽을 설치한 것은 장군들의 머리가 나빠서 엉터리 같은 짓을 한 것이다".
"김정일은 합리적인 것이면 즉시 시행하는 명 지휘관이다".
6.2002.6.29일 연평해전 당시에도 임동원 발언
사건 발생 7시간 후에야 NSC회의 시작 ==> "이번 사태는 우발적인 것"이라고 예단 ==>
"김정일은 개입하지 않았다.(그는 이런 지시를 내릴 사람이 아니다) ==> 따라서 대북지원과 금강산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라고 함.
또한 "우리(한국)선박이 NLL을 넘어간게 잘못" 이라 발언함
이런 내용을 언론에서 접한 황장엽 한마디 함
“대포 한 발이 아니라 총 한 방을 쏘는 데도 김정일의 재가가 필요한 북한 군부 내에서 김정일의 재가도 받지 않은 채
포 사격을 명령할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북한 군부내 강경 세력의 돌출행동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이는 북한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다”(조선일보 2002. 7.10).
7.2002. 6.17일 육사교수모임 당시 임동원 발언 요약 (련방제 주장)
1) 공산주의와의 협상은 유익한 것이다. 소련이 붕괴된 것도 협상을 통해서다. 따라서 남북한문제도 협상에 의존해야 한다.
상호신뢰에 의해 남북협상이 잘 되어가고 있는데 미국이 방해를 놓고 있다.
2) 김정일은 평시의 언행이나 나와의 5시간 단독 면담을 통해 느낀 바로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일부 한국사람이 이를 부정하고
특히 미국이 전쟁협박을 하기때문에 오히려 김위원장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
미국이야말로 남북협상에 방해가 되고 있다. 내가 부시를 설득하여 요즘은 미국이 북미 협상에 응하려 한다.
3) 대북지원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무조건적이어야 한다. 이를 반대하는 자들은 비인도적인 자들이다.
4)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김 위원장은 미국이 북침할까 보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불식시켜 주어야 한다. 우리 군은 북한에 비해 월등한 군사력을 갖고 있으니 염려할 것 없다.
5) 연방제란 국방과 외교권만을 통합해서 갖고 체제는 각기 유지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 없다.
8. 비전향 장기수 북한에 무조건 송환하며 초소한 국군 포로와 맞교환이라도 하자며 이를 반대하는 사람을 냉전 수구세력이라 발언함

사실 그들 대부분은 장기수가 아닌 간첩 이라는 사실.

임동원과 장충식(당시 21대 대한적십자 총재)
2000년 12월, 장충식이 인터뷰중 아래와 같이 발언함
▲『평양은 10년 동안 달라진 것이 없더군요. 한 마디로 발전이 아니라 정체된 기간이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숙소인 고려호텔 앞에 가게나 음식점이 있어 저녁때도 불이켜져 있곤 했는데 지금은 전에 비해 활기가 없더군요』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 양쪽의 이질성과 체제에 대한 우열을 비교할 수 있는 거울입니다. 때문에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볼 때 이산가족 상봉은 그들의 실생활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사업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체제유지가 급선무인 북한 입장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보다는 점진적 단계를 밟는 쪽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이런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생각대로 인원확대, 상호 고향방문 등을 요구하면 북측에 서 여러 가지 이유를 달아 문을 닫아 걸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을 유심히 본 분들은 아셨겠지만 북한 이산가족 상봉단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사람들에게 옷감을 줘서 급히 해 입힌 겁니다. 남한에서 올라간 가족들은 양복에 티셔츠, 개량 한 복 등 매일같이 옷을 갈아입었습니다만, 북측 가족들은 3박4일간 같은 양복만 계속 입고있더군요. 옷으로도 가릴 수 없는 것이 얼굴입니다. 북한의 가족과 남한에서 올라온 부모형제들이 만났을 때, 고생을 많이 한 북한의 얼굴과 남한의 여유로운 얼굴이 대조되니 북한 관계자들이 얼마나 곤혹스러웠겠습니까』
▲『저는 순안비행장에 우리 비행기 착륙을 허가할 때부터 北은 변화를 모 색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양으로 출발하는 과정에서 북한 고려민항 비행기에 짐 싣는 장치가 없어 출발이 한 시간이나 지연됐어요. 공항에 환영 나온 평양 시민, 그 비행기를 타고 남북을 오간 이산가족들은 그들의 초라한 고려민항 비행기와 태극마크, 색동마크가 새겨진 우리 비행기의 웅장함을 비교할 수 있었을 겁니다. 어떤 형태로든 남북교류가 진행되면 밑지는 것은 북한이지 남한이 아닙니다』(2000.11.21 월간조선)
상식적인 위의 발언을 북한이 문제삼자 임동원이 취한 행동
즉시 가택 연금==> 2000.11.30일 일본으로 출국시킴 ==>12.21일 해임시킴(2000,12.25 중앙일보).
대북 퍼주기 선봉장 임동원
2002.4.3일부터 4일간 북한에가서 김정일과 5시간 회의끝내고 발표한 내용(북한에 무조건 주자)
1) 5월 중순부터 비무장지대(DMZ) 내 경의선 착공 10월 이전에 연결을 완료, 5월 중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한 임시도로 연결 공사에 착수
군사분계선-개성 12㎞ 구간 공사에 필요한 레일, 침목 등 기자재를 북측에 지원하겠다 (2002,4.23 한국일보).
2) 군사분계선에서 강릉을 잇는 동해북부선 남쪽 구간(127km) 공사를 올해 안에 시작해 2009 년께 완공한다(한겨레, 문화일보 2002. 4. 22).
3) 4월말에 비료 20만 톤을 보낸다(한겨레 2002.04.12)
4) 6월부터 3개월에 걸쳐 북에 쌀 50만톤을 수송한다(세계일보 2002.4.24).
그외 임동원의 발언들.
1.국회와 협의 없이 "현정부 통일정책은 '남북연합"이라 발언함(1999.03.11 조선일보).
2.1999.4.6일, 임동원은 NSC 회의 석상에서 '주한미군 지위변경’ 발언 ==> 문제가 커지자 실수라고 바로 정정함.
3.2001.12.02 (월간조선) 임동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식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대내용일 뿐이다. 본심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인정하고 있다". 발언함
.
NLL 무력화 시도의 원조 임동원.
2001. 6.2-6.7, 북한의 대형 선박들이 제주영해 및 NLL을 유린했을 때, 임동원은 3가지 특혜를 북한에 제공하려함.
(1) 이번 통과에 대해서는 6.15정신으로 수용한다.
(2) 제주해협 통항권을 북한에게도 개방한다
(3) 앞으로 북한이 사전 통보만 해주면 NLL을 언제든 통과할 수 있게 한다.
이에대해 UNC사령관은 북한에게
"귀측은 한국영토를 침범했다. 강력히 경고한다"는 메시지를 6.2일 밤 2시30분에 통보 선박들 철수함. (
2001. 8. 15-21간 평양에서 열린 행사에 337명을 방북시키려 함 ==>안보회의(NSC)가 북한의 악용을 우려해 방북 불허방침을 정했으나
==> 당시 통일부 장관이던 임동원이 그냥 보냄.(이 중 100여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자임.)
이로인해 2001.9.3일 국회해임건의안에 해임됨 ==> 1주일만인 9.11일에 김대중이 장관급 특보에 재 기용함.
국정원장 당시인 2000년 12월말까지 휴전선 지뢰를 무조건 제거하라 명령함.==>
군은 105억원 경비로 지뢰제거 장비 구입후 사용불능이라 사병들이 손으로 제거함.
임동원의 구속,사면
1.대북 불법송금 주도한 국정원장 임동원.
<<우선 2천년 대북송금 당시 산업은행에 대출압력을 넣은 사람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입니다.
이런 사실은 특검팀이 오늘(5일) 당시 김윤규 현대상선 사장과 최규백 전 국정원 기소실장을 기소한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박지원 전 장관의 경우, 이 전 수석에게 산은대출이 이뤄지도록 부탁한 것으로 특검팀은 파악했습니다.
이렇게 대출받은 2억 달러를 환전하고 북한에 보내는 일은 국정원이 주도했습니다.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과 최규백 기조실장의 지시를 받은 김보현 씨가 국정원 직원 두 명을 시켜,
불법으로 마카오 북한 계좌로 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당시 실세 장관과 국정원장, 그리고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총체적으로 대북송금에 개입했습니다.>>
SBS 뉴스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0311430957&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이후 형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노무현이 특사로 풀어줌.
<<정부는 오는 26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단행할 특별사면 대상에 대북송금사건 관련자인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 등 6명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http://sports.kbs.co.kr/news/view.do?ncd=594008
2.국정원,민간인 불법 사찰로 구속
야당 정치인및 민간인 사찰로 후임 국정원장 신건과 한께 구속 수사,징역3년에 집유4년으로 실형 선고받음

그러나 형이 확정되기도 전에 2007년 노무현이 또 풀어줌
아래는 사면에 대해 의혹을 품는 한걸레 기사임
두 전직 국정원장은 국민의 정부시절 `불법감청'을 지시,묵인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돼 지난 20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에서와 같이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기소 당시 구속됐다가 재판 도중 보석으로 풀려나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공판내내 `불법감청'은 국정원의 극히 일부 인사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이뤄진 것일 뿐 자신들은 몰랐다며 혐의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했었다.
`사건의 진실은 하느님과 피고인들밖에 모른다'고 재판장이 언급했을 때도 두 전직원장은 "한점 부끄럼없이 `무죄'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선고되자 이들은 판결에 유감을 나타내며 "상고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들이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것은 27일 오후 4시30분.선고 직후 7일 이내에 상고장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상고장 제출 기한이 27일
자정인 것을 감안하면 불과 7시간30분을 앞두고 상고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신 전 원장은 이로부터 2시간 후인 오후 6시30분께, 임 전 원장은 오후 8시께 상고를 취하했다.
결국 27일 자정을 기해 이들에 대한 혐의 사실은 `유죄'로 확정됐고, 형량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확정됐다.
그로부터 4일뒤인 31일 오전 두 전직 국정원장들은 사면 대상자 명단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김정일이 친히 "안부" 챙기는 임동원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47969
국정원이 2013년에 공개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김정일 : 오늘 아주 수고 많았습니다. 정열적으로 많이 이야기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임동원 선생 건강하지요?
김만복 : 예 건강합니다.>
보수정권에서 임동원의 행적
이명박 정부초기 세종재단 이사장으로 있다가 한겨례 통일문화재단 이사장(한걸레 소속)으로 옮김
2008년 부터 2017년까지 계속
(이 재단 초대 이사장은 원조종북 백낙청 임)
대표 종북 찌라시 한걸레와 결탁해 아래같은 일들을 하고 다니는중
1.지금 문제 되고있는 대북방송 중단시킨 장본인임.
2,연방제하자..

3.연평도 포격은 이명박 정부 때문..
5. 종북행위로 법원판결받고 추방된 년에게 수상까지 함

결론 : 대한민국의 주적은 이런자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