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기타리스트란 용어의 진실과 지미 페이지에 대해 알아보자 : http://www.ilbe.com/4366967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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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기타리스트들에 관해 써 내려가던 게이가 있었는데 요즘은 활동을 안 하는것 같더라.
하여 비루한 몸이지만 컨셉을 이어받아 록 씬에 존재하는, 존재했던 기라성같은 기타리스트들에대해 서술해볼까 한다.
록의 역사에대해 다루는 글은 생각보다 글이 길어질듯 하여 업로드가 좀 미뤄질듯 하다.
음게이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 글이랑 같은 맥락, 시리즈로 구상하고 쓴 글은 아니지만 예전에 썼던 글 중 '지미 페이지'에 대해 나름 자세하게 써 놓은 글이 있다.
'3대 기타리스트' 란 용어의 허와 실, 와전과정등도 나름 노력해서 서술했으니 관심있으면 가서 봐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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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 길었다.
시리즈를 여는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이하 RHCP] 의 리프 메이커, 천재 기타리스트,
롤링스톤지 선정 'The New Guitar Gods' 3인중 한명, 역시 같은 매거진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인의 기타리스트 18위'

'존 플루샨테'- John Frusciante 다.
1. RHCP - 천재 기타리스트, 그 커리어의 시작

80년대 미국 록 씬, 인디 판에 심상치않은 신예 밴드가 등장한다.
당시 미국 음악시장을 호령하던 장르는 '팝 메탈'
[LA메탈, 헤어메탈이라고도 함. 화려한 퍼포먼스, 장비, 무대장치 및 향락적이고 단순한 가사와 대중적인 멜로디가 특징. 대표적인 밴드로 본 조비등이 있음]
그러나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그런 주류적 장르의 음악성과는 많이 달랐다.
굳이 설명하자면 '펑키한 멜로디에 그루브함을 더한'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 신선함으로 무장한 채 미국에 도전장을 내민 이들
이들이 바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다.
1983년 보컬 앤소니 키디스, 마이클 '플리' 발자리, 힐렐 슬로박, 잭 아이언스가 의기투합해 탄생한 이 밴드는
1984년 그룹명과 같은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한 후, 앞서 서술한 독특한 음악성으로 인디 씬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간다.

잠깐의 멤버교체 [힐렐과 잭이 잠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옴] 이후 이듬해인 1985년,
펑크계의 전설적 뮤지션이자 개척자로 평가받는 '조지 클린턴'의 프로듀싱 하에 'Freaky Styley' 라는 앨범을 발매하는데
이 앨범을 향한 평단의 긍정적 평가와 함께 인디씬의 거물로 올라서게 된다.
[레드 핫 초창기의 앨범은 디스코그라피 상 후반기 작품보다 펑키한 느낌이 더 강하다. 궁금한 게이들은 직접 들어보길 추천.]
그렇게 나름의 명성을 얻고, 후속 앨범 발표와 함께 투어를 다니던 이들에게 갑작스런 사고가 찾아오게 되는데

창업 멤버이자 기타리스트인 '힐렐 슬로박'이
록 뮤지션의 고질적인 앙숙, 마약 중독[헤로인]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만 것이다.
힐렐의 절친이자 마찬가지로 창업 멤버였던 드러머 '잭 아이언스' 마저 힐렐의 죽음에대한 죄책감과 마약 중독으로 밴드를 떠나게 되고
[이때 잭 아이언스 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중증의 마약 복용자였던 다른 멤버들역시 충격이 컸던 듯 마약을 잠시 끊게되었다고 한다.]

밴드에 덩그러니 남게된 베이시스트 '플리'와

보컬 앤서니는 밴드의 향방을 놓고 고민을 하게 된다.
나름의 고심 끝에,
차마 밴드를 와해시킬순 없었던 이들은 결국 공개 오디션을 개최하여 후임 기타리스트와 드러머를 모집하기로 한다.
나름의 명성을 갖고있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였기에 세션 모집엔 내로라하는 많은 뮤지션들이 지원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단번에 앤소니의 시선을 끄는 지원자가 한 명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인 존 프루시안테다.
15세에 집을 뛰쳐나와 마약과 아르바이트로 일일을 연명하면서도 기타를 손에 놓치 않았던 어린 세션.

이전부터 레드 핫의 팬임을 자처했던 존은 레드핫의 곡들을 완벽하게, 오히려 자신만의 느낌을 담아 더욱 멋지게 커버해냈고
앤서니와 플리는 엄청나게 어린 나이[당시 18세]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으로 존을 밴드의 멤버로 영입하게 된다.
이후 드럼엔 '채드 스미스' [글의 주제가 주제다보니 짧게 넘어가지만 이 양반이나 플리나 모두 엄청난 세션들이다.]를 영입하여
4인 체제를 이룬 레드핫은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RHCP의 전성기 멤버, 좌측 위부터 드러머 '채드 스미스', 보컬 '앤소니 키에디스', 베이스 '마이클 플리 발자리', 기타 '존 앤서니 프루시안테']
그렇게 한 차례의 역경을 겪고, 새로 꾸린 멤버들과 함께 활동하며 인디씬을 넘어서 메이저에까지 조금씩 이름을 알리던 이들은

1991년 발매된 'Blood Sugar Sex Magik'으로 마침내 포텐셜을 터뜨리고, 단번에 메인스트림에까지 올라서게 된다.
존의 간결하면서도 흡인력있는 리프와 외설적이고 직설적인 가사, 플리의 톡톡튀는 베이스, 앤소니의 퇴폐적이고 끈적이는 보컬, 채드의 깔끔한 드러밍으로
중무장한 이 앨범은 레드핫 디스코 그라피 뿐 아니라 90년대 앨범을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명반으로 거론된다.
[해당 앨범의 전곡]

이 앨범 전반에서 존의 천재 리프메이커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추천할만한 트랙은
영화배우 류승룡씨가 '듣고 있으면 태양 아래 땀 흘리는 근육이 떠오르는 느낌이랄까요?' 라고 평하며 본인의 애창곡이라 밝히기도 했던
'Give it away' 와
[뜬금없는 조쉬 클링호퍼가 보이는건 넘어가도록 하자.]
힐렐의 죽음 이후 찾아온 상실감과 마약의 유혹을 시적으로 써 내려간 가사, [실제로 곡의 유래가 앤서니가 써 내려갔던 시이다.]
그리고 그 가사의 분위기에 정확히 호응하는 존의 리프가 일품인 'Under the Bridge'
정도가 되겠다.
사실, 괜히 90년대 최고 명반중 하나로 뽑히는 앨범이 아니니까 시간내서 다 들어보는걸 추천한다.
참고로, 이 시절 존은 똘끼로 소문난 RHCP 멤버들과 함께 평생 할 괴상한 짓은 다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게



[운마야... 모자이크도 하고 다 가렸다... 벤하지 마라...]
거기에 양말만 입고? 끼우고?.... 뭐 여하튼...
맨 몸에 양말한 걸치고 공연한 것....
이게 윾쾌한 서양인들 눈에도 다소 충격적이었는지 RHCP Socks로 구글링하면 충격에 휩쌓인 감정이 묻어나는 많은 글들과 사진들을 볼 수 있다...
2. RHCP 탈퇴, 이후의 방황.

[아메리칸 하드록 스타, 건즈앤 로지즈의 액슬 로즈와 함께. 액슬 바로 좌측이 존 프루시안테]
BSSM의 문자 그대로 대 성공 이후, RHCP는 메이져를 넘어서 일약 세계구급 스타로 발돋움한다.
그에따라 투어 일정과 스케쥴은 살인적으로 변했으며,
그를 소화하던 멤버들도 점점 지쳐가기 시작한다.
특히, 존이 bssm 이후의 성공에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내가 원한 밴드는 이런게 아니다.' 라며 멤버들과 설전을 벌일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이렇게 메이져로 올라선 밴드의 위치와 그로인한 중압감을 견디기 힘들었던 존은
92년 일본 콘서트 이후 밴드를 탈퇴하게 된다.
그렇게 밴드를 탈퇴한 존은,
본인의 능력과 건재함을 천명하는듯 94년도에 솔로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
바로 이 앨범이다.
[그의 포지션이 기타리스트였기에 게리무어나 버킷헤드의 앨범처럼 인스트루멘털 앨범이 아닐까 생각하겠지만
포지션과는 별개로 그는 항상 레드핫의 코러스를 맡아오던 서브보컬이었다. ]
뭐 아무튼, 앨범 커버처럼 다소 난해한 앨범이긴 해도 평단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평범한 록 리스너의 입장에서 볼때 몇몇 곡 빼곤 정말 너무 난해해서 듣기 힘들더라.
라헤의 ok computer나 핑플의 the wall등도 무리없이 들었는데 이건 좀...
괴기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니... [앵간한 프로그레시브, 슈게이징도 뺨때릴정도로... 뭐 음악은 취향이니깐... 아무튼 그렇다.]
이게 앨범 전곡인데 궁금한 게이들은 들어보길.
사실, 이 앨범이 난해하고 심지어는 기괴한것처럼 느껴질 법 한게
이 앨범을 제작하던 당시 존은 쉽게말해 그냥 '폐인'이었다.

전술했다시피 존은 헤로인을 수시로 투약하는 마약 중독자였는데, 빡빡했던 스케쥴에서 벗어나게 되자
남는 시간이 벌어놓은 여유로운 자금과 시너지를 일으켜 그야말로 마약에 '절은' 상태가 되어버린것.


위 사진이 당시 존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동영상의 캡쳐본인데, 유튜브에 ' john frusciante drug ' 라 검색하면 원본 동영상을 볼 수있다.
사람에 따라 혐오감을 느낄수도 있어서 본 글에는 게재하지 않겠다. 궁금하면 찾아서 보길.
아무튼, 이후 존은 정말 죽음의 문턱까지 갈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는데.
이런 존을 다시 갱생시키고, 구제해준 이가 있었으니...
3. RHCP 재 가입, 그리고 찾아온 두 번째 전성기.

92년, 존의 갑작스러운 밴드 탈퇴는 밴드에 있어서도 커다란 손실이었다.
제인스 어딕션의 실력파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를 영입해서 활동을 지속한 그들이었으나 그들 자신도, 팬들도 뭔가 아쉽고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록이라는 장르에서 밴드 음악의 스타일과 기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체적으로 '기타리프'.
그런 리프 [심플한 라인에 노이즈를 섞어내 개성적인 톤을 만들어내는 존의 능력까지.]를 만듦과 더불어
독특한 음색의 코러스까지 얹어주던 존의 부재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결국, 그들은 솔로 활동한답시고 폐인이 되어버린 존을 다시 데려오기로 결정한다.
존을 갱생시키는 과정은 혹독했다.
마약을 끊게하고,
[좌 턱뼈 및 코 재건수술 전 젊은 존의 모습, 우측은 수술 후 존의 모습]
마약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뭉게지고 흘러내린 코와 턱을 재건해주고,

기타를 다시 쥐어준 끝에야
[앤서니가 사비를 들여 기타를 선물했다. 이 때 넘겨준 모델은 펜더사의 62 스트랫.]
몇년만에 존은 한 밴드의 세션으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재기 준비를 마친 RHCP와 존은, 한 장의 앨범을 세상에 발표할 준비를 하는데...

2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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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성 문제로 여기서 1편을 마무리한다.
2편에선 재결합 이후 활동과
두 번째 탈퇴,
그 이후의 솔로 활동을 서술할 생각이다.
캘리포니케이션, 스테디움 알카디움 등 대중적 성공을 크게 거머쥔 앨범들이 이 시기에 나온만큼 아마 2편에선
노래 첨부가 훨씬 더 많을듯하다.
록 리스너 게이들의 관심을 앙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