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ilbe.com/3164758317 <=영화 스승의 은혜 게시판에 올려진 글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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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00선생님이 정말 기억이 납니다.. 1990년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 이였지요.. 그여자의 주특기는 머리체잡고 흔들기.. 정말 무시무시했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대상은 바로 저였습니다.. 하루에 한번씩은 머리체를 잡히기 일쑤였거 한번은 책을 잃어버렸습니다 슬기로운생활... 최미화선생님은 다른책들은 검사를 잘않하는데 유독 슬기로운생활 수업시간에만 검사를 하는것이였습니다.. 1년동안 그없어진 책때문에 벌을 받아야했고 그책의 행방은 3학년 올라가서야 알았습니다.그담임의 교무실 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기절하는줄 알았음.. 왜 그책을 숨기고 나를 괴롭혔었는지..
중학교 생물선생님 ...
우리 학교의 공포의 대상이였다.
강목을 들구와서 질문에 답을 못하면 때린다.
2 ... 4 ... 8 ... 16 ....
항상 수업시작 전에는 교탁위에 올려져잇는 것 들 ...
음식 ... 과자 ... 음료수 ...
교탁위에 잇는 것들을 드시면서 수업하시는 선생님.
정말로 그 선생님 시간은 공포였다.
" 선생님 ... 아직도 그렇게 수업을 하시나요? "

당시 나는 초등학교6학년 이었다.
나에게 잊을수 없는 기억을 주었던 그 선생이
칠판에 문제를 적어놓고는 아이들을 불러 문제를 풀게
하고 있었다. 
내가 문제를 풀 순서가 찾아왔고 나와 나의 짝이 앞으로
나가 문제를 풀었다. 
난 문제를 풀었고 짝은 문제를 풀지 못했다.
하지만 난 문제를 다 풀었기에 나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
고 짝은 도무지 모르겠던지 곧 나를 뒤따라와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후 그 선생이 날 불렀다.
어째서 부른 것 일까? 궁금해 하며 앞으로 나간나의 얼굴로 그 선생의 손이 사정없이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왜 맞는지 알수 없었던 나는 더이상 참을수가 없었기에 팔을 들어 방어를 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행동에 더욱 화가 났는지 나의 머리를 잡고 칠판에 박더니 질질 끌기 시작했다.
아픈것은 둘째치고 너무나도 치욕스러웠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뭘 잘했다고 우느냐며 따귀를 때리며 소리를 지르는 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정말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냐머 소리를 질렀다. 
난 도무지 알수가 없었고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선생이 나에게 했던 말은 어재서 문제를 다 풀지도 않고 그냥 들어갔냐는 것 이었다.
반 아이들은 다 같이 난 문제를 다 풀었고 나의 짝이 풀지 않았다고 여기저기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선생의 얼굴이 시뻘개 지면서 나의 뺨을 다시 때렸다. 치욕스러운 욕을 내 뱉으며 자리로 돌라가라고 소리쳤다. 그 후로도 나에 대한 구타는 계속 되었으며 난 이유없이 많은 매를 맞았다.
이 어릴적의 기억이 지금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정말 잊고싶지만 잊혀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진심으로 가르침을 주신 성생님들도 계셨다. 나의 스승님께는 늘 감사하는 마음 잊지않을 것이고 나를 구타하였던 그 선생은..어서 잊고싶다.

지금 나이 24니까... 아직도 생생하네 그기억...
외동딸인 나는 할머니댁에서 혼자 자랐었다...
그래서 굉장히 내성적이였고...
부끄럼도 많이 타고 낯도 많이 가리고...
예전 초등학교1학년때...
담임쌤이 발표를 시켰는데 못한다고...
친구들 앞에서 싸대기 맞았고... 
코피 줄줄 나고 날라갔던기억이...
그일 있은후로 지금까지도 콧뼈가 약간 휘었고...
살짝 충격만 있어도 코피가 줄줄...
그때 그기억이 정말~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
파주시에 모 초등학교... 오x자 선생님...
기억하시나요?

제가 남녀공학에 다녔거든요? 저희반이 5반 6반부터 10반까지는 여자반으로 저희반은 여학생반 바로 옆 교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체육선생의 변태 행각과 우리반에서하시던 폭력 행각을 전 보두 들었거든요.
그걸 모아서 적어봅니다.
1학기 기말때 일겁니다. 기말땐 학교에서 체육시험도 보죠. 그래서 수업을 교실에서 합니다. 책이 필요한 상황이죠. 근데 저희반 몇명은 책을 않가지고 왔습니다.
저도 물론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교실에서 할줄 몰랐으니까요...
체육 선생님은 저희를 책상위로 올라가 꿇어 앉으라고 하시더군요. 저희는 올라가서 보라는줄 알았는데 앉은 자세에서 허벅지를 때리시더군요. 앉은 아이들의 허벅지 윗쪽을...
그것도 무려 한교시동안 말이죠.
그자리에서 막 때리신게 아니라 한바퀴식 돌면서 때리더군요 애들 표정 봐가면서...
제가 그때 선생님 얼굴을 않봤더라면 지금 이 상황이 한결 나았을텐데... 그때 선생님 얼굴은 흔이 속된말로 쪼개더군요... 실실 아주 좋아 죽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리고 다음날 옆반에 체육이 들어서 여자애들에게 부탁해봤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하나
이미 체육선생의 변태행각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괜한 호기심에 부탁해봤습니다.
여학생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하는수 없이 승낙했습니다.
실험대상이 되어달라고 한 여학생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 선생님이 하신 행동이 가관이더군요.
맨손 처벌이었습니다. 가슴쪽 3대 엉덩이 5대 개인적 편차가 있긴 하지만 대단하시더군요.
대놓고 때릴줄이야...
저희는 여학생들 말 듣고 놀랬습니다.
한쪽으로는 미쳤나란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대단한건 선생님께서 시험후 처벌을 하셨다는거... 100점 밑으로
저는 30점 한대당 5점씩인가 계산했으니 14대 정도 맞았습니다.
너무 아프더군요 아파서 확인해보니 엉덩이 전체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더군요. 군데군데 피멍도 보이고... 참 그때 그 당구칠때 쓰는 대로 때리실때... 저희 죽이고 싶었습니다.
애들하고 뒤에서 어떻게 해보자고 생각도 해봤고요... 
뭐 하지만 그 덕분에 스승의 은혜는 잊을수 없을만큼 깊이 박혔지만요...
언젠가 친구들하고 찾아 뵙겠습니다. 선생님!

우선 이글 읽을실때 비웃지 말아주세요.
100퍼센트 실화며 단 1퍼센트의  거짓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올래 24세인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단지 양쪽눈의 시력이 1.0 차이가 난다는 것을 빼면요.
중학교 2학년.. 저는 한때 소위 잘나가는 학생이였습니다.
물론 잘나간다... 논다... 하니 안좋은 일도 많이  했죠.
담배도 피고 양아치 짓도 많이하고....
그래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기에 반성하고
중3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다행히 인문계에 합격했고 희망찬 고 1에 뛰어들었습니다.
첫날.. 선생님께서 학급비를 겉는다하며 모두에게
4만원 준비물...을 얘기하셨습니다.
당시 저희 아버지는 치과기계를 만드시는
공장에서 근무하셨고... 어머니께서는
외할아버지가 지신 빗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부업을 하셨습니다.
때문에 전 부모님께 4만원이라는 거금... 당시저에게
그런 돈을... 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단지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선생님 께서는 들고계시던 칠판 끈 모서리 부위가
부러진 것으로 때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도 명색이 고등학생인데 어느정도 때울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 10분간 매타작을 당하고...
선생님도 지치셨는지... 저를 들어가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수로 인사를 않하고 들어가려할때였습니다.
갑자기 제 어깨를 잡고 제 몸을 돌리시더니 그 몽둥이로...
그 날타로운 몽둥이를 잘못 조준해 눈을 찔렸습니다.
눈에서 눈물과 피가 섞여 쉴새 없이 흘렀습니다.
병원에 가니 응급조치를 했지만 시력이 많이 떨어질
것이라 합니다... 당시 안경을 살 형편도 아니었던 저는
공부에 꿈을 접고 실업계로 진학했습니다...
그후 아는 분의 도움으로 전문대학에 겨우 진학하긴 했지만
선생님께서 제게 주신 뿌연눈의 선물은 잊지 못합니다.

제가 초등학교때 일입니다. 그때 선생님성함은 조()()선생님 이셨죠. 제가 공부를 못해서 그랬는지 절 좋아하지 않으셨죠. 절 보던 그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이런 사이트에 글을 쓴다는것 자체가 우습지만 무슨이유에서인지 글을 남기네요. 체벌은 체벌다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글을 남깁니다. 미술시간이었습니다. 먹물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는데 제가 물통을 가져오지 않아서 반에서 공동으로 쓰는 물컵을 썼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컵에 먹물을 풀었으니 당연히 혼나야 할 잘못이었죠. 하지만 그때의 상황은  다른아이들이 먼저 물컵을 사용하자 제가 따라서 사용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선생님은 저만 앞으로 불러세우시고는  제턱을 손으로 잡으시고 입안에 먹물을 부으셨죠. 너도 똑같이 당해야한다고. 그때 는 진한먹물을 담은 통을 문방구에서 팔았었는데 그걸 입안에 부으신거죠. 그때부터 저녁까지 오바이트만했답니다. 집에도 못가고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선생님 잘 계시는지. 언젠가는 한번뵙고싶네요. 정말 왜그러셨즌지 여쭤보고 싶어요. 정말 왜그러셨는지 제가 그렇게나 미웠는지 물어보고싶네요. 날 기억도 못하시겠지만.

나는 중2의 꽃다운 소녀
친구들 앞에서
쪽팔리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고
쪽팔리는 짓은 
한번도 해본적없는 아이이다
하지만 중1때부터 그런 일을 당한
나로서는
죽고싶다
음악시간
음악은 남자아이를 무지 좋아라한다
나는 그리고 음악이 좋아하는 남자아이들과
친했고 자리또한 그 남자아이들의 옆자리였다
그리고 내가 웃거나 애기할때 입이
썩소를 날리듯 그렇게 되었다
어느날 음악이 애기하는데
옆에 남자아이가 나한테 웃긴애기를 했다
그래서 소리도 안내고 작게 웃어주웠더니
너 일어나 이러면서 
남자여자 합해서 40명이 되는 아이들앞에서
너 누가 선생님이 말하는데 그따구로 웃의래
이랬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헐이라고 했다
그걸 들었는지 야 너는 그따구로 교육받았냐
너 집 번호가 뭐야
이러더군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의니깐
야 너 내말 씹냐
그래서 아니요 이러니깐 
말해보라고 이러면서 삿대질? 을 해댔다
그리고 너 누구랑 애기했어
이래서 나는 당당히 옆에 남자아이를 가리키니깐
누구? 이래서 제요 이랬다
그리니깐 너 지금 내가 하는 말 듣고 비웃은거냐?
이래서 아니요 제가 말시켜서
이러니깐 시끄러 너 교무실가자
이러더군 어이 상실 완전 죽이고 싶었다
중2가 되어 그년과 또 수업을 하는데 
월드컵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선수 이름을 대면서
애네 창남이라며 이러더군
지가 뭘안다구
내가 그래서 맨 뒷자리에서 어떻게 알까?
이러니깐 야 너 일어나
이래서 일어났더니
너 나보러 뭐라했냐 ?
이래서 어떻게 알까라고 했는데요 라고 하니깐
엥엥엥엥 거리며 욕을 하더군
어이상실하고 있는 나로써는 할말도 없고 해서
그냥 서있었는데
너 나가 이러더군
어이없게 
그래서 나는 또 교무실가서 몇대 맞아주고 올라왔다
귀 썩고 남친 하나 없어서 
20살이상 차이나는 남자나 좋아라하고
몰상식한 인간
하긴 음악은 대충하는 과목이니깐
선생하기 쉬웠겠다
오륜중 2학년 음악아 반성하라 ㅡㅡ

당신은 아이들에게 포청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었지. 그때 판관포청천이라는 중국 드라마가 한창 
유행할 때였고 당신이 학교에서 제일 가는 
무서운 선생님이었기에, 아이들은 당신을 
포청천선생이라고 부르곤했어.
난 생생히 기억해. 내가 무슨 말만하면 
그 같잖다는 표정으로 웃기는소리 지껄이네 -하면서
발바닥을 사정없이 때렸지.
내가 호흡곤란이 와도 당신은 주저않고 발바닥을 때렸어^^ 아마 일주일 학교가는 6일에 5일은 맞았을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교 3학년의 아이를 그렇게 모질게 때려대는 이유가 뭐였니. 아이가 아이답지않고 어른스럽게 행동하길바랬니? 
난 사고뭉치도 아니었고
오히려 얌전한 편이었잖아. 근데 뭐가 거슬려서
그렇게 날 패댄거야.
걸핏하면 애들 앞에서 그렇게 날 때려댄 당신 덕분에
난 소외당할수 있었고 더욱 이 더러운사회를 
빨리 깨달을수 있었던 것같아. 어찌 보면 고맙네?
이런 공간에서라도 당신에게 한풀이를 할수있어
다행인지. 당신에게는 닫지도 않겠지만 
어쨌든 어딘가에서라도 이런 내 상처를 풀어놓고싶었어.
내가 전학가던 그 날에도, 눈엣가시하나가
사라졌다는 표정을 지었지.
아직도 그 말! 그 표정!! 생생히 기억에남아.
저 아이, 저대로 서울가면 분명히 큰일이나 일으킬꺼라고했지? 당신의 말을 엄마는 얌전한 애라며 웃어넘기셨지만.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어린날의 악몽을 꾸게 만드는 당신을
저주하고있어. 영원히...^^
이 글을 쓰는데도 당신에 대해 증오심이 끓어올라서 견딜수가 없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이야.

 보여주고 싶은 선생님이 생각나요.
초등학교시절...
20년이 지났지만 생생히 기억납니다.
시간이 지나서 왜 선생님은 인성검사를 안하나 할정도록..
폭력과 폭언을 일삼던 선생님.
돈봉투를 드리고나서야 태도가 바뀌셨던 분.
선생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이 영화 꼭 보셨으면 해요.

비록 내가 제자는 아니지만 어린이집 선생도 했었고 사회에 나가서 나에게 사회란 비열하고 싸가지 없게 살아야 돈을 벌수 있다는걸 가르쳐준 인간에게 꼭 복수를 하고싶다... 있는사람들 앞에서는 간쓸개 다 빼줄듯하고 뒤에선 뒷담화를 즐기고 없는사람들은 개무시를 하고 버러지 쳐다보듯 상대도 안하는 두**...공교롭게도 어린이집 선생질도 한사람이라는게... 지손해 보는짓은 죽어라 안하는 새끼랑 잘 어울리는 쓰레기한쌍... 제천에 모 애견샵 싸가지업주라면 누구나 아는 그 지랄로 선생질을 하니 그모양 그꼬락서니지...

내가 지금 생각하면 뭐좋다고스승의날때 어머니가 그좋은 선물들을 드리라고 했는지나는 아직도 그걸생각하면 죽을맛이다.차라리 독극물을 줘버릴것을...4학년때 선생 이름 기억안난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나사빠진것들 하면서 뒤질라게 욕해댄데 그게 선생이냐 하며 친구들과 욕담한적이있다.초등학교 조금 모질란애가 있었다. 그애가 잘 못한다고수업시간에 애들자습시킬때 담탱이는 그애를불러 패고 밟고 배를 차고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분명 아이를 낳고 다시 복귀했던 선생이었다.  니는 니애한테도 발길지하고 그러디? 남애라고 그렇게 함부로 대하면 안되는거거든? 생각은있냐? 애새끼를 그만큼 팼으면 됐지 다시 오라면서 끝까지 팰건뭔데? 나는 아직도 생각하면 옛날 초등학교 교사들 자격없다 아니 어떻게 그 대학교육을 어디서 받았는지 뇌속을 해부해버리고 싶은정도다

선 생 님
교실 벽에 붙은 꽃그림 만졌다고
 아이들로 하여금 절 때리게 시키시고
시력검사 때 밥먹은 숟가락으로 검사받게 하시고
숟가락을 팽개친 아이를 모질게 구둣발로 짓밟으셨던..
수업중에 하품했다고 교편을 던지시어
제자의 이마에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내주신 선생님
다른 말은 안 하겠다
니가 스승의 날 때 받은 목걸이며 꽃이며 그 중에
반 아이들이 손수 저금통 따 모은 카네이션 세 송이를 
쓰레기통에 박은 것
그래도... 어린아이 가슴에 
무언가 아니라는 사실을 남겼지
그리고 당일날 우리 엄마에게 말했었지
"어머니~ 오늘 스승의 날인데 그럴듯한 게 없네요"
늙은 여우 ... 니가 긁어모은 촌지는
누구의 눈물과 땀인지 알겠느뇨?

기억난다 초등시절 아니 그때는 국민학교였지...
이빨을 교정해야 했기에 철을 이빨에 끼운상테에서
난 체육시간을 맞이했다...
이빨때문에 오늘은 어울리지 못할것 같다고 하니...
욕을 하며 못하겠슴 여자들 발야구 하게 선을 그리라 하였다...
그래서 주전자에 물을 담아 선을 그었다...그런데
다짜고짜 나에게 달려와 귀싸데기를 때리는 체육선생....이유인즉 선이 삐뚤다는 말...
교정치아로 인해 입에선 피가 줄줄 흘렀지만...
난 선생을 죽이고 싶었다... 이내 참고 돌아서서 생각했다...이담에 크면 너같은 넘들 밝아주리라...
훗 돌이켜보면 어린아이의 작은 응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작은 상처가 인생의 길을 변화시킬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할것이다..
현재 많은 폭행과 과잉보호로 인한 사회문제에 시사하기 위한 영화라 생각하며 기대해 보겠습니다.
 
고등학교때 사복가지고 갔었지 딱 두번 ... 난 정말 평범
한 학생이었지 학원때문에 언니가 다녔던 학원에 다녔
었는데 멀었었고 내 교복을 보면 어디 학교 다니는지 알
기에 그게 알려지기 싫어서 사복을 가져갔는데 결국 반
소지품 검사에 걸려들어서 울면서 애원했지만 옷을 뺏
겼고 남자 선생님 한테 갔었지... 옷 왜 가지고 왔냐고
하길래 학원다니는데 가지고 온거라고 했더만 날 날라
리 취급을 하더군... 어디 서 속이냐며 날 때릴려고 했지
맞지는 않았지만 그러더군 나중에 옷 돌려주겠다고 하
지만 결국 옷을 못받았어~~ 두번 밖에 입지 않았던 엄
마가 사준 새옷이었는데 난 말이야 선생님이라는 권위
로 자기 기분 내키는데로 말씀하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저런 선생님들 없었으면 좋겠어.... 초등학교때부터 고
등학교때까지 난 저런 비스무리한 선생님들을 여러명
만났었지.... 중학교때에는 계이름 읽을줄 모른다고
교무실에 계시는 음악선생님을 찾아가서 용기 내어서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너 모자른거 아니냐 어떻게 된거
아니냐 면서 날 바보취급하더군.. 그뒤로 난 찾아가지
않았지... 절대로!!! 날 이상한 눈으로 쳐 다본 그 여자
선생의 눈빛 잊을수가 없지... 암.. 아 글구 고등학교때
우리반 상담실로 불러서 성추행했던 남자 담임이 있었
지... 소위 키크고 예쁘장한 애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애
들을 상대로 불러내서 성추행을 했다던데 만지작 거리
고 쓰다듬고 근데 전에 그런 전력이 있었다고 하더군 나
중에 알고 보니...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결국 교사직
에서 짤렸지..
한마디로 미친 xx 이지.. 늦게 결혼도 했으면서 그
버릇을 못 버리고.. ㅉㅉㅉ  그때 당시 충격이었지...믿
고 싶지 않을 만큼....
글구 정말... 다른 여기 게시판에 글올린 분들만
큼은 그 고통만큼 난 아닐지 몰라도 나도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면 존경스러움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떠올려져
야 하는데 내 기억에 그런 좋은 선생님은 결코 없었
다!!!!!! 켤코!!!!!!!!!!

내나이 28 .
아 아직도생각난다
초등학교2학년떈가?
내가 그때는여자에대해 아무것도몰라서
여자애를 괴롭히고는했었다..
나에게 하도 괴롭힘을당한 여자아이가
부모님에게일러서 상담도 하고그랬다
아무튼이건 그렇고
그아이와 잘 사과되서 좋게 학교생활 하고있었는데
4교시때인가?
 
아무튼 점심 먹는시간이엿는데
갑자기 그아이가 울음을 터트렷다
나는 상관않고 밥을먹고있었는데 갑자기선생님깨서
나를나오라고하였다
나는 왜나오라고했는지 이유도몰른체
나갔다
선생님깨서갑자기 내 다리를 차셧다
나는 선생님의 강도가너무쌔서 다리를 휘청거렸다
그랬더니 게속다리를밟았다
나는그순간
게속병신으로살아야하는 장애인이다 ...

스승의 은혜...
기대 되네요...
나도 중학교때
정말 싫어했던
선생님이 잇는데..
못됐죠...
아파서 입원한 중학생 애한테..
건강하나 돌보지 못하는 바보라고 반애들한테
말하고..
공부잘하는 놈과 못하는 놈을 엄청 차별하고
........................................................
재수.. 으웩.-_-;
 
아직도 그선생님이 선한 눈빛이 기억납니다
아직도 눈물이 날꺼 같아 그 선생에 눈을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자존심이 쌔서 처음전학간 곳에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 늘 되돌아 오는건 그 눈빛입니다
미소를 띄우며 날 기만하는듯한 말투
니가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는거지 도대체
우리 아이들이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거야
너에엄마도 극성이네 정말 ,
이제는 커서 그 말을 이해할수 있을꺼 같군요
타지에서 전학온 한 아이가 그저 웃읍게
보였을분이라는거
그선생님 아이들 선생을 찾아가서
돈이라도 주고싶은 심정으로 아직도
그선생만 생각하면
피가 솟구침니다 ,,,,,

중3때 제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 애들에겐 말거시고 머리 만져주시고 .....언제나 제자리는 스쳐지나가시던 선생님
제 말투가 그렇게 맘에 안드셨었나요.....
가방에서 필통만 끄냈는데도.. 저에게 너는 왜그렇게 항상 산만하냐면서 혼내셨죠,,결국엔 교무실로까지 부르시고., 가방에서 필통 끄낸것이 그렇게 거슬리셨다면 말씀하지 그러셨어요... 선생님께서 조회시간나가실때까지 가방에서 필통 안끄낼수있었는데...책상위에 가방을
올려둔것이 그렇게 거슬리셨다면 말씀하지 그러셨어요.학교와서 제일먼저 하는일이 가방거는 일이었을텐데
몇번이고 가방이 잘 걸려있었는지 확인까지 하면서.... 
선생님께 이쁨 받을수만있었다면...아니 다른아이들에게 해주는것처럼 나에게도 잠시 그래주신다면....
아침조회시간 선생님께서 제 앞뒤옆아이들에게 웃으면서 장난치시고 말거시고 할때마다 저는 항상 부러웠습니다. 제 앞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면 저는 억지로 웃고있었어요..언젠가 나에게도 말을걸어 주시지 않을까.... 어색한웃음
그리고 내앞에선 절대로 어떤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던 선생님의 걸음. 
중3 아침 조회시간이 저는 제일 괴로웠습니다.

충남서산초등학교 1학년 1반  김00
충남서산초등학교 3학년 10반 류00
서산초등학교 5학년 1반 리00
서산초등학교 6학년 5반 문00
이 네명의 선생중 5학년때 담임이였던 리00
왜 교장 됐는지 이해가 않간다...잘살고 공부잘하는
애들한테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나같이
공부못하고 집도 못사는 가난뱅이 한테는 사람취급도 않해줬다. 1학년때 담임이였던 김종임은 날 창문빡으로 내 던졌다.그리고 아빠가 술먹고 교실찾아온다는 이유로 따귀를 때리질 않나 또 3학년때 담임이였던 류관순은 집이 가난한 날 자존심을 무지 상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앞에서우리집사생활을 공개하고 6학년때 담임이였던 문경희는 날 별로 관심주지도 않았다. 완전 개무시를 했다.반아이들한테 왕따를 당하던 얻어맞았던 늘 하시는 말"공부못하는 것들이 쓸대 없는 짓한다...."
그래 니들 지금도 제자들한테 그렇게 개무시를 하냐?
재수없는 인간 말쫑들아. 이 영화를 본다면 깨달으라.... 아참 2학년 2반담임이였던 양00...날 성추행했었지...그리고 툭하면 얼굴꼬집으면서 따귀를 때렸지...그리고 4학년 2반 담임이였던 류00...공부못한다고 아이들앞에서 망신을 줬지...
나 초등학교때 너무 힘이 들었거든...당신들때문에....
이글보면 내가 누군지 짐작이 가겠지...

그선생한테 학생이란 뭔지 묻고싶습니다.
기독교 학교의 선생이란사람이 학생의 얼굴을 치고
인권을 모독하는 쌍욕들을 다하는게 어떻게 교육자라고
그밑에서 뭘배우겠다고 있는 저희들도 불쌍합니다.
 
양말이 규정에 어긴다는이유로 교무실까지
불려가서 벌을섰습니다
그때 제친구도있었는데 솔직히 양말을 규정에적용할려면
전교생이 다 걸려야될정도입니다.
게다가 그양말은 제가 생일선물로 같은반 친구에게 받은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일이많은지 몰라도 상당히화가있었나봅니다
절 교무실로부르더니 그때부터 불러올때부터 쌍욕을 해대더군요
 
그러다가 손님이 교무실에와있었는데, 손님더러 잠깐 나가있으라고하더군요
 
나가자마자 체벌이 시작됬습니다
 
턱을 치면서 저쪽까지 밀려났습니다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얼굴가격을 받아보는터라 너무놀랐고 ㅡㅡ
대답안하면 또 개지랄을 떨것같애서 묻는말마다 다 대답했습니다
네 네 네 라고 열심히말입니다
 
그와중에도 턱을 계속가격하면서
"너가뭔데 날농락해 너가뭔데 너가뭔데"
하면서 턱을 계속 가격헀습니다.
 
그때 다른선생님들도 늘있었던일이지만 저인간 또저러나보다
하고 힐끔힐끔 쳐다보았습니다 (얼굴을 쳐서 밀어내는 그와중에도 아무도 말리지않았다는게 전 ㅡㅡ 정말 화납니다
맨날 강당에서만 개 신실한척 떠는 선생님들이 미웠습니다. 기독교학교도아닙니다
하나님이 규정어기면 학생 개패듯패고 인권모독하는말 하라고 말씀주셨는지 말이죠.)
 
"내가 나이만든사람으로보여? 니네담임이우스우니까 나까지 우습디 야이개XXX"
잊고싶어서 그땐 너무나도 놀랐고멍해서 욕이 제데로들리지도않았고
눈물은 자꾸나왔습니다 지금생각하면
한인간으로써 너무자존심이상하고 ㅡㅡ 그사람이야말로 데체 뭔데 나에게 이렇게 인권비하하는
말을 지껄일수있는건지...ㅡㅡ
 
저 나름대로 정말 성실하게 학교다닙니다.
성적도 나름대로 잘나오는편입니다.
규정도 잘 지키는편입니다.
담임선생님한테도 신임받는 편입니다.
 
그런데 저는 개무시당하는 말을 들어야만했습니다
제친구는 원래좀 행동이느린편인데 그친구에게 어슬렁거리면 발로차버린다 썅XX
라는 욕까지했습니다
 
이야 욕정말 잘하더군요^^
욕으로 교육자자격얻었는지말이죠.
 
그러다가 계속 지 분이안풀렸는지
남자라는선생이 그주먹으로 제가슴팍을 가격하더군요
 
전여고생입니다
그거 동영상으로올렸으면 요즘 한창 이슈되는 폭력교사로 그선생도
뉴스면에 찍혔을지도모릅니다
 
저희학교는 핸드폰을 전부걷습니다.
아마 그런거 못찍게할라고 핸드폰 걷는건아닌지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일있은후로.
 
이일은 3일전인가에 일어난일입니다.
 
전너무어이가없고 그인간은
소문도 존나게드럽습니다.
학생들 인권비하한다는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런인간이 왜 여태 사립학교에서
안짤리는건지 알수가없습니다
 
기독교학교라고 부르기도싫고
전 제학교에 자부심도있었고 선생님들도 굉장히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일이있은후로 저희학교가 미워지기시작했습니다
 
제가뭐땜에 얼굴맞고 무시당해야하는지
납득이안가고
그후에도양말은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지승깔대로 양말 쓰레기통에 쳐넣은것 같더군요
무슨사연인지 학생의말은 들어보지도않고
무조껀 체벌하고
정당한 체벌이라고볼수도없는 얼굴이나 가슴팍 을 맨손으로 때리는
과잉체벌이 싫습니다
 

세상에 최악의 선생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니가 이글을 읽을런지...아니면 아직까지 미친 선생짓을 할런지는 모르지만 졸업한지 10년넘게 지난지금도 니간 한 짓꺼리들이 잊혀지기는 커녕 더 크게 내 맘속에 구멍을 내고있다
항상 점심시간엔 6학년4반교실(우리반)에서 선생들끼리 밥먹는다고 4교시는 아예 수업도 제대로 하지않고 밥냄새며 국냄새를 펄펄풍기며 음식을 만들었지
그리고 뒷자리 앉아있던 난 너네들이 밥먹는다고 내 자리를 빼앗겨서 다른아이자리에 얹혀서 매번 점심시간을 보내고 말이다..
그것뿐만아니라 넌 어찌나 돈을 밝혀대던지 전학온데다가 촌지를 안주던 나때문에 방과후남겨서 한겨울에 손이 마비되도록 너의 전기포트를 깨끗이 씻게만들었지
덜덜떨고 있는 날보고 옆반선생님이 불쌍히 여기시던 모습까지도 생각나는걸....
게다가 방과후에 산다하는 학부모를 모아서 수다떨며 아양떠는것 다 보았다. 그런걸 싫어했던 날 알아채고 넌 나보고 부모님모셔오라고 해서 전학가라고 했었지
조만간 찾아뵙고싶다...니 면상떼기 얼마나 기름 쳐바르고 잘살고 있는지...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일이었다.
10년도 더 된일이지만 생생히 기억이 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교감선생님 앞에서 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들어갈수있고
그당시 등록금이 60만원이넘고 급식비가 20만원, 또 학부모 회의같은것에서 따로 내는 회비 같은것이 20만원이고 스쿨버스비까지 해서 반학기를 학교에 다니는데 드는돈이 150가까이가 되는 사립초등학교였다.
카페트가 깔린 바닥에, 원형,다각형으로 된 책걸상, 멀티미디어 시설이 최첨단으로 비치되어있고, 외국인 선생님과 한국인선생님으로된 2명의 담임선생님이 계셨고, 화장실은 손을 대면 물이 나오며 코팅된 나무로된 문, 가사실은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요즘 좋은 펜션에나 가야있을법한 가전제품들이 즐비했고, 신발장이있고 잔디가 깔려있으며 최첨단 놀이터에 급식실문은 유리창으로 온통 계단도 원형계단 도서실, 컴퓨터실 최첨단 시설이었으며 지하까지 총 3층으로 되어 인라인까지 탈수있게 되어있는 체육관, 렉산시설, 스크린으로 상영되는 야외 학예발표회(포크댄스, 난타, 뮤지컬 등), 일본 수학여행, ca는 볼링, 도자기공예, 스케이트(광*대로직접감), 비평논술반등...이있었고, 교복은 동복, 하복, 체육복등 어린이 옷이라고는 상상도 할수없는 가격을 맞춰입어야했다. 몸이크면 또 사야했다 원피스 였기때문에 ...
매년나오는 학교달력과 앨범, 졸업하기 2년전부턴 CD로나오더라, 핸드폰을 들고다니던 수없이 많은 아이들, 학급교지를 매년 수없이 만들어대던 담임들...
연예인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1.0.년.도.더.전.에 그러한 학교였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가 타고다니는 차들은 그시절 에쿠스 이하는 있지도 않았으며(거짓말하나 안보태고 거의 외제차였다...) 이학교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 초등학교 부속 중, 고등학교로 되어있다.  이런 초등학교를 다닌 내 잘못도 크다
부모님은 조금더 나은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과 생활하고 동창이 중요하시다는 이유로
우리집도 그렇게 못사는 편은 아니여서 여유를 갖고 나와 언니를 이 학교에 보내셨다.
생일 파티도 정글인에서하고 반전체를...스카이락에서 점심을 먹인후 돌려보내는 부모들때문에 나도 뒤지지않게하기위해 그렇게해야만했다.
마냥좋기만했던 1학년, 2학년도또한 즐겁게 보내고있었으나 고**선생... 
먼저 우리어머니는 미용사이셨고, 자신의 샵을 비우실수가 없을정도로 예약손님이 많으셨다.
그래서 학교의 관습인 어머니 청소를 오지못하셨던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바쁘시지 않으신 어머니들께서 도맡아 해주시기로 되어있던 것이였으나 난 바보였다.
그것을 믿었다니...
우리어머니를 포함해 몇몇 어머니가 나오지 못하셨을때
한명한명 불러일으키셔서 "너희어머니는 뭐하시기에 안오시는거니?" 뭣도 모르고 순수하게 대답했다 "미용실하셔요" "선생님이신 ##이어머님은 2번이나 오시는데 뭐그렇게 대단한 일이시라고 오시지도 않으시는거야?" 할말이없었다. 우리어머니는 나를 조금더 넒은 세상에서 활동하게 하고 싶으셔서 뼈골빠지게 일하시느라 못오시는거고, 나머지 어머니들은 집에서 살림을 하시는분들이니 많이 오시는건 이해해 주셔야하는것 아닌가...
선생님과 미용사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하지만 사실상 하등한직업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난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눈물이났다. 할말이 떠오르지 않으면서 그선생이 죽이고 싶었다. 자기아들은 이학교에 다니고 있었기때문에 지는 어디가지않고 이득을 보며 생활하고있었던년이 지생각 뿐이 할줄몰랐다.
집에돌아가서 나는 어머니께 "엄마, 한번만 학교와주면안돼?"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왜 무슨일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구구절절 말씀드렸다 수업시간중에 모든애들앞에서 그런말을 들으면서 엄마를 욕하는 그런말을 들으면서 내가 무엇인가 굉장히 큰 잘못을 한것 같아 너무 슬펐다고... 어머니는 웃으시며 "알았어, 엄마가 한번 찾아갈게, 뭐 먹고싶은거 있어? 엄마가 가면서 사가지고 갈게"(먹을것을 어머니들이 사오시는건 당연한관례였다...)
어머니가 오셨다, 한손에 먹을것을 잔뜩들고, 한손에는 그시절에 30만원 가까이하는 미용제품(샴푸,트리트먼트,여러가지 제품들)과, <<상.품.권...>> 그렇게 어머니가 다녀가신후로 거짓말 같이 태도가 바뀌게 된건 당연한 것이였을까? 배가 아파 죽을것같은데 어리고소심한마음에 말못하고있다가 겨우 말했는데 2학년짜리였던내가 거짓말을 했을까 설마?...담배를 피러갔겠는가...누렇게 뜬얼굴로 겨우겨우 말한나에게 "안돼"라며 딱잘라 말하던 그여자가 부드러운미소로 나를 바라보던 그모습이 과연 무엇을 의미했을까...

지금도 잘있을까? 그여자?
난 그때 당신 때문에 과민성 만성 장염에걸려서 지금까지 평생 약물치료를 하고있어...
당신이 날 화장실에 보내주지않을것은 걱정하며 조마조마 참고 참느라 내 장이 망가졌더라구...?
그래서 지금까지도 의사가그러더라 평생간다고...
어디가면 배가아프지않을까 화장실에 못가게되면 난 그상황에서 어떻게되는거지? 를 어린나이에 부터 걱정하게되어 그것이 강박관념으로 사로박혀버려 지금도 어디낯선곳에가면 화장실을 못가 ...알아 니가?
평생씻을수없는 선생에대한 안좋은기억, 평생고칠수없는 정신병으로인한 병, 너무 고마워 사회에 나와서 겪어도 될, 아니면 평생겪지도 않아도 될 그런것들의 무서움을 빨리 일깨워줘서...
굳이 어렸을때 접하지 않아도될 화려한것들을 너무많이접해봐서 하루하루가 자극되었던 내마음, 겪지않아도 될일을 겪어 상처받은 내마음, 좋지않은 기억 
누가 보상해 줄꺼지?
그여자?
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