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ACE(수훈 조종사)

 

 

1차 세계대전의 조종사들 중에서 단지 4%만이 에이스라 불려질 수 있었고,

전쟁 중 격추된 비행기 수의 40%정도는

이 에이스들이 기록한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에이스가 될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었다.

1500여명 이상의 조종사들이 각기 5대 이상의 비행기나 기구들을 격추시켰으나,

그들 모두가 에이스는 아니었다.

 

 

 

독일군들은 열 대 이상을 격추시켜야 이러한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프랑스는 초기부터 이 말을 공식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5대 이상을 격추시킨 조종사에게는 단지 뛰어난 조종사를 묘사하기 위해서 이 말을 사용했다.

그 후, 이 말은 5대 이상의 적기를 격추시킨 조종사들에게만 사용되었다.

프랑스의 에이스들은 때때로 금시계와 상금을 받았다.

그들은 국가적인 영웅으로 존경을 받게 되었다. 독일군과 영국군의 경우도 비슷했다.

전쟁중에는 많은 승리를 올리지 못하더라도 에이스들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참호속의 병사들은 소설처럼 과장된 에이스들의 영웅적인 무공담을 읽었으며

, 후방의 시민들도 그들의 전기를 읽었다.

그들은 단지 군인이 아니라 참호의 진흙속에서가 아닌 공중에서 깨끗한 싸움을 벌인 기사와도 같은 모험가들이었다.

 

 

에이스들의 비행기 장식

 

1차 세계대전 중에 많은 에이스들은 자신들의 비행기를 개성적으로 꾸몄다.

독일군 조종사들의 비행기에 색깔을 칠하거나 문양을 그려 넣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연합군 조종사들은 매우 이색적인 비행기들과 만나게 되었다.

영국군은 이러한 개인적인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기에, 에이스들은 단지 연료통 옆에 새겨진

알파벳과 숫자에 의해서 구별될 뿐이었다. 물론 레이몬드 콜리쇼(Raymond Collishaw)의 검은색 비행기 같은 예외도 있었다.

 

 

 

 

 

 프랑스 군은 영국군 보다 이 점에서 덜 엄격했는데 예를 들면, 찰스 넌게서(Chales Nungesser)는 자신의 비행기에

해골과 십자가모양의 뼈, 그리고 두 개의 촛불과 하얀 관을 그려넣은 검은 하트 모양의 그림을 새겨놓았다.

 

 

 

독일 에이스들은 각기 다른 이유 때문에 자신들의 비행기를 개성적으로 꾸몄다.

만프레드 폰 리히토펜(Manfred von Richthofen)은 그의 알바트로스기와 화투짝 Dr. I기를 진홍색으로 칠해서

 동료들뿐만이 아니라 적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화투짝말고 정식이름은 마크로스의 에이스 조종사의 이름인데 금지어라 화투짝으로 대체......어.......)

 

 귀족풍이 물씬 풍기는 사진. 리히토펜 이사람의 별명이 레드바론(붉은 남작)이다.

그만큼 위대한 조종사였다. 그의 동생도 에이스

 

 

 

 

 , 에른스트 우데트(Ernst Udet)는 고향에 남겨두고 온 애인을 기념하고자 비행기 동체 옆에다 “LO !”라고 써 놓았었다.

 

 

albatros-dv-ernst-udet-1917-bh-01.jpg

 

  어떤 조종사들은 아주 사치스럽게 꾸미기도 했는데, 웨르너 보스(Werner Voss)

 그의 화려하게 색칠된 알바트로스 D.III기에 피같이 붉은 색의 하트를 그려 넣었고,

 

 

 

 

 헤르만 괴링(Hermann Goering)은 전체가 검은 색으로 칠해진 알바트로스기나,

 아니면 온통 하얀 색으로 칠해진 화투짝 D.VII기만을 탔다.

이외에도 다른 유명한 에이스들로 초록색의 아인데커기를 몰던 막스 이멜만(Max Immelmann),

 

 

앞부분이 파랗게 칠해진 뉴포트(Nieuport)17기를 몰던 빌리 비숍(Billy Bishop)등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34기 격추로 유명한 프란체스코 불법게임은 현재 페라리의 상징 검은말을 그려넣았다.

(일베에서 그의 정식이름이 금지어라 할수없이 불법게임으로 대체했다........)

그의 전사이후 그의 어머니인 파올리나 여사가 1923년에 검은말을 페라리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할수있게 양도하여 현재 우리는

검은말 마크를 지상에서 볼수있다.

 

                                                                             <이탈리아의 에이스 프란체스코 불법게임. 원래 기병장교였다.>

                                                                 <좌좀들을 잡아먹을 듯한 카리스마와 눈빛. 지리다 못해 탈수증상을 일으킬듯.>

박물관내부에 F300과 불법게임의 사진이 걸려있다.

 

4. 앨버트 볼(Albert Ball)

 

당신이 전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미리 승산을 생각하지 않고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볼과 같은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임에 틀림없다.”

 

                                                                                                                                                                                   -영국군 조종사 아서 골드 리-

 

 

 

앨버트 볼은 최초의 에이스들 중에서도 새로이 두각을 나타낸 전사였다.

그는 그의 영웅적전과 덕분에 영국군 에이스들 중에서도 최초로 널리 알려진 조종사였지만,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지상에 있을 때에는 허름한 오두막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토끼도 길렀다.

그러나 공중에서는 편대비행을 하다가도 혼자 빠져나와 적과 공중전하기를 좋아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난 뒤에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은 붉은 마그네슘 화약을 그의 텐트 주위에 터뜨리고,

잠옷 차림으로 그 주위를 돌며,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었다.” 라고 그의 단짝 조종사인 세실 루이스(Cecil Lewis)는 기록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괴벽은 공중에 올라가면 사라져 버리곤 했다.

공중전에서는 언제나 두려움 없이 증오심을 잘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종종, 그는 독일군 편대속으로 날아가서 전투를 벌이곤 했는데,

심지어는 15의 싸움이 되더라도 겁먹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공중전을 벌이던 어느 날, 그의 엔진이 적의 총알에 맞아 덜덜거리더니 멈춰버렸다.

조종능력을 일고 하강하던 중에도, 여전히 그의 뒤를 따라오는 독일군 비행기를 향해 권총을 빼들고 사격을 했다.

 이러한 행동은 상당히 위협적이어서, 그가 권총을 이리저리 쏘아대는 것을 보고

 겁을 먹은 두 명의 독일군 조종사들은 도망가 버렸다.

이러한 적들의 비겁한 행동에 실망한 볼은 펜을 들어 편지를 썼다.

그는 도망가 버린 두 명의 조종사들에게 다음 날 같은 장소엣 다시 만나자고 도전장을 보냈다.

 

 

다음 날, 그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으나, 3대의 적기가 위쪽에서 하강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자신이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 이리 저리 방향을 바꾸며 비행하였으나,

그들이 가장 증오하는 영국인 조종사인 볼을 격추시키려고 집요하게 추적하는 다섯 대 모두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때 그는 적들에게 동정심을 유발시켜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는 급하강을 해서 지상에 거칠게 착륙해 비행기를 멈추어 버렸다.

독일군들은 볼이 부상을 입어서 항복을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들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두대의 비행기는 기지로 이 사실을 알리려고 날아갔고, 나머지 세대는 볼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착륙을 했다.

러나 미쳐 이들이 접근하기도 전에, 볼은 엔진의 시동을 걸고 이륙하여 멀리 날아가 버렸다.

 마치  우리 일게이들을 보는 듯하다...아닌가?

 

그는 전투에 임해서는 아주 성급한 편이었지만, 한 가지 자주 사용하는 공격법이 있었다.

가능한 한 그는 적의 바로 밑에까지 하강하여 따라붙었다가, 다시 적의 뒤에까지 상승한다.

그런 다음, 날개에 달린 기관총으로 적의 비행기에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처음에는 고향 마을 근처의 부대인 셜우드 포레스터(Sherwood Forester)에서 근무한 그는

개인 비행훈련을 더 받은 후, 1915년 왕립 공군 부대(RFC)에 배속되었다.

그는 B.E.2기 조종사로 프랑스에 보내졌고, 그 곳에서의 주된 임무는 대포 부대에 대한 정찰이었다.

쿼크(Quirk)라고 불리던 이 비행기는 공격받기가 쉬워서 볼은 이 비행기를 싫어했는데,

그의 아버지에게 끔찍스러울 정도로 형편없는비행기라고 불평할 정도였다.

 

 

 

19165월에, 11 비행중대로 옮겨지고 나서, 약하긴 하지만 기동성이 아주 좋은 뉴포트17기를 타게 되었다.

이제 전쟁 중에서 가장 놀라운 공중전의 경력이 시작된 것이었다.

볼은 실제로 44번의 승리를 올렸는데, 그 중 30번은 1916년 여름에 올린 것이었다.

자주 혼자 하늘을 배회하며, 독일군을 제물로 삼아 승리를 올린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선의

양쪽 공군 기지에서는 전설처럼 널리 알려졌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독일군을 격추시킬 것이다. 비록 그들이 악마는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의무이기 때문이다.”

라고 그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

 

 

 

볼의 상관들은 그의 이러한 전공 때문에 그가 격추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191610월 그를 영국 본토로 보내게 된다. 후방에서 비행사들을 훈련시키던

그는 17살 먹은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비행사 로미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17년 다시 전선으로 배속되면서, 그는 그녀에게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타겠다고 약속을 했다.

191757, 독일 점령하의 아놀린(Annoeulin)이라는 마을 상공에서 벌어진 공중전 도중에

그는 8000피트 상공에서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가 교회탑에 숨겨져 있던 기관총 부대에 의해 격추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비행기 잔해 쪽으로 달려온 한 프랑스 농부의 딸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가장 뛰어나고, 유명했던 조종사중의 한사람이 21세를 끝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살아있을때 뛰어난 전공의 대가로 다른 연합국으로부터

3개의 훈장을 받았던 앨버트 볼 대위는 사후에 영국 최고의 명예스러운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 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