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공포를 만나다

 

여러분은 기관총 부대 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대공포를 만나면 웃음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피하면서 마음껏 웃어라. 그리고 차 마실 시간이 되면 기지로 귀환을 서둘러라.”

 

-익명의 영국인 조종사-

 

 

 

당시의 가장 인기 있었던 음악쇼에서, 여주인공이 그녀에게 구혼하는 남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치볼드(대머리라는 뜻), 절대로 안되요 !” 영국인들이 이 유머를 이용하여, 당시의 조종사들이 희고 검은 연기를 내뿜는 대공포 사이를 비행할 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대공포에 그 남자의 이름을 붙였다. 그 후로 대공 무기들은 간단히 아치(Archie)”라 불렀다.

 

 

 

주로 땅 위에 있는 적들에게 폭격을 하는 임무를 맡은 조종사들에게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대공포가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한 독일군 보고서에 따르면, 반 정도의 총알이 공중에서 터져버리고, 정작 목표물까지 도달하는 것은 20발중에 1발 정도였다.

 

 

 

최초의 대공포용 탄환은 일정한 거리를 날아간 후에 폭발하도록 휴즈가 조절되어 있었다. 사격수들은 접근하는 비행기의 고도를 측정한 후에, 탄환의 폭발시기를 조절하고 그 후에야 비행기의 비행 방향 앞쪽에 사격을 했다. 대공포는 주로 짝을 이룬 기구들을 방어하는 임무에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미리 기구의 고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기가 기구를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기 전에 미리 탄환을 거리에 맞게 조절해 둘 수 있었다.

 

 

<알바트로스 D.V>

 

 

 

보병들은 지상으로 떨어지는 대공포의 파편이 적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불평을 했다.

초기에는 대공포보다 지상에서 사격하는 소형 무기나, 기관총에 의해서 격추되는 비행기가 더 많았었다.

전투 중에 손상을 입은 비행기를 끌고 착륙을 시도하던 많은 조종사들이 지면을 낮게 날다가

지상 부대의 사격에 격추되었다.

 

<아서 골드 리>

 

 

영국군 조종사인 아서 골드 리(Arthur Gould Lee)191711월 어느 날, 캄브레이(Cambrai) 전투에 참가했다가 대공포를 만났다.

 

 

 

 

그가 알바트로스(Albatros) D.V 기를 격추시키자마자 그의 엔진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엔진이 대공포의 총알에 맞아 멈추어 버린 것이었다.

그는 활강하여 가까스로 영국군 대공포 부대 근처에 착륙했다.

그곳에서 그는 공중전에 영향을 미치는 대공포의 두 가지 면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전혀 본 적이 없는 대공포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비행기는 대공포에 맞자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엔진과 동체가 조각조각 지상으로 떨어져 나갔고,

마치 가을날 낙엽이 떨어지듯이 나는 아래로 떨어졌다.”

 

 

 

 

 

 

활발한 공격이 이루어질 때, 양쪽은 곡사포로 수 천 번의 폭격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광경을 공중에서 목격하는 조종사들에게는 전장에서도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포탄만 보일 뿐이었다. 곡사포 부대들도 대단히 위험한 존재였다. 종종, 불운한 B.E.2기들이나 아비어틱()기들은 쏟아지는 포격 속으로 비행하다 격추 당하곤 했다. 이러한 일들은 다른 전쟁의 조종사들은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일이었을 것이다.

 

 

<B.E.2>

 

 

 

<아비아틱>

 

진정한 세계 최초의 전투기 조종사는 전쟁전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비행사의 한 사람이었던 롤란드 가로스(Roland Garros)였다. 대단히 독창적이었던 그는 그의 정비공과 함께 자신의 비행기인 모레인 솔니에르(Morane Saulnier) 기의 엔진 덥게 위에 프로펠러 사이로 발사가 가능하도록 호츠키스(Hotchkoss) 기관총을 장착했다.

<롤란드 가로스>

 

 morane_pilot.jpg

                                                                                                             <호지키스 기관총 탑재>

사격 중에 프로펠러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로스는 프로펠러 뒤에 강철 쐐기를 댔다.

이러한 장치로 프로펠러 사이를 빠져나가는 총알이 프로펠러를 손상시킬 위험을 덜게 된 것이다.

가로스의 비행기는 가공할 만한 무기였다. 그는 단지 적기에 조준을 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될 뿐이었다.

1915년 봄에 가로스는 자신의 새로운 비행기를 처음으로 시험해 보았다.

 단지 18일 동안 5대의 독일군 2인승기가 격추되었다.

그것은 끔찍하고, 비극적인 일이었다.” 라고 그의 첫 번째 격추에 대해 그는 적어 놓았다.

이렇게 해서 독일군 조종사들은 프랑스의 단엽기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아마도 191549일은 게로스의 운이 다한 날이었을 것이다.

폭격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 지상으로부터의 공격에 의해 그의 엔진이 손상을 입고 고장이 나버렸다.

 그는 독일군 영토에 추락해 버렸고, 미쳐 그의 비행기에 불을 지르기도 전에 독일군에 붙잡혔다.

전쟁 말기에 그는 포로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탈출하여 다시 프랑스 공군으로 돌아왔다.

공중전의 개념을 확립시킨 그였으나, 그가 없는 사이 1917년에서 1918년까지의 상황은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는 단지 몇 번의 작전에 참가하고 나서 격추되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