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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쓴이가 말하는 황제국에 대한 개인적 견해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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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 :


1-1 온전한 제국의 개념에 반해 외왕내제란 현대학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일뿐일까?




한번 저격하는겸 닉값도 할겸 (황)제국의 역사에 대해서  짚고 가자.


제국의 개념은 동양에서는 보통은 대외적으로 천자를 칭하고 중원 일부또는 전역을 지배하며


타국에 대해서 관작을 내리고 조공을 받으며 동아시아 에 영향력을 미치던 국가


 황제국이라 불렸고, 진나라 이후 청나라까지 쭉 이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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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양에서의 천하>

그외의 국가 즉 베트남 고려 일본등은 그럼 어떻게 했는가?


소위말하는 외왕내제 형식의 외교를 취했다, 밖으로는 중원왕조에게 봉작을 받고,


안에서는 나 황제국이요 하고 놀았던것이다. 



그럼 서양에선 어땟을까? 


서양에서의 본래 황제국의 의미는 로마제국의 정통성을 가진 자가 통치하는 나라이다. 


프랑스가 한때 오스트리아보다 강했으나, 제국을 못칭한 이유가 다 이런 이유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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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대영 제국에서도 영내에선 황제가 아니었고 왕이였다, 


빅토리아 여왕이 황제라고 칭한건


인도의 완전 병합이후 '인도제국' 내에서의 황제였다.


즉 그렇기에 서양에서 황제의 명칭은 로마에서 황제를 뜻했던 용어들인




카이사르 이후 시저, 아우구스투스 이후의 아우구스투스 또는


티베리우스 이후 임페라토르(emperor 란 영어에서의 황제용어의 기원) 이다. 


그렇다면 서양엔 외왕내제가 존재하지않았는가? 존재했다.


대표적인 예가 신성로마제국과 모스크바대공국이 있다.


신성로마제국은 카톨릭의 수장인 교황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고 그리고 오토 대제가 비잔틴의 황녀인 테오파뉴랑 결혼함으로써 명목상으로는 서로마 제국 황제가 된다. 


비록 진퉁인 동로마에겐 경시를 받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서로마제국 황제가 되었다는 문장에 주의해야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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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대제의 대관식 삽화>


서로마 제국 황제가 되었다는것은 단순히 명분상으로보면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지역의 통치권을 가진 황제일수도있단


말이다. 하지만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은 신성로마제국 의 황제에게 너네 나라 안에서만의 '황제' 라고 하였고, 


자기네 국가에 대한 간섭을 일체 막아버렸다. 


 심지어 황제라고도 인정을 안한국가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경우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카톨릭수장인 교황으로써부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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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의 상징 쌍두독수리>


제위를 받은적도없고, 단순히 비잔틴 황녀와의 결혼 만으로 자신을 czar(짜르)라고 황제라고 칭하지만,


이 경우엔 아예 유럽에서 자기네 나라안에서의 황제라고도 인정을 안해줬다.


즉 외왕내제란 개념은 이렇게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용어' 만 따로 정립이 안됬을뿐이지 그 개념은 존재했다는것이다.


글쓴이가 말하는 온전한 제국이란 개념에 대해서는 글쓴이가 정확히 밝히지 않아 모르겠다만,


이 전통적인 동양-서양에서 쓰인 제국의 뜻  이외의 의미는 


1700년대 중반 근대 유럽에서 군주에 의해 통치받는


강력하고 큰 땅덩어리를 가진 국가를 'empire' 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러시아 제국, 스페인 제국, 독일 제국 등이 대표적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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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국이아님에도 제국이라 불렸던 소련>


그 이후 소위 글쓴이가 말하는 '현대 역사학자' 들이 제국의 용어를 새로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강대한 국가' 이다. 미 제국 소비에트 제국등이 그예시가 될것이다.


아마 내가생각하는 글쓴이가 말하는 온전한 제국의 의미는 오히려 현대역사학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에 가깝다고 보인다.


왜냐면 온전한 원래 제국의 의미는 동양에서는 중화 문명 및 번국을 지배하는 천자의 개념에서


내려온거고, 서양에선 로마제국의 정통 계승자가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역사는 후세가 평가하는것이다. 애초에 그논리대로라면 당시에 자신을 로마제국이라 칭했던


비잔틴제국에게는 비잔틴이라고 부르면안될것이다. 왜냐면 비잔틴이란 용어는 근현대 역사학자들이 쉽게


정의하기 위해서 따로만들어낸 명칭이기 때문이다.




1-2 고려의 외부적으로 황제를 칭한것은 외국의 수많은 나라들에게서 인정받았다?




고려가 소위말하는 소천하의 개념에서 여진족 부족들과 일본에게 인정받은것을 근거로


말하려고 하는것같으나, 당시 여진부족들은 그렇다면 베트남도 대외적으로 황제라고 인정받아야했다 할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할것이다. 왜냐면, 당시 일본은 헤이지의 난 이후, 타이라 가문이 덴노조차 마음대로 퇴위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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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지의 난>


할정도로 무신시대보다 막장이던 시대로 치닫았었고, 여진족은 금나라로 통합되기전 지리멸렬하던


시절이던때에만 인정을 받았을 뿐이다. 


이런 세력들한테 인정을 받았다고 대외적으로 천자국이 되는건가? 


이말은 서방이나 소련같은 강대국들에게 인정받지못하고


3세계 듣보잡들한테 맹주라고 인정받았다고, 미국과 소련과 어깨겨루는 맹주라고 하는것과 똑같은 말이다.





1-3 중국쪽에게서 천자국을 인정받지않아도 대외적으로 천자국이다.




1-2 와 똑같이 이어지는 반박인데, 앞에서말했듯이 베트남도 마찬가지란 이유는


 베트남은  딘 보 린(Dinh Bo Linh, 丁部領)이 나라를 대월이라고 칭하고 건국한후


동남아 다른국가들 예를들어 대표적으로 베트남 남부의 참파왕국등에게 황제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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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이 참파왕국 노란색이 대월국>


내적으로도 당연히 황제로 칭했다.


다만 송나라에게나 원나라같은 중국세력에게는 


황제라고안하고 신하국으로 칭신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베트남을 여기서 대외적으로 황제로 인정받았다고 하는가?


아니다, 아무도 베트남을 외부적으로 황제국이라고 인정받았다 하지않는다.




2.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대의 수준에 관한 글쓴이의 주장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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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몽골군측에서 고려를 이기지못할거 같아 이간계로 무너뜨릴려했다?




글쓴이가 들고오는 근거는 제후란 강성하면 신하로두기어렵기에 이간시켜서 양분되게 한다... 라는 내용이다.


과연 저게 고려가 너무강력해서 이간계로밖에 무너뜨릴수없다는 근거일까? 이것은 전형적인 확대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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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 의하면 당나라는 산둥반도에 위치한 평로 번진의 반독립국화를


막고 다시 당나라에 편입시키기 위해서


평로번진의 분열을 의도하였다, 이게 평로번진이 당시 너무나 강력해서


그런걸까? 이것은 로마제국이나 중국이나 해오던 전통적인


서로 내분을 통해서 보다 피해를 줄이는 전술이지. 


이기지 못할것 같아서 그런게 아니란거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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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이가 들고온 근거에 대한 해석이고, 여기서 말하는건 오히려 나라를 쪼개자는 의미이며


원나라에서는 몽골왕공들과 분봉받은 귀족들인 제왕(諸王)같은 일개 영주보다


더 하대하고있다고 한다. 이것이 글쓴이 말대로 고려를 두려워해서 그런거라고 해석해야될까?


아니 그것은 글쓴이의 상상일뿐이다.




2-2 권황제라고 칭한 살리타가 왔으니 다른 몽골 정규 군대와 비교해도 떨어지지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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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타가 이끈 군대가 권황제이기에, 강력했다고 한다, 그럼 과연 이말은 사실일까?


권황제란것은 대칸의 친정이아니고 다른 장수가 칸에게 명령받고 '정벌하라' 고 명령만 받으면


권황제라고 칭할수있었던것이다. 즉 이것과 군대의 질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살리타는 무려 황금씨족중의 핵심 징기스칸의 직계이자


대칸과도 분쟁을 일으킬정도의 지위였던 유럽원정의 선봉인


바투와 비교하면 2-3류가 맞다. 그럼 당시 살리타의 원정군대 구성을 볼까?


살리타이의 첫번째 침공군대는 대략 3만명으로써 바투원정군의 3분의 1수준이다.

(이마저도 차후 침공에는 겨우 몇천명 몇백명으로 줄어든다.)


당시 살리타이는 압록강을 건넌후 원정군을 셋으로 나눈다.


1만은 삭주-귀주로 향한 왕영조, 1만은 금에서 항복한 장수로 추정되는 우예르가 위주로 향하고


1만은 살리타이 자신이 직접이끄는 군대이다.


여기서 왕영조는 한인장수로써 '한인(중국 본토 한족)부대'를 이끌었고, 


우예르는 태조 5년 금나라 정벌의 선봉인


금의 수도 연경에서 무칼리에게 항복한 여진계열 장수로써 


'여진-거란 혼성 부대'를 이끌었다. 즉 이들은 몽골에서 직접 온 정예병으로만 이루어진 부대가 아니다.


더더욱이 오고타이칸 같은 대칸이 친정할때 대동하는 케시크 등의 최정예 몽골 친위기병들과 비교하면


훨씬 수준이 떨어지고 말이다.


2-3 원나라 황족인 예구대왕이 군을 끌고왔으니 몽골군은 삼류군이라 할수없다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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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구는 글쓴이가 밝히든 칭기스 칸의 동생 주치 카사르의 아들이다.


이것이 왜 2군인지에 대해서 밝히는지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수있는데,


주치 카사르는 카치운, 테무게 옷치긴과 함께 만주지역에 동방왕가로


분봉을 받았다. 


즉 이들은 칭기스칸의 직계후손이 아님으로써


황금씨족이라도 서열이 상당히 낮은 존재였다는 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 예구가 이끈 군은 황제가 직접 파견한


중앙군이 아니란 말이며, 동방왕가 휘하의 군대로써


원정을 한것이다. 즉 1군이 아니라 2군이며 특히 


이중에는 앞서말했듯이 거란족 여진족으로 구성된 기병부대가


상당히 섞여있었다. 게다가 예구의 세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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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원정군 규모에 비하면 정말 초라한 1만명 수준이다. 


이는 고려에 대해서 그만큼 중요도를 두지않았단소리고,


대규모의 정예병도 아니란 말이다.





2-4 천하무적 몽골군이 3류군을 따로 키울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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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덧글은 글쓴이가 예전에 수많은 재업을 통하기전에 


일베가기전에 짤게의 자기게시글에 질문하는 어떤 게이에게 쓴 답글이다)


이는 글쓴이가 몽골 군제에 대한 기본 상식도 갖추고있지 않단 말이다.


몽골 군제는


몽골인으로만 구성된 최정예 대칸 호위부대 케시크


그다음으로는 정예부대이자 대체로 몽골인 또는 투르크병사로


구성된 돌격부대 바토르


3번째는 피정복민이며 거란여진족등으로 구성되었던 2-3류군이었던 타마


4번째는 한인-고려인등 농경민족으로 구성된 보병지원부대 케리크


이렇게 나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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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봐도 알수있다. 몽골군이 점점 땅을 넓혀감에 따라서


피정복 민족을 자기 군대에 흡수했고,  특히 몽골인이 아닌


투르크계열 부족들이 기병대로 징발되었다.


이런 몽골인만이아닌 다양한 민족구성을 띄는 징병 패턴때문에


몽골군의 힘을 제대로 평가하기 힘들다고 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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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서 내가 앞서말했던 타마에 대해서 여러 민족들로 구성된


보조병 또는 후원병이라고 설명하고있다.


이는 당연한 처사였는데, 워낙 척박한 북방지역의 한계탓에


몽골 전지역을 아울러서


몽골인들의 숫자는 40-50만에 지나지않았다.


그러므로 몽골인들의 엄청난 유라시아에 걸친 정복은


자기들 종족만의 숫자로는 불가능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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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목화여는 금나라 원정을 주도한 타이시 무칼리이며 한인 무장을 기용했다는 기록이 떡하니 있다. 


사천택만해도 나중에 쿠빌라이랑도 대동하게 되는 유명한 한족 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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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봐도 당시 몽골 정예병이아니라 여진과의 혼성연합군으로써


고려에 온 군대는 여타 원정군이나 중앙군과 비교했을때 그 질이 많이 낮다고 할수있다.


즉 몽골군의 가장 기본전술인 피정복민을 흡수하여 자기군대로 쓰던거에 대한 개념 인지도


글쓴이는 못하고있는 셈이라고 할수있다.


2-5 몽골 장수의 고려군의 저항에 대한 감탄과 쿠빌라이의 고려에 대한 코멘트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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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의 고려군이 삼류의 군대를 만나 그토록 분전했는가? 에 답하자면


그만큼 고려 백성 남녀노소 할거없이 모두 나와 돌을 던진거에 대한


엄청난 저항을 한다는거에 대해서 감탄이라는거다. 


그리고 이런 백성들마저 나와서 저항해야할정도로 당시


고려의상황은 극악이였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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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쿠빌라이가 말한말은 "고려는 만 리 밖에 있는 나라로서, 당태종이 친정을 했어도 복속시키지 못했는데, 지금 그 세자가


내게 내귀(來歸)하니 이는 하늘의 뜻이로다!" 이건데, 이 발언은 당시 고려가 아리크 부케와의 내전중에 자기에게 항복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자신이 몽골의 대칸 이라는 정통성을 얻는데 유리하게 작용해줬기 때문에 일종의 립서비스를 한것이다. 




3 잘못된 지식을 사실인양 전달하고 지적을당해도 무시하는 상습범.


3-1 저격당한글을 정보글이랍시고 올려놓은 뻔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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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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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에 저격글떠서 틀린걸 지적받은바있으나 떡하니 저격받은글을 사실인양 뻔뻔하게 올려놓았고


3-2 자기 자신을 자기가 후빨하는 세컨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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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학자들이 만들어낸 개념... 글 대조했을때 내용이고 말투가 소름끼칠정도로 흡사하다>


다른사람인데 말 내용과 말투가 이렇게 일치할려면 참 이상하다고 밖에 생각이안든다.


또한 저 노x주x야 란 1렙 닉은 내가 이 글쓴이를 까는 글을 쓸때만 덧글을 달고 그외의 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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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글쓴이를 깐 글에 갑자기 또다시 몇일동안 활동안하더니 나타나서 싸지르고 간 정신슨리 댓글>


댓글을 거의 안달더라. 


3-3 심각한 황제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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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의 위엄이란 글에서 일왕새끼 뒤지니까 좆나 쪽바리들이 울면서


시키지도않았는데 북괴이상급으로 왕에게 절대충성한다고 비꼬는글에서


'당연히 저렇게 하는게 맞다 쉴드치고, 대한민국에 황실복원시켜서 저것보다 더해야될거라고 함.'


 대한민국은 공화국이야 그리 황제국이좋으면 고종의 대한제국에서 사시길 


1 외왕내제란 개념은 동양, 서양 각각 고대부터 존재했으며, 단순히 현대사학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이 아님


2 몽골의 군제는 케시크 바토르 타마 케리크 등 군대의 등급이 나눠졌었고, 고려로쳐들어온 상당수의 군대는 여진-거란 혼성군대.


3. 글쓴이는 저격당한글을 다시 올리는 상습범에 세컨으로 자기쉴드 까지 치는 대한민국 황실복원해야한다는 황제국뽕.


꽃주기 좌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