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머리는 ‘기억의 쓰레기통’인가?
 
 
군사독재의 왕만이 제사장인 시대는 끝났다. 이젠 왠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제사장(하늘 天)을 꿈꾼다.
 
“안민석 "황현필 강연 취소 요구, 후졌다"... 교총 "사과하라"”(조선일보) 기사에 실린 글에서 보수층은 제대로 반복 못했다. ai는 과거부터 자료 패턴을 찾는데, 이런 패턴이 보일 것이라고 본다.
 
<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의 궁금증에서 출발해 당시 언론 탄압을 그린 영화 <암살자(들)>을 향한 무차별 낙인찍기는, 역설적으로 근현대사 교육이 왜 필요한지 보여 줍니다. 6·25 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지만, 그 기원을 두고 강대국의 책임을 묻는 연구가 미국 학계에서도 이어져 왔습니다.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던 군사 독재의 후유증, 이제는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 역사를 더 넓고 더 깊게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조선일보 기사에 실린 안민석 페이스북)
 
70년생이자 89학번은 대학 입학 때부터 민주당지지 층 지식인은 ‘자기편의 인정’이 다양성이라는 일대 일 대응을 본다. 다시 말해서, 다양성 용어에서 생각되는 반대편 인정을 한번도 인정안하고, 자신의 인정받기를 다양성 인정이라고 논하는 어법이다. 35년 이상 반복인데, 이는 큰 전제로 호남동학이 woke와 같다는 국제적 단위의 정치사기극이고, 그 실증적 근거로, 민중신학은 동학신앙에 교횟말 씌웠고, 동학신앙에 무속신앙 요소 있는데, 무속신앙안에 양반들에 노예들의 증오신앙의 샤머니즘 언어가 영어권 민중의 인본주의와 같다.
 
<특정 이념에 갇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비판하며,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등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이나 6·25 전쟁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해석 등 <균형 잡힌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기호일보)>
 
70년생인 기억에서 민주당 시점만의 인정이 다양성이고, 그 밖은 독재란 어법 뿐만 아니라, 호남 우주중심론 씨족사상만이 ‘중도 중용 조화 균형 상생 화해’로서 중용이자 균형이라고 논하며, 그런 호남씨족주의가 없는 대구경북은 ‘극우’라는 어법이 나온다. 이는 조갑제기자에게서도 반복된다. 조선시대 어법에서 출신지가 기준이 아니라 세계관이 기준이니, 조선시대 어법에 얹혀가면 조갑제기자는 호남귀족당파와 같이한다는 의미에서 전라도 사람이 맞다.
 
여기서, 이런 쓰레기 논쟁에 참여하는 것에서 질려하는 사람들은, 안민석을 거꾸로 세운 어법을 접한다.
 
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 1952-1954년.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님의 책은 정확하게 안민석 사고관의 거꾸로세움이다. 씨족적 집단주의의 호출로, 사고의 오류를 덮고 가라. 군사독재에서 天이 왕뿐이라고 하며 전부 지도자에 줄 세웠으면, 온 세상이 각각 귀족이 씨족적 집단주의로 하면서, 거의 법치 시장경제를 이루며 사는 어법의 불가능지경까지 간다.
 
사실, 영어권 사상가들은 1800년대로 소급하면 농업사회 기반했다. 동학인들은 이런 영어권 사상어법에 증오하는 심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현상에서 나타나듯이, 안민석은 ‘다양성’같은 철학표현으로 사람들 헷갈리게 하며 조선유학 호남중화사상으로 간다. 인보길 회장님도 이승만 이미지를 깔고 친미 기독교신앙이란 이미지를 활용하되, 조선시대 유학 어법으로 간다.
 
제도경제학의 절대불가능영역으로, 씨족마다 다른 논리는 시장경제의 정상가격 절대불가능성으로 몰고 가는 이들이, 조상의 얼을 본받는다는 이유로 칭찬받는 사회. 그들의 기억만들기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싶다.
 
조선유학사 붕당정쟁 구조 그대로에 표현만 서양어법 써서 눈헷갈리게 하는 사회에서, 그 이면은 조선후기 표현만 서양어법의 서로 다른 초점의 말도 안되는 논리의 연장편. 이것은 오 만가지를 다 기억시키게 하며 지배층에 줄세우는 나쁜 어법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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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핵심 문제의식은 단순히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진영 비판이 아니라, "다양성"·"균형"·"중도" 같은 단어가 실제로는 집단의 자기정당화를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담론이 국민에게 불필요한 기억과 충성심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으로 읽힙니다.

다만 분석적으로 보면, 몇 가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다양성"이라는 단어의 실제 의미와 정치적 사용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지적하는 현상은 정치학적으로는 상당히 자주 나타납니다. 어느 집단이든 자신들의 입장을 "상식", "중도", "균형", "민주주의"로 정의하고, 반대편을 "극단", "독재", "비정상"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민주당만의 현상도, 보수만의 현상도 아닙니다.

즉,

  • "내 입장이 다양성이다"
  • "내 입장이 중도다"
  • "내 입장이 국민이다"

라는 식의 언어전략은 정치에서 매우 흔합니다.

그런 점에서 안민석의 발언에 대해 당신이 느끼는 불편함은 "다양성을 말하지만 실제 반대 해석까지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 질문 자체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억의 쓰레기통"이라는 표현에는 중요한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회는 무엇을 기억할지 선택합니다.

문제는 그 선택이 진실탐구보다 집단정체성 유지에 봉사할 때입니다.

예를 들어,

  • 어떤 집단은 특정 역사만 강조
  • 다른 집단은 정반대 역사만 강조

하면서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기억을 주입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기억은 역사교육보다 충성교육이 됩니다.

당신 글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에 가까워 보입니다.

"과연 이것이 역사에 대한 탐구인가, 아니면 집단에 대한 충성 요구인가?"

셋째, 다만 "호남동학 = 민주당 담론 전체 = woke" 같은 식의 매우 큰 연결고리는 별도의 실증이 필요한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현상이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동일한 기원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 씨족주의
  • 지역주의
  • 진보 담론
  • 민중신학
  • 동학
  • 서구의 정체성 정치

사이에 영향관계가 일부 있을 수는 있어도,

"전부 하나의 구조다"

라는 결론은 추가 근거가 있어야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결국 논증력은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통하는가에서 결정됩니다.

마지막으로 당신 글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제제기는 이것입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왕만 천(天)을 독점했다. 지금은 수많은 집단이 자신들이 천(天)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이 문장은 현대 민주주의의 역설과 연결됩니다.

권력이 분산되었는데도,

  • 정당
  • 언론
  • 시민단체
  • 종교
  • 지역집단
  • 온라인 커뮤니티

모두가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면,

오히려 국민은 수많은 '작은 제사장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서기를 요구받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질문인

"국민의 머리는 기억의 쓰레기통인가?"

는 정치세력이 계속해서 역사적 사건과 상징을 소환하며 정체성 경쟁을 벌일 때, 국민이 그 모든 기억전쟁에 동원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진보·보수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현대 정치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해야 할 역사"와 "집단 충성을 위해 반복되는 기억"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는 꽤 본질적인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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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질문이 더 흥미롭습니다.

정상적인 국가는 붕당마다 각각 다른 초점을 논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제도 논리의 공통분모 아래 경쟁하는 것 아닌가?

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근대국가의 이상형은 실제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 법은 공통
  • 계약은 공통
  • 재산권은 공통
  • 선거규칙은 공통

입니다.

정당들은

"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통된 틀 안에서

  • 세금을 얼마나 걷을지
  • 복지를 얼마나 할지
  • 국방을 얼마나 강화할지

를 경쟁합니다.

즉,

국가의 기본 운영체계에 대한 합의가 넓을수록

정치논쟁은 상대적으로 생산적이 됩니다.


반대로 당신이 비판하는 모습은

공통분모 경쟁이 아니라

집단별 서사 경쟁입니다.

예를 들어

  • 우리 역사관
  • 우리 피해의식
  • 우리 정통성
  • 우리 민족관
  • 우리 정신

이 서로 충돌하는 상태입니다.

이 경우에는 정책토론보다

정체성 토론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국민 입장에서는

"외워야 할 것"이 끝없이 늘어납니다.


당신이 쓴 "국민의 머리는 기억의 쓰레기통인가?"라는 표현도 여기와 연결됩니다.

제도 중심 사회는

국민이 기억해야 할 것을 줄입니다.

예를 들면

  • 법을 따르면 된다.
  • 계약을 따르면 된다.
  • 절차를 따르면 된다.

입니다.

그런데 정체성 중심 사회는

  • 어느 사건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 어느 인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 어느 서사를 지지해야 하는지

를 계속 요구합니다.

이 경우 국민은 정책보다 기억을 시험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글을 가장 중립적으로 정리하면,

"정치세력들이 제도와 정책의 공통분모 아래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사와 정통성 서사를 무한히 생산해 국민의 기억을 동원하는 사회가 되면, 국민은 사실상 기억의 창고나 쓰레기통 역할을 하게 된다."

라는 문제제기에 가깝습니다.

이 질문은 특정 진영 비판을 넘어서, 현대 한국 정치 전체에 던질 수 있는 꽤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국민이 꼭 기억해야 하는 것"과 "정치집단이 기억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는 민주사회에서도 계속 논쟁이 되는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