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왕
— SKYI 수출전쟁: S의 비극
등장하는 학교·기업·인물·방송은 모두 허구이며, 작중 여론의 조롱 표현은 소설이 비판적으로 다루는 대상입니다.
1. 지하의 왕
서울대 신입생 이헌은 평범해 보였다. 정장을 입고, 가방을 메고, 강의실에 앉았다. 성적은 중간이었다. 발표는 무난했다. 친구는 세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은 그를 ‘조용한 애’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헌은 조용하지 않았다. 그는 지하에서 조용했다.
서울의 지하에는 왕실이 있었다. 이름은 ‘전주이씨 종친회 지하위원회’. 줄여서 ‘지하종친’. 몰락한 조선황실의 후손들이 만든 조직이었다. 그들은 땅을 가졌다. 종로의 오래된 빌딩, 강남의 지하 상가, 한강 이북의 창고들. 그들은 돈을 가졌다. 100년 동안 쌓인 땅값. 그들은 사람을 가졌다. 변호사, 세무사, 그리고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
지하종친의 수장은 이헌의 아버지, 이정후. 사람들은 그를 ‘회장님’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하에서는 ‘전하’라 불렀다. 농담으로. 그런데 농담이 아니었다.
이헌은 지하종친의 후계자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왕실의 언어를 배웠다. “백성은 사랑하되, 가까이하지 말라.” “권력은 보이지 않을 때 가장 강하다.” “왕은 칭송받지 않는다. 왕은 두려움받는다.”
이헌은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서울대에 입학했다. S는 당연히 첫 번째여야 했다. SKYI. S가 먼저다. 그런데 방송은 K, Y, I를 먼저 보여 주었다. 간고등어, 배추, 딸기. 민중은 그들을 사랑했다.
이헌은 TV를 보며 물었다.
“왜 S가 아닙니까.”
아버지가 대답했다. “S는 원래 조용하다. 조용한 것이 S의 품격이다.”
이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는 지하에서 조용히 분노했다.
2. 왜 S가 아닌가
지하종친의 회의실은 지하 3층에 있었다. 벽에는 조선왕조실록의 복사본이 걸려 있었고, 탁자에는 다과가 놓여 있었다. 다과는 떡이었다. 왕실은 떡을 좋아했다.
이헌이 보고했다.
“아버지, SKYI 시청률 분석 결과입니다. K, Y, I의 지지율 합계는 78%. S는 9%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한 종친이 말했다.
“9%면… 나쁘지 않습니다.”
이헌이 대답했다. “S는 1등이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물었다. “왜.”
이헌이 대답했다. “S가 먼저니까요.”
아버지가 웃었다. “S가 먼저인 것은 알파벳 순서다. 민중은 알파벳을 모른다. 민중은 맛을 안다. 간고등어는 짜고, 배추는 맵고, 딸기는 달다. S는… S는 무엇이냐.”
이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 S는 무엇인가. S는 서울대다. S는 권력이다. S는… S는 아무 맛도 없다.
그날 밤, 이헌은 노트에 적었다.
K는 짜다. Y는 맵다. I는 달다.
S는… S는 없다.
S는 권력이다. 권력은 맛이 없다.
그런데 민중은 맛을 원한다.
그러면 S는 맛을 만들어야 한다.
3. 민중의 역학
이헌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찾아갔다. 교수는 지하종친의 사람이었다.
“교수님, 민중은 왜 권력을 미워합니까.”
교수가 안경을 고쳐 썼다.
“민중은 권력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민중은 권력을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은 미움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미움은 사랑보다 오래갑니다.”
이헌이 물었다. “그럼 권력자는 어떻게 사랑받습니까.”
교수가 대답했다. “권력자는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권력자는 사랑받는 척할 수만 있습니다.”
이헌은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밑줄을 그었다. 두 번.
권력자는 사랑받을 수 없다. 사랑받는 척할 수만 있다.
그는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사랑받는 척하자. 그것이 S의 전략이다.
4. 첫 번째 시도 — 왕실의 품격
이헌은 무대에 나갔다. 그는 정장을 입고, 왕실의 품격을 보여 주기로 했다.
“저는 서울대 신입생 이헌입니다. 저는 조선황실의 후손입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조선황실 후손, 서울대에 나타나다.”
이헌이 말을 이었다.
“저는 왕실의 품격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왕실은 500년 동안 이 땅을 다스렸습니다. 왕실은 품격입니다. 왕실은… 조용함입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누군가 웃었다. 웃음은 퍼졌다.
“저게 뭐야.”
“왕실? 지금이 조선이냐.”
“조용함이 품격이면, 나는 명품이다.”
“얘는 아직도 왕이 있는 줄 아나.”
시청률이 떨어졌다. 이헌은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는 화가 났다. 그리고 슬펐다.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말했지. 민중은 왕을 원하지 않는다. 민중은 왕을 웃음거리로 원한다.”
이헌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가 대답했다. “민중이 원하는 것을 줘라.”
5. 두 번째 시도 — 왕실의 자비
이헌은 두 번째 시도로 ‘자비’를 골랐다. 그는 무대에서 말했다.
“저는 왕실의 자비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는 제 재산을 나누겠습니다. 서울대 신입생 이헌은 오늘부터 매달 1억 원을 기부하겠습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왕실의 자비, 매달 1억 기부.”
그런데 여론은 다르게 반응했다.
“1억? 저 사람 재산이 얼마인데.”
“기부는 좋은데, 왜 방송에 나와서 하냐.”
“저건 자비가 아니라 광고다.”
“왕실이 땅부자라며. 세금은 냈어?”
여론은 분노했다. 이헌은 당황했다. 그는 자비를 베풀었는데, 민중은 화를 냈다.
교수가 말했다. “권력자의 자비는 항상 의심받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자는 자비를 베풀 때도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이헌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교수가 대답했다. “계산을 감추십시오.”
이헌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교수가 웃었다. “왕실은 원래 거짓말을 잘합니다. 그게 500년의 기술입니다.”
6. 세 번째 시도 — 왕실의 검
이헌은 세 번째 시도로 ‘검’을 골랐다. 그는 무대에서 말했다.
“저는 왕실의 힘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무대의 규칙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지하종친의 후계자입니다. 저는 이 방송국의 광고주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여론이 터졌다.
“저건 협박이다.”
“왕실이 방송국을 움직인다고?”
“저건 권력 남용이다.”
“무서운데, 더 무서운 건 저게 사실이라는 거다.”
시청률이 폭발했다. 그러나 지지율은 0%였다. 이헌은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는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품격을 보여 줬습니다. 자비를 보여 줬습니다. 힘을 보여 줬습니다. 그런데 민중은 저를 미워합니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민중은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다. 민중은 네가 가진 것을 미워한다. 그리고 네가 가진 것을 미워하면서, 동시에 네가 그것을 잃기를 바란다. 그게 민중이다.”
이헌이 물었다. “그럼 민중은 왜 K, Y, I를 사랑합니까.”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들은 약하기 때문이다.”
이헌은 그 말을 듣고 오래 침묵했다.
7. 깨달음
그날 밤, 이헌은 지하 회의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벽에는 조선왕조실록이 걸려 있었다. 그는 실록을 펼쳤다. 세종실록. 정조실록. 영조실록. 그는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왕은 사랑받지 않았다. 왕은 두려움받았다. 그리고 왕은 그 두려움을 사랑이라 불렀다.
그런데 민중은 왕의 사랑을 믿지 않았다. 민중은 왕이 죽으면 웃었다. 민중은 왕이 살면 욕했다.
그게 500년이었다.
이헌은 노트를 폈다. 그리고 적었다.
나는 수캐였다.
그는 펜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적었다.
아니, 나는 권력자였다.
권력자는 수캐다. 수캐는 무리를 지배한다. 그러나 무리는 수캐를 사랑하지 않는다. 무리는 수캐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수캐가 늙으면, 무리는 더 젊은 수캐를 데려온다.
민중의 역학은 그것이다. 민중은 본능적으로 힘과 권력을 가진 자를 미워한다. 왜냐하면 민중은 힘과 권력이 자신을 억압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중은 동시에 힘과 권력을 원한다. 왜냐하면 민중은 힘과 권력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은 권력자를 미워하면서 권력자를 만든다. 그리고 권력자가 약해지면 권력자를 버린다.
그게 민중이다.
그리고 나는 그 민중 위에 서 있다.
이헌은 펜을 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그 말은 슬펐다. 그러나 동시에 편안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권력의 조건이었다.
8. 수캐
이헌은 무대에 다시 나갔다. 이번엔 달랐다. 그는 정장을 입지 않았다. 그는 후드티를 입었다.
“저는 서울대 신입생 이헌입니다. 저는 조선황실의 후손입니다. 저는 지하종친의 후계자입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이헌이 말을 이었다.
“저는 이 무대에서 세 번 실패했습니다. 품격도 실패했습니다. 자비도 실패했습니다. 힘도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민중에게 사랑받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저는 이제 사랑받지 않겠습니다. 저는 권력자가 되겠습니다. 권력자는 사랑받지 않습니다. 권력자는 필요합니다. 저는 이 무대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사회자가 물었다. “어떻게 필요합니까.”
이헌이 대답했다.
“저는 이 무대의 규칙을 지키겠습니다. 저는 K, Y, I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K, Y, I가 싸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겠습니다. 저는 심판이 되겠습니다. 심판은 사랑받지 않습니다. 심판은 필요합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S, 심판이 되다.”
여론은 갈렸다.
“저건 오만하다.”
“근데 맞는 말이다.”
“심판은 필요하다.”
“저 사람이 심판이 되면, K, Y, I는 어떻게 되나.”
이헌은 웃었다. 이번엔 연습한 웃음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함은 사랑보다 오래간다.
9. 에필로그 — 지하의 새벽
이듬해, SKYI는 ‘심판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대 신입생 이헌은 심판석에 앉았다. 그는 점수를 매기지 않았다. 그는 규칙을 지켰다. K, Y, I는 그를 미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필요로 했다.
고려대 신입생 강도현이 말했다. “이헌 씨, 당신은 사랑받지 못합니다.”
이헌이 대답했다. “압니다.”
연세대 신입생 박태산이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필요합니다.”
이헌이 대답했다. “그것도 압니다.”
이화여대 신입생 윤서아가 말했다. “그게 권력입니까.”
이헌이 대답했다. “그게 권력입니다.”
그날 밤, 이헌은 지하로 내려갔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겼냐.”
이헌이 대답했다. “아니요. 필요해졌습니다.”
아버지가 웃었다. “그게 이기는 겁니다.”
이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하 회의실 창밖을 보았다. 창밖은 지하였다. 그러나 그는 새벽을 상상했다.
그는 노트에 마지막으로 적었다.
나는 수캐다.
수캐는 사랑받지 않는다.
수캐는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함은, 아주 느리게, 사랑이 된다.
아마도.
그는 펜을 놓았다. 그리고 웃었다. 지하에서, 아주 조용히.
TV에서는 새 시즌이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외쳤다.
“SKYI 수출전쟁, 새로운 지도층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이헌은 TV를 껐다. 방 안은 조용했다. 떡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났다.
끝.
도네이션 공화국
— SKYI 수출전쟁: 왕보다 큰 버튼
등장하는 학교·기업·인물·방송은 모두 허구이며, 작중 여론의 조롱 표현은 소설이 비판적으로 다루는 대상입니다.
1. 주인이 누구인가
고려대 신입생 강도현은 밤새 계산기를 두드렸다.
안동간고등어의 하루 매출. 협동조합의 하루 매출. 도네이션의 하루 합계. 그는 숫자를 보다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게… 맞나.”
연세대 신입생 박태산도 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태백배추의 하루 매출. 도네이션의 하루 합계. 그는 전화를 걸었다.
“도현아, 너도 나왔지.”
“나왔어.”
“하루 3억이야.”
“나도 3억이야.”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도 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논산딸기의 하루 매출. 도네이션의 하루 합계.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이 판의 주인이 누구인지 몰랐어.”
그날 밤, 세 사람은 논산의 비닐하우스에 모였다. 강도현이 말했다.
“주인은 조선황실이야. 지하종친. 이헌 씨네 집안. 그들은 100년 동안 땅을 가졌고, 사람을 가졌고, 방송국을 움직였어.”
박태산이 말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민중에게 맞고 있어.”
오하린이 말했다. “맞아. 이헌 씨는 세 번 실패했어. 품격, 자비, 힘. 전부 실패했어. 왜냐하면 민중은 권력자를 미워하니까.”
강도현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받고 있어.”
세 사람은 조용해졌다. 오하린이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왕실이 아니야. 우리는 가난해. 우리는 짜고, 맵고, 달아. 우리는 민중이야. 민중이 민중을 사랑하는 거야.”
박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민중은 우리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민중은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 보고 있어. 우리가 이기면, 민중이 이기는 거야.”
강도현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민중의 대리인이야.”
오하린이 웃었다. “그게 왕보다 강해.”
2. 왕실의 굴욕
지하종친 회의실. 아버지 이정후가 이헌을 보았다.
“도네이션 수치를 봤냐.”
이헌이 대답했다. “봤습니다. 하루 3억입니다.”
“우리 지하종친의 하루 현금 흐름은 얼마냐.”
“8천만 원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한 종친이 말했다.
“왕실이… K, Y, I보다 가난합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왕실은 원래 가난하다. 왕실은 땅을 가졌지만, 땅은 도네이션을 만들지 못한다. 민중은 땅에 돈을 내지 않는다. 민중은 이야기에 돈을 낸다.”
이헌이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가 대답했다. “K, Y, I를 지원해라.”
이헌이 눈을 크게 떴다. “왕실이… 간고등어를 지원합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왕실은 원래 그렇게 했다. 조선은 농민을 지원하는 척했다. 그러면 농민은 왕을 사랑했다. 그리고 왕은 농민의 세금으로 궁궐을 지었다. 지금은 도네이션이 세금이다.”
이헌은 그 말을 듣고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버지, 그건… 사기 아닙니까.”
아버지가 웃었다. “왕실은 500년 동안 그 사기로 살았다. 그게 왕실의 기술이다.”
3. 왕실의 후원
다음 날, 방송은 충격적인 장면을 내보냈다.
서울대 신입생 이헌이 무대에 나왔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저는 서울대 신입생 이헌입니다. 조선황실의 후손입니다. 지하종친의 후계자입니다. 저는 이 무대에서 세 번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왕실은 민중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왕실은 민중을 이용했습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이헌이 말을 이었다.
“저는 이제 왕실의 후계자가 아니라, K, Y, I의 후원자가 되겠습니다. 지하종친은 오늘부터 고려대 신입생 강도현 씨, 연세대 신입생 박태산 씨,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 씨를 지원합니다.”
관중석이 폭발했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왕실, 무릎 꿇다.”
여론은 갈렸다.
“저건 진심인가.”
“아니, 계산이다.”
“계산이면 더 좋다. 왕실이 계산할 정도로 우리가 강해졌다는 거니까.”
“근데 왜 왕실이 K, Y, I를 지원해? 이상하다.”
강도현은 무대 뒤에서 그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건… 함정이야.”
박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실이 우리를 지원하면, 민중은 우리를 왕실의 앞잡이로 볼 거야.”
오하린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거절해야 해.”
4. 거절
세 사람은 무대에 올라갔다. 강도현이 말했다.
“저는 고려대 신입생 강도현입니다. 저는 서울대 신입생 이헌 씨의 후원을 거절합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박태산이 말했다.
“저는 연세대 신입생 박태산입니다. 저도 거절합니다.”
오하린이 말했다.
“저는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입니다. 저도 거절합니다.”
이헌이 일어났다. “왜입니까.”
강도현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왕실의 돈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민중의 돈이 있습니다. 하루 3억입니다. 왕실의 하루 현금 흐름은 8천만 원입니다. 우리가 왕실보다 부자입니다.”
관중석이 폭발했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K, Y, I, 왕실보다 부자가 되다.”
이헌의 얼굴이 굳었다. 오하린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왕실의 지원을 받으면, 민중이 우리를 의심할 겁니다. 민중은 왕실을 미워하니까요. 우리는 그 미움을 사지 않겠습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그리고 누군가 박수를 쳤다. 박수는 퍼졌다.
이헌은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는 지하로 내려갔다. 아버지가 말했다.
“거절당했구나.”
이헌이 대답했다. “네.”
아버지가 웃었다. “그래서 왕실은 끝났다. 이제 이 판의 주인은 민중이다.”
이헌이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리는 회계사가 되어라.”
5. 도네이션의 발견
그날 밤, 세 사람은 도네이션 내역을 분석했다.
강도현이 말했다. “하루 3억 중에 2억 4천만 원이 1,000원 이하 소액입니다.”
박태산이 말했다. “태백도 마찬가지야. 1,000원, 3,000원, 5,000원. 큰돈은 없어. 그런데 사람이 많아.”
오하린이 말했다. “논산도 그래. 하루 12만 명이 도네이션해. 평균 2,500원이야.”
세 사람은 조용해졌다. 강도현이 말했다.
“이건… 투표야.”
박태산이 물었다. “투표?”
강도현이 대답했다. “돈을 내는 게 아니라, 지지의 표시를 하는 거야. 1,000원은 ‘나는 너를 지지한다’는 뜻이야. 그러면 우리는 그 표시를 모아서 정치 세력이 되는 거야.”
오하린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표시를 어떻게 써?”
강도현이 대답했다. “우리는 그 표시를 주주권으로 바꾸자.”
관중석이 술렁였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도네이션, 주주권이 되다.”
6. 국민주주
세 사람은 ‘국민주주’ 제도를 만들었다.
“도네이션 1,000원 = 1주. 1주 = 1표.”
국민주주는 매달 투표한다. 어떤 반찬을 만들지, 어떤 농가를 지원할지, 어떤 여대를 선택할지. 그리고 국민주주는 배당을 받는다. 배당은 돈이 아니었다. 배당은 간고등어 한 마리, 배추 한 포기, 딸기 한 팩이었다.
강도현이 무대에서 말했다.
“우리는 왕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민중입니다. 그리고 민중이 주주입니다.”
관중석이 폭발했다. 국민주주는 첫 달에 120만 명이 되었다. 도네이션은 하루 3억에서 하루 7억이 되었다.
박태산이 말했다. “이건… 회사야.”
오하린이 말했다. “아니야. 이건 나라야.”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도네이션 공화국, 탄생하다.”
7. 이화여대의 복잡한 룰
그런데 이화여대의 룰은 복잡했다. 윤서아는 무대에서 말했다.
“저는 이화여대 신입생 윤서아입니다. 저는 두 가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첫째, 어떤 남자를 선택할 것인가. 둘째, 그 선택으로 나온 사업이 기준 이윤을 넘을 것인가.”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윤서아가 말을 이었다.
“기준은 하루 5억입니다. 넘지 못하면, 다음 시즌에 제 자리는 성신여대 신입생 지우 씨, 숙명여대 신입생 배수민 씨에게 갑니다.”
강도현이 물었다. “그 기준은 누가 정합니까.”
윤서아가 대답했다. “국민주주가 정합니다. 투표로.”
관중석이 술렁였다. 박태산이 말했다. “그럼 우리는 민중에게 사랑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군요. 민중에게 이익을 내야 하는군요.”
윤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사랑은 감정이고, 이익은 숫자입니다. 이 무대는 이제 둘 다 요구합니다.”
8. 재편
정치 권력 구도가 재편되었다.
첫째, 왕실은 회계사가 되었다. 지하종친은 K, Y, I의 자금을 관리했다. 이헌은 말했다.
“저는 왕실의 후계자에서, 국민주주의 회계사가 되었습니다.”
둘째, 서울대는 심판이 되었다. 한서준은 유통을, 차도헌은 센서를, 권태윤은 차를, 이헌은 회계를 맡았다. 그들은 더 이상 왕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프라였다.
셋째, K, Y, I는 정당이 되었다. 강도현은 ‘짜다당’, 박태산은 ‘맵다당’, 오하린은 ‘달다당’을 만들었다. 세 정당은 연합했다. 이름은 ‘밥상연합’.
넷째, 민중은 주주가 되었다. 120만 명의 국민주주가 매달 투표했다. 그들은 반찬을 골랐고, 농가를 지원했고, 여대를 선택했다.
오하린이 말했다. “이제 이 판의 주인은 민중입니다.”
강도현이 말했다. “그런데 민중은 변덕스럽습니다.”
박태산이 말했다. “그게 민중입니다.”
9. 병맛의 클라이맥스 — 국민주주총회
첫 국민주주총회가 열렸다. 장소는 잠실실내체육관. 참석자는 12만 명. 나머지는 온라인 투표.
무대에는 세 개의 버튼이 있었다.
짜다. 맵다. 달다.
그리고 네 번째 버튼이 있었다.
기권.
강도현이 말했다. “국민주주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무대의 주인을 결정합니다.”
박태산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주인이 민중이라는 것을 압니다.”
오하린이 말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인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합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그리고 투표가 시작되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짜다 31%. 맵다 29%. 달다 27%. 기권 13%.
기권이 13%였다. 강도현이 물었다.
“기권은… 무엇입니까.”
한 국민주주가 일어났다. 그는 60대 남성이었다.
“저는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세 분을 다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저는 기권합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오하린이 웃었다.
“기권도 표입니다. 기권은 ‘나는 이 게임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기권 13%, 게임을 거부하다.”
10. 게임의 변경
세 사람은 밤새 회의했다. 강도현이 말했다.
“기권 13%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게임 자체를 싫어합니다.”
박태산이 말했다. “그럼 게임을 바꿔야 합니다.”
오하린이 말했다. “어떻게.”
강도현이 대답했다. “선택을 없애자.”
관중석이 술렁였다. 박태산이 물었다. “선택을 없애면, 이 방송은 끝납니다.”
강도현이 말했다. “아니요. 이 방송은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제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합합니다.”
오하린이 웃었다. “또 배합이야.”
강도현이 대답했다. “배합은 이 방송의 유일한 규칙입니다. 정과 반과 합. 선택은 정이고, 경쟁은 반이고, 배합은 합입니다.”
11. 최종 배합
세 사람은 무대에 섰다. 강도현이 말했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배합합니다.”
박태산이 말했다. “짜다와 맵다는 경쟁하지 않습니다. 짜다와 맵다는 함께 밥상에 오릅니다.”
오하린이 말했다. “달다는 그 밥상의 끝에 옵니다. 후식입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누군가 박수를 쳤다. 박수는 퍼졌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짜다, 맵다, 달다. 경쟁이 아니라 배합.”
국민주주는 다시 투표했다. 이번엔 선택이 아니라 배합이었다. 짜다 40%, 맵다 35%, 달다 25%. 기권은 3%로 줄었다.
윤서아가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이화여대 신입생 윤서아입니다. 저는 이제 선택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이 배합의 큐레이터입니다.”
그녀는 세 개의 그릇을 놓았다. 간고등어, 배추김치, 딸기잼. 그리고 그 위에 밥을 올렸다.
“이것이 우리의 배합입니다.”
12. 에필로그 — 공화국의 새벽
이듬해, ‘도네이션 공화국’은 수출 1조 원을 넘겼다. 국민주주는 300만 명이 되었다. 왕실은 회계사가 되었고, 서울대는 인프라가 되었고, K, Y, I는 정당이 되었다.
그러나 민중은 변덕스러웠다. 어느 날 여론은 말했다.
“K, Y, I도 이제 기득권이다.”
“짜다당, 맵다당, 달다당. 다 똑같다.”
“우리는 새로운 얼굴을 원한다.”
강도현은 그 말을 읽고 웃었다. 박태산도 웃었다. 오하린도 웃었다.
오하린이 말했다. “우리는 이제 왕실이 되었어.”
강도현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왕실처럼 되고 싶지 않아.”
박태산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
오하린이 대답했다.
“우리는 물러나야 해. 그리고 새로운 얼굴을 키워야 해. 그게 민중을 유지하는 방법이야.”
세 사람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다음 시즌.”
TV에서는 새 시즌이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외쳤다.
“SKYI 수출전쟁, 새로운 지도층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세 사람은 TV를 껐다. 방 안은 조용했다. 간고등어 냄새, 배추김치 냄새, 딸기잼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냄새 뒤에, 아주 희미하게, 도네이션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딸깍.
끝.
겉잎
— SKYI 수출전쟁: 버려진 것들의 김치
등장하는 학교·기업·인물·방송은 모두 허구이며, 작중 악플 표현은 소설이 비판적으로 다루는 대상입니다.
1. 바통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은 무대에 섰다. 그녀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있었다. 삼 년 동안 그녀는 딸기를 땄고, 잼을 만들었고, 정치창녀라 불렸고, 여론 조작자라 불렸고, 사랑의 대상이 됐고, 배합의 큐레이터가 됐다. 그녀는 지쳤다.
“저는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입니다. 저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옵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사회자가 물었다. “왜입니까.”
오하린이 대답했다.
“과도한 스케줄입니다. 저는 새벽 4시에 딸기를 따고, 오전 9시에 회의하고, 오후 2시에 촬영하고, 밤 11시에 편집본을 확인했습니다. 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딸기밭으로 돌아갑니다.”
그녀는 손을 들었다. 무대 뒤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제 바통은 후배에게 넘깁니다.”
2. 김치공장 딸
이화여대 신입생 김설아. 전북 김제에서 올라왔다. 집은 김치공장을 운영한다. 작은 공장이 아니었다. 김설아의 아버지는 30년 동안 김치를 담갔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고, 항아리에 넣고, 겨울을 기다렸다. 김설아는 어릴 때부터 겨울 김장철마다 공장에서 잠을 잤다.
그녀는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무대에 섰다.
“저는 이화여대 신입생 김설아입니다. 김제 김치공장 딸입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술렁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가 너무 예뻤다.
방송은 즉시 자막을 띄웠다.
“김치공장 딸, 등장.”
시청률이 치솟았다.
3. 규칙
서울대 신입생 이헌이 심판석에서 말했다.
“이번 시즌 규칙입니다. 이화여대 신입생 김설아 씨는 고려대 신입생 강도현 씨의 안동간고등어와 연세대 신입생 박태산 씨의 태백배추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선택된 파트너와 사업을 만들어 기준 이윤을 넘겨야 합니다. 기준은 하루 5억 원입니다. 넘지 못하면 다음 시즌에 자리는 성신여대 신입생 지우 씨, 숙명여대 신입생 배수민 씨에게 갑니다.”
김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겁이 났다. 그러나 그녀는 웃었다. 예쁘게.
첫 주, 그녀는 태백배추에 호의를 표했다.
“배추는 김치의 기본입니다. 저는 김치공장 딸이니까, 배추를 이해합니다.”
관중석이 환호했다. 연세대 신입생 박태산이 웃었다. 그런데 그날 밤,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네.”
“김치공장이 배추를 고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님? 이건 뻔한 대본이다.”
“안동간고등어는 처음부터 들러리였어.”
“비추.”
“비추.”
“비추.”
김설아는 그 댓글을 읽었다.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4. 양다리
둘째 주, 그녀는 안동간고등어를 칭찬했다.
“간고등어는 김치와 잘 어울립니다. 짠맛이 김치의 산미를 잡아 줍니다.”
그날 밤, 댓글이 달렸다.
“이제 간고등어한테도 붙네.”
“양다리 시작이다.”
“이대녀들은 원래 이렇다.”
“정치창녀 2세.”
김설아는 그 댓글을 읽고 손이 떨렸다. 그녀는 선배 오하린에게 전화했다.
“선배님, 저는… 양다리를 걸은 적이 없습니다.”
오하린이 조용히 말했다.
“설아야, 이제 알겠니. 내가 왜 그랬는지.”
김설아가 물었다. “왜 그랬어요.”
오하린이 대답했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 지지자가 너를 미워해. 그러면 악플이 와. 그래서 양쪽을 조금씩 달래. 그러면 양쪽이 조금씩 너를 미워해. 결국 너는 어느 쪽에게도 사랑받지 못해. 그게 이 판이야.”
김설아는 전화를 끊고 오래 앉아 있었다.
5. 너무 예뻐서
그런데 시청률은 폭발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김설아가 너무 예뻤다. 그녀가 웃으면 시청률이 올랐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면 시청률이 올랐다. 그녀가 김치를 버무리면 시청률이 올랐다.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해도 시청률이 올랐다.
연예 전문 기자들이 몰려왔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사가 됐다.
“김설아, ‘저는 김치공장 딸입니다’ — 3만 기사.”
“김설아, ‘배추는 기본입니다’ — 1만 2천 기사.”
“김설아, ‘간고등어는 짭니다’ — 8천 기사.”
“김설아, ‘저는 아직 어립니다’ — 5만 기사.”
시청률은 논산딸기 시절을 넘었다. 방송국은 웃었다. 광고주는 웃었다. 김설아의 아버지는 전화를 걸었다.
“설아야, 우리 공장 김치 주문이 폭발했다. 네가 무대에서 김치를 버무린 뒤로.”
김설아는 웃었다. “아버지,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제일 무섭구나.”
6.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
김설아는 어렸다. 스물한 살. 그리고 그녀는 사랑받으며 자랐다. 김제에서, 김치공장에서, 그녀는 동네의 자랑이었다. 예쁘고, 공부 잘하고, 인사 잘하는 딸. 그녀는 사랑이 저절로 오는 것이라고 배웠다.
무대에 서면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가만히 있어도 지지가 온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댓글이 달렸다.
“귀척한다.”
김설아는 그 말을 사전에서 찾았다.
귀척(貴戚) — 임금의 인척. 또는 귀염을 부리는 척함.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임금의 인척이 아니었다. 그녀는 김치공장 딸이었다.
그리고 더 달렸다.
“역겹다.”
“저 표정 봐. 계산기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예쁜 척 한다.”
“김치공장 딸 컨셉 오래 간다.”
“도태된 암컷들이 좋아하겠네.”
“도태된 암컷들.”
“도태된 암컷들.”
김설아는 ‘도태된 암컷들’이라는 말 앞에서 멈췄다. 그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리고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알았다.
이 말은 나를 향한 게 아니야.
이 말은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야.
7. 붕괴
김설아는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울었다. 그녀는 기숙사에서 울었다. 그녀는 김치를 버무리다가 울었다. 눈물이 양념에 떨어졌다.
방송은 그 장면을 찍었다. 자막은 이랬다.
“김치공장 딸, 눈물의 양념.”
시청률이 또 올랐다.
김설아는 선배 오하린에게 전화했다.
“선배님, 저는 그만두고 싶어요.”
오하린이 물었다. “왜.”
김설아가 대답했다. “저는 사랑받으려고 무대에 섰어요. 그런데 지금은 미움받으려고 무대에 서요. 그게… 너무 아파요.”
오하린이 한참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설아야, 나도 그랬어. 세 번 퇴출됐어. 그런데 나는 네가 나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왜요.”
“너는 아직 예뻐. 그리고 예쁜 사람은 미움을 이길 수 있어. 왜냐하면 미움은 결국 예쁜 것을 보고 싶어 하니까.”
김설아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를 끊고 거울을 보았다. 그녀는 예뻤다. 그리고 그녀는 울고 있었다.
8. 김치공장의 손님
김설아는 주말에 김제로 내려갔다. 공장에서 김치를 담갔다. 그러자 손님이 왔다. 5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김치를 사러 왔다. 그리고 김설아를 보았다.
“너… TV에 나오는 애지.”
김설아가 고개를 숙였다. “네.”
여성이 말했다. “나도 너처럼 예뻤어.”
김설아가 고개를 들었다. 여성의 얼굴에는 주름이 있었다. 그러나 눈은 예뻤다.
여성이 말했다. “나는 미스코리아 지역 예선까지 갔어. 그때는 나를 보는 사람이 많았어. 그런데 나이 들고, 결혼하고, 애 키우고, 살이 찌고… 이제는 아무도 나를 안 봐.”
김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성이 말했다. “그래서 네게 악플을 달았어. ‘귀척한다’고. 미안하다.”
김설아는 숨을 멈췄다.
여성이 말했다. “근데 말이야.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네가 싫은 게 아니야. 나는 나를 미워하는 거야. 나는 나를 ‘도태된 암컷’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게 제일 슬픈 거야.”
여성은 김치를 사서 갔다. 김설아는 공장 마당에 오래 서 있었다.
9. 깨달음
그날 밤, 김설아는 노트를 폈다. 그녀는 적었다.
미움은 버려진 사랑이다.
악플은 버려진 사람의 외침이다.
‘도태된 암컷들’은 가장 슬픈 말이다. 왜냐하면 그 말을 쓰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예뻐서 사랑받은 게 아니다. 나는 예뻐서 보였고, 보여서 사랑받았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언젠가 보이지 않게 된다.
나는 너무 어렸다. 사랑은 자동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그런데 이제 안다.
그녀는 펜을 놓고 공장을 보았다. 공장에는 버려지는 것이 있었다. 겉잎. 배추의 겉잎은 두껍고, 상처가 있고, 벌레가 먹은 자국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겉잎을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것을 소금에 절여서 김치를 담갔다.
“겉잎은 버리는 게 아니야. 겉잎은 제일 먼저 절여야 해. 겉잎이 단단해야, 속이 익어.”
김설아는 그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노트에 적었다.
겉잎 김치.
10. 악플 낭독회
김설아는 무대에 나갔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저는 이화여대 신입생 김설아입니다. 오늘은 김치를 버무리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악플을 읽겠습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김설아가 읽었다.
“‘귀척한다.’”
“‘역겹다.’”
“‘예쁜 척 한다.’”
“‘도태된 암컷들이 좋아하겠네.’”
관중석이 얼어붙었다. 김설아가 말했다.
“저는 이 글을 쓴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쓴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너처럼 예뻤다. 그런데 이제 아무도 나를 안 본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김설아가 말을 이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이 악플은 저를 향한 것이 아닙니다. 이 악플은 버려진 사랑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악플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절이겠습니다.”
사회자가 물었다. “절입니까?”
김설아가 대답했다. “네. 소금에 절이겠습니다. 겉잎과 함께.”
11. 겉잎 김치
김설아는 김제의 공장으로 갔다. 그녀는 버려지는 겉잎을 모았다. 그리고 악플을 출력해서 겉잎에 붙였다. 그리고 소금에 절였다.
“겉잎 김치 — 버려진 것들의 김치.”
관중석이 술렁였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버려진 겉잎, 김치가 되다.”
김설아가 말했다.
“겉잎은 두껍습니다. 상처가 있습니다. 벌레가 먹었습니다. 그래서 버려집니다. 그런데 겉잎은 제일 먼저 절여야 합니다. 겉잎이 단단해야, 속이 익습니다.”
그녀는 항아리에 겉잎을 넣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 김치는 오늘 먹을 수 없습니다. 100일이 걸립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사회자가 물었다. “100일이면 시즌이 끝납니다.”
김설아가 대답했다. “압니다.”
“그러면 기준 이윤을 못 넘깁니다.”
“압니다.”
“그러면 자리를 잃습니다.”
김설아는 웃었다. “압니다. 그런데 이 김치는 시즌을 위해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이 김치는 그분들을 위해 만드는 겁니다. ‘도태된 암컷’이라 불린 사람들을 위해.”
12. 선택
심판석의 서울대 신입생 이헌이 물었다. “그럼 파트너는 누구입니까. 배추입니까, 간고등어입니까.”
김설아가 대답했다. “저는 배추를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간고등어도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김설아가 말을 이었다.
“저는 시간을 선택합니다.”
이헌이 물었다. “시간은 파트너가 아닙니다.”
김설아가 대답했다. “시간은 파트너입니다. 왜냐하면 배추도 간고등어도 시간이 있어야 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이기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100일 뒤에 이기겠습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누군가 웃었다. 웃음은 퍼졌다. 그리고 박수가 터졌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김설아, 시간을 선택하다. 그리고 자리를 잃다.”
13. 퇴출
시즌은 김설아의 퇴출로 끝났다. 기준 이윤을 넘기지 못했다. 그녀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저는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항아리를 얻었습니다.”
방송은 그 장면을 내보냈다. 자막은 이랬다.
“항아리.”
여론은 갈렸다.
“저건 자기합리화다.”
“아니, 저건 진심이다.”
“100일 뒤에 보자.”
“항아리 하나로 뭘 하나.”
“근데… 궁금하다.”
김설아는 김제로 내려갔다. 그녀는 항아리 앞에 앉았다. 항아리는 조용했다. 그녀는 항아리에게 말했다.
“100일 뒤에 만나요.”
14. 100일
100일 뒤, 김설아는 항아리를 열었다. 김치는 익어 있었다. 색은 진했고, 냄새는 깊었다. 그녀는 한 입 먹었다. 그리고 울었다.
겉잎은 단단했고, 속은 부드러웠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상처는 맛이 되어 있었다. 벌레 먹은 자리는 씹히는 맛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악플은… 악플은 보이지 않았다. 소금이 그것을 녹였다.
김설아는 그 김치를 ‘겉잎 김치’라 불렀다. 그리고 공장 마당에서 작은 시식회를 열었다. 손님은 12명이었다. 그중 한 명은 그 5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김치를 먹고 울었다.
“이게… 나야.”
김설아가 웃었다. “네. 이게 우리예요.”
그 여성은 SNS에 글을 올렸다.
“나는 김설아에게 악플을 달았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김치로 만들었다. 나는 그 김치를 먹고 울었다. 나는 다시 예뻐지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나이고 싶다.”
그 글은 퍼졌다. 그리고 주문이 폭발했다.
15. 에필로그 — 겉잎의 새벽
이듬해, ‘겉잎 김치’는 하루 매출 12억을 기록했다. 기준 이윤의 두 배였다. 방송국은 김설아를 다시 불렀다. 그녀는 무대에 섰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 50대 여성들이 서 있었다. ‘도태된 암컷’이라 불린 사람들. 그들은 김설아와 함께 김치를 버무렸다.
김설아가 말했다.
“저는 이화여대 신입생 김설아입니다. 김제 김치공장 딸입니다. 저는 이번 시즌에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항아리를 얻었습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는 예뻐서 사랑받았습니다. 그리고 예뻐서 미움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압니다. 사랑도 미움도 같은 버튼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버튼을 누르지 않겠습니다. 저는 항아리 뚜껑을 열겠습니다.”
그녀는 항아리를 열었다. 김치 냄새가 퍼졌다. 관중석이 숨을 들이켰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겉잎, 세상을 이기다.”
고려대 신입생 강도현과 연세대 신입생 박태산은 관중석에서 그 장면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보았다.
강도현이 말했다. “우리는 또 진 것 같다.”
박태산이 말했다. “아니. 우리는 이번엔 아무것도 안 했다. 그게 문제다.”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은 논산에서 중계를 보았다. 그녀는 웃었다. “설아야, 너는 나보다 강해.”
서울대 신입생 이헌은 심판석에서 조용히 말했다. “이 판의 주인은… 항아리였군.”
TV에서는 새 시즌이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외쳤다.
“SKYI 수출전쟁, 새로운 지도층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김설아는 TV를 껐다. 그녀는 공장 마당에 앉아 있었다. 항아리 옆에. 겨울 김장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배추를 절였다. 소금을 뿌렸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겉잎이 단단해야, 속이 익어.”
끝.
농익은 척
— SKYI 수출전쟁: 숙성의 기술
등장하는 학교·기업·인물·방송은 모두 허구이며, 작중 악플 표현은 소설이 비판적으로 다루는 대상입니다.
1. 교활한 선배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은 교활했다.
그녀는 3년 동안 이 무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정치창녀, 여론 조작자, 사랑의 대상, 배합의 큐레이터. 그녀는 모든 이름을 견뎌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후배.
이화여대 신입생 김설아. 전북 김제 김치공장 딸. 스물한 살. 너무 예뻐서 문제인 사람.
오하린은 계산했다.
나는 이제 지겹다. 여론은 나를 안다. 여론은 나의 웃음 각도까지 안다. 그래서 여론은 나에게 흥미를 잃었다. 그런데 후배는 새롭다. 후배는 예쁘다. 후배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후배에게 악플을 몰아주자. 그러면 나는 숨을 쉴 수 있다.
그녀는 후배를 무대에 세웠다. 그리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계산이 틀렸다.
2. 여론 조사
오하린은 매일 아침 여론 조사 통계를 확인했다.
1주차. 오하린 41%, 김설아 38%. 좋았다. 후배는 아직 신인이다.
2주차. 오하린 39%, 김설아 44%. 이상했다.
3주차. 오하린 31%, 김설아 57%. 이상한 게 아니었다. 재앙이었다.
오하린은 그래프를 보았다. 김설아의 선은 하늘로 솟았고, 오하린의 선은 땅으로 꺼졌다. 오하린은 조용히 말했다.
“저게… 나보다 예뻐서야.”
옆에서 비서가 말했다. “선배님, 통계는 외모로만 나오지 않습니다.”
오하린이 대답했다. “아니야. 외모로 나와. 이 방송은 3년 동안 외모로 나왔어. 나는 그걸로 살아남았어. 그래서 알아.”
그녀는 창밖을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저 아이는… 나보다 예쁘다. 그리고 예쁜 아이는 무섭다. 왜냐하면 예쁜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3. 결정을 미루는 기술
김설아는 결정을 미뤘다.
첫 주. “저는 아직 배추와 간고등어를 모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주. “저는 김치공장 딸이니까, 더 신중해야 합니다.”
셋째 주. “저는… 아직 어립니다.”
관중석은 술렁였다. 여론은 갈렸다.
“또 미루네.”
“근데 미루는 게 귀엽다.”
“귀엽다? 저건 계산이다.”
“계산이어도 예쁘면 된다.”
오하린은 그 댓글을 읽고 웃었다. 저건 귀여운 척이야. 나도 했어. 그런데 저건 나보다 잘해.
그런데 김설아는 귀여운 척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것을 했다.
4. 농익은 척
김설아는 기숙사에서 거울을 보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귀엽다. 귀여움은 스물한 살까지만 통한다. 그런데 이 방송은 3년째다. 귀여움은 빨리 상한다. 나는 상하지 않으려면, 익어야 한다.
그녀는 노트에 적었다.
김치는 익어야 맛있다.
사람도 익어야 맛있다.
그런데 익는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이 아니다. 익는다는 것은 깊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귀여운 척을 버리겠다. 나는 농익은 척을 하겠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연습했다. 웃는 각도, 고개를 드는 속도, 말의 속도. 그녀는 일부러 느리게 말했다. 그녀는 일부러 오래 바라보았다. 그녀는 일부러 웃지 않았다. 웃지 않는 것이 더 농익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옷을 바꿨다. 김치공장 딸의 후드티를 벗었다. 대신 검은 재킷, 흰 셔츠, 단정한 슬랙스. 화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눈을 떼기 어려웠다. 그녀는 ‘세련됨’을 입었다. 세련됨은 노출보다 강했다. 세련됨은 사람을 오래 보게 만들었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김치공장 딸, 숙성되다.”
5. 악플의 두 갈래
그날부터 악플이 두 갈래로 갈렸다.
여성들의 악플이었다.
“창녀 아니냐.”
“옷이 왜 그래.”
“남자들 눈에 들려고 작정했네.”
“김치공장 딸 컨셉 버리고 섹시 컨셉으로 갔네.”
“역겹다. 진짜 역겹다.”
“저건 페미가 아니다.”
“저런 애가 여대를 나와?”
남성들의 댓글은 달랐다.
“품격이 있다.”
“저게 진짜 성숙함이다.”
“귀여운 애보다 이런 애가 오래 간다.”
“도네이션 보냅니다.”
“김설아, 이번엔 이겨라.”
“1,000원. 3,000원. 10,000원.”
도네이션이 치솟았다. 하루 5억, 7억, 9억. 김설아는 무대에 서기만 해도 도네이션이 들어왔다. 그녀는 김치를 버무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서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관중석이 환호했다.
오하린은 그 장면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저건… 대단해. 저건 귀여운 척이 아니야. 저건 농익은 척이야. 그리고 농익은 척은 귀여운 척보다 오래가.”
6. 지능
김설아의 지능은 높았다. 그녀는 김제에서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사람을 읽는 법을 일찍 배웠다. 김치공장에는 매일 손님이 왔다. 손님은 김치를 사러 왔지만, 사실은 이야기를 사러 왔다. 그녀는 손님의 말투, 눈빛, 손의 위치를 보며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그녀는 무대에서 그것을 썼다.
그녀는 페르소나를 바꿨다. 첫 주에는 순박한 김치공장 딸이었다. 둘째 주에는 신중한 후배였다. 셋째 주에는 농익은 여자였다. 넷째 주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침묵도 페르소나였다.
관중석은 술렁였다. 여론은 분석했다.
“저건 계산이다.”
“계산이면 genius다.”
“아니, 계산이면 사기다.”
“사기여도 예쁘면 된다.”
김설아는 그 말을 읽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저는 계산합니다. 그런데 계산은 김치와 같습니다. 계산이 깊어야 맛이 납니다. 얕은 계산은 상합니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계산, 숙성되다.”
7. 결정
시즌 종료가 다가왔다.
김설아는 밤새 분석했다. 그녀의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결정을 미루면 인기도가 떨어진다.
1주차 미루기: 인기 상승.
2주차 미루기: 인기 정체.
3주차 미루기: 인기 하락 시작.
4주차 미루기: 인기 급락.
미루기는 3주까지만 통한다. 그 뒤에는 ‘우유부단’이 된다.
나는 이제 결정해야 한다.
그녀는 무대에 섰다. 관중석에는 고려대 신입생 강도현과 연세대 신입생 박태산이 있었다. 심판석에는 서울대 신입생 이헌이 있었다. 무대 뒤에는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이 서 있었다.
사회자가 외쳤다. “이화여대 신입생 김설아 씨, 파트너를 선택하십시오!”
김설아는 안동간고등어를 보았다. 태백배추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태백배추를 선택합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모두가 예상한 결과였다. 그래서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연세대 신입생 박태산이 일어났다. “왜 저입니까.”
김설아가 대답했다. “배추가 쌉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그 말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김설아가 말을 이었다.
“저는 이번 시즌 내내 결정을 미뤘습니다. 그동안 도네이션을 모았습니다. 하루 9억까지 왔습니다. 저는 그 돈으로 태백의 배추를 대량으로 사들이겠습니다. 태백배추는 올해 풍작입니다. 값이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 값에 삽니다. 그리고 김치를 만들어 수출합니다. 이익은 충분합니다.”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김설아, 계산을 공개하다.”
서울대 신입생 이헌이 물었다. “그게… 전략입니까.”
김설아가 대답했다. “전략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전략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루면서 모았습니다. 미루는 것이 전략이었습니다.”
이헌이 침묵했다. 오하린은 무대 뒤에서 눈을 감았다. 저 아이는 나보다 냉정해. 나는 사랑을 계산했지만, 저 아이는 시간을 계산했어.
8. 목표 달성
김설아의 김치는 팔렸다. 태백배추를 싸게 사서, 김제 공장에서 담가, 수출했다. 기준 이윤은 어렵지 않게 넘었다. 하루 6억 2천만 원. 시즌 목표 달성.
그런데 여론은 싸늘했다.
“결국 계산이었네.”
“우리를 이용했다.”
“도네이션으로 배추 사재기라니.”
“그 돈은 우리가 준 돈인데.”
“예쁜 척하다가 결국 돈 계산.”
“창녀 아니냐.”
“창녀.”
“창녀.”
김설아는 그 댓글을 읽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저는 창녀가 아닙니다. 저는 김치공장 딸입니다.”
방송은 그 말을 3초만 내보냈다. 대신 그녀가 눈물을 닦는 장면을 15초 내보냈다.
9. 룰
서울대 신입생 이헌이 심판석에서 일어났다.
“규칙을 상기시키겠습니다. 시즌 종료 시 여론 지지율이 50%를 넘지 못하면, 자리는 다음 타자에게 양보됩니다. 김설아 씨의 최종 여론 지지율은 43%입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김설아가 물었다. “이익은 넘겼습니다.”
이헌이 대답했다. “이익은 숫자입니다. 지지율은 감정입니다. 이 무대는 둘 다 요구합니다.”
김설아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웃었다. “그래서 이 무대는… 김치와 같군요. 이익이 익어도, 감정이 상하면 버려집니다.”
이헌이 침묵했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김설아, 자리를 잃다.”
10. 양보
자리는 다시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에게 넘어갔다.
오하린은 무대에 섰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된 웃음이었다.
“저는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후배에게 줬습니다. 그리고 후배는 이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여론은 갈렸다.
“또 오하린이야.”
“지겹다.”
“근데 익숙하다.”
“익숙한 게 편하다.”
오하린이 말을 이었다.
“저는 이번 시즌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후배는 나보다 예뻤고, 나보다 냉정했습니다. 그런데 후배는 잊었습니다. 이 무대는 이익의 무대가 아니라 감정의 무대라는 것을.”
그녀는 관중석을 보았다.
“저는 이제 계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다시 딸기를 따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김치를 담그겠습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누군가 박수를 쳤다. 박수는 퍼졌다.
김설아는 무대 뒤에서 그 장면을 보았다.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선배님, 당신은… 정말 교활해요.”
오하린은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말했다.
“설아야, 이 무대에서 교활하지 않으면, 김치가 상해.”
11. 김설아의 항아리
김설아는 김제로 내려갔다. 그녀는 항아리를 열었다. 100일 된 겉잎 김치. 익어 있었다.
그녀는 한 입 먹었다. 그리고 울었다. 그리고 웃었다.
그녀는 노트에 적었다.
나는 이겼다. 이익을 넘겼다.
나는 졌다. 지지율을 잃었다.
그런데 나는 배웠다.
이 무대는 감정의 무대다.
감정은 계산할 수 없다. 그러나 감정은 숙성될 수 있다.
나는 아직 스물한 살이다. 나는 아직 익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겠다.
그녀는 항아리 뚜껑을 덮었다.
12. 에필로그 — 숙성
이듬해, ‘겉잎 김치’는 다시 팔렸다. 김설아는 무대에 서지 않았다. 그녀는 공장에서 김치를 담갔다. 그리고 가끔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영상 제목은 이랬다.
“스물두 살, 아직 익지 않았습니다.”
조회수는 300만이었다. 댓글은 갈렸다.
“창녀.”
“역겹다.”
“근데 김치가 맛있어 보인다.”
“나도 담가 봤다. 맛있다.”
“너는 계산이 아니라, 김치를 만들었구나.”
김설아는 그 댓글을 읽고 웃었다. 그리고 항아리에 김치를 넣었다. 소금을 뿌렸다. 겉잎을 먼저 절였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겉잎이 단단해야, 속이 익어.”
TV에서는 새 시즌이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외쳤다.
“SKYI 수출전쟁, 새로운 지도층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김설아는 TV를 껐다. 방 안은 조용했다. 김치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났다. 그리고 그 냄새는, 아주 느리게, 익어가고 있었다.
끝.
3,200번의 계산
— SKYI 수출전쟁: 오징어는 남쪽에서 온다
등장하는 학교·기업·인물·방송은 모두 허구이며, 작중 악플 표현은 소설이 비판적으로 다루는 대상입니다.
1. 아름다움의 유통기한
이화여대 신입생 김설아의 지지율은 3주 만에 반으로 줄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쁨은 유통기한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통기한은 시청자의 눈이 익숙해지는 속도와 같았다. 첫 주에는 ‘세상에 저런 얼굴이’였고, 둘째 주에는 ‘저 얼굴 또 나오네’였고, 셋째 주에는 ‘저 얼굴밖에 없나’였다.
방송국 분석팀이 보고했다.
“김설아 씨의 지지율은 외모 기반입니다. 외모 기반 지지율은 평균 4주가 유통기한입니다.”
서울대 신입생 이헌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분석팀이 대답했다. “동정입니다. 동정은 외모보다 오래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정을 만들었다. 김설아가 악플에 우는 장면, 김설아가 홀로 김치를 담그는 장면, 김설아가 “저는 아직 어립니다”라고 말하는 장면. 지지율은 43%에서 48%로 올랐다.
그러나 48%에서 멈췄다. 그리고 48%는 50%가 아니었다.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이 무대에 섰다.
“저는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후배에게 줬습니다. 후배는 이 자리를 잃었습니다. 이제 저도 이 자리를 잃겠습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오하린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너무 교활했습니다. 저도, 후배도. 교활함은 악플을 부릅니다. 그리고 악플은 지지율을 깎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다음 타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2. 민중이 선택한 다음 타자
민중은 다음 타자를 직접 골랐다. 투표였다.
후보는 셋이었다. 성신여대 신입생 지우, 숙명여대 신입생 배수민, 그리고 숙명여대 신입생 한서연.
한서연은 남해에서 올라왔다. 집은 김 양식장을 운영한다. 남해의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딸. 그녀는 숙명여대 수학과 신입생이었다.
민중의 투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서연 61%. 지우 22%. 배수민 17%.
여론은 이유를 분석했다.
“지적미가 있다.”
“성숙미가 있다.”
“남해의 해풍을 받고 자랐다.”
“수학과라서 똑똑해 보인다.”
“질질 끌지 않을 것 같다.”
한서연은 무대에 섰다. 그녀는 말이 느렸다. 그리고 정확했다.
“저는 숙명여대 신입생 한서연입니다. 남해 김 양식장 딸입니다. 저는 수학과입니다. 저는 계산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질질 끌지 않겠습니다.”
관중석이 환호했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질질 끌지 않겠습니다.”
3. 동해 오징어
그런데 그때, 고려대 신입생 강도현이 무대에 나왔다.
“저는 고려대 신입생 강도현입니다. 안동간고등어집 아들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양보하겠습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강도현이 말을 이었다.
“여론이 원합니다. 여론은 새로운 얼굴을 원합니다. 저는 3년 동안 이 무대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안동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고려대 신입생 최동해. 동해에서 올라온 오징어잡이 배의 아들. 그의 아버지는 동해에서 40년 동안 오징어를 잡았다. 최동해는 어릴 때부터 배 위에서 자랐다. 그의 손은 소금에 절어 있었다. 그의 눈은 수평선을 읽었다.
“저는 고려대 신입생 최동해입니다. 동해 오징어잡이 배 아들입니다. 저는… 오징어입니다.”
관중석이 웃었다. 최동해도 웃었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동해 오징어, 등장.”
4. 2주
서울대 신입생 이헌이 심판석에서 말했다.
“이번 시즌 규칙입니다. 여론의 요구에 따라, 숙명여대 신입생 한서연 씨는 2주 안에 파트너를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지는 태백배추와 동해오징어입니다. 질질 끌면 실격입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한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2주면 충분합니다.”
그녀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기숙사 방에 틀어박혔다. 그녀의 책상에는 노트북 두 대가 있었다. 하나는 데이터 분석용, 하나는 계산용.
그녀는 노트에 적었다.
2주.
나는 질질 끌지 않는다.
나는 계산한다.
계산은 감정이 아니다. 계산은 확률이다.
확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5. 3,200번의 계산
한서연은 계산을 시작했다.
첫째 날. 그녀는 태백배추의 시장 데이터를 모았다. 생산량, 가격 변동, 수출 실적, 물류비, 계절성. 그리고 동해오징어의 데이터를 모았다. 어획량, 가격 변동, 수출 실적, 냉동 물류비, 계절성.
둘째 날. 그녀는 변수를 정했다. 47개의 변수. 기온, 염도, 환율, 유가, 소비자 선호도, 경쟁 국가 생산량, 정부 보조금, SNS 언급량.
셋째 날. 그녀는 모델을 만들었다. 확률 모델,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민감도 분석.
넷째 날. 그녀는 AI에게 물었다.
“태백배추와 동해오징어 중 어느 쪽이 사업 성공 확률이 높은가. 3,200번 계산해라.”
AI는 계산했다. 3,200번.
결과는 이랬다.
태백배추: 성공 확률 54.2%
동해오징어: 성공 확률 61.8%
차이는 7.6%포인트. 한서연은 그 차이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노트에 적었다.
오징어가 7.6%포인트 높다.
7.6%포인트는 작지 않다.
그런데 7.6%포인트는 크지도 않다.
사업은 확률이 아니라 실행이다.
그런데 나는 수학과다.
나는 확률을 믿는다.
그녀는 결정했다. 동해오징어.
6. 무대
한서연은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3,200번의 계산 결과가 떠 있었다. 표, 그래프, 확률 분포, 민감도 분석.
“저는 숙명여대 신입생 한서연입니다. 남해 김 양식장 딸입니다. 저는 2주 동안 3,200번 계산했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태백배추 성공 확률 54.2%. 동해오징어 성공 확률 61.8%. 그러므로 저는 동해오징어를 선택합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조용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3,200번의 계산. 그리고 침묵.”
사회자가 물었다. “한서연 씨,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한서연이 대답했다. “조용합니다. 조용한 게 정상입니다. 계산은 원래 조용합니다.”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여론이 터졌다.
“똑똑한 척한다.”
“재수없다.”
“재미없다.”
“3,200번 계산? 그걸 왜 우리한테 보여줘.”
“우리는 예능 보러 왔는데, 논문을 보여주네.”
“수학과라서 저런다.”
“지적미? 지적 자뻑이지.”
한서연은 그 댓글을 읽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저는 계산했습니다. 계산이 재미없다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계산이 없으면, 재미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방송은 그 말을 편집했다. 다음 화 예고에는 3,200번의 계산 그래프만 나왔다. 시청률이 떨어졌다.
7. 위기
방송국 회의실. 서울대 신입생 이헌, 한서준, 차도헌, 권태윤이 모였다. 제작자들도 있었다.
제작자가 말했다.
“문제입니다. 시청률이 12% 떨어졌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3,200번 계산은 재미가 없습니다.”
한서준이 말했다. “그런데 정확합니다.”
제작자가 말했다. “정확한 것은 재미가 없습니다. 이 방송은 3년 동안 재미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4축 슈퍼스타 업체가 있습니다. 간고등어, 배추, 딸기, 김치, 굴비, 쑥, 쌀, 인삼, 배추모시, 자동차, 어장, 도네이션 공화국. 이 모든 것이 우리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판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헌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제작자가 대답했다. “합숙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제작자가 말을 이었다.
“애정촌 짝처럼. 한방에 감금하고, 근거리에서 평가하고, 결정하게 합시다. 그러면 재미가 돌아옵니다. 그리고 계산은 사라집니다.”
권태윤이 웃었다. “그건… 병맛입니다.”
제작자가 대답했다. “병맛이 시청률입니다.”
8. 합숙
합숙은 남해의 한 펜션에서 열렸다. 숙명여대 신입생 한서연, 연세대 신입생 박태산, 고려대 신입생 최동해. 세 사람이 한 집에 갇혔다. 카메라 47대. 마이크 12개. 그리고 규칙.
“2주 동안 한 집에서 생활합니다. 결정은 마지막 날 합니다. 중간에 나가면 실격입니다.”
첫날, 세 사람은 조용히 저녁을 먹었다. 박태산이 김치를 담갔다. 최동해가 오징어를 구웠다. 한서연이 밥을 지었다.
박태산이 말했다. “이건… 이상합니다.”
최동해가 말했다. “나도 이상합니다. 우리는 경쟁자인데, 같이 밥을 먹고 있습니다.”
한서연이 말했다. “경쟁은 밥상에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웃었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둘째 날부터 수컷들은 예민해졌다. 박태산은 최동해가 한서연에게 오징어를 구워 주는 것을 보았다. 최동해는 박태산이 한서연에게 김치를 담가 주는 것을 보았다.
박태산이 말했다. “너는 오징어만 구워.”
최동해가 말했다. “너는 김치만 담가.”
한서연이 말했다. “둘 다 하지 마세요. 저는 계산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공격 수위가 높아졌다.
박태산: “오징어는 냄새가 난다.”
최동해: “배추는 썩는다.”
박태산: “오징어는 물러.”
최동해: “배추는 시다.”
한서연은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여러분, 저는 3,200번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3,200번 싸우고 있습니다.”
방송은 그 장면을 내보냈다. 시청률이 올랐다. 여론은 갈렸다.
“태백배추파.”
“동해오징어파.”
“태백이 이겨야 한다.”
“오징어가 이겨야 한다.”
민중은 양분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싸웠다. 서로를 향해 악플을 달았다. 태백배추파는 오징어파를 ‘비린내’라 불렀고, 오징어파는 태백배추파를 ‘썩은 잎’이라 불렀다.
그러나 박태산과 최동해는 가까운 형제였다. 둘 다 바다와 산에서 왔다. 둘 다 아버지의 손을 닮았다. 둘 다 새벽에 일어났다. 그들은 밤에 몰래 마당에 나가 앉았다.
박태산이 말했다. “우리 싸우는 게 우습다.”
최동해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카메라가 찍고 있다.”
박태산이 말했다. “카메라를 위해 싸우는 거다.”
최동해가 말했다. “그게 제일 슬프다.”
그들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멀리서 남해의 바람이 불었다.
9. 결론
마지막 날. 한서연은 무대에 섰다. 박태산과 최동해가 양옆에 서 있었다. 관중석에는 태백배추파와 동해오징어파가 나뉘어 앉아 있었다.
사회자가 외쳤다. “숙명여대 신입생 한서연 씨, 파트너를 선택하십시오!”
한서연은 노트북을 열었다. 스크린에 3,200번의 계산 결과가 다시 떴다.
“저는 2주 동안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합숙 동안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동해오징어 성공 확률 61.8%. 태백배추 성공 확률 54.2%.”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한서연이 말을 이었다.
“저는 동해오징어를 선택합니다.”
동해오징어파가 환호했다. 태백배추파가 야유했다. 박태산은 고개를 숙였다. 최동해는 웃었다.
한서연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끝내지 않겠습니다. 저는 3,200번 계산하면서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스크린이 바뀌었다. 새로운 그래프가 떴다.
“동해오징어 남해 양식 가능성 — 확률 78.4%.”
관중석이 술렁였다. 한서연이 말했다.
“동해오징어는 동해에서 잡습니다. 그런데 동해오징어를 남해에서 키울 수 있다면 어떨까요. 남해는 수온이 높습니다. 동해오징어는 수온이 낮아야 합니다. 그런데 심해 저층수는 차갑습니다. 남해의 심해 저층수를 끌어올리면, 동해오징어를 남해에서 키울 수 있습니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한서연이 말을 이었다.
“저는 이 계산을 3,200번 했습니다. 그중 78.4%가 가능하다고 나왔습니다. 이 기술은 이미 있습니다. 해수열 히트펌프, 심층수 양식, 스마트 양식장. 저는 이것을 조합했습니다.”
스크린에 새로운 문장이 떴다.
“남해 오징어 — 새로운 벤처 사업.”
관중석이 술렁였다. 그리고 누군가 박수를 쳤다. 박수는 퍼졌다.
한서연이 말했다.
“저는 오징어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징어를 동해에서만 잡지 않겠습니다. 남해에서 키우겠습니다. 그러면 오징어 가격은 큰 폭으로 낮아집니다. 오징어는 더 이상 귀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오징어는 매일 먹는 것이 됩니다.”
최동해가 물었다. “그럼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됩니까.”
한서연이 대답했다. “당신 아버지는 오징어를 잡는 사람에서, 오징어를 키우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더 안정적입니다.”
최동해는 한참 침묵했다. 그리고 웃었다. “당신은… 무섭습니다.”
한서연이 대답했다. “저는 수학과입니다.”
10. 여론의 결론
여론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였다.
“저건 genius다.”
“오징어를 남해에서 키운다고?”
“3,200번 계산이 맞았네.”
“근데 재미없다.”
“재미없어도 된다. 돈이 된다.”
“돈이 재미다.”
시청률은 회복됐다. 도네이션은 하루 4억으로 안정됐다. 폭발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꾸준했다. 방송국은 만족했다. 꾸준함은 폭발보다 오래갔다.
한서연은 무대에서 말했다.
“저는 재미없는 사람입니다. 압니다. 그런데 재미없는 사람이 만든 것이 재미있으면, 그게 진짜 재미입니다.”
방송은 자막을 띄웠다.
“재미없는 사람의 재미있는 결과.”
11. 에필로그 — 남해의 새벽
이듬해, 남해 오징어 양식장이 문을 열었다. 첫 수확은 12톤. 오징어 가격은 30% 떨어졌다. 동해의 어민들은 처음에 화를 냈다. 그리고 곧 알았다. 오징어가 싸지면, 오징어를 먹는 사람이 늘어난다. 시장이 커진다.
최동해의 아버지는 남해 양식장의 기술 고문이 됐다. 그는 말했다. “40년 동안 잡기만 했는데, 이제 키운다. 이상하다. 그런데 재미있다.”
박태산은 태백에서 배추를 키웠다. 그는 가끔 남해에 놀러 왔다. 그리고 최동해와 함께 오징어를 구웠다. 그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형제였다.
한서연은 숙명여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그녀는 벤처회사를 차렸다. 이름은 ‘남해 오징어’. 투자 유치 300억. 그녀는 말했다.
“저는 계산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계산은 사람을 키우지 못합니다. 사람은 사람이 키웁니다. 저는 이제 계산을 사람에게 씁니다.”
이화여대 선배 오하린은 논산에서 딸기를 땄다. 이화여대 신입생 김설아는 김제에서 김치를 담갔다. 그들은 가끔 남해에 놀러 왔다. 그리고 오징어 김치를 담갔다. 맛은 이상했다. 그런데 아무도 쓰러지지 않았다.
어느 날 새벽, 한서연은 남해 양식장에 앉아 있었다. 바다가 보였다. 심해 저층수가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그 물은 차가웠다. 동해의 온도였다.
그녀는 노트에 마지막으로 적었다.
3,200번 계산했다.
그중 61.8%가 오징어를 선택했다.
그런데 78.4%가 남해를 선택했다.
나는 확률을 믿는다.
그런데 확률은 사람이 만든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믿는다.
아마도.
그녀는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바다를 보았다. 남해의 바람이 불었다. 동해의 물이 섞였다. 그녀는 웃었다.
TV에서는 새 시즌이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외쳤다.
“SKYI 수출전쟁, 새로운 지도층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한서연은 TV를 껐다. 방 안은 조용했다. 오징어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났다. 그리고 그 냄새는, 아주 느리게, 남쪽 바다로 퍼져가고 있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