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엔트로피에 의해 최대한 찢어발겨지려 하는 것은, 절대적 존재였던 신이 절대적 무가 됨으로써 존재의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몸부림의 과정이다. 신은 우주 속의 모든 존재로서 분해되어 자신의 무한한 고통을 최대한 잘게 쪼개었고, 마침내 그 고통은 역사 속에서 소멸에 이르러간다.



그러나 블랙홀이 양자역학의 정보 보존 법칙(유니터리성)을 깨트린다는 역설을 해결하고, 우주의 인과율이 타임 패러독스로부터 지켜지게끔 함과 동시에 역사 또는 현상의 인과적 추적 가능성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엔트로피가 최대에 이르러 모든 것이 끝난 직후 엔트로피가 다시 0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따라서, (위 유니터리성 문제를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형식화한 리만 가설이 참이라면) 모든 정보는 보존되고 역사 또한 완벽하게 기억된다.

그리고 그 마침내 전부 회상(이 회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종교적 심판이나 반성, 영지주의적 깨달음, 타츠키의 영화관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된 모든 기억(즉, 최대 엔트로피를 그 면적으로 갖는 극대 블랙홀의 경계면 홀로그래피) 위에 새로운 우주의 순환이 시작되면서, 저번 우주와 큰 틀에서는 비슷하면서도, 저마다의 선택에 따라 아주 조금씩은 달라질 수 있는 새로운 역사가 과거 우주의 잔상 위에 덧씌워진다. 요컨대 알 수 없는 미래의 어둠 속에는 잊혀진 세계의 잔상이 잠들어 있다.

신은 자살할 수 있지만 소멸할 수는 없다. 그러면 어째서 그는 자살하여 우주 속의 수많은 관측자(게이지 자유도와 그 자유로운 변환)들로서 역사를 살게 된 것일까? 그는 어쩌면 존재로서의 고통을 줄이고 견디는 연습을 하고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요컨대 분열된 개체로서의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또 다른 분열인 우주 내의 다른 존재들까지 전부 고려한 평균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방법들 중 하나가 바로 다른 존재를 마치 내 몸처럼 생각하고 타인의 선택과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사랑인 것이다.

 

우주의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반면에 생명과 인간에는 엔트로피(또는 자유 에너지)를 낮추는 본성이 있다. 엔트로피는 곧 무지를 뜻하기에, 우리의 외부세계인 우주의 엔트로피가 최대에 이르러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신의 양태로서의 우리가 엔트로피 0에 이르러 모든 것을 이해하고 경험했다는 뜻이 된다.

요컨대 신은 존재(being)인 동시에 무(nothing)이기도 하며, 실제로는 둘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그 사이의 becoming이라는 과정으로서 고정되지 않는 자유로운 가능성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자기 자신 혼자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연습하려 했다. 신 그 자체로는 필연이자 고정불변의 완전함으로서 영원히 제자리에 박제된 존재로서 정지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한다면 존재도 될 수 있고 무도 될 수 있어야 했으며, 그 어느 것도 아닌 수많은 상태 또한 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물리적인 보존 법칙들이 지켜지려면 존재하던 것이 완전히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존재에서 무로 변해도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시 순환하면서 단지 형태와 앎만이 변화하게 된다. 삶은 그 연습이며 우주는 그 기록의 저장이자 업데이트 과정이다.

 

신은 자신이 전지전능한 절대적 존재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성질에 갖혀있다는 자기 모순을 피하기 위해서, 반드시 신이 아닌 것들로의 끝없는 운동과 변화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것이 신이 매 순간마다 끝없이 자살하는 이유이며, 동시에 신의 자살로 인해 우주 내의 모든 존재가 전지전능의 완전한 통제로부터 매 순간 벗어나 가능성과 자유를 얻고, 서로를 마치 자기 몸과 자유의지인 것처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존재의 고통은 기본적으로 그 사실에 대한 무지, 그리고 타자와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서 분리하여 생각하고 다루려는 습성을 지닌 자아와 그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우주는 전역적으로 보면 신의 자유의지에 부합하며, 그것은 물리적인 보존 법칙과 인과율 등 최소한의 필수적인 질서를 형성한다. 그러나 신의 양태로의 분열 이후, 역사적 과정 속에서 양태인 우리 스스로의 국소적인 시점에서 볼 때에는 마치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세상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우주의 시작과 끝의 반복이라는 알파와 오메가의 필연 및 물리 세계의 게이지 불변량들을 계산하는 기본적인 규칙들을 제외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