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Q1. 이재명 대통령은 왜? 취임후 상고사 연구를 강조했는가? | 랜선역사 | 일베저장소

Q1. 이재명 대통령은 왜? 취임후 상고사 연구를 강조했는가?
Q2. 독립운동가 국적이야기만 하면 왜? 입막음 프로토콜이 가동되는가?
Q3. 그래서 실상은 어떠한가?
1편에서, 이 3 질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야기 했는데요.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간도에 우리 민족이 연관되어 있는 증거가 어쨌든 있을 것이다.는 반응이 제일 많았어요. 이 이야기는 실제로 실제로 써먹을 수 있고, 제시가 가능한 근거는 현재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 연도순으로 몇가지 사실을 봐 보면요.
1904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당하기 전인, 1904년에 대한제국은 청나라와 한중변계선후장정이란 협정을 맺는데요. 영토의 정확한 구획은 추후로 미루고, 일단, 간도에서 청의 행정권을 인정하고, 조선인의 거주와 생계활동을 인정하는 임시적인 협정을 맺지요. (영토의 정확한 구획은 추후로 미룬 것이라 임시적인 협정이에요.)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승리의 댓가로, 대련일대를 조차지로 획득하고, 장춘에서 대련까지 철도(남만철)를 부설할 수 있는 권리를 얻지요. 이 철도와 기차내부, 그리고 역사 및 역사에 딸린 창고 같은 시설들은 일본의 영토와 비슷하게 다루어지지요.(일종의 치외법권), 철도가 어느 정도 완성된 1906년에는 관동군의 전신인 남만철경비대도 사단급으로 배치되지요.
(철도 1km마다 15명의 병력을 배치할 수 있는 협정도 맺었어요.)

1907년
일제는 간도에 간도 파출소를 설치하고, 헌병 경찰을 파견하는데요. 간도 파출소의 일제 헌병 보고서 기록을 보면요.
“실행방법으로서는 조선인 경찰과 일본인 헌병을 간도현지에 파견하여 파출소를 설치하고, 조선인 보호를 명목으로 중국의 행정에 대항하여 행정을 실시하여, 간도를 한국영토로 기정사실화한 다음, 중앙정부간의 평화적인 외교교섭을 통하여 영유권을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 위의 사실들에서 확인 할 수 있는게요.
1. 1904년 대한제국과 청의 협약에 의하면, 대한제국은 간도가 청나라의 관리하에 있는걸 확인(협정을 맺음으로써요)했어요. 영토 문제와는 별개로 간도가 주인없는 땅(무주의 땅)이라, 먼저 들어가서 산 것(선점)이 어떠한 권리를 형성한다는 주장은, 무용지물에 가까운 주장이 되는것이지요. 영토에 관한 협정을 새로 맺으면, 과거에 맺었던 영토에 관한 협정은 무효가 되는게 일반원칙인데요. 이 원칙에 의하면, 간도에 조선인이 들어가 산 것으로 간도가 조선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통할 구석이 거의 없어요.

2. 일제가 행한 모든 행정행위는 무효라는 입장에 의하면, 일본인 헌병을 간도에 파견하여, 조선인 보호를 명목으로, 중국의 행정에 대항하여, 간도를 한국영토로 기정사실화 한것도, 무효가 되어야하지요.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여 맺은 협정이 무효가 된다고, 간도가 대한민국의 땅이 될 수가 없는 구조에요. 간도를 한국영토로 기정사실화 한것도, 2차대전 종전시 일본이 점유한 땅을 다시 정한 원칙은, “일본이 침략적 전쟁으로 획득한 영토는 원래 주인에게 반환한다.” 인데요. 역시 이 원칙에 의하면, 간도는 청나라를 계승한 중국에 반환하는게 맞아요.

* 일본은 청나라에서 간도를 뺏어서 강제로 한국에 편입한 다음에, 그걸 철도부설권을 댓가로 다시 청나라에 팔아넘기지요. 아래 심양~단둥, 길림~회령 구간이지요.


* 국제적으로는 도저히, 간도가 한국땅이 될 만한 구석이 현재는 하나도 없는게 진실이지요. 그런데, 대체 why? 간도가 한국땅일지도 모른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냐면요.
냉전시대 한미연합군(당시에는 UN군이라고 불렸지요.)이 구상한 내용 중 공개된게 하나 있어요. 전략 천재인 맥아더 원수의 구상이니. 개념적으로는 거의 맞는 내용일거에요.
만주지역에 방사성 코발트 바다를 만들어서, 공산세력의 남하를 막는다는 계획인데요.
지도를 하나 봐 보면요. 노란색 부분이 맥아더 원수의 방서성 코발트 바다이지요.


* 일제 강점기 만철의 노선도에요. 오른쪽에 한반도에 길게 있는 선이 경의선이구요. 왼쪽에 길게 있는 선이, 경원선이지요. 이 두 개의 선이 현대전에서 북쪽 세력의 대규모 병력이 한반도에 들어 올 수 있는 딱 2개의 길이에요. 지연작전이 가능한 곳이 당연히 있긴 하지만, 간도쪽에 비하면 수월한 곳들이지요. 반대로 북쪽세력이 간도를 점유하고 있으면 간도를 돌파하는건 몇배로 힘들지요.
(Sea of Japan이라는 표현은, 과거의 자료(사료)라서 고치지 않았습니다.) 
- 과거에는, 이 두 개의 길 이외에도 신의주 건너편에서 더 서쪽에 난 길로 이동한뒤, 신의주보다 더 서쪽 압록강을 건너서 한반도에 침공한 북쪽 세력이 있었지요. 하지만 현대전에서 대규모 병력 침공이 가능한 루트는 경의선, 경원선이 거의 전부라고 봐도 되어요.
- 중국쪽 세력은 과거에는 경의선쪽으로만 침공했지요.
- 현재 중국은 경의선쪽 + 장춘 -> 지린 -> 둔화->조선족 자치구로도 침공이 가능하지요.
-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소련군은 경원선쪽으로 남하하고, 불필요한 오해(38선 더 밑으로 남하는 협정위반)를 피하기 위해서, 함흥쯤에서 산속으로 난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이동해서 평양에 들어가지요.

* 통일한국은 750km의 북쪽 국경선의 서북단 끝에 중국쪽 세력의 대규모 침공루트 1개, 동북쪽 끝에 중국쪽 세력의 대규모 침공루트 1개 + 러시아쪽 세력의 대규모 침공루트 1개, 총 3개의 방어해야 할 거대한 전략적 포인트를 가지게 되지요.
그 중, 동북쪽끝에서 지금의 조선족자치구인 북간도를 확보하게 되면, 장춘시 -> 지린시 -> 둔화시 -> 조선족 자치구를 통해서 들어오는 병력을, 산간지형의 이점을 활용하여 비교적 쉽게 막을 수 있지요. 물론 러시아에서 한반도로 들어오는 병력도 비교적 적은 병력으로 막거나, 뒤에서 역습하는것이 가능하지요.
신의주 건너편 단둥쪽의 서간도땅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단둥쪽에서 집결해서 남하하는 병력이 한반도로 넘어오기 전에 막는게 가능해지지요.


* 한국군대에서 제일 험한 산지가 인제, 양구, 화천, 철원인데요.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도 못 돌아오네”라는 한탄이 있을 정도인데요. 맨첫번째 짤방에서 노란색으로 표시한 간도땅은 인제, 양구, 화천, 철원의 산지가 3~4겹이 있는 정도에요. 경원선 루트로 남하가 가능하긴 한데요. 철원 바로 위쪽의 산지에 제대로 된 방어선을 설치하면, 북쪽 대규모 기갑 세력이 남하하는 것은 쉽지가 않지요. 그래도 일단, 한반도로 진입하면, 철원 위쪽까지는 남하가 가능해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북쪽에 적대적이고 영토를 원하는 세력이 있는 경우에는 간도를 점유하고 있으면, 고구려 발해와 같은 형태가 되고, 간도를 점유하지 못하면, 고려나 통일신라 같은 형태가 되지요. (적대적이지만 영토를 원하지 않을 때에는, 정묘호란, 병자호란과 같은 상황이 되지요.) 
(아랫쪽 빨간색 물방울 표시가 연천인데요...그 위쪽이 가장 험한 산지인데요. 간도쪽과 비교해보면 험한 정도가 덜하지요.)

* 정부 입장에서는 “우리가 간도를 노리고 있다.”라고 이야기 조차 할 수 없지만, 평소에 여론 조성을 좀 해 놓아야 하는 입장일텐데요. 여론 조성을 할만한 제대로 된 자료가 사실은 없는 상태이지요. 25년 이상 연구를 해 왔지만, 그나마 낚시 바늘 하나 걸만한 것이 간도조약이지요. (실제로 국제적으로 사용은 어렵구요. 한국내 여론 조성용으로 겨우 쓸 정도이지요.)
내용에 관해서 사실을 이야기 해서 국민을 설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지요.

링크들
* 만철 노선도 : https://www.oldtokyo.com/the-asia-express-shougaku-sannensei-manga-advertising-postcard-manchukuo-c-1935/
*길림 회령철도 노선도 : http://www.atlasnews.co.kr/news/curationView.html?idxno=3083
*일제 간도 파출소 기록 : https://db.history.go.kr/diachronic/level.do?levelId=hn_041_0050_002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