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36년동안 나라가 없었다. 그 기간동안 관직을 차지하고 싶었으나, 관직을 맡을 수 없는 시기였다. 8.15 이후의 해방공간은 북한은 소련군정에 충성파들의 완승이고, 소련군정에 대들었던 민족주의 세력은 반동숙청 움직임에 월남해야만 했다. 휴전선 이남의 남한은 남로당 인민공화국 세력을 이승만 정부가 진압하고, 미군정과 자유진영 안에서 대한민국이 2차 대전 전후질서로 시작했다. 남로당 인민공화국 세력은 끝까지 무장항쟁 했고, 김일성은 남로당 박헌영 구출전쟁으로서 6.25 전쟁을 시작했다. 또, 전쟁이 길어지자 모택동 중국공산당은 김일성 구출전쟁으로 6.25 전쟁 참전을 결정했다.
“냉전 시대”에는 이 부분을 이념대결로 설명했다. 지금은 ‘탈냉전’도 아니고 ‘재 냉전’시대에 현저히 가까우나, 조상숭배 문화로 과거의 냉전 어법을 오늘에 되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제2공화국은 청나라 말기식의 국가 자연붕괴 조짐이 완연했고, 이를 6.25 참전용사였던 박정희는 군사정변으로 뒤엎었다. (이를 쿠데타라고 보는 사쿠라 조갑제기자 같은 세계관은 남북이 모두 소련군정이어야 하고, 이어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을 까니까 그렇게 평가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군사정변은 사실적 평가로 정권 전복으로 쿠데타 아니냐고 할 때, 그 의미와 명백히 다른 의미가 끼어든다.)
군사정권의 모든 사업이 남로당 인민공화국 후예들을 짓누르고, 재벌 편중의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요약됐다. 여기서, 군사정권의 지역적 토대인 영남내부에 자리한 유학파의 왕권제 유교 시족 원리가 작동했다.
공권력을 남용해도 되는 1인, 법 위의 존재 1인, 권위주의 구사이되 영남식 한자문명의 씨족습속으로 허락되는 1인. 그 1인의 질서는 내부적으로는 ‘안정’과 ‘균형’이다. 그 질서는 영남 씨족 밖에서는 ‘권위주의’였다.
김대중은 유신반대 운동의 중심이었다. 호남 동학파(양반중 다수파인 동학은, 양반놀음 유지하는 한에서 서양문명을 받자는 주의다. 그 안에서 일제시대 소련공산당과 연결됐던 습속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인 붕당 분파)의 두목이다.
김대중지배체제는 호남동학 지배원리 속에서는, 유신체제 영남왕권제 유교와 전혀 다르나 본질은 똑같은 논리가 나타난다.
유신체제는 영남왕권제 유교를 통해서 6.25 참전 용사들의 위기 때 권력집중이 사실상 중앙에 있다.
김대중체제는 일제시대 조선공산당 운동 습속이 중심이다. 군사정권 반공교육이 철저하게 외지인 논리로 일제시대 공산운동을 설명했지만, 지나놓고 보니 이분들은 이렇게 억울 했을 것이다. 전라도 유교는 조선왕조의 핵심이다. 조선왕조 코어의 양반가문은 베이징을 선망하는 베이징 꼭두각시였다. 그렇지 않은 영남은 조선왕조에서 지배층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군정에서 이승만에 줄서서 신세를 바꾸려는 의지의 산물로 본다.
김대중 민주당 정치 논리의 실루엣 뒤에는 해방공간 남로당 인민공화국과 호남씨족 습관이 있고,.... 조선공산당 습관이 있고, 또 더 나아가서 미국 정치에서 귀족정치로 미국 민중층에 원망을 갖는 미국 백인보수 문제를 쳐바르는 300년 독재라는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독재권력의 역사로 이어진다.
유신시대 국정교육 및 공보처 방송에서는 1인 독재가 아니라, 국민이 합의한 대통령이고 여기에 총화단결로 표시가 됐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김대중 민주당 지지층은 반대로 기억한다. 여기에는, 공권력에 대한 중국문명 전근대적 표현을 근대서구국가와 같다고 보는 궤변에 대한 은폐가 깔려 있다.
김대중체제는 늘 영남의 문제만 이야기하고, 호남동학파 질서의 자체적 한계를 은폐했다. (이렇게 호남동학 패권에 호남 한계 은폐하고 싶은 이들에게, 영남의 한계를 안 고치고 들이밀면, 호남 동학 이익으로 수렴한다.)
더불어 민주당 경제원리에는 ‘흥부 놀부전’으로 이어진다.
‘놀부’는 자본주의 국가, 영남, 미국 정서이고, ‘흥부’는 전라도 씨족 및 이에 동의하는 세계 논리로 이어진다.
이분들의 주장은 매우 심플한데, <연고온정주의=人權>으로 보자는 것이다. 씨족원리 기준으로, 씨족원리가 다 잘린 시장경제는 매정하고 무정하게 보일 수 있다. 씨족적 大同원리로 농촌 공동체와 연결된 정치논리를 김대중체제는 모든 곳에 박는다.
그렇게 호남씨족종교 기준으로 국민에 동의안 받고, 중국적 자본주의로서 ‘공동부유’정치경제를 증산교 교리 相生의 이름으로 하는 것에서, 시장경제 원리로 중대한 착각을 깔고 있다.
<흥부/놀부전의 핵심>은 조선왕조의 쌀이다. “쌀=화폐”로 놓고 본다. 변형윤의 따뜻한 경제학은 이런 중대한 착각 위에 있다.
이제, 호남 씨족이 아닌 시장경제주의자들에게, 호남 원불교나 호남증산교 및 호남 천도교 신앙 원리(동학신앙은 마치 개신교의 장로교 감리교등이 넘나드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넘나들 수 있다고 본다.)는 어떻게 나타나나?
전라도 동학의 농촌원리 기준으로는 전라도 씨족원리 중심의 공동체 대동세상.
전라도 동학 농촌원리 밖에서는 ‘부채를 물쓰듯’하여 전라도씨족이 받들고 싶은 전라도 귀족의 재산을 부풀려주고, 손실과 부담은 모조리 일반국민에 전가되는 일이다.
특히, 시장원리에 깔린 성경적 세계관을 싹 지우고, 그 위에 전라도 농촌을 바꾸면 이런 문제에서 답이 없다.
세계가 각국의 국채를 사주기 하면서 자본시장 부풀리면, 그 댓가로 수요가 늘어나고, 또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어진다. 그러다가, 부채를 늘릴 수 없는 지경에서, 부채로 늘린 자본영역은 ‘가짜’로 쉽게 무너진다.
한국의 좀비기업이 해외 통화 부채를 반드시 발행했고, 그것이 터질 경우, 좀비기업이 붕괴되고, 주택매물이 늘고,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대량해고로 이어지고, 기득권층의 구조조정 문제까지 이르른다.
요약하자.
서구 눈에는 중국의 부동산 과잉 공급. 한국의 중국 따라잡는 부동산 과잉 공급은 황당한 일이다. 중국은 트럼프 1기에서 바른 말 했지만, 한국은 미국이 계속 비판을 참았다. 전라도 농촌정서에서는 ‘주택건설’이 하나의 벼농사이고, 그 가운데서 벼농사하면서, 씨족두레로 다양한 농촌 공동체 이룸이다.
문제는 부채를 물 쓰듯 해도 된다는 것은, 전라도 농촌의 임금 역할인 이재명, 문재인, 노무현을 기준으로 한다.
전라도 농촌의 씨족문명의 상상 세계는 그냥 국민들에게 부채를 물쓰듯 해도 된다고 사기기망을 하는, 지역주택조합 사기에서 ‘홍보관 언어’일 뿐이고, 실제는 경제학원론으로 작동한다.
부채버블이 기득권층에서 뻥 터지지 않고, 기득권층이 주도권을 쥐려면 제대로 모든 영역에서 중국적 자본주의로 가자고 하면서, 일반국민 기준으로 ‘채무 불이행 (Default)’으로서 나라를 팔아버린 이완용 노선의 현재적 재현으로 보여진다. 미국경제유튜버가 중국 경제 분석할 때 거의 대부분 놓치는게 그것이다. 중국공산주의는 중국식 유교 해석 논리 위에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보수적 경제유튜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버틸 것이다. 동시에 레이달리오가 생각하는 미국의 대안국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정반대 이미지로서, 북한공산당의 ‘고난의 행군론’ 유사하게 민중에 위기극복의 부담을 전가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년 상반기에 좀비기업에서 외화표시 채권은 무조건 터진다고 봐야 하고, 그것이 연쇄적인 금융공학으로 선진국이 감기에 걸릴 때 한국경제가 중환자실 가는 상황이 나타날 예정이다.
대공황은 전 지구적 부의 이전이다.
부채를 많이 진 한국이 가졌던 생산시설의 상당수는 해외에 매각되고 이전될 수 있다고 본다. 영어권 경제유튜버가 대공황의 종말은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전으로 세계가 돌아간다는 말을 했는데, 공감한다. 구글 검색에 2005년 국민소득을 물어보니 1만 6천달러다. 상당수의 많은 부동산이 버블 붕괴로 꺼질 것이며, 충분히 노동량이 늘어나는 지점까지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인구곡선이 받쳐주지 않기에, 부동산 전고점 회복은 향후 30년 안에 불가능할 것이다.
대공황으로 자본시장 붕괴로 전재산을 잃어버린 사람이 늘어나면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이 일어날 것이며, 그때에서야 전라도 농촌 씨족신앙의 내러티브로 설명한 제도권 매체들과 좌파정부가 사기를 쳐온 것 아닌가? 또, 부동산에 대한 부채 부풀리기는 윤석열 탄핵에 동조한 보수언론도 속하고, 이분들이 김대중 경제학의 한 부분을 주장했으니, 이분들의 문제가 아닌가 본다.
물론, 미국의 신용카드 부채 확장에는 월가 등이 미국국민에 경제교육을 안한 것은 ‘불고지’의 민법적 사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론상의 문제이고, 기독교 윤리를 버린 월가에 심정적 비난은 가능해도 사기라고 논할 수 없다.
영어권 경제유튜브는 버블 터진다고 거의 99%가 이야기한다. 한국정치는 아직도 부채 물쓰듯 하는 버전을 쓴다. 몰랐다고 하기 불가능하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부채를 물쓰듯 쓰는 것으로 국민성을 바꾼 김대중정부 이전에는, 부채는 망할 수 있는 그런 문제였다. 경제이론이 바뀐 게 아니었다. 부채를 물쓰듯 하다가 망하게 되면 누가 책임지나? 왜 걱정하냐고 그럴일 없다고 그들은 논했으나, 그럴 일이 다가오고 있다.
유신체제는 영남왕권제 기준으로 공권력 남발이 특정한 귀족 기득권을 만들었다. 권위주의 질식이 문제다.
김대중체제는 부채를 물쓰듯 하여 유동성 확장으로 귀족 기득권 잇권을 만들었다. 대공황등 국제변수가 있을 때 아무런 대책이 없는, 철저한 무책임정치가 문제다.
버블이 터진다는 것보다 더 문제가 있다.
1) 전라도 농촌 원리로 덧 씌운 이단경제학.(호남)
2) 경상도 왕권제 윤리로 덧 씌운 이단경제학(영남)
경제위기의 끝은 신뢰의 복원이다.
서로 민간의 계약질서가 되도록 서로 쌍방이 뭔 소리하는지 알아야 한다. 뭔소리하는지를 알 수 없게 한다.
글로벌 트렌드는 평민을 무시해도 되는 귀족들은, 세계적으로 뻘 소리 경연대회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이 유독 심하다. 그 뻘소리 경연대회를 강제중단 시키는 유일한 방법도 경제위기라는 게 슬프다.
그러면, 위기의 뒤에서 신뢰는 어떻게 복원이 될까?
공권력기준으로 존재했던 기득권자 숫자의 10배 가까이 부풀리는데, 인구 절벽으로 노동량이 줄어들은 현재의 시스템은 지속이 불가능하다. 억지로 지속하려고 하는 모습이 적절한 시점에서 끝이 나는 것을 바라는 여론은, 경제위기에 은밀히 배팅한다.
유신시대 권위주의 근본원인은 영남왕권제 유교를 전국적으로 씌우는권력 이데올로기화해서.
김대중체제의 대공황에 세계적 최약체 경제가 되는 것은 전라도 농민정서를 전국적으로 씌우는 권력 이데올로기화해서다. 그 농민 정서 연합에 윤석열 탄핵 연대이고, 윤석열 살리기는 과거 군사정권 때 편든 양반연합으로 보인다.
국민은 진심으로 이 상황이 피곤하고 지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