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때는 예수 믿으면 무조건 미국 남부 텍사스 지역의 기독교만 있고, 유교 선비라면 무조건 영남 선비만 있는줄 알았다.
성경 해석에서도 가장 스탠다드 해석에서 ‘이스라엘’을 논할 수 있듯이, 유교 문화는 결국은 한국의 선비 다수파들이 선망했던 것은 ‘베이징’이라는 사실을 이젠 허탈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글로벌 사상지평으로 ‘뉴레프트’ 이상으로 훨씬 더 강력하게 ‘권력’을 지향하는데, 서구좌파와 다른 측면은 그 근본이 ‘농촌 씨족 부족주의’에 꽂힌 권력이란 것이다.
결국, 왕인 군주제도 결국은 자기만 아는 사고 구조와 연결됐고, 사대부 질서도 자기만 아는 사고구조와 연결됐다.
군사정권 때 김대중 민주당 지지층이 분석한 것처럼, 한국정치의 모든 것은 관직 (자리)로 이어지고, 과거도 다를 바 없었다. 영남에 호남에는 없는 인륜중심의 유교가 발전할 수 있는 원인은, <정치적 패배>였다. 그러나, 패배를 인정한 파벌과 달리, 영남에도 호남을 선망하는 호남에 종속된 가문들이 존재했다.
조선시대 양반 선비문화로 영남이 호남에 이긴다는 것은, 추성훈이 서장훈에 농구로 이긴다는 주장 비슷하겠구나. 그러면 추성훈이 이기는 방법은 그 경기를 안하고, 더 잘하는 게임을 하면 이긴다.
한국에서 영미권 기독교지식인 같은 양반문화가 다수파일 수 없음을 이해하는데에는,..... 더불어 민주당과 국힘에서 한자 쓰며 양반 후손이라고 밝히는 이들의 사고방식 보면 이해가 된다. 없다고야 어떻게 하나. 소수파. 아니 극소수. 극극소수파일 수 있다.
그 분도 평생 한국에서 영남 취향으로 한국학을 연구해주셨는데, 너무 감사드린다. 진심으로. 그런 연구는 결코 쉽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