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닷컴”을 읽어온 보수기독교인의 ‘보수’와 ‘진보’ 관점은 완전히 잘못돼 있다. - 제발 기독교인은 정치 이전에 ‘성경공부’ 먼저 합시다.
 
 
필자는 이런 논리를 반복해서 이야기 해왔다.
 
영국과 미국의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서적을 이해하려면, 미국 복음주의 신앙 논리를 이해해야 하고,..... 복음주의 신앙 논리를 이해하려면 바울 서신에 대한 성경공부가 확실히 돼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
 
보수주의는 보수진영에서 느끼는 기독교신앙의 하나님, 그 연장선에서 서양철학(서양의 세속성)을 이해해야 한다.
 
정치철학책에 부르주아 세계관은 정태적이라고 논한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세상성과 단절된 유대 기독교신관을 논한다.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바라보는 하나님 신앙은, 동시에 미국 남부 유형의 농촌중심의 기독교공동체와 해석될 수 있다.
 
세계교회협의회를 무척 싫어하는 장로교 분파는 전두환 정권 때 갑자기, 독일철학을 읽지 말라고 했다. 당시에 전두환 정권 때에 명목상 지원 받았던(그러나, 그 시기도 역시 권력은 동학이었다), 한국교회 공식입장은 보수기독교와 진보기독교의 구분없는 하나의 파악이었다.(필자의 지금 시점도 그 때 잣대 그대로다)
 
종교개혁의 나라 독일이 개신교가 가톨릭과 화해를 함은 매우 난센스처럼 보이지만, 난센스가 독일인들에겐 아닐 수 있다. 독일에는 보수기독교와 연결된 기독교귀족의 힘이 커지지 못한 것이다. 개혁주의 신앙으로 신자의 진리 책임이 아닐 경우, 니케아 신조 신앙 고백으로 성경본문을 파악할 때도 역시 영국과 미국과 연결된 로마문명이 아닌, 다른 유형의 로마문명과 이어진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테리 이글턴의 주장인 참된 기독교인만이 마르크스주의자란 말은 니케아 신조 신앙 고백일 경우에는 타당할 수 있는 발언이나,..... 미국 기독교인의 경우는 마치 한국인들이 중국 대륙의 샤머니즘 문화가 힘들어지듯, 같은 로마 문명인데도 진보 기독교영역의 로마문명을 무척 힘들어 한다.
 
한국의 보수주의가 힘을 못 쓰는 이유는, 일베가 계속 음란광고를 해야 하고, 서버가 중국에 팔리는 데도, 삼성전자가 매달 서버비로 1만명(300만원)-3만명(1500만원)을 안 내려는 데에서, 사실은 의미가 다 나왔다고 본다.
 
한국의 진보주의는 군사독재 때 정부 돈 먹고서 진실이 사라지는 유형의 김대중 체제 판으로 본다. 사실, 민중계급의 삶을 정치경제적으로 분석하여, 신자공동체 상에서 공유하는 일로서 ‘빛도 이름도 없는 봉사’는 이젠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의 권력층이 보수주의를 주머니 속의 공기돌처럼 하고, 진보진영의 남로당 씨족 후손들의 친중감정에 의타적으로 존속하는 기득권층이 있는 속에서, 귀족이 국가를 고도로 자의적으로 운영하는 한에서 보수주의자들의 끝없는 자의적 차별 불만은 해결될 길이 없다.
 
글의 메시지는 분명히 이렇다.
 
보수주의자의 생각에는 그 속에 ‘진리’로 여겨지는 것에는, 영국과 미국에 깔린 로마문명과 기독교신앙의 접점이 있다.
 
진보주의자에게도 그 속에 진리로 역겨지는 것은 복음주의 기독교가 아닌 국가에서의 로마문명과 기독교신앙의 접점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유교붕당 그 확장버전으로서 동학종족주의로 간다.
 
그러면, 이 글을 읽는 필자는 이러한 반론을 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이 말하는 보수주의는, 조갑제기자 박정희 책장사 이후로 30년간 씨가 마른 상황에서, 다시 지식의 소통 복원으로 실력자를 배치하고, 그 실력자들의 공적 진리가 소통되는 것을 권력이 장려할 때에 벌어진다(즉, 국가의 보수주의 귀족이 하나님 앞에 공정하려는 의지)는 것이며, 그것이 없을 때는 개인은 신앙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냐? 라면, 그렇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족,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책을 많이 본 사람들은, 다음 세대도 다시 처음에서 시작하지 않도록 다음세대에 전하고 싶다. 그러나, 원불교같은 사탄교인들은 이것을 싫어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말로 진짜로 성경공부할 수 밖에 없다. 성경을 즐겨 읽기 시작하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은 다가와서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