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기독교인들의 정치화는 진리도 잃고 지성도 잃는게 아닌지?
-페친 기독교인들이 이 설명을 많이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보다 연세가 드신 기독교인들은 군사정권 기독교의 설명 방식을 이해합니다.
 
딱 뿌러지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마르크스주의 계열에서 ‘부르주아’사고입니다. 서양인문학에서 동적인 것이 아니라 ‘정적인 것’을 차용합니다.
 
지성인들은 표현을 선명하게 씁니다. 그만큼 변하지 않는 영역에 의존해서 설명합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일반인측은 표현이 모호하고 변하는 감정 영역에 의존합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과거 가톨릭에서 예수 신앙 주권을 내세우면서 부르주아 주권을 내세운 쪽까지 소급됩니다. (가톨릭에도 여러 색깔이 있습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정신주의’를 지향합니다. 서방진영에서 사제 집단의 권력을 반영합니다. 귀족인 거죠.
 
이 시각에서 소외된 영역은 이방기독교 영역입니다. 이방기독교 지대는 전통적인 자유진영 귀족지대의 로마문명과 색깔이 완전히 다릅니다.
 
기독교의 정치화, 정치기독교는 통상적으로 세상과 분리된 초월적 성령 계시가 아니라, 세상속에서 성령 하나님이 임재한다는 신앙전제를 깝니다.
 
물론,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다수는 미국도 평민일 겁니다. 자유진영을 이끈 귀족의 정신주의에 가장 잘 종속된 평민들이 연결된 겁니다.
 
기독교의 정치화로 가면 결국 세상 속에서 삼위일체 공동체로서 기독교사민주의로 갑니다. 그 사이에 중도 노선 어디쯤을 선택하면 복음주의로서 정치참여일 텐데요,....
 
결국, 세상속에서 우리 사회의 사회현상에 삼위일체 성령 계시로서 보여진 세계라는 것을 신앙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물론, 독일 평민들이 그렇게 설명할까요?
미국 평민들이 그렇게 설명할까요?
다, 아닐 겁니다.
 
세상속 정치는 바울서신 목회서신의 예언자 영역이요, 예언자도 결국 강해설교 영역의 일부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받아쓰기 도구이지, 스스로 말 못합니다.
 
여기서, 미국 복음주의자의 경우에서는, 기독교의 정치화는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교가 아니냐? 기후변화 위기등에서 복음주의교단이 동의하지 못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자연계시’는, 나는 그렇게 신앙체험안하는데? 하고 그건 ‘너네 마음속의 주관 아니야’ 하는 일이 있죠.
 
오늘 낮에 김성욱 기자 비판하면서도 하는 말이지만, 한국의 평신도는 기독교의 정치화를 논하면 아예 巫敎로 빠집니다.
 
착각 말아야 합니다.
 
군사정권 기독교는 정치기독교, 좌파기독교를 비천한 류 비슷하게 잘못 설명했습니다. 무교로 설명하는 신앙보다는 말할 수 없이 정결한 신앙이 정치기독교일 겁니다. 문제는 이미 유교붕당으로 한국 사회가 적지 않게 힘든 맥락에서, 그 신앙환경에서 한국교회 맥락인 거죠.
 
요점 : 복음주의 기독교 대 정치 기독교 : 세상성을 무시하고 초월하는 기독교귀족, 혹은 그 연장인가, 그 귀족에 소외된 이방인들이 모인 집단인가?
 
한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대 정치 기독교 : 유교 경전주의 혹은 그에 초월한 무속신앙.
 
서구의 정치기독교는 그 교회공동체의 신앙고백이 중심
 
한국의 정치기독교는 신앙고백 아니라 사실상 씨족이 중심이 됨.
 
한국인들은 군사정권 때는 모두가 들엇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말합니다.
 
다시 하나님이 워찌 말씀하시나 들을때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