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파를 오랑캐로 솎아내는 군사정권 국정교육에서, 한미동맹파를 오랑캐로 솎아내는 1당 독재 역사로 – 김수환 추기경님은 민주화세력이 전략전술적으로 이용한 ‘호구’였는가?
 

 
필자는 유신체제 민주정의당 이현희교수와 김대중체제 역사가 최태성의 평행이론을 내세운다.
 
이현희 교수 역사가에서 왕=대동의 영남유교 가치관과 이에 입각된 오랑캐 배제논리와, 최태성 역사가에서 ‘당파=대동’의 호남유교 가치관과 이에 입각한 오랑캐 배제논리는 그대로 맞물린다. 여기서, 광주일고 조선일보 논리는 ‘전라도 유교’논리에 경상도 사람들의 찬조출연시키고(귀족만 낑겨있지, 경상도 및 비전라도 일반국민의 억울한 억압은 지속) 사회가 다 끝났다고 본다.
 
일반국민은 최태성 역사관의 등장에 맞게 동의한 역사가 없다. 박종철과 연결된 김수환 추기경님의 역사를 긍정하는 한에서, 최태성 역사가의 역사관을 긍정하는게 불가능하다. ‘영남유교 중심’의 파시즘적 배제주의에 반대하며, 예수그리스도 중심의 교회관을 내세운 사람은, ‘호남 동학(호남유교+무당신앙)중심’의 파시즘적 배제주의에 동의가 불가능하다.
 
사쿠라 조갑제기자는 박정희 해석권을 30년 넘게 독점한 분이면서, 5.16을 쿠데타라고 평가한다. 조갑제기자가 박정희 전기 처음 썼을 무렵에는 김영삼 혼자 쿠데타라고 평가했다. 이젠 상당히 많은 숫자가 동의한다. 필자는 5.16을 쿠데타라고 동의하지 않는다.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박정희 해석에 깔린 <공산당혁명가 우상화 논리>자체도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5.16을 쿠데타라고 보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필자는 한국현대사 서술에서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대신에, ‘영남 동학’과 ‘호남동학’이란 말을 선호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적는게 맞다. 사실, 양 진영은 똑같이 동학사상을 가진 양반집단이 중심을 이루었다.
 
민주정의당 시대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영남동학이 ‘천사’가 되기 위해서, 호남동학에 깔린 영남 동학과 섞인 부분은 철저하게 매도가 됐다.
 
지금은 거꾸로, ‘호남 동학’이 천사가 되기 위해서, 영남 동학에 깔린 호남동학과 섞인 부분은 철저하게 매도가 돼야 했다.
 
5.16에 대한 쿠데타란 직설적 평가와 동전의 양면은 이러한 역사 입장과 연결된다.
 
4.19 직후에 김대중 민주당의 조상격인 장면 민주당의 “남로당 민족주의”의 복원 문제가 바른 것인가? 즉, 이승만 정권의 붕괴를 넘어서서, 대한민국 간판의 끌어내림과도 이어진 부분은 무조건 정의로운가? 그 부분을 엎어버린 군사정변은 무조건 불의한가?
 
이는 더 나아가서, 영화 『건국전쟁 2』의 흥행 폭망과 함께 광주일고 『조선일보』에 호남과 제주도 유권자의 심정을 거스리는 부분(도대체, 지금 지배층의 군사독재 유교 중심의 국정교육 비슷하게, 호남동학을 깔고 하는 그 세계관이 심각하게 이해하기 힘들다!!)인데, 여순사건등에 ‘반란’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리는 가치관과, 5.16이 쿠데타라는 가치관은 공존하기가 불가능하다. 원불교인들은 말도 안되는 자기 기준의 엿장수 맘대로를 하고, ‘엿장수맘대로’가 온 세상의 균형이란다.
 
뿐만 아니라, 5.16을 쿠데타라고 낙인찍는 사람들의 속심리에는 사쿠라 ‘조갑제기자’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역사의 바퀴벌레>라는 어법은 김영삼 때 북한 문학사가 대대적으로 국문과에 들어와서, 그래서 배웠던 주체사상의 반동분자 어법임을 단번에 알게 됐다. “전라도 씨족종교”와 “공산당 연결”에서 박해받은 체험을 겪은 이들은, 군사정변을 부정평가는 못한다. 물론, 제2공화국 중심축에서는 그야말로 쿠데타적 사건으로 느꼈을 것이나, 대한민국 국민은 제2공화국 주도층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갑제기자의 조선일보 선배기자이기도 한 ‘리영희교수’의 민족동질성이란 말도, 찰지게 쓰시는 분일 것이다. 조선시대는 원래 ‘전라도’인데 경상도가 왜 패권을 누리느냐? 평안도는 전라도의 꼬바리다. 전라도가 힘을 가지면 평안도는 저절로 복종한다. 김정은은 여기에서 “엿먹어라” .. 자기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세운 일당독재권력은 영원하다.
 
필자는 ‘통일’에 반대하는게 아니라, 지난 30년 ‘정세현 악마새끼’ 짱구대가리에서 나온 동학신앙과 섞이는 모든 형태의 통일담론을 반대한다. 통일을 추구하기 위해서, 남한은 모두 전라도 종족주의여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을 깔고 하는 동학신앙 섞는 모든 통일담론에 이젠 ‘진심으로 지치고 지겹다’.
 
다시 말해서, 통일담론은 동학신자 내부에서는 동학교리의 종말론 실현이지만, 동학 외부에서는 그냥 통일담론은 ‘전라도 공산파 종족권력’의 실현일 뿐이다.
 
그렇다. 군사정권 국정교육 교과서는, 전라도 공산파 양반가문들의 족보 중심 사관으로 바뀌었다. 군사정권 국정교육이 1인 지도자를 강조할 때, 김대중체제는 그들에게 성역 그 자체인 그들의 조상역사로 바뀌었다. 친북 친중으로 영남 중심의 오랑캐놓는 어법은 부당하다. 그들 씨족의 공산귀족이 친북친중이었고, 그들은 조상숭배만 할 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홍준표씨도 법치주의를 통한 시장경제가 작동할만한 사회의 합리성이 아니라, 완전히 영남내부의 호남중화사상에 동의하는 양반귀족 색깔을 드러낸다. 필자는 국민의 힘에 호남양반가문이거나 그에 연관되는 귀족이 오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들의 의사표현도 막히면 안된다. 문제는, 필자의 시점에서 호남 중화사상을 표현한다는 게 놀라운게 아니라, 서양법 질서의 어떠한 사회에 대한 합리적 가치가 완전히 소멸된 것이 놀랍다. 어느 논문에서 기록됐다. 공공적인 사회의 합리성은 결국 어느 누군가의 잣대다. 이게 조선시대 양반감정에서는 무척이나 힘들다. 조선시대 양반감정은 <너는 너대로 떠들어라> <나는 나대로 말할께>
 
조선시대 양반감정을 100% 긍정하면 결국 또다시 동족상잔 논리의 복원 뿐이다. 씨족마다 양반 마다, 각각 우주중심론을 세운다. 게다가, 정해진 자리를 위해 총력전 한다. 여기서, 이를 덮기 위해서 권위주의 독재가 필요하다는 유신체제 캠페인은 안하겠다. 각자의 자기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 자기책임한다는 87년 6월의 약속이, 지역주택조합 홍보관 계몽 비슷해진 거 아니냐는 허탈감이 지배한다.
 
양반 논리가 있으면 시장경제가 되나? 이재명씨의 대장동은 그 “화천대유”기준으로는 무죄다.
 
유신체제는 국정 교육 박정희 전두환만 성역이었다. 성역이 없었다. 김대중체제는 호남동학 귀족연합이 집단 성역이다. 이는 경제적 질서에서 과잉 기득권자로 이어진다. 경제가 버틸 수 없는 과잉 기득권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경제는 공통과업 중심의 협력이 기초인데, 씨족주의 조선시대 중화사상은 누군가 공통과업을 세우는 것은 누군가 남의 양반가문의 개입이다. 조선시대 감정은 남이 세운 논리는 무조건 <믿고 거부한다>.
 
5.16을 쿠데타라고 낙인찍는 분들은, 결국은 전라도와 평안도에 깔리 일당독재 공산당 감정에 상처입은 사람은 없어야만 한다는 어떤 신앙을 깔고 있다. 조선시대 전라도 유교 중심의 사관은 그럴 수 있다.
 
이 모든 논조는 여전히 ‘학문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또다시 30여년 전 김대중진영의 전라도 귀족가문의 제도권 입장을 허락하라는 식으로 본인이 주장할 의사는 1도 없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민주화신화’라는 이름의 지역주택조합사기극 홍보관 계몽 같은 언어에 허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세대에 지치지 말고
다시 예수신앙을 전해야 한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됨을 전해야 한다. 민주팔이들에 복종하지 말고, 기독교민주화운동에 역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