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에서 조갑제기자에 영향력(모두 다 잘못이라고 본다)의 결과로 영웅사관이 유행한다.
군사정권 때 이현희 교수와 더불어 군사정권 역사학을 대표하신 분이 [한국사신론]의 이기백 교수다. 이분은 마지막에 최소한으로 훗날에 기억돼야 할 분을 이렇게 꼽았다.(50집 목차 그대로 복사붙임)
“특집|대한민국을 가꾼 사람들
정치
이승만, 독립과 부강의 기반을 다진 국가창건자|유영익
박정희, 경제강국을 이룩한 혁명적 정치가|한배호
김대중, 긍정 부정의 평가가 엇갈리는 민주주의 지도자|김영명
군사·법률·행정·경제
정일권, 국군의 초석을 다지고 나라를 지키다|남정옥
이종찬, 군의 정치적 중립을 실천하다|이기동
조진만, 제3, 4공화국의 사법부를 이끈 대법원장|최종고
이한빈, 경제관료·실학자로 국가의 초석 놓다|김광웅
유일한, 선각적 민족기업인 유일한|김기원
이병철, 한국을 정보사회 첨단기술국가로 만든 선도경영인|구종서
정주영, 일자리 창출을 선도한 도전적 기업가|이동기
교육·언론·여성·종교
길영희, 교육입국을 위해 지도자 양성에 앞장서다|김학준
신봉조, 오직 한길, 여성 중등 교육에 헌신하다|고혜령
장준하, 애국애족의 언론인, 그 시대의 순교자|계창호
천관우, 국사의 풍모 지닌 언론인, 사학자, 민주화운동가|정진석
고황경, 바른 인성교육을 외친 여성교육의 선각자|이광자
함석헌, 민중 중심 고난사관의 종교철학 사상가|김경재
손양원, 사랑과 화해와 용서를 가르친 한국교회의 지도자|이상규
김수환, 온 국민이 사모한 가톨릭교회의 수장|구중서
구산 스님(소봉호),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되찾고 세계화를 일구다|인경 스님
학술·문화·예술
이숭녕, 현대국어학의 개척자|이병근
김재원, 박물관의 아버지, 고고학·미술사학의 선각자|안휘준
김준보, 한국농업경제학의 거목|윤기중
이태규, 한국 화학의 길을 연 과학계의 큰 별|송상용
현신규,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바꾸다|김윤수
최형섭, 과학기술의 선진화를 이룩하다|김은영
이문호, 한국 핵의학의 선구자|김상태
손기정, 마라톤으로 대한독립을 세계에 알리다|이태진
황순원, 순수와 절제의 극을 이룬 작가|박덕규
조지훈,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민족문화를 노래한 시인|인권환
성경린. 거문고를 가르치며 국악을 지키고 가꾸다|황준연
김환기,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거인|오광수
백남준, 한국을 빛낸 가장 국제적인 예술가|진영선
김수근, 한국 현대 문화예술 부흥의 연금술사|이상림”
조갑제씨는 자기 입맛에 맞는 몇 명만 내세운다. 군사정권에서 이현희씨보다 더 존경 받는 역사가로서 이기백교수가 꼽은 이 수준은 최소한이다. 몇 명 딱 내세우는 순간, 그렇게 조상신 내세우는 의도로 사람을 몰아가는 조선시대 양반의 가스라이팅전략이 그대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에 시작한다.
군사정권 기억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이 분들을 기억한다. 이분들이 존재함을 알고, 유명인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분들이 마치 일반국민에 밥먹여줬다는 식의 기억강요는 아닌데.
유신시대 == 청와대 왕궁사
김대중체제 == 대놓고 헌법 무시하면서 조선시대 저열한 선비놀음.
근대국민국가로서 법치주의와 수렴되는 역사관에 영화 [건국전쟁]은 코어엘리트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오직 국가주의가 국가란 이름으로 기억 유도하였듯이,
이제 영웅 중심의 조상신 기억으로 기억 유도한다.
그런 의미의 양반정치다.
여기에 연결되는게, 과연 “경제”일까?
변형윤 박현채는 그렇다고 한다. 아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일본헌법용어이며 독일 기본법 용어다.
독일기본법은 히틀러 파시즘과 싸운 독일인들이, 파시즘체제와 스탈린주의의 공통질서를 발견하며, 두 번다시 자유진영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여기는 파벌의 승리의 역사다.
독일제국시민 1만명 집결로 독일기본법 이전 회귀 귀족욕망을 내란죄 판결했다.
원불교(사탄교) 백낙청은 대한민국 건국이전 남로당 인민공화국의 이승만진영 공격사를 복원한다. 독일연방 헌법재판소 판례로 수천억만번 내란죄인 원불교 백낙청 파벌이 헌법이라고 주장하며,
위헌정당해산심판권도 스탈린주의적인 내용에 행사인데, 스탈린주의 조상님을 가진 호남 동학이 그 조상과 무관한 영남에 운운할 수 있을까?
제일 미치고 팔짝 뛰는게 그것이다.
보수진영에 경제학에서 이름있는 분이,
물론, 이해는 간다. 영남 사람일 수 있고, 군사정권을 그리워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그분을 통해서 경제를 본다.
기독교인을 통해서 일반인이 성경의 하나님을 인식하듯
그렇게 영남씨족주의를 경제학자 신분으로 말해도 되나?
특히, 원불교 백낙청은 경제를 꼭 박헌영이의 8월 테제 모드로 바꾸려고 한다. 백낙청 용어는 의도적으로 ‘발본적’으로 시장경제를 넘어선다고 한다. 시장경제를 뽕빨 내자는 말이다.
승자의 질서로 기록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인데, 영화 건국전쟁 팀은 질서 무너지는 것은 상관없고, 이승만 라인에 줄선 영남 동학 잇권만 바라본다.
물론, 이런 식의 불화관계는 ‘복음통일노선’--교회 내부의 동학신앙과 종교혼합 짬뽕 노선에 타협—과, 무슨 소리인고? 하는 필자와 모순도 연결된다.
그냥, 심플하게 하나님 앞에 ‘약속’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