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건국전쟁’의 ‘국가’는 헌법의 국가가 아니라, 조갑제기자의 ‘국가’로 고대 부족국가의 시대착오적 부활을 전제한 개념이다. 뿐만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책 읽었다 하는 사람들은 군사정권을 파시즘이라고 설정하고 나온 수많은 서양사상 번역서를 안 읽을 수 없다. 필자는 일관되게 그 책은 지금과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지, 유신시대로 그렇게 적용하면 맞는 부분이 살짝 있다 해도 상당부분은 안 맞는거 억지라고 보았다.
영화 ‘건국전쟁’ 팀과 사쿠라 조갑제기자 세력들은 1930년대를 다룬 서양사상서들을 모른다.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건전한 자유민주 시민은 아는 사람의 등판길을 열어둘 것이다. 그러나, 한글을 쓰되 조선시대 권력놀음을 하는 분들은, 아는 사람의 등판길을 다 틀어막을 것이다. 필자만 안다고 논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사상공부를 30여년 공부해온 내 또래들은 김영삼 믿고 인문학 시작했다. 좌파들에 까이는 것은 그렇다 치지만, 사실 진짜 서러운 것은 영화 [건국전쟁]팀과 사쿠라 조갑제 기자 사단 같은 행위다. 그들에게 민주정의당 때로 소환하는 것은, 민정당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들은 신군부를 실제로 소환하는 의미로서 지만원을 극히 싫어할 것이다. 군사정권에 가까웠던 대구경북 동학을 싫어할 것이다. 그 시절의 기억이 필요한 것은, 과거 기억 속에서 그 시대에 기득권을 가진 특정 귀족층의 ‘지식/권력’을 위하는 수단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원불교(사탄교) 백낙청 사단의 문화 패권이 자리한다.
영화 ‘건국전쟁’팀과 사쿠라 조갑제기자 사단은 원불교 백낙청 사단의 분단체제론 비판이 1도 없다. 그들의 문화패권 안에서, 정말로 군사정권에 어쩌다가 근무 라는 측면을 전략적 자산으로 띄우려는 과거 묘사로 나타나면, 지금 현재가 얼마나 위험한 시대인가를 설명하는 지식의 등판은 다 막히게 된다.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개새끼’처럼, 혹은 돈키호테처럼 과거를 연상시키는 어법에, 저학력 사람들은 낚일 수 있다. 조상숭배문화에 언제나 끼는 문제다. 그렇게 해서 영화 ‘건국전쟁’ 내러티브를 실제로 믿어도 문제다. 지금 패권을 차지하는 원불교(사탄교) 백낙청 사단의 악마집단에 처절하게 짓이겨지고 밟힐 것이다.
어제도 밝힌 바 유신체제 권위주의 경제와 유교권위주의가 연결이고, 김대중체제 부동산 부채공화국은 부채를 져서 고통은 너네 일, 자본계정으로 잡혀서 이익은 우리 일. 이렇게 나뉜다. 두 경우 모두 기독교국가에서 윤리적으로 하면 안되는 일로만 반복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 경제유튜브들의 바탕정서가 통하는게 있다. 공적 가치는 구경꾼이고, 한국의 단세포적 폭락론자와 미국의 자국 시스템에 대한 혐오에 기반하여 다른 나라는 더 낫겠지 하는 소아적 생각이 붕어빵처럼 닮았다. 필자는 남한의 반미론자처럼 미국 민주당의 공화당분석을 실제로 쓰지 않는다. 그 방법론은 오히려 한국의 원불교(사탄교)에 기반한 무속신앙에 세뇌된 한국 국민에 더 잘 맞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더불어 민주당의 메인정서로서, 원불교(사탄교)귀족의 이익을 최대치로 바라보고 나머지는 어떻게 되겠지. 여기에 꼽사리 끼고 국민이 원하는 일은 1도 안하는 영화 건국전쟁팀과 사쿠라 조갑제기자 사단도 비슷한 정서다. 모두 부채가 너무 많아서 나타나는 글로벌한 ‘이성의 폭망’현상이다.
물론, 필자가 등판하고 싶고, 그게 고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는 꼬진대 국문과 나왔다. 영어 원서로 한권도 완독한 책이 없다. 모두 한글 서적 읽었다. 다시 말하면, 각 분야에 의견을 들어봄직한 전문가를 수도 없이 접한 입장이란 이야기다. 지금, 아무도 등판이 안된다. 그것을 논하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의제가 권력을 쥐고 싶은 기득권자의 조상숭배사만 나오지, 지금 글로벌한 현재 이슈와 연결이 안된다.
군사정권 국가주의 국정교육에도 이 정서로 분노했다. 그런데, 지금은 분노유발하는 원불교(사탄교)귀족연합이 다르면서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보수진영에 학문의 자유는 다 틀어막고, 원불교 백낙청 사단에 싹다 그 영역을 퍼주고, 이승만 이용사업 박정희 이용사업으로 그들의 특정한 귀족파벌의 권력 위한 과거묘사(실제의 과거가 아닌)만 남는다. 이 판국에 대공황 조짐이다.
아무것도 안해도 돼! 저절로 4:3:3 운운하는 어법은 김영삼 때도 들었고, 일베정게에서 ‘왕후장상 씨종자’ 유저에게서도 최근에 들었다. 기독교문화에서는 양떼를 이끄는 목자로서 양의 목소리를 듣는 목자가 지도자다. 그러나, 노론 양반은 노비새끼 걱정 안해도 돼! 이게 실제 의미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에게 영화 ‘건국전쟁’을 진짜로 보지 마시고, 경제유튜브 1분이라도 더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향후 몇 년간은 국제정세를 국제적 시각으로 영어권 국가 유튜브를 직접 유튜브 번역자막 키우고 청취하시길 바라고 싶다.
보수국민 눈가리고 감투자랑하는 노인들. 그냥 제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