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의 재인식 – 美中 통화패권전쟁은 ‘제2의 6.25 전쟁’이다.
  • -한국전쟁”이라는 사람은 ‘위안화 패권’~‘달러붕괴’론자-
 
 
필자는 꼬진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역사소설’과 ‘사극’을 전공했었다. 고로, 필자의 제도권 첫 학위논문이자 마지막 학위논문인 6.25 전쟁과 관련된 전후 문학을 다룬 내용이다. 100쪽이 안되는 석사논문인데, 그 당시의 박사논문 3개 분량의 참고문헌을 달았었다. 이런 이유로 이 주제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자료’의 팔로우 업을 해 왔었다. - 한국사회에서는 ‘학위를 받지’ ‘학위를 딴다’는 개념을 허락하지 않는다. 석사 때 가톨릭 신앙을 가진 전후문인이었던 석사때 지도교수님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몇 명 안되는 ‘학위를 따는’(창의적 학설-보수와 진보 자료 모두 총합) 감사할 혜택을 입었다.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계실 그 분께 너무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돌이켜보면 현재까지 살아온 시간 동안에, 그분의 밑에서 논문을 준비하던 시간이 정말 행복했었다고 기억된다.
 
6.25가 다가오면 ‘한국전쟁’과 ‘6.25’ 중에서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논쟁이 붙는다. 필자는 경제유튜버 ‘슈카월드 전석재’가 사용할 때와, 그라운드 C 김동현대표나 사쿠라 조갑제기자가 사용할 때를 달리 본다. “그라운드 C 김동현 대표”가 한국전쟁이란 말을 쓸 때, “이놈이 정신이 있는 놈인가, 없는 놈인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경제유튜버 전석재씨는 이런 주제에서 행간까지 읽으라는 요구를 안한다. 강원도가 낳은 경제유튜버 슈카월드 전석재씨보다도 더 오른편으로 사회적으로 간주되는 경상도 사투리를 대놓고 쓰는 보수성향 경제유튜버가 한국전쟁, 그래도 모르고 저렇게 말하지 싶다. 그러나, 보수 정치 유튜버 김동현씨가 모르는 것은 굉장한 문제다.)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부르스커밍스의 책이 있다. 한마디로 남로당과 여운형을 중앙에 넣고, <이승만 개새끼, 미국 개새끼> 하는 책이다. 그런 생각을 표한 커밍스는 미국 민주당 좌파이면서 미국인이다. ‘미국의 소리 방송’(VOA)는 한국전쟁이라고 쓸 수 있다.
 
거듭 밝히지만, THE KOREAN WAR는 한국전쟁으로 직역되지 않는다. 미국인에게는 ‘고려인전쟁’으로 한반도 거주 종족개념으로 바꾸어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강조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외국인들이 그 용어를 쓰는 데는 중립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르스 커밍스’ 이 새끼 본인의 문제다.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어 사료’를 읽는다면, 당연히 한국어를 한국인만큼 (혹은 더 잘할 수도) 읽었을 것이다. 커밍스에게도 ‘영어’기준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커밍스 본인의 주장으로 드러나지만,
 
김일성 남침에 대해서 엿먹으라는 의미로 모든게 미국과 이승만 탓으로 전가하는 의미로서 ‘한국’을 박는 의미다. 대한민국 공식 표현은 한글로는 ‘6.25 전쟁’ 영어로는 ‘The KOREAN WAR’로 적혀 있다. 한글로 ‘한국전쟁’이란 정치유튜버 보면, 이놈이 생각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댓글로 정신 바짝 차리게 달아보시라.
 
그러면, 커밍스는 왜 미국 개새끼 이승만 개새끼 감정으로, 북한 김일성 남침론을 깨고 싶었나? 커밍스 논리대로라면 군인이 하루에 200킬로씩 7일을 행군해야 됨을 전제한다고 말이 안된다고, 북침론을 깬 정치사학자(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2])가 있었다. 경제유튜버들의 미국사 분석에 의하면, 베트남전은 어마어마한 미국경제의 경기침체를 불러왔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유영익교수의 90년대 초반에 간행된 ‘수정주의 비판’ 내용에서, 더 나아간 해석을 할 때가 됐다.
 
사실, 60년대 베트남전 반대 운동과 80년대 후반의 공산권 붕괴는 연결돼 있다. 동시에, 60년대 베트남전 반대운동은 1930년대 히틀러시대와 연결돼 있다. 히틀러 시대에 자유를 갈구하여 미국에 이민가서 독일계 유대인들이 미국 민주당 성향의 분들과 연합하거나 눌러 앉는 경험과 이어진다.
 
유영익 교수의 수정주의 비판 학설에는 다분히 ‘한미연합세력’ 정통론 입장에서, 미국 민주당을 오랑캐로 보는 듯한 시각이 있다.
 
우리는 ‘윤석열씨’의 비상계엄(경상도 유교)과 내란죄 재판(원불교 박지원 중심의 전라도 종족주의로 반동세력 재판)을 통해서, 6.25전쟁 당시를 얼마든지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표현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 현대사로 6.25전쟁 회상버전은 최소 3가지 버전이 가능하다.
 
① <윤석열씨 비상계엄 긍정 버전> : 일제 강점기 좌익 출신→ 이승만세력에 붙어서 남로당 인민공화국 강경진압 → 유신시대까지 이어지고, 미국 민주당과 독일사민당이 민주정의당을 고립으로 빠뜨리기까지 강경모드.
 
이 기준의 한국현대사에서는 이승만세력의 공산군 섬멸 역사다.
 
②. <비상계엄 윤석열씨를 내란죄로 정죄하는 원불교 박지원-원불교 백낙청 연합 버전> : 일제강점기 좌익 출신→ 일제 강점기에 소련돈 먹었으니까 소련편들야제, 1928년 조선공산당 해체 이후 중국모택동과 쌍쌍파티 했으니까 중국 똥꼬 빨아야제. 이 기준으로, 매우 억울한 피해의 역사다.
 
③. 일반국민(민중)의 현대사 : 한반도는 공산세력의 꺼야 해! 하고 그 엄청난 폭력행사하고 → 부역자는 다 처단해야 해! 폭력하고→반동분자는 다 처벌해야 해. 폭력하고..... 원불교(사탄교) 동학신앙을 볼셰비키 혁명의 바탕종교로 쓰는 상호간의 동족상잔의 폭력의 순환이다. ([마을로 내려간 한국전쟁]이 필자의 시각과 가장 가까운 기존 서술이다.)
지금 제도권 학술계는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박정희 책장사 및 박정희 이용사업~이승만 이용사업을 뺀 나머지 전부를 원불교 백낙청 사단의 문화독재에 넘겨 줬다.
 
윤석열씨는 의회독재 라고 울분을 표하지만, 문화헤게모니(패권)은 일제 강점기 남로당 인민공화국쪽의 독점으로 하고, 안동유림 정신으로 영남 유권자가 고통겪든 말든 귀족상층만 영남의 법적 부인의 고통을 몰라하는 영남봉건남성처럼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2010년 이후의 복음통일을 기독교언어로 인정하지 않는다. 윤석열씨의 비상계엄이 경박했고, 한국에 자신들의 친구적인 좌파 기독교 있다는 착각의 미구 민주당의 개입에 그냥 지만원처럼 자진 들이박고 몰락하는 측면이 있는데, 윤석열씨를 정죄하는 사법부에 딱 더도 덜도 아니라 말은 서양법인데 하는 짓거리는 6.25전쟁 때 인민재판식 어법이 보이는 것을 외면한다. 2010년 이후의 한국교회 복음통일은, 비운동권으로 운동권들에게 영혼탈곡기로 박멸되는 엑스 세대 보수주의자의 30년 넘는 피눈물 세월은 외면된다. 오직, 개정일 개일성 개정은에 대한 용서가 앞선다. 그들을 증오하지 말란다. --그래서, 원불교(사탄교)가 악의 심장으로 다시 보인다.
 
김대중 체제(지난 30년)의 모든 복지체계는 원본 모델이 박헌영의 ‘현정세와 우리의 임무’(8월 테제)다. 경제민주화 어법은 김대중의 민족경제론이고, 그 김대중 담론은 박현채가 지적재산권이며 박현채가 그쪽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민정당 반공교육에는 선명히 나온 게, 당 국가권력을 위해서는 무한대의 선물보따리가 필요한데, 그게 쉽게 바닥이나니까, 그 다음부터 약탈전쟁 모드로 간다. 소련군도 쉽게 약탈모드로 들어섰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난 30년동안 사쿠라 조갑제의 박정희 책장사와 원불교 백낙청의 문화장악에서는 이런 말자체가 서지 못하게 된다.
 
스크롤의 압박 때문이라. 바로 글의 종결을 위한 요점정리로 나아가자.
 
6.25 전쟁은 熱戰이다. 실제 전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이 휴전이 된 후에, 남조선 혁명론이란 게 있었다. 김신조 사태로 유명한 남한에 폭력혁명 직접 수출론이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 김일성의 고려연방제가 있다.
 
그 다음에,.....
 
1990년 김일성 문익환 목사 만남이후에, 주체사상의 남반부 침투가 아니라, 원불교(사탄교) 백낙청 세력이 와꾸를 잡으면 북한이 추인하는 구조로 갔다.
 
남로당 세력(민주주의 민족전선)은 월북하여 조국통일민주전선이 됐다. 북한의 대남공작 주축이었다. 김정은은 이를 해체했다. 주체사상 김일성 고려연방제의 국가연합 모델에 대한 완전 폐기와, 그냥 북한 김정은 공산당이 갑이다. 남한은 무조건 꿇어야 한다고 본다.
 
북한 김정은은 김일성 문익환 이후에 나타난 종북 친중좌파의 흐름과 멀어졌지만, 원불교 백낙청은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높이기리는 창작과 비평의 명예회장일 것이다.
 
베트남전을 통해서 미국내부의 미국몰락론이 가장 드셌을 때, 그때가 아시아권에 모택동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그 무렵부터 상당기간 친중좌파의 두목님은 조선일보의 리영희기자였다. 6.25 전쟁 이후에 남한에 남았던 모택동주의식의 민중민주주의 세력을 중국은 소환함과 동시에, 아시아권에 그런 이들을 소환했다.
 
민주정의당 반공교육에서 노무현 때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명백히 틀렸다고 주장된 내용이 있다. 또, 트럼프의 ‘차이나=코뮤니즘’논리로서 깨진 게 있다. 꼭, 한국에서는 공산주의 악행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외부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아니다. 중국 본토의 중국경전 읽기와 전라도식 중국경전 읽기는 공산혁명 레닌 스탈린주의를 비웃는 어마어마한 폭력과 피비린내 내용이 담겨 있다.
 
통화패권으로 양다리 치는 한국재벌은 6.25전쟁 때 김일성 남침로 열어주는 것의, 시즌 2로 밖에 안 보인다. 통화패권 양다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진보의 예수님 믿는 국가는 중국사상을 아예 모르거나 무관심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사도행전적 공동체 일원이란 착각한다. 그게 허구라는 사실은 한국인이 모를 수가 없다.
 
결국 요지는 이러하다.
 
“6.25전쟁”--> “남조선 혁명론”---> “고려연방제” ---> 김일성 문익환 만남 이후 남한의 변형에 북한도장찍기 체제. 여기서 원불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이 나왔다.
 
주체사상의 주도 없고, 마르크스의 마도 없는데, 전라도식 씨족종교 대동세상 안에 중국공산당을 넣는 의미의 신화화로, 그 상상세계가 아닌 실제 세계는 중국 시진핑 똥꼬 빠는 전제로 국민기본권 팔아먹는 것을 깔고 있다.
 
1930년대는 슈펭글러 ‘서구의 몰락’이었고, 지금은 레이달리오의 미국 망한다 논리다.
 
전쟁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하나의 국가공동체의 다 걸기 문제다. 위안화 패권은 중국식 지배질서로 호남 동학파는 ‘유공자 집단’의 집단기득권의 성립을 보장하는데,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양법으로 보장되는 모든 권리의 침해를 영구화한다.
 
미중통화패권전쟁에서 원불교인들의 로직이 중심인데, 그 로직의 뿌리는 결국은 6.25전쟁때 소련 줄 섰다는 자들의 유교의리론으로 복수론이 깔려 있다.
 
필자는 비상계엄 옹호파의 시점이 아니다. 미국 민주당이 중국식 반동재판을 번성하게 한 측면은 잘못 아니냐?
 
이재명정부는 페미니즘에 있어서도 진보의 예수 신앙 아니고, 엽기적 부채탕감도 진보의 예수신앙 아닌데, 마치 중국인들이 미국중심의 접경지대 사람인 것처럼 보고, 진보의 예수신앙이 논하는 구약신앙의 유대율법을 지키는 양 보여주기로 가증스러운 생쑈를 한다. 이재명대통령의 신앙은 대순진리교요 진보의 예수신앙 자체가 아니다.
 
유신체제처럼 국란극복을 위한 독재옹호론은 아니다. 누구에게 다 맡기고 신경끄는 것은 폭정에 노예가 되는 것일 뿐이다. 국란극복을 위한 투명한 이성언어로 국가공공성의 공론이 필요할 때가 됐다. 국방비의 대폭증가는 누구 무기 사주는 문제가 아니다.
 
지나놓고 보면, 미국사는 여러 위기를 극복하면서 문명의 세대전승을 이루어 왔다. 한국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족복음화신앙은 갱신돼야 한다. 다시 하나님과 신명기적 계약관계가 복원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