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왜 ‘그리스도’의 계절 아니라, ‘정도령’의 계절을 부르나?
-조선공산당 연결된 부족마을에 대한 환상 안에 성령 하나님 있다?-
 
 


필자는 통일에 찬/반이 아닙니다. 실향민 2세로서 당위로서 통일에 반대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통일담론에 대하여 ‘지역주택조합사기극’과 똑같은 논리 패턴으로, 국민에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해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횡령당하는 게 진짜인데 건물 짓겠다는 외형의 계약으로 무수한 피해자를 양산한 지역주택조합 사기처럼, 한국교회는 동학신앙에 의존하여 한국교회신자에 명백한 피해를 주는 것이 논리적 미래인데 그렇지 않은 듯 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입니다.
 
<희미해지는 통일담론>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통일담론이란 ‘진리’인가? 라는 종교현상학적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심자체가 불가능한 노예들의 주인이 믿으라면 믿어야지 말이 많노? 하는 세계가 있다면, 통일담론이라 불리는 개벽신앙이 어떤 신앙인가? 하는 종교해석학적 분석의 세계가 가능합니다.
 
유신시대에 공권력 남용과 고문수사 문제가 모든 미디어가 안 다루었습니다. 철벽 방패였습니다. 김대중체제는 개벽사상이 ‘자릿싸움’에 얽힌 종족싸움이며, 법치 시장경제에 정반대라는 사실에 철벽방어와 논함이 금지가 되고 있습니다.
 
조갑제기자가 ‘반탄파’를 친일파로 불렀습니다. 그 이면에는 자신만이 부족에서 地主라는 환상을 전제합니다. 자신에 말 안듣는 이들을 정죄해야 한다는 중국식 부족주의, 이에 연결된 소련 공산당의 반동분자 척결로 이해한 관습이 이어집니다. 물론, 조갑제기자는 자신과 연결된 사람 안에서 ‘권력’을 꿈꿀 겁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조갑제기자에게 무릎꿇는 세상은, 조갑제기자에겐 온 세상이 혼연일체로 자신앞에서 질서지운 세상으로 보일 겁니다.
 
 
김대중 김정일의 6.15도 그렇게 전두환 노태우를 보내버렸다는 전제.
노무현 김정일의 10.4도 한나라당 보내버렸다는 전제.
문재인 김정은의 판문점 평양선언도 이명박, 박근혜 보내버렸다는 전제입니다.
 
윤석열씨를 보냈으니, 이제 승자 부족이 조선왕조 조정에 영구히 숟갈꽂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게 ‘통일’이었습니다.
 
필자가 매우 의문하는 것은, 2010년 이후의 복음통일은 한국교회에 속한 옛날에 동학양반쪽인 분이, 오직 성경의 예수님만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자에게 피해가 감을 알거나 알 수 있으면서, 작심하고 동학교단 꼭두각시 하는 문제입니다.
 
소련공산당의 유대인 박해
히틀러 파시즘의 유대인 박해
 
이 유형에 대해서 한국인들은 소련 공산주의도 필요없고, 히틀러 파시즘도 필요없습니다. ‘원불교’(사탄교)동학신앙이 소련공산주의도 되고, 히틀러 파시즘도 됩니다. 동학신앙 자체가 1당독재로 권력화한 전라도 양반가문의 지배전략과 밀접합니다. 그 1당독재가 조선공산당으로 변한 겁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교회법-민법-보통법이 생활관계를 규정하는 자유진영 국가시스템입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 사쿠라 조갑제 주도에 한국교회가 영향받는 게 정착된 이후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말도 사라집니다. <자유대한민국>이란 조어로 <사쿠라 조갑제 엿장수 맘대로 대한민국>입니다.
 
한국은 가계부채 공화국입니다. 어제도 밝힌 바 노무현의 10.4와 얽힌 귀족밥그릇 확장 때에 그들의 욕망들어주는 민중층의 부채유도와 연결됩니다. 아무도 의심안하고, 노무현의 국토균형발전은 노무현 만 믿습니다. 문재인의 평화경제는 문재인만 믿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조선왕조 농민노예로 되돌려서, 양반계급에 의심없는 수동상태로 ‘복음통일’담론이 나온 겁니다.
 
원불교 백낙청 분단체제론에 대한 심포지움은 광주일고 조선일보에도 없습니다. 복음통일이 깔고 있는 동학세계관이 왜 보수의 예수 및 진보의 예수 등 모든 조직신학 정상논리와 안 맞나의 심포지움도 없습니다. 무조건 믿으라카이! 양반이 설정하면 노예놈은 믿어야지!
 
중국식 지배체제의 1인독재가 만드는 음지로 박종철 문제를 낳았습니다.
중국식 지배체제의 1당독재가 만드는 음지로 윤석열 박근혜 정치탄핵이 있고, 부정선거가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계절을 부르던 민족복음화운동에서 변질해서, 정도령의 계절이 그리스도의 계절인양 논하는 신앙 훼절 상태에서 벌어진다고 봅니다.
 
민족복음화운동 때는 샤머니즘은 부정대상입니다. 지금은 샤머니즘은 조갑제의 경우, 공산당 언어로 친일파 정죄를 쓰면서 자기가 자유민주라는 말장난의 비논리를, 조선왕조 노예놈은 모순이며 기망적인 어법이라도 다 들어야 한다는 전제로, 사머니즘의 포용성이란 궤변으로 나타납니다. 조갑제 세계관 연장선에서, 복음통일은 하나님 나라 공동체 파괴인데 듣보 평신도 너네가 ‘내부총질’하며 성경의 진리를 바로 세우겠느냐?
 
사실, 박원순의 도시농부 사업 등 도시 사회에서 농촌식 두레 문제로, 도시 사람들도 농촌 부족주의를 그리워하라는 강제 세뇌문화에 있습니다. 이 최종결말은 결국은 한국교회 박해이고, 동학교단에 속한자만의 잇권입니다.
 
중졸 이하 70대 중반 이상 초고령 노인들은 동학신앙도, 조직신학 보수의 예수, 진보의 예수도 분석결여입니다. 아랫세대는 분석가능합니다. 이젠 충분한 데이터가 깔렸습니다. 하나님을 사기치고 이웃을 사기치고 세계를 사기치는 전략이 맞습니다.
 
다가올 한국의 경제위기는 하나님과 계약을 사실상 깨뜨린 죄악 때문에 다가옵니다. 자본주의 정신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이지, 원불교 윤리나 무속신앙 윤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보수진영의 사람들은 아는 사람도 없고, 지적을 하는 자의 등판길도 막혔습니다.
 
농촌과 조선공산당이 함께 한, 주체사상도 마르크스주의도 유럽공산주의 없는 순수한 동학의 세계, 그 세계에 문준경 전도사는 순교당하고 무수한 한국교회 신자들의 박해가 있었습니다. 한국땅에 기독교박해는 문맹 농민의 후천개벽신앙이 볼쎼비키 혁명처럼 작동하는 속에서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