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식 신분노예제’에 젖어야 통일이 온다는 ‘조갑제 세계관’을 극복해야, 전라도 사대부 연합과 영남내 전라도 꼭두각시들이 만든 정치적인 윤석열 탄핵을 극복하여 한국의 보수주의를 부활시킨다.
 
 
필자는 ‘찬탄/반탄’ 대립구조가 ‘전라도’에 ‘경상도’가 노예적인 종속상태로, 노론독재에 얽혔던 영향이었다고 분석한다.
 
역사가는 과거의 내용을 자신의 머리로 완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식으로 살려내는 것이라고 한다.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표현에 없는 뜻일 텐데, 한국의 대학가는 꼭 카아의 역사철학을 양명학적으로 해석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미국 및 영어권 자유진영 전체를 소개해준다. 꼭, 30여년 전 20대 초반에 대학가 풍경과 비슷하다. 트럼프진영은 레이건 때 반공교재 중심이고, 트럼프에 저항하는 민주당은 한국의 학생운동권 담론을 소개한다.
 
필자는 레이건 반공논리를 구사할 때, 순수한 논리 연속은 어렵고 한국인이 믿는 신앙 안에서 <법, 규칙, 규범>을 준수하는 약속문화를 강조함이 옳다고 네이버 블로그에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작금의 미국 민주당은 미국 백인귀족중심과 연결된 노예제 삶의 문제로 제기하며, 자본주의 관계에 깔린 노동/자본관계는 결국 노예제의 잔재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에 그런게 어디있나?
 
유신체제에서 흔했던 노동/자본 관계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대결’이란 노래에 담겨 있다. 자본가는 국가종속이 하나의 권력을 이루고, 이에 기반하여 윽박지르는 게 상식화됐었다. 이때 상명하복론으로서 ‘충성/반역’논리가 지배됐다.
 
그 시절의 하나의 상품됨은 국가의 인증이었다.
 
김대중체제 지난 30년 노동/자본관계는 법 위에 특권을 이루는 일당독재 귀족에 ‘어느 줄에 설레’라는 의미로서, 줄 타는 문제다. 유신체제에서 이익은 오직 박정희, 전두환 줄 하나만 있다면, 김대중체제는 무수한 줄이 있다는 이야기다.
 
지방자치의 보증이 무위험이 되고, 그 지방자치 문제는 윤석열 정부 3년간 설거지하다가 좌초된 문제는, 하나의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얼마짜리 노동>으로서 ‘노동/자본관계’가 아니라, 원불교(사탄교) 후천개벽으로 권력을 차지하면, 상대측을 끌어내리고 모든 것을 상대측에 받아내는 지배종족으로서 우위를 누린다는 가치관이다.
 
필자가 88학번 장동혁 의원에 별로 기대감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갑제기자가 김영삼 정부 이후에 등장한 영웅신화를 동원하고, 이성논리를 쓰지 않는다. 조갑제기자 생각자체가 전라도 패권주의에 종속되는 이데올로기를 깔고 있다. 조갑제기자 생각자체가 전라도 유학의 논리에서만 가능한게 자주 나타난다.
 
자유민주주의는 딱 잘라말해서 ‘고학력 지성’이 중심을 잡는 문화다. 소련-중국-북한식 인민민주주의는 반대적으로 노예적 감성을 가진 대중다수가 권력을 쥐는 문화다. 미국 민주당 및 EU는 그 중간쯤 지점에서 민중의 감정을 중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이성을 찾는 문화다.
 
사쿠라 조갑제기자 세계관 안에서 ‘한국 영웅신화’가 대량으로 발산한다.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이 조선공산당 문화와 얽힌 신간회운동에 배경인 이유는, 이제는 훤히 감이 잡힌다. 조갑제기자 추종자들의 대부분은 ‘경제’에 완전히 무관심하다. 이재명이 신적 주술로 다 한다는 가치관이다. 이런 무속신앙에 영웅신화적 사고를 장착해야, 남북회담을 둘러싼 ‘지도자’끼리 대화로 천지를 창조한다는 민족신화의 황당한 논리로 들어간다.
 
윤어게인.... 표현 부터가 이미 전라도식 조선노예 문제를 상기시킨다. 필자처럼 ‘비상계엄에 묻어있는 경상도 종족주의’가 불법이란 사법부에 진동하는 ‘전라도 종족주의’의 미치광이 수준 문제라는 분석은 없다. 조갑제 기자 등장 이후에 모든 보수세력의 언어는 중졸 이하의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신앙’ 저능 노인 수준에 맞춰졌다. 물론, 전라도 동학파도 동학세계관이 질린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동학을 잘 모른다. 민주당이 그래도 서양인문학의 명분론의 표현을 안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구경북의 동학노인은 ‘극우!’가 절대 절대 절대 아니다. 극우, 극우 하는 것은 사쿠라 조갑제기자가 대구경북 동학노인 중의 노예계급출신을 갖고 노는 표현이다. 트럼프가 윤석열을 꺼내준다는 발상은 ‘극우’가 가지는 생각이 아니라, 영남의 노예계급의 미국을 청나라로 아는 지적 착오라고 봐야 맞다. 사쿠라 조갑제기자가 박정희 전기를 김영삼 정권에서 유행시킨 이래, 보수진영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지식을 홍보하는 것을 유신체제 용공지식인처럼 틀어막았다.
 
현실 상황을 요약하자.
 
① 영남 동학 노인 – 자유민주주의 이성어법을 다 잊고, 동학 어법만을 가진다. 그리고, 전라도 동학과 형평성을 생각한다.
 
② 보수층 일반인들 – 동학을 잘 모르니까 귀찮아진다. 호남동학이 서양어법 속에서 전라도 종족주의를 박아넣고 쓴다. 이를 아무도 비판안하니까, 그냥 속아버린다.
 
③ 전라도 동학 노인 – 영남 동학은 무조건 밟아야 한다. 자리는 전라도 귀족 독점이다. 그리고, 보수층 일반인을 사쿠라 조갑제기자 통해서 원격조종하여 민주당 독재를 유지해야 한다.
보수진영에 없었던 사고 유형인데, 사쿠라 조갑제기자가 박근혜 탄핵 때 세뇌교육으로 심어준 논리가 있다.
 
원망대상을 꼭 외부로 축출하여 속이 깨운~~해지는 상황을 긍정하는 것이다. 이것도 농민노예 심리다.
 
융의 심리학에 ‘집단무의식’이란 개념이 있다. 유신시대는 이를 성공적으로 틀어막았다. 조선공산당 세계관이 전라도 동학에 있고, 이를 강화하면 기업이 안된다는게 당시 지배층 생각이다. 지금은 민주당은 물론이고 국힘안에서도 ‘전라도 동학 노예’를 대량으로 복원했다.
 
윤석열 탄핵은 유신체제 김대중 재판처럼 종족주의 정치재판이다. 그런데, 윤어게인(우리는 윤석열의 노예입니다) 표현에 젖은 차원으로는 절대, 절대, 극복할 수 없다.
 
90년대 운동권들은 김대중세력이 영남 중심의 문화 매트릭스에 갇혔다고 보았다. 지금은 전라도 중심의 문화매트릭스에 이미 갇혀 있다. 한자문화권의 유교의리만 몰두하면, 그냥 하는 족족 장렬한 전사가 반복된다.
 
필자의 논리를 따라온 사람들은 실감할 것이다.
 
북한공산당은 소련 및 중공의 주입. 그런 공산당 문화는 한국에 없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 노론 세도정치, 혹은 전라도문화의 연장편인 평안도 씨족종교의 산물이며, ..... 공산당의 당성은 전라도식 일당독재 종족주의가 이면에 깔린 것이다. 전라도 일당독재에 싸운다면서, 그 이데올로기를 안고 가는 길을 언제까지 하려나?
 
찬탄/반탄을 나눌 실익은 없다. 주몽신화에 나타난 논리처럼 마지막 소수때까지 최대한 싸우고, 조그만 땅덩이 속에서 농민노예로 사는 삶은 자유민주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정치는 권력 획득이 목적이며, 권력 이데올로기에는 사람을 부르는 낚시로서 종교와 신화적인 것이 꼭 존재한다. 통일담론은 조선공산당에 줄섰던 귀족들 중심으로, 일반인들을 노예로 모으는 어법이 지배한다. 여기에, 한국교회가 주례를 서는 것이 ‘복음통일’이라서 부정한다.
 
보수진영은 조갑제 기자의 박정희 책장사 이후 금지당한 보수진영의 이성어법을 복원해야 한다.
 
영웅신으로서 장동혁을 믿어라 하는 어법에 속는 사람은 중졸이하 동학 노인 뿐이다. “독재”란 권력은 온 세상에 깔린 지배이데올로기 해체를 진지하게 연구할 때만 부서진다. 1명의 정치인이 들이박아서 깨진다면, 그 권력은 독재가 아니다. 대중들을 노예로 보수층 상당수에도 전라도종족주의로 세뇌를 하는 상태를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