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노인이 생각하는 <그 진보>(더불어당 이념)가 <진보>(서구의 생각)가 아니고, <그 보수>(국힘의 당파싸움)가 <보수>(서구의 생각)이 아니다.
한국의 ‘진보사상’ 공부는 98년 이후 김대중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미국민주당에 대한 이해는 그때부터 시작됐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87년부터 98년 사이는 뭔가?
민주정의당 반공교재의 마르크스 해석이 독일 사민당 및 미국 민주당 좌파에, 굉장히 황당하게 보인 것에 대한 국제정치적 참전인 것이다.
미국 보수파엔 마르크스는 불편한 이름이지만, 공산혁명을 포기한 미국 진보파에겐 마르크스는 어쩌면 그들의 ‘손흥민’일 수 있다. (요즘 미국 민주당의 손흥민은 한나 아렌트다. 참 유튜브에 많다.) 87년 6월 항쟁은 제도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손흥민 개새끼>를 이유없이 하는 나라에 대한 참교육의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말해서, ....
미국 진보파는 ‘돈’의 ‘사도행전적 교회공동체’를 꿈꾼다. 그런 의미로 부자에 높은 도덕적 참여를 요구한다.
한국의 더불어 민주당 진보 호소인은, 원불교(사탄교)를 통한 후천개벽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보며, 정복당한 지배층에 대하여 러시아식 지배질서의 부담전가로 해석한다.
한국의 보수파의 경제관념은 위기 때 오너중심으로 간다. 영남 왕권제 유교와 위기 관리가 쉽게 만났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미국 보수파의 경제는 법 규칙 규범의 복음주의 기독교 가치관에 얽힌 신고전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면 논리로 간다.
한국 보수파는 트럼프 세력의 기독교 민족주의처럼 건국 세력에서의 이성적 합리성을 법치로 뽑아내는 논리가 없다.
노론 세도가문 소수파의 경제적 이기주의 가치로 간다.
결론을 요약하자.
한국정치는 조선시대식 사색당쟁이면서, 미국 의회에 별별 기독교종파가 섞여 있는 상황인 척 연기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파는 정경유착으로 기업의 생존-확장과 외부는 투명인간.
한국의 진보파는 원불교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전제로서 권력주권과 외부는 투명인간을 본다.
보수와 진보를 영정조의 탕평책처럼 아우르는 논리를 이상적으로 보라고 요구하나, 사실은 영정조가 전라도의 꼭두각시였다는 현실의 반복을 해달라는 말이 실제다.
필자는 리처드 머피라는 영국 노동당 경제유튜버 방송을 자주 본다. 돈의 사도행전적 공동체로서 부자층에 더 높은 책임을 강조한다. 이를 외면하는 영국을 떠나는 부자를 잡지 말라고 한다. 과연,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 씨족중심으로 유교붕당 어법위에 러시아볼셰비키혁명 언어를 쓰는 씨족집단의 언어와, 일반국민이 성령의 교통이 가능한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어떤 이념이든 보는 순간 상대측에 딱 투명하게 감이 잡히게 말한다. 한국의 더불어 민주당과 국민의 힘은 모든 것을 ‘원불교’(사탄교)발 씨족주의 언어에서 끌어온다. 그 종족 아니면 알아듣기 어렵다. 그래도 대졸 이상 고학력 인문학전공자로 종교해석학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충은 이해한다. 결국, 이해한 결과는 체계적이고 시스템적 불통이란 말이다. 그 불통 상태를 관리하는게 탕평 대동처럼 논의하는 셈이다.
이 속에서 경제구조조정이 어디있나?
국가개조가 어디있나?
대한민국의 앞날을 전제한 논쟁이 어디있나?
유신시대 유교자본주의 문제와, 김대중체제 대중참여경제학에 깔린 천도교(요즘은 원불교인 듯)문제는 하나도 안틀리고 똑같은 모순이 방향만 바뀌어 존재한다.
청와대 왕궁이 그들끼리 성채로서 국민 외면한 고립의 성채에서
국회의사당이 그들끼리의 성채로서 국민 외면한 고립의 성채로 바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