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조갑제 박정희 전기 출간 이전에 한국정치에서 모든 국민에 공유된 보편적 가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군사독재를 편드는게 아니라, 민주화신화가 가능했던 사회문화적 토대의 복원의 가능성)
 
박정희가 다 망쳤다. 박정희 이전으로 돌아가자.”9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말. : 이 말의 의미를 30여년 세월로 집어 넣어서 해석(해석은 질문자의 판단)하면.
 
. 일제 36년 및 제1-2공화국은 푸코적인 의미의 에피스테메로 씨족사회 에피스테메.
. 박정희 전두환체제는 서양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우선시함. 씨족사회로 돌아가고 싶은 동학양반들은 미치고 환장함. / 동학노인을 뺀 나머지 국민은 철저한 환영. 모순질서.
. 87년 이후 90년대와 2000년대 내내, 동학양반들은 위정척사파식 안티기독교 휘두르면서, 영어권 진보 코스프레.-여기에 속아넘어가는 미국 민주당. 및 영어권 진보.
. (1) 결국, 친일파 및 한미동맹파 재산 약탈해야 해(호남동학의 후천개벽) 공산파 민중동원 문제. (2) 빨리 어떻게든 공산파 타도하고 전쟁 끝내고(영남동학의 후천개벽) 국가에 보답받아야 해. - 국군의 심리.
여기로 돌아가자. 중국경전 중심의 씨족사회로 대대로 양반갑질 포지션의 편집증적 중독으로, 동족상잔 어게인도 뭐 어때? (실제 있었던 말 (1) 19875월 공산화를 포함한 모든 통일은 선. (2) 사회혼란 결여를 위한 쌍방 조심 아니라, 해방공간의 통일전쟁을 다시 하고 그래서 승자에 붙자는 메시지의 구어체.)
 
조갑제기자가 다 망쳤다. 조갑제 기자 이전으로 돌아가자.
 
. 1987년은 그야말로 한국 사회의 문화는 영남왕권제 유교로 권력층, 그리고 민간에는 기독교세계관 및 서양민주주의 우위론이 있었다. 이렇지 않았다면, ‘기독교민주화운동이란 말은 불가능. 실제로 지금 지배층은 뼛속까지 동학신앙에 근본주의 광신도수준이나, 대중동원용으로 기독교 및 서양민주주의 외형을 빌림.
 
.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애국심교육, 자유민주주의 교육 등을 30년 내내 움직임. 그리고 조갑제기자의 박정희 전기 이후 33년간 아~~~무것도 안함.
 
. “~느님아무데나 “~타령, 그리고 연극 신과 함께로 대놓고 무속신 나타내기 등은 ncck 민중신학파 주도인데, 이 사회에 서로 다른 잣대와 토대를 내세움. 이대호의 조선의 4번타자는 운동권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데 공병호 박사는 알만한 분인데, ‘조선인타령한다. (, 1-2공화국 에피스테메로 돌아가면서, 자유시장경제 논하는 말도 안되는 세계관)
 
. 김황식 전 총리의 조선일보 칼럼 관용과 인내나, 오늘 국민이기는 대통령 없다면서 이재명에 양보를 원하는 자세가, 영남 유교를 구사하는 전국민의 모두가 전라도 씨족이라는 세계관 퍼붓기 세뇌공작이었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이재명의 반중=혐오란 말인데, ‘혐오라는 영어권 진보의 의미가 없이, 전라도 유교의 오랑캐란 수준으로 쓰이는 것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모든 국민이 192812월 테제 이후에 조선공산당 포기하고 중국공산당과 연합으로 한 공산민족이라는 얼토당토안한 것의 억압적 동의를 깔고 있다.
 
대한민국의 출발= 제헌국회 계약질서.
반중=혐오라는 드립의 역사적 기원 = 중국의 친한 감정의 기원 = 조선공산당 해체 이후에 조선공산당-중국공산당 연대 씨족감정은, 북한 김일성 남침 때에 인민군 부역함. 이분들 기준은 중국은 은인. 그리고 사드 때에 중국의 본심을 이야기했는데, 중국도 한국에 친화적 감정은 이때에, 김일성은 남로당 박헌영 구출전쟁. 그리고 중국측은 김일성 구출전쟁으로 참전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19876월이 박종철을 극좌로 배제함은 이들을 공정한 대우하면 시스템 파괴한다는 우려였다. 이들을 제대로 대접하자 자리에 들어가서 다 파괴했다.
 
영어권 자유진영은 소련-중국을 포함하는 세계화가 말이 되나? 한국은 대한민국 섬멸전쟁 쪽에 수출해서 밥벌어먹자는 재벌경제가 말이 되나?영어권의 woke 이데올로기에 깔린 이민자 문화의 무신론논리에 깔린 이민자 씨족마다 다른 감정적 논리에 법치주의 붕괴가 있다면, 한국은 성리학 붕당 논리가 동학 운동으로, 그리고 조선공산당운동으로. 이 논리를 전부 인정하고, 법치주의가 어떻게 되나? 조갑제기자의 모든 논리는 공유된 가치로서 귀족이 일반인에 함부로 할 수 없는 지평을, 그 가치를 왜 지키는건데? 하는 손바닥뒤집기와 이어진다.
 
군사독재의 1인지도자에 공론장 합의 없이 1인독재가 까라면 까요!... 여기서 엄청난 권력의 목소리로 까라면 까요. 어차피, 권력에 까라면 까요라면, 회피해야 할 모든 중세적 요소로 꺼리는게 무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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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am Out Loud'
유튜브의 <도덕의 죽음> 편을 보고 드는 생각입니다. 동학은 향아설위가 기본입니다. 향벽설위는 아닙니다. 반면에, 서양문화는 향아설위의 로마문명적 형태인 woke, 동학인보기는 향벽설위입니다. 구글 ai(검색창)은 아시아문화를 관계로 봅니다. 조상신을 공유하는 이들과 이어지는 그런 관계입니다. 한국귀족은 군사독재로 국가 이면의 이익 따먹기 하다가, 씨족주의 꼭지점의 이익 따먹기가 낫지 않나? 법앞의 평등은 깨끗이 포기하는게 낫지 않나?

 
제도경제학을 논하려면 이분법적 사고입니다. 반면에, 동학인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만물을 자기 손안에 놓습니다. 조갑제기자는 김대중 김영삼 연합의 산물이요, 민주연합은 따지면 통일전선입니다. 합종연횡의 합종입니다. 통일전선으로 일당독재가 정말 목적이라면, 법치주의와 제도적 가치는 안해도 됩니다.
 
이분법적 사고로서 제도를 논하는 사고가 그래도 조갑제기자 박정희 전기 이전에는 그런 논의가 편했어요. 지금은 안 편합니다. 특히, 미국 민주당의 한국 간섭에서 빚어진 착각.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통련에서 후보 단일화햇죠? 민족해방주의로 1983년에는 같은 선언하고, 김영삼은 먼저 보편민주라고 주장하고, 미국과 한국국민은 그 표현을 정말 맹신했는데 민법 108조 통정허위표시입니다. 민족해방주의에 깔린 호남당파중심유교 깔고 표현만 교체하는 서양식민주주의입니다. 불륜남자가 낯에는 누구 만나고, 밤에 누구 만나듯이, 낯에는 보수우파, 밤에는 진보좌파 이중생활을 깔고 있습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 이전의 문화에서, 백낙청 저술만큼 분명한 반영물이 없습니다. 당시에 백낙청 지인인 대학교수레포트에 서양 근대화에 대하여 긍정적인 레포트는, 같은 아이디어에서 좌파적으로 비판하는 글로 쓰였지 싶습니다.
 
유교적 가부장주의 탈피? 이것은 민주당의 명분이고요... 아마도 실제의 문제는 이승만 상징 팔이하면서 지금 민주당에 줄선 분들이 문제를 보인다고 봅니다. 이분들은 조선시대 유교문집의 조상신 옹호를 하고 싶어합니다. 국민들은 무질서와 제도문란으로 고통에 절규하는데, 이분들은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과거도 사실은 그랬죠.
 
서양근대성으로서 확고한 문화로 지배 안했다면, 그들이 민족해방주의가 본심인데 보편민주주의라고 했겠습니까?
 
한국의 이단종교 심리는 한국의 조상숭배신앙으로 적당히 믹스하고 서양꺼와 똑같다는 심리입니다. 그 심리 그대로 한국 국민이 마루타가 되고, 서양에는 피로감 느끼는 한국의 스탠스입니다.
 
모든 국민이 왕 중심에 속해야 한다는 어법은, 모든 국민은 지배당파에... 그리고 지배당파안에서 각각 양반놀음 하자는 어법. 87년 이후는 왕중심을 부정하고 서양의 근대성만 옹호하던 때입니다.
 
한국의 보수진영의 철저한 지성인 전멸현상. 어디서 나왔을까요? 서양인문학지식은 왜 그리 천대와 박대일까요? 그러면서, 저 같은 사람의 애처로운 움직임을 안고, 서양에는 다르게 처할까요?
 
영어권 woke는 미국 민중주의로 미국 보수주의와 다른게 있다. 이것이 한국에서는 조선공산당과 이어진 친중문화 귀족들의 법치와 제도 신경 안쓰고 깨부수고 싶다! 이것의 후원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영어권이 눈헷갈리는게 표현의 포장입니다.
 
지금 동학노인은 씨족 질서로 가고 싶으니, 공동의 제도적 토대가 없어도 돼요. 그리고, 고통은 내가 고통 받냐? 젊은 세대가 고통받지? 씨족사회에 서양포장 덧입히는 기만어법입니다.
 
대한민국은 언제 공동의 제도적 토대로서 지식을 공유했었나요? 자유민주교육 중단을 넘어서, 조갑제기자는 자유당 때 어법의 자유대한민국으로 자유민주주의 스탠다드지식을 못하게 합니다.
 
최종 제언: 도덕을 '내가 마음대로 정하는 규칙'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순응해야 할 발견된 질서'로 볼 것인가에 따라 사회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전자를 택하면 결국 힘이 지배하는 갈등만이 남게 됩니다.
한 줄 평:
 
"우리는 뿌리를 잘라낸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보며 당황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우리가 공유했던 보편적 가치와 그 기원을 되돌아봐야 할 때입니다."(felo.ai로 도덕의 죽음 편 요약 종결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