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70년생이다. 민주정의당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붕괴를 바라면서, 민주정의당 시스템에 불만을 표하는 김대중지지 성향의 민주당 기성세대(현재의 노인)을 보고 자란 세대이다. 이 세상에 있는 자료만 가지고, 서울 소재 중하위권 대학교 레포트 품질 정도를 보증하는 AI 글쓰기가 필자를 따라올 수 없다고 본다. 89학번 70년생 꼬진대 국문과로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 ‘모든 역사는 현재사’, 다시 쓰는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신앙에 기초돼 모든 사실 증거를 종합한->이니까 그렇다.
김대중 지지자들은 이렇게 유신경제학을 지적했다.
①. 유신체제의 케인즈 경제학은 영남유교로 읽은 것이다. 제대로 해석한 것이 아니다.
②. 권위주의 권력 이데올로기와 연결돼 있다.
③. 민중사를 외면한 채 재벌중심의 양적 성장에 치우쳤다.
법을 초월한 1인 통치권자 중심으로 재물을 분배하는 것이 시장경제가 아니다. 경제학의 가장 근본은 아담스미스의 [도덕감정론]으로 이어지고, 유대기독교 시장 윤리를 서양철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동학 양반귀족’의 기독교에 대한 질투가 폭발한다.
시장경제는 계약자유원칙이다. 계약은 민법에도 나오지만, 기독교에도 나타난다. 시장경제의 사유재산 보호는 근본적으로 기독교윤리 위에 전제한다.
필자는 <중국 위안화 패권>의 가능성을 아예 선택지에 배제하고 본다. 영어권 유튜브 보면 중국에 매수된 유튜버인 듯, 중국과 브릭스 통화의 가능성을 높이 보는 경우가 있다. 근본적으로 동의안하고 황당해한다.
미국이 경기침체 들어가서 일시적으로 ‘달러’가 위기가 오더라도 최종적으로 달러패권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신뢰가 흔들리는 이상으로, 기독교문명에서 다른 곳도 신뢰가 이미 부서진 측면이 있다. 기독교 문명 자유진영에서 상호간에 신뢰가 부식됐다 하여, 중국문명 대장국가가 甲이 된다는 말은 불성립한다.
시장경제는 법과 제도가 투명하다면, 교회 비유로 바른 교의를 추구하는 교회공동체가 있다면, 정부(국가)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1인 권력 중심의 계획경제(경제계획 * 개년 계획)는 틀렸다는 판단은 정당성이 있다. 문제는 그 비판을 한 주체는 다른 식으로 손바닥 뒤집기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변형윤 박현채 학파는 동학농민윤리(농민정서)에 기반한 경제를 추구한다. 농민은 지주 사대부에 종속돼 있다. 농민들은 지주에 종속돼 그들에 편을 들어준다.
①. 농민은 지주만 믿고 살 듯이, 농민의 후예는 부채를 들고 부동산투자하며 지주의 후예 정치인에 종속된다.
②. 농촌 두레로 농민들이 공동체에 종속되듯, 지주들의 연합으로 그들의 “거대한 복지 두레 당파”를 설정한다.
한보철강 정태수 회장이 김영삼 믿고 아낌없이 기업대출 뽑다가 부도맞았듯이, 개인소비자는 각자의 진인 정도령 믿고 가계부채로 다 막아준다는 전제로 부채들고 부동산 매수로 들어간다.
박정희 전두환 체제 유교자본주의로 저가 상품 수출경제를 위해서는 꾸준히 권위주의를 구사해야 했다. 권위주의 음지가 나타났다. 공권력 남용에 반대편에 있는 음지가 나타났다.
김대중체제는 꾸준히 부채로 자본시장을 부풀렸다. 이에 기반한 다양한 음지가 나타난다. 남로~북로측의 이익을 위해서 반대측에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돌아갔다.
유신체제는 시장경제에서 벗어나서 1인권위주의 체제가 정상으로 믿는 기성세대를 전제로 움직였다.
김대중체제는 엄청난 전문가와 엄청난 자료가 있음에도, 모든 자료를 뭉개버리고 양반놀음하고 싶다 이기야! 하는 영호남 동학(똥물)신앙 노인들의 존재와, 먹고 살기 바빠서 정치뉴스 이면을 보지 못하는 층의 인질화가 겹쳐 있다.
결국, 官의 윤리 – 관직을 오래 독식하기 위함.
시장윤리 – 귀족들의 탐욕적 약탈행위에 아무런 대책없이 탈탈 털리는 국민의 문제가 있다.
결국 유신시대는 1인 지배자 권력강화에 경제학이 이데올로기로 봉사했다면, 김대중체제는 호남식 혹은 중공식 한 부족 권력독점에 경제학이 이데올로기로 봉사했다는 이야기다.
쉽게 말해서, 유신시대는 전국이 성리학적 군주관으로서 박정희, 전두환 1인 지배자로 통했다. 김대중체제는 유불선합일의 종족 두레로서 종족 대동세상 1당 권력으로 통한다.
돈은 얼마의 노동가치로 바꿔준다는 것을 약속하는 일종의 부채다. 따라서, 동학농민들의 ‘신화’로서 바라보는 흥부전에 깔린 흥부를 위해서 아낌없이 풀어줄 곡창의 쌀이 돈이고, 그것을 지배층은 풀 의무가 있다는 어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일베노인은 경제학에서의 윤석열씨 비상계엄처럼, 과거에서 성장/복지에서 안 주는 문제가 유교종족주의로 옳다는 정신 나간관점을 보인다.
유신시대는 재벌들이 수출한 돈으로 쌓아둔 것을 헐어버리고, 그때 저가수출 상품으로 번 돈으로 돈 복사(양이 작았기에 기대하는 양도 작았다. 이를 허물수 없다는 관료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본다)기대라는 맥락을 빼고, 돈 안준다는 의미만 강조하는 것은 딱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같은 판단 착오다.
유신시대는 권위주의 체제로 민생에서 완전히 분리된 별천지가 있다.
김대중체제는 부채버블을 잇권으로 퍼먹는 민생에서 완전히 분리된 별천지로 바뀌었다.
열심히 일하자는 메시지는 김대중정부까지고, 그 이후로는 ‘야 놀자’ 같은 감성이 지배했다.
“부채 돈놀이”를 농촌 두레처럼 집단행위로 영원한 성장을 꿈꾸는 일이 좋다고, 영남의 한 지자체장은 공진국가론을 내세우며 변형윤 학파의 주장을 맹신한다. 변형윤 학파가 진보주의자도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진보 호소인이다.
변형윤 박현채 학파는 결국 박현채의 남로당 경력 이미지가 본질이며, 군사정권 때에 하나의 사건을 영남의 6.25 참전용사 중심으로 감정적으로 쓰여진 역사기록으로, 남로당 박헌영 복지의 비하적 표현에 대한 비분강개가 그들의 동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그렇다. 빨간 안경쓰고 코끼리가 있으면, 파란 안경 쓰면 코끼리 대신에 사자가 있는게 아니다. 안경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색깔이 다른 코끼리가 있을 뿐이다.
막스베버는 씨족종교는 시장경제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안되는 것에 몰빵하고, 사고가 나면 누구 탓인가?
필자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 세대 일반인 : 경제학 이론 벗어났다. 사고 나면 어찌할꺼냐?
핵심 권력들 : 그것을 니가 왜 걱정하나? 그건 걱정할 필요없어.
만약에 사고가 나면, 이분들의 책임이다.
필자는 윤석열 정부 기간 내내, 더도 덜도 아니라 김대중 지지자들이 민정당 전두환 때 유신경제학 반대하듯, 김대중 경제학을 윤석열 정부가 부정해주길 바랬다.
결국, 필연적으로 이단경제학을 추구하여 안드로메다로 보낸 한국경제는 그 때문에 경기침체를 맞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