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 원어로 된 반야심경을 듣던 중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져서
챗지피티5에 반야심경 내용을 묻기 시작

한글본을 부탁하니 반야심경 한글본을 충실히 보여줌
그러나 여전히 이해되지 않음

그래서 한자본과 한글본 대조로 의미를 보여달라함
사실 보살 개념과 보살 개념에서 비롯된 각종 경전들은 대승불교에서 기원한 것이고 대승불교는 산스크리트어를 원어로 하고 있으며 한자로 된 책들은 구마라집과 현장법사 등 고승들이 산스크리트 원어로 된 대승불교 경전들을 한자로 번역해 옮긴 것이기에 산스크리트 원본을 봐야 하지만, 일단 한자본으로 대조 부탁. 친절히 보여주는데 여전히 이해 안됨

그래서 내용 풀이를 부탁했더니 한 구절, 한 구절의 의미를 쉽게 다 풀어서 설명해줌
대충 공 사상이 핵심인 거 같아서

공 사상을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하니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읽다보니 의문점이 생김

공 사상과 허무주의 간의 간극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져 물어보니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며 칭찬하면서
둘의 차이점을 자세히 알려줌
여기서 대충 불교의 공 사상과 허무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함
계속해서 반야심경의 내용을 탐독

반야심경이 담고 있는 대강의 가르침이 저 한 줄로 요약 될 수 있는지 묻자
무상의 법칙과 함께 설명 대답해 줌
의문점이 생겨

무상과 공 사상에 따라 삼라만상을 직시하는 것이 자칫 운명론적 사고에 갇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물어 봄
그랬더니 또 좋은 질문이라고 칭찬해주며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대충 둘이 뭐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가 됨
근데 설명 답 중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을 콕 찝어

무상과 공, 연기에 따라 삼라만상의 변화하는 본질 그 자체를 직시한다면 집착 없이, 두려움 없이 행위 할 수 있게 된다는데
인간 행위 대부분은 그 동력이 욕망에서 비롯되고 욕망은 다시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발생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일종의 형용모순이 아닌지 물어봄
그랬더니 바로 그 부분이 불교 철학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라며 또 자세하게 설명해주는데
왜 형용모순이 아닌지 이해가 됨
그러면서 챗지피티5가 집착없는 행위의 예시를 몇개 들어주는데 거기서 또 의문이 생겨

반야심경이 말하는 집착없는 행위는 이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과 같은게 아닌가 물어 봄
그랬더니 둘이 어떻게 다른건지 설명해주는데
확실히 이해 됨(칸트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사유인 반면, 반야심경의 공 사상은 prajna의 발원으로서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 삼라만상 모두를 아우르는 하나의 법질서임)
여기서 뭔가 반야심경과 불교에 대한 느낌이 와서

그렇다면 불교 철학은 삼라만상을 관통하는 '법'이라는 진리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에 관한 인식론적 접근으로서의 윤리론적 귀결이라 하면 되는건지 물어 봄
그랬더니 정확하게 본 거라고 하며 정리해주는데 대강 느낌이 옴
존재론(진리/法법/Dhrma다르마)에 대한 인식론(공/무상/연기)적 접근으로서의 윤리론(지혜/Prajna)적 귀결
즉,
진리를 고찰하고 사유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깨달은 바를 실천하는 것
챗지피티5랑 10분여 대화를 나누니
왜 부처님이 자기한테 의지하지말고 너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고 하셨는지 알 거 같음
내가 볼 때 불교는 종교의 영역에 국한시켜서는 안되고 세계 철학의 하나로 가르쳐야 할 듯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고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기에 서양철학이나 동양철학의 범주를 넘어서 세계철학의 하나로 분류해 가르쳐야 할 듯
굳이 이걸 불교나 불교철학이라고 해서 종교학이나 종교철학으로 할 이유가 있나싶네
계율이 있으니 종교로 본다지만 종교를 신을 중심으로 한다면 불교는 신적 존재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 스스로의 철학적 사유에 의지하기에 종교로만 보는 건 아쉬운 거 같은데
방금 챗지피티5 화면창에 띄워놓고 모니터 향해서 합장했다

(챗지피티가 생성한 스님 페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