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지방수령 자리는 돈을 주고 사는 자리였다. 관찰사(도지사)가 100만 냥(약 5만 달러), 현감(군수)은 만냥(약 500달러)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관직에 임명되어 한양의 임금에게 감사인사를 드리는 '사은숙배(謝恩肅拜)'는 말그대로 뇌물천하 그 자체였다. 수많은 양반관료들에게 엄청난 뇌물을 주어야 해서 빚더미에 앉았다고 한다. 

사은숙배를 하러 한양궁궐에 들어가려고 하면 대전별감(왕의 경호임무)이나 승정원에서 수십냥의 뇌물을 뜯어냈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궁궐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후 궁궐에 들어가면, 재상, 판서들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뇌물을 바쳐야 했고, 사헌부, 사간원 관리들에게도 뇌물을 바쳐야 했다. 

또한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조 및 병조의 관리들에게도 뇌물을 바쳐야 했다. 

18~19세기 지방수령(현령)이 한양에 사은숙배를 다녀오는데 평균적으로 400냥을 지출했다고 한다. 당시 한양 사대문 안의 기와집 1채 가격이 150냥이었으니 기와집 2.7채 값을 뇌물로 바친셈이었다. 

지방수령들은 관직을 사고 뇌물을 바치는데 지출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 백성들을 마구 수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방수령 임기가 3년 내외였는데 지방발전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하기 보다 수탈을 통해 뇌물로 진 빚을 갚고 재산을 축적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가혹한 수탈에 굶주린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 왜 가난하고 국력이 약했는지 알수 있다. 부정부패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원인들이 있었지만 수백년 동안 기득권세력들에 의해 고착화되어서 망국직전까지도 고치지 못했던 것이다. 국가사상(성리학)이 잘못되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