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고 쭉 자랐으며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한국인 부모님이 1970년대에 파독 근로자로 독일 이민을 갔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1970년대 실업축구선수 출신이었고
독일에서는 파독 광부, 어머니는 파독 간호사 출신이다.
학창시절 농구선수가 꿈이었고 한국의 한양대학교에 와서 합숙훈련을 했다.
15세부터 18세까지 3년간 한양대에서 합숙하면서 농구선수로 고된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훈련 받으면서 기합(얼차려)를 받는 내용에 대한 인터뷰를
군인의 배역을 맡으면서 언론과 한 내용에 의하면
기합이 너무 심해서 군대를 갔다 온 것 이상의 단체생활의 고충에 대해 경험했다고 한다.
농구선수로 훈련 중 1999년 만 18살에 양쪽 무릎의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꿈을 접었다.
당시 의사가 걸어다니는 것도 다행이라 여겨라 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고 한다.
양쪽 무릎 부상 문제 때문에 군대는 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병역법이 강화된 현재 기준으로도 여전히 한쪽만 십자인대 파열이 되어도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는다.[16]
2002년, 만 21살 때 해외경험을 하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갭 이어를 떠났다.
이후 체대(물리치료 관련)에 입학할 계획이였으나
우연히 접한 연기에 빠져 미국과 영국에서 연기 공부를 했다.
2006년, 만 25살 때 11살 연상의 한국인 사진가 니키 리와 결혼했다.
미국 뉴욕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발목에 새겨진 타투는 그녀의 이름이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쭉 자랐지만 독일인의 정체성은 가져본 적 없고,
자신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연기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독일인은 독일인들끼리, 외국인 이민자들은 이민자들끼리[17] 어울렸지만
두 무리 중에서 어디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렸을 때 정체성에 관한 혼란과 떠돌아다니는 삶과 뿌리에 관한 질문을 늘 던지며 살았다”고 한다.
정체성 혼란이 오고 문화적으로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힘들 때
아내 니키 리가 외롭지 않게 해주었고 자신을 완전하게 이해해준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독일, 대한민국의 2가지 언어와 문화를 경험하며 자란 TCK이다. #1 #2 #3 #4
한국에 건너와 데뷔하기 전인 2008년까지 독일, 미국, 영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독일어, 영어는 유창했지만 한국어는 초등학생 수준으로 서툴렀다고 한다.
10여년 간 한국에서 생활하며 꾸준한 한국어 학습을 해서 현재는 한국어를 읽고 말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