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기자의 ‘자체 핵무장론’이 유신시대의 김대중지지자들의 국가불신론과 탄핵정국 보수층의 헌재불신론(원불교귀족연합)을 이어준 이유
-한국국민과 미국은 ‘원불교지배’층에 민주화신화로 사기당했다 느낀다-
 

 
한국 헌법은 서양법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영남 유교나 대구경북/부산경남 동학신앙 종교진리를 취하지 않을뿐더러, 호남 유교나 광주전남/전북 동학신앙 종교진리를 취하고 있지 않다.
 
인권위원장이 국제인권단체에 서한을 보냈다. 국제인권단체는 한국이 씨족중심의 종속형태의 신앙을 배제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고 있다. 대구 경북의 ‘왕 중심 종속신앙’을 취하지 않는 전제로 유지하고 있고, 동시에 광주전남의 ‘당파 중심의 종속신앙’을 취하지 않는 전제로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제한다.
 
“제4조 어느 누구도 노예나 예속상태에 놓여지지 아니한다. 모든 형태의 노예제도 및 노예매매는 금지된다.”(세계인권선언 제4조)
 
필자는 왕 중심의 씨족신앙으로 연고 온정주의를 구사하는 사쿠라 조갑제의 북한인권론, 및 당파 중심의 씨족신앙으로 연고 온정주의를 구사하는 서준식 서승의 민족해방파 인권론(문재앙을 거쳐 이재명에 이르는)이 모두 하나같이 <사기극>이라고 규정한다.
 
대구경북 유교(동학신앙)의 대전제—우리 임금님 종속이라 행복해요.
광주전남 유교(동학신앙)의 대전제—우리 당파 종속이라 행복해요.
 
여기서, 왕 중심주의에 들어가서 보호받고, 혹은 동학 공산 당파성에 들어가서 보호받는 것은 <인권>이라 부를 수도 없고, 불러서도 안된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영남 유교 색깔을 보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망쳤다. 로마 사회에서도 냉정한 말로 로마법 중시하면서 중국문명 샤머니즘 인간이 살 수 있다. 그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음란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안한 사람을 처벌하는 국가는 없다.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자체 핵 무장론’은 1977-1979년을 소환한다. 미국 카터대통령이 박정희 정부에 말들어! 하고 인권으로 갈구었고, 이에 심각하게 빡친 박정희 정부는 자체 핵무장의 발상을 했다.
 
지나놓고 보니 알게 되는 결과가 있다.
 
미국 민주당은 꾸준히 한국이 자신들에 친화적인 유럽인줄 안다. 그래서 미국 민주당은 전라도 씨족주의로 중공과 북한 및 소련에 흔한 ‘당파중심의 종속주의’가 빈발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최근에는 알 수 있다고 보나, 미국 공화당 개새끼라고 욕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모르는 체 하고 있지 않나?)
 
한국의 더불어 민주당(김대중지지층)은 경상도 유교 파시즘에 피해당하는 선민이라고 자신을 주장한다.
 
1977-1979년은 조갑제기자가 빼먹은 진짜 맥락이 있다. 6.25 전쟁 휴전에서 불과 24-26년밖에 안 지났다는 점이다. 특히, 남로당세력들의 국가붕괴 움직임을 힘으로 겨우 막았다. 그러나, 이젠 한국은 세계 속에 위치한다. 더 이상 제3세계 신흥국의 지배방식으로 남로당 국가 붕괴 움직임을 힘으로 억누를 수 없다.
 
이제,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핵무장론’은
 
원조인 1977-1979년은 영남 왕권제로 김대중지지자들이 오랑캐몰이 당하는 고통에서, 미국 민주당이 손떼길 바라는 차원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의 ‘당 독재’ 구조 복원에서 보수유권자 폭망시키기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 미국이 손떼라는 논리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정의당 체제 내내 일본헌법 천왕(덴노)에 해당되는 헌법 총강으로 영남 왕권제를 곧추세우며, 오랑캐 김대중 개새끼를 논하는 어법이었다.
 
추미애 여사가 전두환 재판을 소환하는데, 전두환재판의 심판자인 1983년 김대중 김영삼 연합의 ‘민주화=민족해방’(소련 마을 갑질)의 의미와 연결된다. 민주당은 그 전통에 입각해서 윤석열 정부를 탄핵하려 한다. 그러나, 국민은 ‘민주화=민족해방’이 진짜 의미이면서, ‘민주화=자유민주’라고 김대중 김영삼 연합에 사기를 당했다고 기억한다. 그들이 헌법재판소 인용판결을 해도, 민주화체제 전부를 <국제예수사기단 문제>로 확대하여 ‘무효’판결을 날릴 수 있는 부분이다. 동학신자들이 의도적이고 고의적으로 기독교기구를 동학조직의 꼭두각시로 사용한 혐의는 모두 투명하게 입증이 된다.
 
탄핵 반대운동에 매달리는 한국교회는 전광훈씨 영향으로, “나 화났어!”하는 광장집회는 그만하고, 불법성을 주장하는 만큼 입증해야 한다.
 
원조의 ‘자체핵무장론’인 1977-1979년은 다시 강조하지만, 6.25전쟁 불과 24-26년 뒤다.
 
권위주의로 국가붕괴를 막고 싶다는 것이 깔려 있다.
 
그러면, 사쿠라 10단 조갑제의 다시 소환한 ‘자체 핵무장론’은 무슨 의미인가?
 
‘부채’를 완전히 논줄에 물대기처럼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으로 늘렸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는 엄청난 영역의 불법행위가 숨쉬고 있다는 것을 감추고 싶은 것이다.
이재명의 대장동은 빙산의 일각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국가의 공적책임의 신뢰를 믿었다. 그러나, 알뜰하게 귀족의 자기 재산증식으로 나아갔다.
 
유신체제는 강해도 너무 강한 1인 지도자가 힘으로 틀어막는 국가붕괴라면, 김대중체제는 원불교 귀족연합의 집단 불법행위에서 증시 격언에서 물이 빠지면 벌거벗고 헤엄치는 사람들의 오픈이 나타난다. 한국귀족의 부도덕한 불법행위 난무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심판의 시간이 싫은 것이다.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경전이 아닌 전제로 서양 국방학 논문이 많이 나왔다.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서양국방학은 부르주아 지배체제와 만난다. 물질 교환관계가 안보다.
 
군사정권의 자체핵무장론은 그야말로 [육도삼략] 등 중국병법이 논해질 때다. 지금은 그런거 논하는 세대가 이미 끝났다.
 
서양문화로 이익은 보지만, 서양에서 왜 불법행위해! 하고 질책은 싫다. 그래서 불법행위로 너무 많이 커져버린 귀족집단의 문제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해외기구에 서한을 보내도 사실은 답이 없다.
 
오히려, 진짜 해법은 경제위기로 그 귀족이 뿌러지는 것이다.
 
군사정권 극복의 해법은 제한정부로서 ‘과잉금지원칙’의 전면화다.
 
핵무장을 한다고 해도, 본질적인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분야의 문제인, 씨족문화로 최대한 찢어버려서 출산율폭망과 모든 소통이 단절된 무질서로서 국방도 자멸하는 현상을 덮을 수 없다.
 
 
1977년 자체 핵무장론 원조 때도,.... 한국 사회는 먹물들이 등판 못했다.
 
두 번째 자체 핵무장론은 돈이 남아도 돌아도, 별로 웃기지도 않은 방송인들의 예능, 예능, 예능, 트로트 트로트, 트로트, 지성들에게 설 땅을 허락자체를 안한다.
 
한국 사회의 제 위치는 다시금 서양인문학으로 실력자가 제 위치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국의 노론세도가문의 전 세계 넘버 1 권력욕구를 잘 안다. 필자보다 똑똑한 사람이 많아도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다.
 
보수층은 아무도 조기대선에 등판하지 말아야 한다.
 
꼭, 1당독재 폭주인데 꼭두각시로 나서야 하나?
 
유신시대에 김대중지지자들이 귀에 못이박히도록 무한반복했던 이야기가 있다.
 
유교 제사를 생각하면 안다. 우리 가문의 주인장 찬양하는데, 외부는 뭔 시답지 않은 소리.
 
권력을 쥔 귀족가문 연합의 씨족주의로서 국가를 어떻게 믿나?
 
지금도 똑같다.
 
원불교(사탄교)귀족당파는 그들끼리의 우주중심(중화주의)이 있다.
 
공부가 매우 부족한 사람들은 서양법의 보편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언약의 이스라엘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기독교분파 숫자대로 해석이 다를 수 있고, 하나의 기독교공동체도 자의성을 나뉠 수 있다.
 
서양문화는 인간이 존엄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간에 인간연결이라는 속에서 윤리다.
 
그런데, 경상도는 우리 임금님에 까불지마
전라도는 우리 당파가 우주중심이야 까불지마
 
여기서, 한번은 우리 임금님에 까불지마로 자체 핵무장론
이제 전라도의 우리 당파가 우주중심이니 까불지 말라면서, 자체 핵무장론.
 
군사정권은 정말 억압으로 지성인들을 통제했다.
 
지금은 억압은 아무도 안 하는데 감히 못 나선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두유 노우 老論’? 백인우파 천억만배 넘사벽 개시발새끼 老論을 아느냐고.
 
이재명 이완용짤은 선비들이 혼잣말만 하고 아무도 못 나서는 상황으로 나라를 파는 상황의 발생우려다.
 
원래 경제위기란 것이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한국이 워낙 많이 반칙경제를 해왔고, 반칙경제로 자란 반칙정치의 정의구현이 ‘경제위기’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