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월 2일 윤석열은 계엄 선포 하루 전 공주 전통시장을 방문함.
(2) 대선 후보 시절 방문한 뒤 3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이었음.
(3) 당시 여론조사에서 18%라는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음.
(4) 상인들은 예상 외로 따뜻한 환영 인사로 맞아줌.
(5) 떡집 사장님은 손주가 8명이라며 환한 미소로 자랑을 늘어놓음.
(6) 윤석열은 시장 사람들의 환대에 감사하며 방송부스를 들러 인사를 하고 싶어했음.
(7) 갑작스러운 결정에 경호처장이 반대했으나 고집을 부려 라디오 부스에 앉음.
(8) 윤석열은 아직 새해가 한 달이나 남았음에도 새해 인사를 건넴.
(9) 부스 안을 쳐다보던 시장 사람들은 조금은 빠른 새해 인사에 서로를 바라보며 방긋 웃음.
(10) 12월 3일 계엄 당일 키르기스스탄 자파로프 대통령이 용산을 찾아옴.
(11) 키르기스스탄도 2020년 부정선거로 홍역을 치른 국가였음.
(12) 자파로프 이전 당선된 진베코프 대통령은 친러 친중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쳤음.
(13) 러시아 공동 통화를 도입하여 자국 경제가 러시아에 종속되었음.
(14) 중국으로 6억 위안을 빌린 후 광물 자원 라이센스를 중국에게 줘버림.
(15) 키르기스스탄 국민들은 결정적인 이익과 주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음.
(16) 국민들은 2020년 10월 5일 총선에서 현 정권을 투표로 심판하고자 이를 갈고 있었음.
(17) 총선 결과 120석 중 친러 친중 진베코프가 107석을 독식했음.
(18) 오후에 개표 결과가 뜨면서 분노한 10대 20대 학생들이 알라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음.
(19) 학생들은 선거 무효와 재선거 실시를 요구했음.
(20) 시위대 모습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어 저녁이 지나서는 수천 명이 되었음.
(21) 진베코프 대통령은 시위대가 커지기 전에 해산시키기 위해 무력을 동원함.
(22) 가로등 전력을 차단하고 물대포, 최루가스, 섬광탄을 사용하며 폭력 진압함.
(23) 시위대는 삼단봉으로 얻어맞으며 피범벅이 됨.
(24) 가로등이 다시 켜지고 사람들은 현장의 모습을 목격함.
(25)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으나 그 가운데 한 학생이 쓰러져 있었음.
(26) 19세 청년 우무트베크는 섬광탄의 폭발로 양쪽 다리가 절단되어 죽어 있었음.
(27) 잔혹하게 죽은 청년의 모습이 소셜 미디어로 퍼지게 됨.
(28) 그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분노하여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음.
(29) 시민들은 경찰을 자신들과 같은 국민으로 여기며 연대의 가능성을 기대했음.
(30) 경찰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결혼 유망 직업이었음.
(31) 하지만 이상하게도 경찰은 주저 없이 폭력을 행사하며 시민들의 피를 개의치 않음.
(32) 경찰은 대부분 북구 러시아계와 중국 화교 출신이었음.
(33) 소련 잔재 세력과 중국 화교들에게 지나친 입시, 채용 특혜를 준 게 원인이었음.
(34) 경찰 채용뿐 아니라 이들은 기득권이 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 있었음.
(35) 키르기스 국립 의대, 알라토 의대, 비슈케크 의대에 특별전형으로 입학이 가능했음.
(36) 비슈케크 7대 법대에도 이들을 위한 특례 입학이 있었음.
(37) 진학할 성적이 되지 않아도 소수민족 차별 방지를 빌미로 자녀들이 대거 입학했음.
(38)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은 좋은 직업으로 귀결됨.
(39) 키르기스스탄의 경찰은 상류층을 꿈꾸는 좋은 직업군이었음.
(40) 소수 민족들은 자신의 이익과 혜택을 지키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시위대를 폭력 진압했음.
(41) 10월 5일 밤 사상자가 약 600명에 달했음.
(42) 확고한 신념을 지닌 시위대는 억압받을수록 더욱 강렬하게 타오름.
(43) 프랑스혁명, 프라하의 봄, 천안문, 그리고 4.19혁명까지 역사가 거듭 증명해온 진리임.
(44) 이날 키르기스스탄의 국민들은 분노와 결의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음.
(45) 10월 6일 새벽, 수도 비슈케크의 100만 명 중 7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옴.
(46)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이 거리로 나와 하나의 목소리로 부정선거를 외쳤음.
(47) 키르기스스탄의 남자들은 수천 명이 스크럼을 짜며 경찰의 진입로를 차단함.
(48) 눈앞에서 섬광탄이 터져 실명하였는데도 스크럼을 놓치지 않았음.
(49) 물대포와 최루탄에 굴하지 않고 저항의 의지를 굳건히 함.
(50) 폭력적인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서로를 보호하며 평화적 시위를 이어감.
(51) ‘드루지니키’라는 시민수찰대를 조직하여 시위가 수반하는 폭력성을 스스로 감시하였음.
(52) 시위대는 낮에 선관위를 점령하고 국민 저항을 통해 선거 무효화를 외쳤음.
(53) 시위대는 저녁이 되자 구치소에 쳐들어가 불법 체포된 자파로프(현 대통령)를 석방시킴.
(54) 당시 대통령 젠베코프는 이를 쿠데타라고 맹비난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강경 진압함.
(55) 시민들은 경찰의 무차별적 폭력 진압에도 평화적 시위로 맞섰음.
(56) 사상자가 천명을 넘어서자 시위대는 경찰차를 불태우는 등 일부 폭력을 쓰기 시작함.
(1) 12월 2일 윤석열은 계엄 선포 하루 전 공주 전통시장을 방문함.
(2) 대선 후보 시절 방문한 뒤 3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이었음.
(3) 당시 여론조사에서 18%라는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음.
(4) 상인들은 예상 외로 따뜻한 환영 인사로 맞아줌.
(5) 떡집 사장님은 손주가 8명이라며 환한 미소로 자랑을 늘어놓음.
(6) 윤석열은 시장 사람들의 환대에 감사하며 방송부스를 들러 인사를 하고 싶어했음.
(7) 갑작스러운 결정에 경호처장이 반대했으나 고집을 부려 라디오 부스에 앉음.
(8) 윤석열은 아직 새해가 한 달이나 남았음에도 새해 인사를 건넴.
(9) 부스 안을 쳐다보던 시장 사람들은 조금은 빠른 새해 인사에 서로를 바라보며 방긋 웃음.
(10) 12월 3일 계엄 당일 키르기스스탄 자파로프 대통령이 용산을 찾아옴.
(11) 키르기스스탄도 2020년 부정선거로 홍역을 치른 국가였음.
(12) 자파로프 이전 당선된 진베코프 대통령은 친러 친중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쳤음.
(13) 러시아 공동 통화를 도입하여 자국 경제가 러시아에 종속되었음.
(14) 중국으로 6억 위안을 빌린 후 광물 자원 라이센스를 중국에게 줘버림.
(15) 키르기스스탄 국민들은 결정적인 이익과 주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음.
(16) 국민들은 2020년 10월 5일 총선에서 현 정권을 투표로 심판하고자 이를 갈고 있었음.
(17) 총선 결과 120석 중 친러 친중 진베코프가 107석을 독식했음.
(18) 오후에 개표 결과가 뜨면서 분노한 10대 20대 학생들이 알라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음.
(19) 학생들은 선거 무효와 재선거 실시를 요구했음.
(20) 시위대 모습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어 저녁이 지나서는 수천 명이 되었음.
(21) 진베코프 대통령은 시위대가 커지기 전에 해산시키기 위해 무력을 동원함.
(22) 가로등 전력을 차단하고 물대포, 최루가스, 섬광탄을 사용하며 폭력 진압함.
(23) 시위대는 삼단봉으로 얻어맞으며 피범벅이 됨.
(24) 가로등이 다시 켜지고 사람들은 현장의 모습을 목격함.
(25)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으나 그 가운데 한 학생이 쓰러져 있었음.
(26) 19세 청년 우무트베크는 섬광탄의 폭발로 양쪽 다리가 절단되어 죽어 있었음.
(27) 잔혹하게 죽은 청년의 모습이 소셜 미디어로 퍼지게 됨.
(28) 그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분노하여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음.
(29) 시민들은 경찰을 자신들과 같은 국민으로 여기며 연대의 가능성을 기대했음.
(30) 경찰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결혼 유망 직업이었음.
(31) 하지만 이상하게도 경찰은 주저 없이 폭력을 행사하며 시민들의 피를 개의치 않음.
(32) 경찰은 대부분 북구 러시아계와 중국 화교 출신이었음.
(33) 소련 잔재 세력과 중국 화교들에게 지나친 입시, 채용 특혜를 준 게 원인이었음.
(34) 경찰 채용뿐 아니라 이들은 기득권이 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 있었음.
(35) 키르기스 국립 의대, 알라토 의대, 비슈케크 의대에 특별전형으로 입학이 가능했음.
(36) 비슈케크 7대 법대에도 이들을 위한 특례 입학이 있었음.
(37) 진학할 성적이 되지 않아도 소수민족 차별 방지를 빌미로 자녀들이 대거 입학했음.
(38)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은 좋은 직업으로 귀결됨.
(39) 키르기스스탄의 경찰은 상류층을 꿈꾸는 좋은 직업군이었음.
(40) 소수 민족들은 자신의 이익과 혜택을 지키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시위대를 폭력 진압했음.
(41) 10월 5일 밤 사상자가 약 600명에 달했음.
(42) 확고한 신념을 지닌 시위대는 억압받을수록 더욱 강렬하게 타오름.
(43) 프랑스혁명, 프라하의 봄, 천안문, 그리고 4.19혁명까지 역사가 거듭 증명해온 진리임.
(44) 이날 키르기스스탄의 국민들은 분노와 결의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음.
(45) 10월 6일 새벽, 수도 비슈케크의 100만 명 중 7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옴.
(46)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이 거리로 나와 하나의 목소리로 부정선거를 외쳤음.
(47) 키르기스스탄의 남자들은 수천 명이 스크럼을 짜며 경찰의 진입로를 차단함.
(48) 눈앞에서 섬광탄이 터져 실명하였는데도 스크럼을 놓치지 않았음.
(49) 물대포와 최루탄에 굴하지 않고 저항의 의지를 굳건히 함.
(50) 폭력적인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서로를 보호하며 평화적 시위를 이어감.
(51) ‘드루지니키’라는 시민수찰대를 조직하여 시위가 수반하는 폭력성을 스스로 감시하였음.
(52) 시위대는 낮에 선관위를 점령하고 국민 저항을 통해 선거 무효화를 외쳤음.
(53) 시위대는 저녁이 되자 구치소에 쳐들어가 불법 체포된 자파로프(현 대통령)를 석방시킴.
(54) 당시 대통령 젠베코프는 이를 쿠데타라고 맹비난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강경 진압함.
(55) 시민들은 경찰의 무차별적 폭력 진압에도 평화적 시위로 맞섰음.
(56) 사상자가 천명을 넘어서자 시위대는 경찰차를 불태우는 등 일부 폭력을 쓰기 시작함.
(57) 북구 러시아계 및 화교 경찰 간부들은 시위대 사살을 원했음.
(58) 시위대는 대통령 집무실 앞까지 쳐들어왔으나 젠베코프는 발포를 허락하지 않음.
(59) 전국적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이 인구 730만 명 중 410만 명이었음.
(60) 비상사태 선포 6일 후 젠베코프는 국민의 거센 압박에 굴복하며 스스로 사임함.
(61) 키르기스스탄은 부정선거를 바로잡고 민주주의를 되찾는 데 성공함.
(57) 북구 러시아계 및 화교 경찰 간부들은 시위대 사살을 원했음.
(58) 시위대는 대통령 집무실 앞까지 쳐들어왔으나 젠베코프는 발포를 허락하지 않음.
(59) 전국적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이 인구 730만 명 중 410만 명이었음.
(60) 비상사태 선포 6일 후 젠베코프는 국민의 거센 압박에 굴복하며 스스로 사임함.
(61) 키르기스스탄은 부정선거를 바로잡고 민주주의를 되찾는 데 성공함.

저 키르키스탄에 부정선거의 원흉 개표시스템을 제공한게 어디다??
A-WEB!! 2015년부터 키르키스탄에 선거시스탬을 제공함.









